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28화 (28/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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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전직

대륙의 서쪽 끝, 라이언.

위치로 치면 정 중앙에서 서쪽 끝이다.

서부 대해와 맞닿아 있는 대도시.

리얼포스의 낭만이 이 대도시에 모여 있었다.

끼루룩- 끼룩!

라이언에 도달하자, 벌써부터 바닷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저 하늘 높은 곳에 갈매기들이 날아다니며 울었고, 화창한 하늘에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라이언은 항구도시였다.

도심의 정 중앙까지 길게 정박로가 만들어져 있어, 바다에서 오고가는 배들이 정박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유저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유저들은 배에 올라 타 선원으로 시작해 결국 선장이 되기도 하며, 또 누군가는 해적이 된다.

이 시대 리얼포스의 바다는 그야말로 모험의 산물이었다.

베일에 뒤덮혀 있는 미지의 바다! 보물! 신대륙!

그 키워드가 유저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이다.

라이언의 명물은 세 개가 있었는데, 그 첫째는 바로 그 항해요소였다.

둘째는, 라이언의 정문 앞에 모인 유저들이다.

소위 ‘앞마당’ 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는데, 그 곳에서 서로 1:1 전투를 하며 승부를 가르는 것이다.

이는 대련이라는 컨텐츠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직접 대련을 신청해, PK가 아닌 싸움을 즐길 수 있었다. 상대의 체력이 1%가 된다면 자동으로 패배하며, 사망에 이르지 않는다.

이는 라이언의 명물이었고, 전통적으로 앞마당 출신 유저들이 싸움을 잘 하기로 유명했다.

향후 이 앞마당의 유저들이 합심하여 용병 길드를 만들게 된다.

용병 길드는 레이드 팀이 전문 레이드를 시작하기 전, 필수적으로 고용하게 되었다. 이유는 훼방을 놓으러 오는 전문 PK길드를 막기 위함이었다.

아무튼.

태호는 그 앞마당에 서서 간만에 회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과거의 동료, 라간이 이곳 출신이었다.

-내 이름은 라간! 한 판 겨루러 서대륙 끝에서 여기까지 왔다!

과거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오호.”

그리고 지금.

앞마당에 유저들이 제법 모여, 대련을 겨루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유저들이다. 적어도 수십은 돼 보였다.

그들은 여기 저기 걸터앉아, 전투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환호하거나 조언을 하는 등 싸움을 즐기고 있었다.

태호는 그들을 잠깐 지켜보다가, 정문으로 들어섰다.

거대한 성문을 지나가니 바닷냄새 물씬 나는 도심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얀색과 푸른색의 이국적 조화가 인상적인 건물들, 그리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태호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심 안에서 화려한 건물을 찾았다. 마치 궁전처럼 지어진 화려한 고층 건물이 멀리서 봐도 한눈에 들어왔다.

라이언의 세 번째 명물.

도심에 우뚝 서 있는 여섯 개의 화려한 탑들. 소위 마법사의 탑이다.

흑마법사라고 해서 음습한 골목길이나, 허름한 펍에서 누더기같은 후드를 쓰고 있는 것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리얼포스의 세계관은 그런 면에서 꽤나 과감한데, 이 세계관에서는 흑마법 역시 엄연히 한 종파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물론 히든피스로 분류된 직업인지라, 사람들이 존재가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방법을 몰라 뒤늦게야 흑마법사가 퍼지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태호는 다른 탑들을 구경할 겸, 근방을 한 바퀴 돌아 보았다.

다른 탑들에는 그나마 유저들이 보였다. 메인 퀘스트를 통해 이 대도시로 온 유저들이나, 그쪽 계열 마법사들인 것 같았다.

허나 흑마법사의 탑에는 유저들이 없다. 연관된 직업은 아마 태호가 유일할 것이다.

태호는 흑마법사의 탑의 정문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출입 제한 결계가 걸려 있습니다.]

[자격조건 : 직업 ‘흑마법사’]

이내, 문이 반짝! 하고 빛났다.

[출입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동시에 몸이 순간이동하며 어느새 탑 안에 들어와 있었다.

“오호.”

내부는 마치 호화찬란한 연회장을 보는 것 같았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고풍스러운 가구들, 그리고 원형으로 벽을 타고 만들어져 있는 계단이 보였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휑한 그 안, 저 편의 소파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멀리서 봐도 비율이 굉장히 좋은 미남자였다.

태호가 천천히 그에게 걸어가자 소파에 앉아 책을 보고 있던 그가 슬쩍 고개를 들어 태호를 보았다.

“별일이군, 흑마법사의 탑에 방문자가 온 것은 실로 오랜만인데 말이야.”

“모험가 중엔 최초겠죠?”

“그래.”

그는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차라도 한 잔 할래?”

“아뇨.”

“마음에 드는군, 나도 그건 별로야.”

그는 퉁명스럽게 말하며 도로 주저앉았다.

