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24화 (24/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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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1권끝)

무엇을 바치겠냐고?

뭐든지 바치겠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바치겠다! 내게 힘을......

머릿속에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것 같았다. 마치 번쩍 번쩍이는 쾌락이 눈 앞에 도달해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이성적인 판단이 되질 않는다.

뭐든지 다 바치겠......

“......”

문득.

윤형석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간 빛나던 과거가 자신을 스쳐 지나갔다. 고귀하고 드높던 자존심, 그리고 승리의 역사들이었다.

“......”

잠깐만.

나는 오늘 졌다.

며칠 전에도 졌지만, 이번엔 정말 손 한 번 못 써 보고 참패를 당했다.

생각해 보니, 재미있었다.

재미라곤 단 하나도 없던 WOF에서 느껴볼 수 없는 패배였다. 그렇다면, 상대를 파악하고 그 파훼법을 연구할 때였다.

머리가 뭔가, 이상해졌던 것 같았다.

힘?

당연히 힘이 필요했다. 정말 재미있는 건, 그 힘을 키워 가는 과정이었다.

대가?

당연히 대가를 바쳐야 한다. 시간과 돈, 그리고 노력과 끈기를 대가로 바쳐 승리를 연성해 낸다.

그것이 승리의 공식.

WOF의 세계에 불패의 투신으로 군림하던 윤형석의 논리!

윤형석은 프로였다.

그리고, 고결한 WOF의 투신이며 세계 최강의 프로게이머였다.

빛나는 천상계 끝에서, 패배를 맛보았으니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

이제 더 높은 세계로 올라가려면, 그 녀석만 꺾으면 되니까 목표가 생겨서 더 좋다.

이건 이득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패배시킨 놈이, 윤형석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감히 자신을 인정하다니?

사실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진심으로 자신을 인정했다는 것을. 자신이 패배자들에게 으레 예의상 하던  그런 가식어린 얘기가 아니었다.

그것이 자존심 상한다. 감히 내게, 진심으로 위로의 인사를 건넨다고?

네까짓 게?

그 놈은 대체 뭘까?

대체 뭐길래, 일체감 세계 신기록을 갱신한 자신을 그렇게 손쉽게 때려잡을 수 있는 걸까?

불법 핵이라도 쓰는 걸까?

아니면, 정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재야의 고수였던 걸까?

그들의 세계가 있는 걸까?

어느새 머릿속에 가득하던 힘에 대한 갈망이 사그라들었다.

마치 잠깐 동안 귀신에 홀렸던 것 같았다.

달콤한 유혹을 해 오던 저 편의 그림자가, 어쩐지 이질적으로 보였다.

윤형석은 가만히 그림자를 보며 물었다.

“무슨 대가를 바쳐야 하지?”

[인간의 목숨.... 영혼... 비명...]

“......”

애초에 이게 게임 속이 맞는 건가?

피부가 따끔거리는 감각이 조금씩 더 생생해져 갔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기분 나쁘고 축 쳐지는, 뭔가 침적돼 가는 기분이 들었다.

좋지 않다.

[바치겠느냐...]

그는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꺼져,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

상대는 어쩐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동시에 사방에 가득했던 회색 소용돌이가 서서히 옅어져 갔다.

어느새 윤형석은 로그 아웃 메시지를 보고 있었다.

파시시시식-

어느새 현실의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윤형석은 가만히 자신의 소파에서 눈을 떴다.

“......뭐야 이거.”

조금 전의 기억은, 마치 꿈처럼 가물가물하게 변해 가고 있었다.

.

.

.

.

.

.

태호는 천천히 움직였다.

‘어디보자......’

이 곳은 노펜시아.

다시 찾은 노펜시아에는 사람이 더욱 많이 늘어 있었다. 리얼포스의 전성기에는 이 드넓은 노펜시아에 사람이 꽉꽉 들어 차 있었다. 지금은 물론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적어도 사람이 훨씬 많아졌음은 알 수 있었다.

노펜시아에서 대충 정비를 마친 뒤, 다음 목표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어쩐지 피곤함이 몰려와 잠깐 분수대 앞 벤치에 앉아, 목을 한껏 뒤로 젖혔다.

잠깐 과거의 리얼포스를 되짚어 보자.

사람들은 메인 퀘스트의 흐름에 몸을 맡겼고, 자연스럽게 세력구도가 생겨났다.

노펜시아는 훗날, 한국 길드인 ‘로만 제국’ 의 손에 들어간다. 로만 제국은 악명 높은 길드로서, 노펜시아의 세금을 맥시멈으로 때려 버린다.

당시 로만 제국 길드 말단 간부의 연봉이 억대였으며, 무수히 많은 이득을 취한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태호는 팔짱을 낀 채 머리를 정리했다.

노펜시아를 손에 넣을 필요는 분명히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노펜시아는 유저들이 가장 많이 모이게 될 대도시이며, 그곳에서 파생되는 히든피스들은 말 그대로 셀 수도 없을 지경이다.

지금이야 조건이 충족되지 못 했기에 얻고싶어도 얻을 수 없는 히든피스들이 즐비하지만, 인구가 가장 몰리는 노펜시아만 손에 넣는다면 손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노펜시아는 혼자서는 얻을 수 없다.

세력이 필요하며, 자신을 서포트해줄 동료들이 있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나 골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웹사이트를 켰다.

이젠 제법 유저들이 늘어나, 웹사이트의 정보 교류 역시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과거의 기억을 기억하고 있다지만, 명확하게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기에 자주 서칭을 하는 편이었다.

[님들, 저 방금 꿈 꾼 것 같아요.]

문득.

흥미로운 게시글 하나가 올라왔다. 태호는 그것을 클릭해 보았다.

[꿈에서 뭘 본거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남.]

“......?”

