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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자
태호는 말을 하기 전, 잠깐 생각했다.
‘리얼포스의 신들.’
이 세계에서 신을 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허나, 신이 리얼포스에 강림하여 직접적으로 힘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하다. 그저 아주 잠깐, 아주 조금의 영향력을 미치는 것 뿐이다.
모든 것은 ‘기브 앤 테이크’ 다.
신들은 그냥 무상으로 뭔가를 해 주지 않는다.
사실 태호는 여러 신들을 만나 보긴 했다. 몇 초, 혹은 몇 분의 시간 뿐이었지만.
대부분 신들이 화신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들은 특정 조건이 충족되거나, 눈 앞처럼 제물을 바쳐 한정된 조건으로 등장하는 편이다.
과거에도 이번에도, 태호조차 신에 대한 명확한 정보는 알 수가 없다. 그저 신들이 존재하는 천상계가 있고, 그 신들 중에서도 악한 신과 선한 신이 혹은 중립 신들이 있다는 것만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눈 앞의 신, 에테리얼.
그녀는 선한 쪽에서도 인간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에픽 아이템을 바꿔 주기도 하며, 선뜻 인간들에게 가호도 내려 주는 편이다. 그래서 뭔가를 물어 보기엔 더욱 좋은 상대일 수 있다.
“그...... 혹시, 인도자의 반지를 가지고 계신지요?”
[으응?]
에테리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이 인간에게 놀라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인지라, 노인 역시 화들짝 놀랐다.
[흐응...... 아니, 그건 현재 내게 없단다.]
‘아직 없나.’
인도자의 반지가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게 됐다.
[하지만 먼 바다의 향기는 내게 있지.]
그건 전혀 필요가 없는 아이템이었다.
과거 태호는 두 번의 에픽 아이템을 교환하여, 전혀 쓸모 없는 것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그 때 너무 화가 나 은거기인을 죽여버릴까,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문제가 뭐냐면, 그녀가 교환해 준 아이템을 그녀에게 재교환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일종의 갓챠 시스템이다. 시중에 발견된 후 거래되는 에픽 아이템은 최소 수십에서 백억 단위는 가는데, 가끔 그녀가 건네주는 답도 없는 아이템들이 있었다.
그녀가 주는 아이템은 기본적으로 이런 공식을 따른다.
1)다른 유저가 제물로 바쳐, 이미 그녀가 보유하고 있는 아이템.
2)그녀가 본래 가지고 있던 아이템. 이 경우, 대륙에서 획득할 방법이 없는 종류.
3)이미 대륙에 어떤 몬스터나 던전에 있는 아이템들은 교환으로 얻을 수가 없음.
문제는 2번이었다.
2번에 재수없게 걸리면 정말 쓸데없는 것을 받을 확률이 존재한다는 것을 훗날 유저들은 통계를 통해서야 알았던 것이다.
“아뇨. 그건 필요 없습니다.”
[그래?]
하지만 별 수 없으니, 태호는 다음 선택사항을 물었다.
“그럼, 고대 왕국의 상징이나 메소드의 기운은요?”
[신기하구나, 너는 나에 대해 아주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아.]
“......운이 좋아서요.”
그 말을 들은 그녀가 태호를 빤히 보았다. 이내, 그녀가 빙긋 웃었다.
[그렇구나. 네게는 티케의 가호가 깃들어 있구나. 그렇다면 너의 운을 인정하마. 그것 중, 메소드의 기운은 있다.]
그렇단 말이지.
태호는 머리를 굴리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메소드의 기운.
“그것으로 교환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어려운 일은 아니란다.]
그녀가 품 속에 손을 넣었다. 곧, 작은 보석 같은 것 하나가 나타났다.
[이것은 네 물건이로구나.]
“감사합니다.”
태호는 그 보석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물었다.
“여쭤 볼 게 조금 더 있습니다.”
태호는 그녀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리고 얼빠진 얼굴을 하던 노인을 빤히 보았다.
“잠깐 자리 좀.”
“으응?”
