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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들 해 보셔.
어둠이 내려앉았다.
태호는 산 초입의 수풀에 몸을 숨긴 채, 누군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저 편.
마을과 산길이 이어지는 쪽에서 다섯 인영이 나타났다. 그들은 천천히 산 쪽으로 걸음을 옮겨 갔다.
‘왔다.’
태호는 숨죽인 채 그들을 주시했다.
-오늘이 며칠째지?
-일 주일 째.
-아이씨, 귀찮아 죽겠네.
그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 듯 하다.
-안그래도 서버 초라 렙업 해야 하는데, 여기서 일주일째 공치고 있잖아.
-그것도 오늘 내일이 끝이야. 안그래도 퀘스트 보상으로 굉장한 게 있는 것 같다. 느낌이 좋아.
그들의 머리 위, 저마다의 아이디가 떠올라 있었다.
새빨간 선홍빛이었다.
[로만]
그중 하나의 아이디가 아주 낯익었다. 태호는 속으로 혀를 쯧, 하고 찼다.
‘로만 제국의 로만이잖아.’
로만.
미래의 리얼 포스에서 로만이라는 아이디를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그는 로만 제국이라는 길드를 만들어, 대도시 노펜시아를 손에 넣는다. 그리고 세금을 맥시멈으로 올려 유저의 고혈을 빠는 악질이었다.
게다가 그들 길드는 여러 모로 악명이 높았는데, 첫째로는 목표를 위해 마구잡이로 PK를 하는 것에 있었다.
노펜시아를 점령한 뒤 인근의 사냥터나 던전 등에도 소위 막피로 유저들의 출입제한을 거는데, ‘통제’ 라고 불리는 행위다.
비슷한 머더러 길드인 ‘어세신즈’ 와는 세간의 평판이 극과 극이었다.
어세신즈는 그래도 약간의 도의가 있었다. 초보자들은 건드리지 않는 주의이고, 길드가 어느정도 성장하고 나서는 주로 돈 많은 고위층 유저만을 건드렸다. 예를 들어, 유명한 레이드 팀 등이다. 니힐럼과의 마찰로 인해 유럽 길드 연합들과 1년간 전쟁을 벌인 일은 아주 유명했다.
또한 악명 높은 길드들을 찾아다니며 도장깨기를 하는 사례도 있었다. 방법이야 어쨌든 대중에게는 사이다 같은 일들을 해내기도 했기에, 세간의 평판은 ‘미워할 수 없는 악동’ 정도다.
허나 로만 제국은 철저히 약자의 고혈을 빨아, 전 세계적으로도 악명이 높다. 게다가 ‘통제’ 라는 행위를 리얼포스에 정착시킨 장본인들이기도 했다. 세간의 평판은 ‘저 새끼들 콱 다 뒤졌으면 좋겠다’ 정도인데, 과연 그에 걸맞는 악명을 떨쳤다.
특히 로만 제국의 수장, 로만은 개인 방송자로서 수만 명의 팬을 거느렸다. 그는 인터넷 방송의 시초부터 쭉 자극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로 시청자를 늘려 왔었다.
자연히 시청자들은 점 점 더 자극적인 것들을 원하고, 그런 그들에게 리얼포스의 악행은 오히려 좋은 컨텐츠였다. 욕을 먹을수록 조회수는 오르기 마련이다. 결국, 훗날 그들은 기업화 되어 리얼포스를 좀먹는 존재로 성장하게 된다.
태호는 사실, 둘 다 썩 좋아하진 않았다.
이유야 어찌됐든 PK라는 행위 자체를 크게 즐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세신즈가 나중에야 이런 저런 본의아닌 선행을 했다고 쳐도, 그곳의 수장 윤형석은 서버 초반에 막피를 즐기던 유저였다.
과거의 태호가 머더러들과 피 튀기게 싸웠던 이유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들이 움직이는 경로를 따라, 태호 역시 천천히 움직였다. 수풀 속에서 일체감 100%의 몸이 귀신처럼 조용히 움직였다.
그들은 산 중턱까지 올라가더니, 꽤나 너른 공터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 곳에 있는 꽤나 큼직한 돌덩어리 앞에서 뭔가를 하기 시작했다.
태호는 슬쩍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어둠이 내리고, 달이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일순간.
그 달에서 내려온 빛이, 이 곳으로 내리쬐었다.
빛은 석판에 닿았다. 이내, 석판이 검붉은 빛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샤아아아악-
‘안개?’
사방에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안개는 뭉게뭉게 자욱하게 생겨나, 마을로 내려앉았다.
[카이저.]
숨죽이고 있던 데스나이트가 속삭였다.
[저 석판이 빛을 발한 이후, 혼돈의 기운이 굉장히 강해졌다. 저것이 원인인 모양이다.]
“그런 것 같네.”
태호는 그렇게 대답하며 저 편, 나무 밑둥에서 잽싸게 움직이던 다람쥐가 가만히 선 채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을 보았다. 다람쥐는 한참이나 몸을 떨다가, 픽- 하고 쓰러졌다.
