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32화 (32/194)

────────────────────────────────────

────────────────────────────────────

어둠의 정령

치훌린이 조져졌다.

[끄으윽...... 분하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태호는 레벨업 메시지를 보고 한숨을 내쉬며 데스나이트에게 고개를 까닥였다. 데스나이트는 그의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듯 중얼거렸다.

[치훌린, 막시무스가 그대와 함께 했음을 기억하라.]

우두둑! 우둑!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데스나이트는 점점 더 진화하고 있었다.

[당신의 펫 ‘데스나이트’ 가 ‘섬멸의 기사 치훌린’ 의 스킬, ‘무한의 방패’를 습득했습니다.]

[당신의 펫 ‘데스나이트’ 의 레벨이 대폭상승했습니다!]

[당신의 펫 ‘데스나이트’ 의 생명력과 공격력, 방어력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이름 : 데스나이트]

[레벨 : 150][정예]

[생명력 : 105000]

[공격력 : 6000][방어력 : 3500]

[스텟 : 힘10 , 민첩10, 체력10, 지능5]

[마력 : 0]

[보유스킬 : 왕실 검법, 영광의 축복, 오러블레이드, 무한의 방패, 도발]

[보유장비 : 스산한 혈흔의 한손검...(더 보기)]

‘맙소사.’

태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정도로 급격히 늘어난 생명력과 공격력 방어력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제 녀석의 생명력은 10만을 돌파했다. 게다가 공격력과 방어력이 못해도 3천씩은 늘어난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어디 가서 보스급 몬스터 행세를 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허나 막시무스는 그런 것은 별로 기쁘지 않나보다. 그는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쓰러진 과거의 동료를 지켜 볼 뿐이었다.

“......”

태호는 그런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치훌린의 드랍아이템을 챙겼다.

[등급 : 8급][유니크]

[종류 : 방어구(손)]

[이름 : 어둠 기사단의 장갑]

[옵션 : 방어력 500]

[특수옵션]

[체력 +5]

[체력 +5]

[체력 +5]

[세트 옵션이 존재합니다.*비활성화*]

‘올 체력이네.’

굳이 교정할 필요가 없어, 바로 실전장비로 쓰는 게 좋겠다.

남은 영광의 기사는 단 하나다.

바로, 증오의 기사 디트로히.

디트로히는 라이언에서도 북쪽으로 올라가야 하고, 꽤나 준비를 해야 할 듯 하다. 녀석은 던전 속에 존재했으며, 다른 녀석들보다 훨씬 강했다.

[이제 남은 것은 디트로히 단장 뿐이군.]

“그렇네.”

데스나이트가 몸을 돌렸다. 녀석은 이제 예전보다 훨씬 커져, 태호보다 머리 하나 정도가 더 크며 우람한 덩치를 자랑했다.

영광의 기사단, 단장 디트로히.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레온하르트도 자기 소유의 던전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뭘까?”

광휘의 궁전을 소유하고 있던 레온하르트가 떠오른 것이다. 다른 녀석들은 딱히 그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레온하르트는 단장의 자리에 욕심을 내던 이였다. 그는 명예욕이 있었지. 나를 포함한 다른 이들은 그런 것 따윈 없이, 그저 기사의 명예를 중시했을 뿐.]

그런 이유였나.

태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은 더 남쪽으로 가서, 흑마부탑주의 의뢰를 해결하고 가는 게 동선상 유리하겠어.’

지금 와서 보니, 흑마법사의 탑에서 받은 퀘스트도 상당히 의미 있는 퀘스트였다.

아니, 어찌 보면 메인 퀘스트 급이다. 이는 흑마법사의 근간을 다루게 될 것 같았다. 그간 전혀 듣도 보도 못 한 전개가 기대되고 있었던 것이다.

자.

정리해 보자.

‘우르즈 백 마운틴.’

우르즈 백 마운틴은 남부 대평야에서도 남쪽에 위치한 큼직한 산이다.

