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30화 (30/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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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요!

과거에는 꽤나 많은 동료들이 있었다.

동료.

그 두 글자에 태호는 꽤나 집착했었던 것 같다. 많은 이들과 사귀고 싶었고, 또 모두와 함께 뭔가를 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평생을 고아로 살아온 태호의 갈증 때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혼자 살아오는 것에 질려서, 더욱 그랬을 지도.

과거의 시간이 흐르며, 많은 이들이 떠나가고 돌아왔다.

누군가는 돈 때문에, 누군가는 시간 때문에, 또 누군가는 야망 때문에.

리얼포스의 규모가 커지고, 그것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어마어마해지며 태호에게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믿었던 동료에게 사기를 당한 적도 빈번했다. 배신을 당한 적도 많다.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끝까지 남았다. 그 때야 알았다, 동료와 친구는 많다고 좋은 것만이 아님을.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지내며 울고 웃으며, 때론 싸우기도 하며 기억을 쌓아갈 이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음을.

“......”

간만에 라간을 만나, 태호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라간은 좋은 녀석이었다. 이 세계가 멸망할 때 까지도 변치 않았던 녀석이다.

그 외에도 두 명의 동료가 더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태호를 믿어 주었고, 그의 편에 섰던.

두터운 신뢰를 가질 수 있었던 이들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려나.’

그들이 리얼포스를 접하게 되는 것은 아직이다.

다만, 태호는 이번 생엔 그들에게 정말 잘 해 줄 생각이었다.

그들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 해도 상관없다. 태호는 기억하고 있으니까. 얼마나 고마웠는지, 또 얼마나 보고싶었는지 그들은 모를 것이다.

아무튼.

태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상념을 떨쳐냈다.

어느새 니바 숲 깊숙한 곳 까지 온 것이다.

킁킁! 킁킁!

저 편에서, 킁킁거리는 소리가 연신 들려오더니 이윽고 거대한 덩치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릉!

[Lv. 150]

[흉폭한 자이언트 울프]

150레벨의 몬스터라지만 딱히 어떤 위압감이라는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태호의 힘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태호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흉폭한 자이언트 울프.

저 녀석들은 무리생활을 하며, 먹잇감을 빙 둘러싼 채 말려죽이는 전법을 사용한다.

“데스.”

[......]

“야.”

[......혹시 데스, 라는 것이 내 이름을 부른 것인가?]

그의 말에 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풀 네임을 부르면 너무 길잖아.”

[크흠.]

“아무튼, 여기서도 혼돈의 기운이 느껴지나?”

[흐음......]

데스나이트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이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약간.]

그렇군.

역시나였다. 하긴, 흑마탑주 아파치 레퓨어의 의뢰 자체가 그랬다.

‘혼돈의 힘을 추적하는 부탑주를 도와주기.’

과거의 이 곳에 그렇게까지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아니, 말을 똑바로 하자면-

‘과거의 게이머 시절엔 판타로스 자체에 큰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정확하겠지.’

허나 이제는 다르다.

가만히 보니, 리얼포스의 세계엔 이미 판타로스가 꽤나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태호가 양 손을 펼쳤다.

크르르릉- 크릉!

사방에서 늑대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수가 여섯 마리를 훌쩍 넘었다.

잠시 후.

[......]

데스나이트는 입을 쩍 벌릴 수 밖에 없었다. 같이 다니는 저 놈이 괴물 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훨씬 더 강해졌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달려들려던 늑대들이 자신이 손을 쓰기도 전에 터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 * *

늑대들을 해치우고 걸음에 속도를 붙였다. 태호는 ‘밤의 발걸음’을 쿨타임이 찰 때 마다 사용하며 숲을 누볐다.

그렇게 한참을 누빌 즈음.

울창한 나무기둥 저 편으로 탁 트인 공터 같은 곳을 발견했다.

그 곳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호수가 일렁이는 공터가 나타났다.

이 곳이 니바 숲의 수원이다. 저 호수의 바닥에 에테리얼 마법서가 있다.

“아.”

그리고 호수 앞에, 한 남자가 서서 여기 저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저 남잔가?

“데스, 들어가 있어라.”

태호는 데스나이트를 소환해제 한 뒤 천천히 그에게 걸어갔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부탑주십니까?”

태호의 말에 그가 경계하는 얼굴로 반문했다.

“누구지?”

“아파치 레퓨어 님의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혼돈의 힘의 잔재를 추적하는 당신을 도우라고요.”

“흐음...... 증거를 보여라.”

남자가 경계심을 지우지 않은 채, 손을 뻗었다. 동시에 그의 손에서 어둠의 마력이 스물 스물 새어나왔다.

태호는 눈을 깜빡이다가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되려나.’

마력을 손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하자, 자연스럽게 태호의 손에서도 검은 마력이 새어나왔다.

“흠.”