노인이 그녀를 보았다. 그녀가 가볍게 고개를 까닥이자, 그제야 노인이 뒤로 물러서 카멜에게 향했다.
태호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 미래에 판타로스가 깨어난다면, 전쟁이 벌어지겠죠. 그때, 천계의 신들도 참전합니까?
그녀는 대답 없이 태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지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는...... 불카노스의 아이이지. 네가 물어보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구나.]
불카노스, 어둠의 신.
태호의 의문은 합당했다.
과거의 전장에서, 신들은 개입하지 않았다. 태호는 그것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저, 하얀 색 시계태엽 문양과 함께 자신을 회귀시켜 준 그 여자에 대한 기억 뿐이다.
[미안하구나, 허나 네게 대답해 줄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렴.]
‘역시나.’
태호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과거에도 몇 번 신을 만나 그들 세계에 대한 것들을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대답해 줄 수 없다는 것.
‘역시 제약이나 금제가 있는 건가?’
과거, 리치와의 대담을 통해 얻은 정보가 있었다.
어둠의 신 불카노스께서도 판타로스에게는 대적하지 못하셨음이라.
그렇다는 말은, 그들 끼리의 전투가 있었다는 말을 암시한다.
헌데 왜 판타로스가 현실에 강림했을 때, 신들이 개입하지 않았던 걸까? 이는 천계의 사정인가?
그런 정도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불카노스의 제사장도 지금 대륙에 있습니까?
이 질문에 그녀는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불카노스와 그리 친한 편은 아니란다. 그는 신들과의 교류를 거의 하지 않기로 유명한 이라서.]
이것도 모르는거냐, 생각보다 쓸모가 없는걸.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꾹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목소리를 조금 더 높여, 모두에게 들리도록 물었다.
“판타로스의 잔재를 제물로 바쳐 교환하게 되면, 판타로스의 기운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됩니까?”
[그렇단다. 네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럼, 마지막입니다. 하얀 색 시계태엽 같은 문양을 지닌 신님의 이름을 아십니까?”
그녀는 이번엔 정말 골똘히 생각했다.
허나 역시나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모르는 이란다.]
그녀는 고개를 잠깐 갸우뚱거리다가, 덧붙였다. 그녀의 얼굴에 물결 모양의 희미한 문양이 눈에 띄었다.
[네메데스라면 알 지도 모르겠다. 혹여, 네가 그의 제사장을 찾을 수 있다면... 네가 바라는 답의 절반 정도는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는 우리 중에서도 특별하거든.]
네메데스?
태호는 그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화신체의 힘이 다 떨어져 가고 있구나-]
스팟!
동시에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태호는 혀를 쯧, 하고 찼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이템을 순순히 교환해 주는 것은 그래도 에테리얼이 착한 신이기 때문이었다. 질 나쁜 신이었다면 아이템만 먹고 냅다 사라졌을 것이다.
노인은 얼빠진 얼굴로 태호를 한참이나 보다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이 끝나자, 사방엔 적막이 찾아올 뿐이었다.
카멜은 저 편에서 어버버- 하다가 이내 긴장이 풀렸는지 털썩 주저앉았다.
그로서는 신을 직접 보는 것이 처음일 것이다. 유저가 아닌 이상, 그럴 수 밖에 없다.
“엄청난 것을 들었군.”
카멜이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은 긴장감이 역력했으나, 점점 환희에 차 있었다.
“나의 가설이 맞았어. 우리는 맞는 길을 가고 있었던 거야.”
태호가 굳이 목소리를 높여 물어본 의도가 통했다. 카멜은 주먹을 불끈 쥔 채 태호에게 소리쳤다.
“고맙네! 자네 덕분에 확신을 얻었어!”
“별말씀을.”
[퀘스트 완료]
[경험치 획득]
[레벨이 올랐습니다!]
동시에 메시지가 하나 더 떠올랐다.
[흑마법사의 탑이 당신에게 신뢰를 가집니다.]
[흑마법사의 탑과의 평판은 현재 ‘약한 신뢰’입니다.]
[당신의 정보창에 평판 메뉴가 생성되었습니다.]
