소설리스트

독식전설-23화 (23/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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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좋지 않다.

리벤지 퀘스트.

머더러들이 갖고 있는 복수 퀘스트다. 머더러들은 자신이 패배한 상대에게 단1회, 리벤지 퀘스트를 가질 수 있었다.

리벤지 퀘스트는 상대를 추적하게 해 주는데, 그 오차범위는 대략 24시간 쯤 될 거다. 즉, 상대는 복수대상자가 24시간 전에 머물었던 곳들을 따라 움직이며 추적해 오게 된다.

후에 녀석들은 저것을 전략적으로 이용한다지만 그건 나중 일이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리고 리벤지 퀘스트에서 다시 패배하게 되면, 머더러는 더욱 뼈아픈 패널티를 치르게 된다.

쾅!

쉬폰의 몸 위에서 무시무시하게 대미지를 깎아내리던 중독을 비롯한 각종 상태이상이 폭사에 터져나갔다.

콰과광!

‘어?’

쉬폰이 적지않게 당황했다.

이건 이상했다. 그냥 대미지 자체가 차원이 다르게 올라 버렸다.

쐐애액!

태호는 놈이 지르는 검을 빤히 지켜보았다. 데스나이트는 태호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에 충실했다. 녀석이 필사적으로 놈의 검을 막아섰다.

푹!

데스나이트의 등이 태호의 미간으로 향하는 검을 틀어막았다.

푹푹푹!

데스나이트가 정말이지 끈덕지게 놈에게 달라붙었다. 100레벨 정예에다가, 녀석은 기본적으로 설정 자체가 근접전의 스페셜리스트였다.

‘괜찮군.’

사실은, 싸울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나설 수 있다. 허나 태호가 굳이 나서지 않은 것은 데스나이트에 대한 일종의 성능 테스트 같은 것이다.

‘일대일 정도는 손쉽겠어.’

이젠 대미지 테스트다.

태호는 쉬폰에게 떠오르는 대미지 메시지를 찬찬히 살펴 보았다.

놈의 체력이 그야말로 무지막지하게 깎여 나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예전에 조우했을 때 보다 족히 3배 가까이 대미지가 터지고 있었다.

방어 무시와 2배 보너스를 비롯한 각종 성과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쾅!

태호는 저주의 화살을 쏘아냈다.

상대에게 들러붙어 공격속도를 감소시키고, 지속대미지를 주는 또 다른 도트기술이다.

거기에 절망, 시력상실까지 더해지니 이제 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얻어맞을 뿐이다.

쾅!

폭사가 이어졌다.

쉬폰의 상체가 허망하게 쓰러져 갔다. 아직 목숨은 붙어 있으나, 파리목숨일 뿐이다. 주먹질 한 방이면 죽어 버릴 테니까.

태호는 그런 그의 앞에 걸어가 섰다.

“......”

쉬폰이 자신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이 장면이 어쩐지 퍽 어색했다.

“너...... 정체가 뭐지?”

놈이 입을 열었다.

태호는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유저.”

“세상이 넓은 건가? 아니면 네가 특별한 건가.”

“그건 좋을 대로 생각해.”

“......날 비웃을 생각인가.”

태호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전혀.”

태호가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자신의 이 비정상적인 성취는, 회귀한 자신의 특권일 뿐이었다.

원해서 된 것이 아니다. 때문에 지금의 이 성취를 가지고 남을 욕하거나, 무시하거나 비웃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윤형석을 비웃을 생각은 더더욱 없다.

과거의 태호는 눈 앞의 쉬폰, 윤형석과 정말 지겨울 정도로 다퉜으니까.

오래 싸우다 보면, 정이란 게 든다. 그게 미운 정인지 고운 정인지 솔직히 이제는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런 상황은 놈에게 있어 말이 안 되는 상황일 것이라는 점이다. 태호는 솔직한 심정으로 말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나는 단 한 시도, 네가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쾅!

폭사가 쉬폰의 목숨줄을 끊어냈다.

[리벤지 퀘스트 실패!]

[상대 머더러의 ‘리벤지’ 퀘스트가 실패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메시지들이 떠오르며, 쉬폰의 모습이 점점 더 흐릿해져 갔다.

리벤지에 실패한 머더러는 더욱 큰 경험치 패널티와, 3종의 장비를 떨군다. 그리고 리벤지는 실패하며,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태호는 천천히 허리를 숙여 녀석이 떨군 장비들을 하나 하나 주워나갔다.

* * *

윤형석은 세상이 회색 빛으로 물드는 것을 보며 이를 갈았다.

어쩐지,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가슴에서 부글부글 부아가 치밀었지만, 다른 한 켠으론 어쩐지 뿌듯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 해 보았다.

-네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

자신을 찍어누른 상대가, 자신을 인정했다는 것이 기쁜 것인가?

고작 그런 것이?

나는 윤형석인데?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고결하고 드높았던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여지껏 살아왔던 삶 자체가 허상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어쩐지 어이가 없어 킥킥대며 웃었다.

그간 자신이 해 왔던 말들이 생각났다. 터무니없이 약한 놈들에게 이긴 뒤, 기분 나쁘지 말라고 의례상 했던 소리들이 생각났다.

아.

그렇구나!

상대가 안 됐구나.

이번엔 더더욱 상대가 되지 않았다. 놈은 더욱 강해졌고, 아예 급수가 달라졌다.

대체 저 놈은 정체가 뭐야?

어떻게?

라는 생각을 할 무렵이었다.

샤아아악!

캐릭터가 죽었기에 로그아웃이 돼야 할 진대, 사방의 풍경이 기묘하게 변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샤아아아!

어느새.