이내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약 40대 중반의 외형을 가진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의심해서 미안하네. 이 곳에서 사람 보기가 쉬운 일은 아니잖는가? 게다가 요샌 혼돈의 힘을 수호하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기에 굳이 경계를 했던 걸세.”

혼돈의 힘을 수호하는 이들.

태호는 그의 말을 즉각 이해했다.

“괜찮습니다.”

“탑주의 부탁을 받을 정도라면, 그의 마음에 들었단 말인데...... 정말 별일이군. 그 별종의 마음에 들다니 말이야.”

태호는 씩 웃었다. 확실히 그는 별종이긴 했다.

“그나저나, 어떤 것을 도와드리면 됩니까?”

“아, 그래 그래. 마침 잘 됐네. 이름이 뭔가? 나는 카멜이라고 하네.”

“카이접니다.”

“멋진 이름이군.”

[퀘스트 클리어]

[경험치 획득]

퀘스트 클리어 메시지가 떠오르고, 아파치 레퓨어의 퀘스트가 갱신되었다.

[연계 퀘스트 : 흑마부탑주 카멜의 의뢰]

“이 숲의 산짐승들이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포악해지고 있네. 덩치도 더욱 커지고 말이야.”

카멜은 거대한 호수를 가리켰다.

“나는 이 호수가 그 원인이라고 보고 있어. 최근들어 혼돈의 힘이 점점 강력해지고 있다는 것은 알지?”

대충은 알 것 같으나, 혹시나 싶어 물어보았다.

“말씀해 주십시오.”

“음, 그럽세.”

그가 팔짱을 낀 채 말을 이었다.

“판타로스가 대륙에 남긴 잔재는 정말이지 엄청나게 많을 걸세. 대부분은 봉인당해 있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일세. 그건 인간의 영역이라기보단, 저 위 신들의 영역일 테니까.”

“예.”

“허나 최근들어 혼돈의 힘을 숭배하는 집단들이 하나 둘 등장하고 있네. 그들은 대륙에 남아 있는 혼돈의 잔재들을 일깨우고 있지. 잔재들이 깨어나면, 혼돈의 주인이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이 대폭 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야.”

어느정도 태호가 예상한 바와 같았다.

“즉, 그 본래 주인인 판타로스에게 힘을 보태어 주게 되는 것이지. 어느 정도 이상으로 잔재들이 깨어난다면, 나머지 잔재들이 내뿜는 혼돈의 힘이 강력해진다는 가설을 세웠네. 여태까지는 그 생각이 대충은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

그가 호수를 가리켰다.

“저 호수 안에 도사리고 있는 기운 역시 그런 종류 중 하나가 아닐까, 라는 게 내 생각일세.”

일리 있는 말이었다.

태호는 과거를 떠올렸다.

‘니바 숲에서 에테리얼 마법서를 먹은 것은, 콴이라는 유저.’

에테리얼 마법서는 물 계열 마법사의 재발견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마법서였다.

메즈(상대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기술)기술이 전부이고 대미지 딜링은 개나 줘 버린 냉기법사에게 희소식을 전달했다.

뭔고 하니, 기본 기술인 ‘워터 애로우’를 한번에 여러 개 소환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연마하기에 따라 단숨에 수십 발 이상의 화살도 만들어 내니, 부족한 대미지를 충당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잠깐.’

그건 판타로스와 아무 상관이 없는데?

태호는 머리를 굴리다가 결론을 내렸다.

‘봐야 알겠군.’

“지금부터 나는 저 호수 안으로 들어가 볼까 하네. 육안으로 보아도 꽤나 깊지만, 생물체는 살지 않는 것 같거든. 자네도 함께 하겠나?”

별반 도리가 없는 일이긴 했다.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첨벙!

온몸이 축축하게 젖는다는 감각이 생생하게 전달돼 왔다.

호수는 생각 이상으로 깊었다. 수면 위쪽은 맑고 깨끗했으나, 저 아래쪽은 시커멓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수심이 킬로미터 단위라도 되는 건가?’

이쯤 되니 과거 에테리얼 마법서를 획득했다던 콴 역시 수상쩍다.

‘은거기인은?’

분명히 이 부근에 은거기인도 있어야 할 진대, 그 역시 없다.

태호는 머릿속으로 대강 감을 잡았다.

‘은거기인 역시 모종의 퀘스트가 진행된 후에 나타나는 것.’

그런 정도로 생각하게 된다면 말이 된다.

촤악- 촤악-

두 사람이 점점 더 호수 깊은 곳으로 향했다. 생물은 하나도 없었기에 큰 부담은 없었지만, 어쩐지 심연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 정신적 피로감이 상당했다.

그렇게 얼마나 헤엄쳤을까?

-상태이상, 질식이 가해집니다.

슬슬 숨을 쉬지 못 하는 부작용이 시작될 무렵 물 저 편에 수중동굴 하나가 보였다.