‘역시나 평판이 생기는군.’
과거에도 태호는 여러 부족과 마을의 평판을 보유하고 있었다. 허나, 마법사의 탑과도 평판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은 처음 들었다.
확실히 여러 가지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 생각보다 해결이 잘 되기도 했고. 또, 대강 여러 정보를 듣기도 했고 말이다.
태호는 이제 노인을 보았다.
은거기인, 이름은 따로 있으나 태호는 앞으로도 그를 은거기인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가 일어서더니 태호에게 허리를 숙였다.
“제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 덕분에 저는 목숨을 구하였고, 에테리얼 님의 가호까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태호도 살짝 고개를 숙였다.
“노인께서 운이 좋으셨을 뿐이죠.”
“운이 모이면 운명이라 합니다.”
노인은 자신의 품 속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태호에게 주었다.
“이것은 에테리얼 님께서 제게 하사하셨던 책입니다. 그 분이 가지신 권능 중, 극히 일부이지요.”
“......”
“이것을 제 목숨값 대신 받아 주십시오.”
태호는 씩 웃었다.
이렇게 된 거였군.
“그럼 감사히.”
태호는 굳이 거절하지 않고 마법서를 받았다.
[아이템 : 에테리얼 마법서를 획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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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태호는 길게 숨을 내쉬며 검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로서 니바 숲의 괴이한 일을 해결했구만. 우리 모두에게 수확이 있었어, 그렇지 않나?”
카멜이 자뭇 유쾌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자네에게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네. 이제, 어디로 향할 생각인가?”
태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우선은 남쪽으로 더 내려갈 겁니다.”
“남쪽이라 하면?”
“남부 대평야로 갑니다.”
우선 메인 퀘스트인 영광의 기사단부터 빠르게 해결할 참이었다. 카멜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제 흑탑으로 돌아갈까 하네. 돌아가지 못 한 지 꽤나 오래 됐거든. 그간의 정보를 교류하고, 새로운 정보를 얻어야지. 자네가 남부로 내려간다고 해서 말인데, 우르즈 백 마운틴을 방문하게 되면 그 곳에서 조사 중인 우리의 동지를 도와줄 수 있겠나?”
[연계 퀘스트: 우르즈 백 마운틴의 변고]
“그러죠.”
“고맙네.”
* * *
니바 숲을 나와, 두 사람은 헤어졌다.
태호는 남쪽으로 길을 정한 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두 개의 아이템을 얻었다.
[등급 : 에픽]
[종류 : 장착(캐릭터에 장착귀속됨)]
[이름 : 메소드의 기운]
[메소드시여, 제가 오늘부터 글 읽기를 연마해 보고자 합니다. -초보 학자, 카실론]
[옵션 : 스킬 연마의 효율이 증가합니다.]
이는 태호가 보유하고 있는 ‘고대 왕국의 증표’ 와 같은 옵션이었다. 굳이 이 옵션을 택한 이유는, 그녀가 가진 것 중 제일 쓸만한 옵션이기 때문이다.
이제 태호는 숙련도를 미친 듯이 빠르게 올릴 수 있다. 두 개의 옵션이 중첩되는 파워는 이미 예전에 느껴 본 바 있었다.
‘며칠 정도는 각 잡고 해야겠지.’
슬슬, 혼자서 얻을 수 있는 에픽 아이템들에게도 한계가 오고 있었다. 앞으로 두 개 정도 이후엔 혼자서는 정말이지 힘든 난이도가 펼쳐질 것이다.
에테리얼 마법서는 10급 유니크의 마법서다.
에픽 등급은 아니어도 굉장히 고가에 판매될 터다. 이건, 물 계열 법사들이 대세를 타는 첫 확장팩까지 보유하다 판매하거나 교환해 버리자.
남부 대평야.
그 곳에 서 있는 것은 ‘섬멸의 기사 치훌린’ 이었다. 예전과 같이, 데스나이트가 먼저 나서 말을 걸었다.
[판타로스께서 네 목을 원하...]
“......조지자.”
태호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으윽...... 알겠다.]
데스나이트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