-대충 이 정도면 됐겠지?
-응. 나도 퀘스트 완료 메시지 떴다.
-어디보자......
-아, 이제 의식을 치르라고 하네.
-의식?
-응.
태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의식이라면 분명히 뭔가를 깨운다는 의미.
[......저 의식이 시행되면, 최하급 사도 정도가 나타날 지도 모르겠군. 막아야 한다.]
태호도 사도란 것이 뭔지는 잘 알고 있었다.
판타로스는 휘하에 수많은 사도를 두었다. 그중, 최하급 사도라 함은 향후 리얼포스에 등장할 무수히 많은 판타로스의 수하 같은 것들이다.
일명 쫄병 같은 거라고 보면 되는데, 리얼포스가 현실로 튀어나왔을 무렵 산더미처럼 모여서 유저를 공격한 일종의 잡몹이었다.
말이 잡몹이지, 지금 수준의 유저들에겐 강대한 적이었다.
태호는 천천히 지팡이를 쥔 채 호흡을 골랐다.
‘적은 다섯.’
바스락- 바스락-
그때.
여기저기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빛무리와 함께 유저들이 나타났다.
-아, 대장. 벌써 시작중이심까!
길드원들인 것 같았다. 그렇게 나타난 놈들이 다섯.
합이 열 명.
하나같이 머리 위에 빨간 이름표를 띄우고 있는 것을 보니, 퀘스트의 필수조건 중 하나가 일정량 이상의 유저 학살인 것 같았다.
‘오히려 잘됐군.’
태호는 이제 망설임 없이 움직일 수 있게 됐다.
과거, 태호는 쉬폰을 잡아내고 패시브 스킬 하나를 얻은 바 있었다.
[패시브 : 머더러 헌터]
[설명 : 최초로 지역 현상수배범을 처치한 용기있는 자에게 수여되는 패시브 스킬.]
[머더러를 상대로 할 때 경험치 획득량 100% 증가.]
[머더러를 잡을 때 마다 스킬의 경험치가 상승하며, 일정량을 충족시키면 스킬이 업그레이드됩니다.]
머더러는 필연적으로 사망하며, 자신을 죽인 유저에게 경험치를 헌납하게 된다.
그 경험치 획득량이 100% 증가하는 것은 태호에게 있어선 꽤나 괜찮은 이득이었다.
태호가 손짓하자, 데스나이트가 자신이 보유한 ‘영광의 축복’ 스킬을 사용했다.
[영광의 축복 버프를 받았습니다. 올 스텟이 5 상승합니다.]
시작해 볼까.
“데스나이트. 넌 다른 놈들 신경쓰지 말고, 비석이나 부수고 있어라.”
태호의 말에 녀석이 반문했다.
[혼자선 버겁지 않겠는가?]
“실험 해 봐야지.”
현재까지의 성과를 유저에게 실험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태호는 가볍게 목을 좌우로 꺾으며 지팡이를 뻗었다.
사거리는 충분하고, 조준 역시 완벽하다.
‘어둠의 비.’
사방에 어둠의 비가 깔리며 광역 속박을 걸었다. 동시에 시커먼 비가떨어져 내려, 그들의 체력을 와장창 깎아 나갔다.
[선지자의 해골이 발동 중입니다.]
[데스나이트의 심장이 발동 중입니다.]
현재의 태호에겐 무시무시한 증가 효과들이 붙어 있었다. 모든 마법성능이 2배로 증가하며, 어둠 마법 공격력이 30% 상승하는데다 추가 대미지 30%가 있었다.
게다가 최근 지능 스텟의 뻥튀기가 몇 번이나 있었으며, 영광의 축복까지 받았다.
그들보다 레벨이 높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지사다.
-어? 뭐야! 이거 의식 효과인가?
-아뇨! 공격입니다!
-이런 시팔새끼가! 어디야! 찾아!
그들이 소리를 지르며 사방을 훑었다.
물론, 보게 놔 두지 않는다.
‘대규모 범위 시력상실.’
90레벨에 도달하며 얻은 스킬, 대규모 범위 시력상실이다.
90레벨에 도달하며 보유한 모든 광역스킬이 대규모로 변경되었다.
-억!
-씨발! 어디야! 안 보여!
‘대규모 범위 중독, 절망.’
-뭔 대미지가 이래! 이거 보스몹 뜬거 아니에요?
-병신새끼야! 유저라니까!
개중에 힐러가 몇 있었다. 힐러들이 범위 힐링과 상태이상 해제기술을 사용하자, 선두의 검을 든 유저 세 명이 잽싸게 범위를 빠져나왔다.
‘폭사.’
쾅! 쾅! 쾅!
허나 다섯 놈은 그러지 못 했다. 태호의 폭사 한 방에 다섯 놈이 그대로 골로 가 버렸다.
[머더러 ‘타쿤’ 을 처치했습니다.]
[머더러 ‘미향’ 을 처치했습니다.]
.
.
.
태호는 그 메시지를 확인했다.
‘다섯 놈 보냈고.’