카멜이 그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동굴로 헤엄쳐 들어가자 꽤나 길고 좁은 통로가 이어졌다. 통로는 위쪽으로 향해 있었고, 위로 헤엄쳐 올라가자 수면의 끝이 보였다.

“푸하!”

물이 반쯤 차올라 있는 동굴이었다. 크기는 꽤 넓었는데, 저 편 한복판에 한 노인이 가부좌를 튼 채 신음성을 흘리고 있었다.

‘......!’

태호는 그 노인을 보았다. 생김새가 꽤나 익숙했다. 당연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태호는 과거 은거기인에게서 에픽 아이템을 몇 종씩이나 교환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은거 기인이었다.

은거기인의 설정은, 신과 교감할 수 있는 제사장이었다. 그래서 에픽 아이템을 신에게 공물로 바치고, 그 신에게서 다른 보상을 받는다- 이런 식이었다.

‘은거기인에게 에테리얼 마법서가 있는 건가?’

태호는 머릿속이 알쏭달쏭해짐을 느끼며 한 걸음 앞으로 딛었다.

그때였다.

눈을 꾹 감고 있던 노인이 두 눈을 번쩍 뜨며 소리쳤다.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

“......!”

카멜과 태호가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당신들이 어떻게 이 곳에 오게 되었는 지는 몰라도, 저는 굉장히 위험한 상태입니다!”

위험한 상태?

“몇년 전, 혼돈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간신히 이성을 붙잡고 있지만...... 언제 이성을 잃고 당신들을 해하려 할지 몰라요!”

태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퀘스트 완료]

[경험치 획득]

[연계 퀘스트 : 니바 숲, 은거기인의 의뢰]

“저주를 풀기 위해선, 제가 섬기는 신 에테리얼 님의 가호가 필요합니다! 허나, 그 분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태호의 머릿속에 번개가 스쳐 지나갔다.

‘에픽 아이템이 필요하겠지.’

태호의 머릿속에서 계산이 끝났다. 과거, 이 곳에서 에테리얼 마법서를 획득했다던 콴의 이야기가 거짓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에픽 아이템을 바쳐, 은거기인을 도와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얻었을 터.

노인의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한 태호를 보며, 카멜이 소리쳤다.

“자, 자네......!”

“윽!”

노인은 태호를 보더니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태호가 꺼내 든 것은 저주의 서였다.

“이것은 혼돈의 힘의 잔재입니다. 에테리얼 신을 부르기에 적합할까요?”

노인은 두 눈을 꿈뻑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물론입니다. 혼돈의 힘이 남긴 잔재...... 오히려 더 좋아하실 겁니다, 혼돈의 잔재를 회수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노인의 방금 말에서 몇 가지를 더 유추할 수 있었다.

‘천계의 신들은, 판타로스의 존재에 거부감을 갖는다. 그 잔재를 회수하는 것을 좋아한다.’

좋다.

태호는 망설임 없이 저주의 서를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걸 쓰십시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이내, 저주의 서를 들고 비틀거리며 동굴 뒤쪽의 제단으로 향했다.

제단으로 향한 그가 저주의 서를 내려놓곤, 무릎을 꿇은 채 경건한 자세로 기도를 시작했다.

“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저 멀리서 카멜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무렵.

번쩍!

제단에 하얀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내, 동굴의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관통하는 하얀 빛이 쏟아져 내렸다.

그 빛과 함께 등장한 것은, 순백의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자였다.

[나의 충실한 종, 메하트여. 나를 불렀느냐?]

“예, 에테리얼이시여. 제게 혼돈의 저주가 내렸사옵니다!”

[이런......]

에테리얼의 얼굴에 애잔함이 어렸다. 이내, 그녀의 손이 노인의 머리에 닿았다.

[나의 종 메하트여, 네게 나의 가호를 내린다.]

그 순간.

노인의 전신에서 회색빛 기운이 스물스물 빠져나와, 그녀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노인의 혈색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제 한시름 놓았다는 듯, 그제야 고른 숨을 쉬게 되었다.

[큰일이로구나...... 혼돈의 주인이 남긴 사념체가 천계의 신과 연결된 제사장들에게 저주를 내리고 있는 것 같다.]

“예, 놈들의 움직임이 수상합니다.”

[모쪼록, 몸 조심하거라.]

그녀의 상냥한 목소리에 노인이 감격한 듯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천계의 신과 연결된 제사장들.’

태호는 그 곳에서 귀중한 정보를 캐치했다.

[모처럼 나를 불러 주었으니, 이 물건을 교환하여 주마.]

그녀는 품 속으로 저주의 서를 집어넣었다. 그 때, 태호가 소리쳤다.

“잠깐만요!”

아무거나 꺼내 주면 곤란하지.

태호는 그녀를 통해 교환받았던 아이템들을 기억하고 있었고, 또 물어볼 것도 있었다.

[으응? 무엇을 물어보려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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