윤형석은 기묘한 공간에 서 있었다. 정확히는, 자신의 캐릭터 쉬폰의 모습으로.

“......?”

그는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온 사방은 그야말로 괴상했는데, 마치 회색빛의 소용돌이가 가득한 것 같았다. 좋게 말하면 형이상학적이었고, 나쁘게 말 하면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았다.

[무엇을... 바치겠느냐...]

문득.

거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형석은 깜짝 놀라 전투태세를 갖추다가, 눈 앞 저 편에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보이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그야말로 괴상함 그 자체였다.

어마어마하게 큰 몸집의 그림자였는데, 전신에서는 촉수가 일렁거리는 것 같았고 피부가 따끔따끔하며 머리가 지릿지릿 아파오고 있었다.

“으...... 뭐, 뭐라고?”

[네 열망을... 들어주마...]

그 목소리는 한글로 치면 이런 식으로 들렸는데, 귀로 듣기에 한글은 아니었다. 마치 기묘한 외계언어 같기도 했다.

이것도 게임 시스템이란 말인가?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런 시스템은 듣도 보도 못 했다. 게다가, 이 통증은 묘하게 리얼이었다.

‘일체감 때문에 착각하는 것일수도 있긴 한데.’

혼란스러운 와중에, 놈이 재차 입을 열었다.

[나는... 혼돈의 주인의... 사념체... 미래에 잠에서 깨어나실 그 분의... 종이... 될... 기회를 주마...]

[힘을... 원하는가?]

힘?

혼돈의 주인?

그 순간, 윤형석의 가슴이 묘하게 들끓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굉장한 환상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방금 전, 전투의 패배하기 직전으로 되감기가 되더니 그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그야말로 귀신의 움직임! 꿈꾸던 75%의 일체감 벽을 허물고, 그 위로! 더 위로 치솟아 오른 사기적인 세계에 발을 들인 자신의 모습!

상대를 무참히 도륙해 낸 뒤, 리벤지 퀘스트를 완료하고 낄낄거리는 모습이었다.

“......”

두근!

가슴이 뛰었다.

윤형석은, 그림자 속 저 편의 상대가 기묘하게 웃고 있음을 깨달았다.

문득, 머리속에 환희가 들어찼다.

그렇다.

윤형석은 힘을 원하고 있었다. 놈의 목소리는 마음 속 깊숙한 열망을 끌어내는 것 같았다.

[무엇을... 바치겠느냐...]

이내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

.

.

.

.

.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 : 경험치, 왕좌의 수호성]

[레벨이 올랐습니다.]

메인 퀘스트가 클리어됐다는 메시지를 보며, 다음 퀘스트를 확인했다.

[8급 퀘스트]

[메인 퀘스트]

[영광의 기사단][연계]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영광의 기사단 중 하나의 기사를 찾기.]

[현재 광휘의 기사 레온하르트를 처치하였음.]

[보상 : ???]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나머지 세 기사들 역시 처치하면 된다는 얘기다.

태호는 퀘스트 보상으로 얻은 아이템 역시 살펴보았다.

[등급 : 9급]

[종류 : 재료]

[이름 : 왕좌의 수호성]

[고대 왕국 아나크레온의 다섯 수호성이었던 기사들의 증표.]

“흠.”

이건 아직 들어 본 적이 없다.

확실히, 이 메인 퀘스트는 그런 매력이 있었다. 여지껏 겪어 본 적 없는 퀘스트이기에, 그 보상들 역시 들어 본 적 없는 것이다.

왕좌의 수호성은 마치 손바닥 만한 철판 같았다. 그 철판에, 뭔가가 점찍혀 있었는데 정체는 도통 모르겠어서 데스나이트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데스나이트는 그것을 보았다.

[그것은 왕께서 하사하신 우리의 증표이다. 하늘의 별자리를 따서 만든 것이지.]

“별자리라?”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료 아이템이니, 나머지 메인 퀘스트를 하면서 추가로 모은 뒤 용도를 고민하면 될 것 같았다.

쉬폰은 오늘도 좋은 아이템들을 떨구고 갔다.

[등급 : 5급][레어]

[종류 : 무기(한손검)]

[이름 : 스산한 혈흔의 한손검]

[옵션 : 공격력 250]

[특수옵션]

[:힘+5]

[:체력+5]

[등급 : 5급][레어]

[종류 : 보조(한손방패)]

[이름 : 스산한 혈흔의 한손방패]

[옵션 : 방어력 200]

[특수옵션]

[:체력+5]

[:체력+5]

거기에.

[등급 : 5급][레어]

[종류 : 장신구(반지)]

[이름 : 강철 체력의 반지]

[옵션 : 마법 방어력 150]

[특수옵션]

[:체력+5]

[:체력+5]

그야말로 체력 세트구만.

태호는 혀를 쯔쯔, 찼다. 아무리 윤형석이지만 이 장비들은 정말 복구하기가 힘들 거다.

아무튼.

이번 일은 어떻게 잘 해결 됐으니, 대도시로 가 정비를 하고 다시 출발할 생각이었다.

우선 스킬북의 매물이 필요했다. 데스나이트에게 이것 저것 실험해 볼 것이 있었고, 슬슬 경매장에 들러 매입과 판매를 할 것들이 있었다.

막 움직이려던 그 때였다.

쿠구궁!

분명 맑던 하늘이, 일순간 시커멓게 변해 갔다.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회색 먹구름이 뭉실뭉실 세상을 뒤덮어 가고 있었다.

우르릉- 콰과광!

세상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어둠에 물들었다. 천둥과 번개가 치며, 기어코 비를 내리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태호는 가만히 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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