“보아하니, 얼추 흑마법사로서 사람 구실은 하게 성장한 모양이군.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고 싶나보지?”

“예 뭐.”

태호는 그렇게 대답하며 그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눈 앞의 사내를, 태호는 꽤나 잘 아는 편이었다. 그의 이름은 아파치. 아파치 레퓨어라는 풀 네임을 가진 NPC였다. 그의 사고능력은 유저와 다를 게 없었다.

리얼포스에는 이런 종류의 NPC들이 제법 많았다. 그리고 그는 미래, 리얼포스가 현실이 되었을 때 판타로스를 막기 위해 함께 싸워 주었던 NPC중 하나였다.

“보시다시피 요즘 흑마법은 가뭄이 조금 심한 편이야.”

그가 턱을 괸 채 말을 이었다.

“제자들이 많이 없어졌거든. 뭐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흑마법 인기가 바닥을 치는 요즘이니까. 화려한 맛이 전혀 없걸랑. 게다가 세간에서는 인신 공양이니 뭐니 하면서 언론 플레이도 심하고.”

그는 연신 투덜거렸다.

인신 공양?

태호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인신 공양이요?”

“그래. 미친 놈들이지. 우리는 절대 그런 건 안 해. 너도 알지? 우린 그런 거랑은 거리가 멀단 말이야.”

말 그대로였다.

흑마법은 어둠속성의 마법이지만, 인신 공양 등과는 아예 연관이 없는 학문이었다.

“그건 혼돈의 힘의 영역이지. 인간의 목숨을 대가로 요구하는 건 세상천지에 그 힘 뿐이야.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뭘 알아? 혼돈의 힘에 대해 아는 사람도 거의 없을 테고 말이지. 게다가 다른 계열 마법들에 비해 우리는 선조의 유산들도 거의 없어. 죄다 소실돼 버리고 없단 말이야. 그러니까 무슨 안 좋은 일만 생기면 흑마법 탓이려니 하고 소문이 돈다 이거지.”

그가 투덜 투덜 거리면서 덧붙였다.

“이럴 때 선지자의 해골 같은 전설의 보물이라도 하나 있으면 오죽 좋겠어? 구경이라도 해 보고 싶은 게 내 심정이야. 네가 그걸 구해 오면 이 자리에서 내 간이라도 빼 주고 싶단다.”

“......”

태호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런 대화 양식은 기존에 들어 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태호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보여 줘야 하나?’

태호는 고민하다가, 이내 목걸이를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이거 말이죠?”

“응? 그치, 그거.”

그가 고개를 까닥였다.

그리고 잠시 멈추더니, 갑자기 태호에게 얼굴을 들이밀더니 눈을 휘둥그래 떴다.

“으잉?”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한참이나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황당하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요모 조모 살펴보았다. 두 손을 뻗어 자신의 마력을 뿜어내자, 선지자의 해골이 까맣게 빛났다. 동시에 태호와 아파치 레퓨어가 동시에 같은 환영을 보았다.

고대 왕국 아나크레온!

그 위풍당당하고도 풍요로웠던 어둠의 전설!

그리고 그 목걸이를 자신의 목에 건, 서피드 쿤이었다. 리치가 되기 전의 모습이다.

화악!

어느새, 환영이 사라지고 현실로 돌아왔다.

“그,그,그게 왜 거기 있어? 가만, 가만...... 신기하기도 해라. 고서적에서 본 것과 똑같이 생겼네.”

“......”

동시에 퀘스트가 떠올랐다.

[퀘스트 발생!]

[7급 퀘스트!]

[서브 퀘스트!]

[흑마탑주, 아파치 레퓨어]

아파치 레퓨어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음을 알수 있었다. 그가 말을 더듬었다.

“서, 서, 선지자의 해골은, 우리 흑마법의 까마득한 선조인......”

“서피드 쿤 님이 가지고 있던 보물이죠. 왕가의 전통으로 계승되던 보물이라 들었습니다.”

태호의 말에 그가 눈을 깜빡였다. 이내 이전까지의 퉁명스럽던 얼굴이 아닌, 환희에 찬 얼굴을 했다.

“너! 너 알고 있었구나!”

“......직접 리치가 된 그에게 받아 왔으니까요.”

“뭐어?”

그는 가슴이 뛴다는 듯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내, 내게도 말 해 줘! 그 분과 무슨 대화를 나눴어?”

태호는 그에게 들은 말을 천천히 전해 주었다.

혼돈의 힘, 판타로스와 계약하여 몰락한 왕국. 그리고 리치가 된 그의 이야기까지 들은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군. 그렇게 된 거였어. 북대륙 끝이었다고? 그래서 우리가 그를 찾지 못 했던 거였어. 그곳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우린 여태까지 전혀 다른 곳을 찾고 있었군......”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우리의 예상대로야. 역시 고대 왕국 아나크레온의 몰락은 혼돈의 힘과 연결돼 있었던 거야.”