세 놈은 달려오고 있고, 두 놈은 힐러다. 힐러들은 상태이상을 해제한 뒤 다급히 움직이고 있었다.
태호는 제법 여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라.”
[알았다.]
데스나이트가 전투모드로 바뀌며 비석을 향해 돌진해 갔다.
-저기다!
-대장! 뒤쪽에 몹 같은게 튀어나왔다!
-에이 씨! 일단 저 마법사 같은 놈부터 조져!
동시에 달려드는 세 놈에게 가볍게 대응해 볼까.
선두에서 달려오는 적 하나가 쇄도해 올 때, 가볍게 허리를 숙이며 땅을 찬 뒤 놈의 옆구리 쪽으로 스쳐 지나갔다.
타타타탓!
그리고 아직 후방에 있는 힐러계열 두 명에게 지팡이를 뻗었다.
‘저주의 화살, 중독, 절망.’
하지만 놈들의 상태이상 해지기엔 쿨타임이 있는 반면, 이 쪽의 쿨타임은 굉장히 짧다.
태호는 첫 번째 힐러에게 저주의화살과 중독 절망을 걸었다.
“이익! 이쪽으로 온다! 도와줘!”
힐러가 발작하듯 마법을 쏘아냈다. 하얀 구체가 날아가는 ‘라이트 볼’ 이었다.
‘프리스트로군.’
직업명 프리스트. 기본 직업군의 전직이었다. 대미지가 크진 않지만, 저것에 맞으면 이동속도가 느려진다.
태호는 달려가는 와중 몸을 가볍게 틀며 라이트 볼을 피했다.
슝슝!
두 힐러가 부리나케 라이트닝 볼을 사용했지만 모두 다 불발이었다.
“아씨! 저거 왜 이렇게 잘 피해!”
저주의 화살이 작렬하며 마법방어 무시 대미지를 주고, 공격속도를 낮추었다. 중독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체력을 깎아 나갔으며, 절망은 이동속도까지 늦추었다.
‘폭사.’
콰광!
“끄악!”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힐러 하나가 골로 갔다. 연이어, 태호는 두 번째 힐러에게 냅다 몸을 던졌다.
콱!
어깨치기로 명치를 가격한 뒤, 몸을 빙글 돌리며 놈의 뒤로 들어가 다리를 걸었다.
“악!”
힐러가 힘 없이 고꾸라졌다. 태호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 한 자루를 쥐었다. 먼저 죽은 머더러가 떨군 장비들이 여기 저기 널려 있었다.
푹!
그대로 목덜미를 쑤셨다. 힘스텟이 낮기에 대미지가 크진 않지만, 급소 가격으로 인한 크리티컬 대미지가 고스란히 들어갔을 거다.
‘중독, 절망, 시력상실.’
동시에 세 가지의 스킬이 제대로 작렬했다. 스킬 쿨타임을 온전하게 돌릴 수 있는 일체감 100%의 위력이었다.
쾅!
쾅!
데스나이트는 검을 휘두르며 비석을 부수어 나가고 있었다.
“이런 미친! 조져!”
세 근접딜러들이 태호에게 가까이 도달해 검을 내지를 때, 태호는 잽싸게 옆으로 구르며 범위 스킬을 사용했다.
‘대규모 범위 절망, 시력상실, 중독.’
각 스킬의 쿨타임은 10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시간을 버는 데엔 충분했다.
‘대규모 범위 폭사.’
콰과과과광!
그들이 동시에 폭발했다.
[머더러 ‘행집’을 처치했습니다.]
[머더러 ‘...]
메시지들이 동시에 네 개나 떠올랐다.
이로서, 아홉 놈이 골로 갔다.
“이런 시팔...... 너, 너, 누구야? 마, 말도 안 돼...... 우리도 오픈 첫 날부터 빡세게 달렸는데! 어떻게 이렇게 일방적이지?”
마지막에 남은 것은 머리 위에 해골이 떠오른 채 실피만을 유지하는 한 유저 뿐이었다.
[로만]
과연.
태호는 놈이 살아 남은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로만은 태생적인 탱커였다. 직업 명은 ‘디펜더’. 괴물같이 무식한 피통을 자랑하는 메인탱커형 직업이다. 순전히 체력이 높아 목숨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너, 너, 너, 우리가 누군지 알아!”
실소가 나왔다.
태호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늬들이 누군데?”
“로만TV 몰라? 너, 우리를 건든 건 실수다!”
로만TV.
수만 명에 달하는 팬덤을 건드렸으니 큰일이 날 거라고 호통을 치는 모습이 퍽 우스웠다.
“내가 누군지 알고 복수하게?”
태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중독과 폭사를 날렸다.
“열심히들 해 보셔.”
쾅!
“이 개색......”
로만이 그대로 절명했다.
[머더러 ‘로만’을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보유중인 스킬 ‘머더러 헌터’ 가 업그레이드됐습니다.]
그리고.
와르르르!
육중하게 버티던 비석이 데스나이트의 맹공을 버티지 못 하고 부서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