그냥 뻘글(무의미한 글)인가?

태호는 웹사이트를 한참이나 보다가 종료한 뒤, 생각했다.

‘내가 리얼포스에서 나타난 적 없는 메인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지, 지금.’

말인즉, 리얼포스의 이야기에 천태호라는 존재가 개입했다는 이야기다.

과거처럼 무난히 흘러가는 이야기에서 변화라는 것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머릿속에 넣어 둘 필요가 있었다.

리얼포스의 세계는 거대한 유기체니까.

태호는 노펜시아의 경매장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많은 유저들이 경매장에서 물건을 사고팔고 있었다.

태호가 원하는 물건은 하나였다.

[등급 : 1급]

[종류 : 재료]

[이름 : 망가진 잡동사니]

[잊혀진 문명의 잔재.]

바로, 얼마 뒤 출시될 첫 확장팩 ‘잊혀진 왕국’에서 사용될 재료 아이템.

현재 1실버다.

가격이 저렴한 이유는 간단한데, 공급은 많고 수요가 없어서일 거다. 태호는 인벤토리의 여유를 살폈다.

현재, ‘망가진 잡동사니’ 는 예전에 한번 쭉 사재기를 해 놓은 바 있었다.

현재의 보유량은 25000개.

보유 골드는 현재 500골드가 조금 넘는 수준. 슬슬 경매장에서 한번 더 싹 쓸어도 될 시기긴 했다.

태호는 경매장 메뉴를 띄우고, 검색을 시작했다.

망가진 잡동사니.

검색어를 입력하자,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물량이 쏟아져 나왔다. 유저들이 분명히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많네.’

이번엔 레어 아이템들의 시세를 살펴본다. 레어 아이템들의 물량은 역시나 눈에 띄게 적었지만, 점점 늘어나는 추세였다.

‘이쯤에서 급수 낮은 노멀과 레어를 좀 털어내 볼까.’

원래 1차매각 타이밍을 생각해둔 지점이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가 겹쳐, 그 시간이 조금 앞당겨졌을 뿐이다.

인벤토리 창에 꽉꽉 들어 차 있는 급수 낮은 레어 아이템들을 하나 둘 살피다가, 무기와 방어구 위주의 2~3급 아이템들을 경매장에 올리기 시작했다.

가격대는 대략 50골드~100골드.

노멀은 고정스텟이 1이기에 시세가 그보다 훨씬 낮다.

[아이템이 매각되었습니다.]

[아이템이 매각되었습니다.]

과연, 노멀과 레어를 달고 나와서 그런지 팔리는 속도도 빨랐다.

태호는 그렇게 만들어진 최종금액, 1500골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벤토리 창에는 아직도 레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조금 고등급의 레어부터는 가격이 훨씬 더 오를 테고, 골드가 조금 더 돌기 시작할 때 파는 것이 이득이었다.

그 다음엔 스킬북을 검색해 보았다.

[검색결과 : 235건]

스킬북의 매물도 있다.

스킬북 자체의 드랍률은 꽤나 높은 편이다. 등급이 높은 것들이 거의 없는 게 문제였지만, 이런 하급 스킬북에서 원하는 것이 있었다.

[스킬북 : 도발]

[1레벨 스킬북입니다.]

도발 스킬북을 10골드에 구매했다. 데스나이트에게 배우게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젠 미래를 위한 구매를 할 시간.

태호는 망가진 잡동사니를 가만히 보다가, 절반의 매물을 사들였다.

강민의 장사꾼 그룹이 이 잡템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을 확인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모든 매물이 싹 다 쓸려 나가면 신경을 쓸 확률이 높았다.

이제 태호가 보유한 ‘망가진 잡동사니’ 는 5만개가 조금 넘었다.

투자한 골드는 대략 500골드. 그리고 유저들이 조금 더 모여들면, 마지막 타이밍에 싹쓸이를 해 매물보유량을 늘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경매질에 몰두할 무렵이었다.

‘응?’

어쩐지 낯익은 아이템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태호는 잠시 눈을 껌뻑이다가, 냉큼 그 아이템을 구매했다.

[등급 : 3급]

[종류 : 재료]

[이름 : 불길한 천 조각]

불길한 천 조각은 매물이 몇 개 올라와 있지 않았다. 약 20개 정도의 매물을 모두 사들인 태호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웃었다.

‘이걸 개당 2실버에 판다니...... 나중에 땅을 치며 후회할 사람이군.’

아는 것은 곧 정보이며, 돈이 된다.

태호는 이 천 조각의 용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인벤토리 창에서 천 조각들을 꺼내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20장의 매물을 뭉치자, 곧 그것은 불길하게 빛나며 하나의 두루마리처럼 변했다. 두루마리를 그대로 찢자, 퀘스트 하나가 떠올랐다.

[5급 퀘스트]

[서브 퀘스트]

[불길한 저주의 마을]

[:불길한 저주의 마을, 잉카로 향하기.]

[보상 : ???]

바로, 퀘스트 시작을 위한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마침 잘 됐네.’

저주의 마을이라고 함은, 다음 목적지로 점찍어 두었던 대륙 중부, 미하 마운틴 근방의 마을이었다.

미하 마운틴 정상에는 ‘성혈의 기사 하테온’ 이 머물러 있다. 아무튼, 운이 기묘할 정도로 좋아서 솔직히 조금 놀라울 정도였다.

이 곳에서 연계 퀘스트와 고대 마물에 대해 연구하게 되고, 결국 그 과정에서 에픽 스킬북 하나를 얻게 된다.

‘운이 정말 좋아.’

태호는 생각했다.

그렇게 채비를 마친 뒤, 초보자 마을 이동 스크롤을 찢었다.

목표는 대륙 중부, 미하 마운틴 근방의 초보자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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