아나크레온. 리치였던 이가 통치했던 고대 왕국의 이름이다. 태호는 그를 보며, 잠시 머리를 굴렸다.

‘아직 이쪽 세계에서는 혼돈의 힘에 대한 정보가 그렇게 많지는 않아. 게다가 흑마법의 계보와 일맥상통하는 고대 왕국 아나크레온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소실돼 있다.’

이는 생각지 못 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직 첫 확장팩이 등장하지도 않았다. 구체적으로 혼돈의 힘이 표면에 드러나는 것은 확장팩이 이어 등장하면서, 큰 그림의 스토리가 나온 이후였다. 그리고 아나크레온은 일순간 멸망하였다, 판타로스와의 계약 때문에. 정보가 소실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지도.

그럼, 이렇게 던져 볼까.

“저는 혼돈의 힘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

“서피드 쿤 님과의 대화로, 제 안의 사명 같은 게 생겼어요. 이 땅에 남은 판타로스의 유산들을 없애는 사명 말이죠.”

태호는 그렇게 말을 던지며, 아파치 레퓨어가 두 주먹을 꽉 쥐는 것을 보았다.

“너......!”

그가 태호를 한참이나 보다가, 꼭 끌어안았다.

“너 좋은 놈이구나!”

[퀘스트 완료.]

[경험치 획득]

[연계 퀘스트 : 흑마탑주, 아파치 레퓨어]

그는 험험, 뒤늦게야 체통을 지키려는 듯 목을 가다듬었다.

“네 숭고한 뜻을 모르고 홀대하려 한 점은 사과하마.”

“별말씀을.”

“안 그래도, 우리 역시 혼돈의 힘을 추적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다른 마법들에 비해, 흑마법은 영 부실해. 뭔가 완성되지 못 한 효율을 보이는 것이지. 다른 계열의 마법들은 그 자체로 완성돼 있지만, 우린 아니야. 뭔가가 모자라. 우리는 그 이유를, 완벽하게 보존되지 못 한 고대의 비법 마법서 때문이라고 보고 있어.”

흑마법이 전체적으로 부실한 이유!

‘통했다.’

태호의 한 수가 통했다.

“서피드 쿤 님 께서는 어느날 자취를 감추셨고, 왕국 아나크레온은 멸망했지. 그 과정에서 아나크레온의 비전 마법서가 소실 됐어. 구전으로 전해져 오는 것들을 후대에 재수집하여 완성한 것이 현재의 흑마법이다.”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태생부터 뭔가 애매모호한 컨셉이었던 이유가 이거였나.’

태호는 기억을 떠올렸다.

당초, 리치가 된 서피드 쿤이 판타로스에게 제시한 계약조건이 바로 그 왕국의 비전 마법서와 금화였다.

판타로스는 그것 대신 아나크레온의 백성들을 가져갔다.

‘그렇게 된 거였어.’

아나크레온이 몰락하고, 비전 마법서는 그 논란의 와중에 소실되었다는 스토리군.

이 역시 예상엔 없던 전개였다.

태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물었다.

“비전 마법서의 소실이, 혼돈의 힘과 연관이 돼 있다는 말입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결론은 그렇다. 실제로, 고대에는 무수히 많은 판타로스의 하수인들이 활개를 쳤지. 개중, 호시탐탐 왕국 아나크레온을 노리던 세력을 추적하고 있다. 허나 우리는 제자가 모자라서, 손이 부족해. 소수정예지만 한계가 있지.”

[퀘스트!]

[흑마탑주 아파치 레퓨어의 의뢰]

[: 혼돈의 힘의 잔재를 추적하는 흑마법사들을 돕기.]

“만약 네가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면, 우리 역시 그간 연구해 온 흑마법의 정수를 네게 전해주겠다. 또한 비전 마법서를 온전히 완성한 그 순간 그것을 습득하는 영광도 함께 누리게 될 거야.”

태호는 씩 웃었다.

이건 대박이었다.

“좋습니다.”

“좋아, 좋아! 우선, 이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는...... 그래. 신비의 니바 숲이 있겠군.”

니바 숲.

태호도 어차피 방문하려고 마음 먹었던 곳이었다.

“니바 숲에, 우리의 부탑주가 있다. 그 곳에 가, 그를 도와줘.”

“예.”

어쩐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자신이 보유한 지식을 바탕으로, NPC들의 숨겨진 목적이나 새로운 정보를 습득해 나가는 것.

과거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회귀자 전용 특전이나 다름없는 혜택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으니까.

막 일어서서 나가려던 찰나, 태호가 몸을 돌렸다.

“아, 저-”

“아차. 그렇지.”

그는 품 속을 뒤적이더니,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더 높은 단계로 향하는 지름길을 네게 주지. 원랜 다른 의뢰를 맡기고 그 보상으로 주려고 했지만, 이미 네게 그런 것 따윈 필요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태호는 고개를 숙이며 책을 받아 들었다.

[‘교환불가 : 흑마법사 3차 전직의 서’를 획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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