그 곳에도 물론 히든피스들이 존재한다. 허나 그 곳은 아직 일정에 넣지 않았었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우선 그 곳은 레벨링 효율이 잘 나오지 않는 곳이었다.

게다가 히든피스의 입수 난이도도 매우 높다. 말 그대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미지수였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몬스터들에 있다.

그 곳은 유령계열의 몬스터들이 득시글거리는데, 정말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곳이다.

‘에휴.’

하지만 한 번 쯤, 여름 공포체험 정도의 느낌으로 가 보면 뭐 나쁘진 않을 듯- 정도가 태호의 생각이었다. 지금은 벌써 겨울이 다 됐지만 말이다.

* * *

[리얼포스 플레이 ?로만TV]

[실시간 시청자수 ? 92540]

‘리얼포스가 인기는 인기로군.’

슬슬 인기가 늘어난다 싶더니만, 로만TV의 시청자도 족히 두 배가 됐다.

저 놈들의 시청자는 점점 더 늘 테고, 얼마 뒤엔 실시간 시청자 50만을 육박할 터다. 물론 그 시청자들 중 절반은 로만을 욕하고, 나머지 절반은 그것이 웃기다며 낄낄거리는 이들 뿐이겠지만.

태호는 개인방송업자들 좋아하는 편이다. 과거 힘든 일과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혼자 밥을 먹을 때, 유일한 친구는 인터넷 방송 뿐이었으니까.

허나 로만 같이 막장을 일삼는 것은 태호의 취향이 아니었다.

놈의 방송의 부제목이 재미있었다.

[로만TV 길드모집, ‘로만 제국’ 면접중]

웹사이트로 이런 저런 것들을 보며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해가 졌다.

까아아아악-

기분 나쁜 까마귀 소리가 들려와, 저 편을 올려다 보았다.

시커먼 산 하나가 귀신처럼 나타나 서 있었다.

저 곳이 바로 우르즈 백 마운틴.

과연, 산에 가까워져 갈수록 사방의 땅에는 풀이나 꽃 한 포기도 자라지 않기 시작했고 황량하고 시커먼 땅만이 이어질 뿐이다.

곧 산의 초입에 다다른 태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초입부터 여기 저기 희끄무리한 형체들이 돌아다니며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Lv. 56]

[희미한 형태의 불빛]

불빛이 어느순간, 태호에게 사르르 모여들었다. 허나 공격의지는 딱히 없는 듯, 이내 멀어져 갔다.

‘응?’

이곳의 몬스터들은 죄다 얄짤없는 선공 몬스터들이었다. 헌데 이게 어쩐 일인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업보 스텟.’

과거 흑마법사로 전직하기 위해 정령을 잡은 적이 있다. 그때 업보 스텟을 얻으며 정령들과의 적대적 관계를 만들었는데 그 스텟의 영향인 듯 하다.

‘생각보다 수월할 지도.’

이제 문제는 이 산에 있는 흑마법사를 찾는 것. 태호는 심호흡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퀘스트 내용을 살펴보자면 이렇다.

[우르즈 마운틴의 정상 부근, 그 곳에서 생긴 변고를 조사하는 우리의 동지가 있을 것이네. 그를 찾아 도와주게나.]

산 자체는 그렇게 높지 않다. 그저, 문제가 있다면 이 산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오직 밤의 시간 뿐이라는 것이다.

해가 떠 있거나, 새벽에 동이 터 올 즈음엔 산은 귀신처럼 사라진다.

유저는 어떻게 되느냐?

물론 산에 남아 있는데 마법 스크롤 사용 등을 제외하면 자력으로 해가 지기 전 까지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당연히 유저는 하나도 없고, 태호는 수월하게 산을 오를 수 있었다.

“데스. 여기서도 느껴지냐?”

[......]

데스나이트는 자신의 새 별명이 썩 마음에 들진 않는 모양이었다.

“데스?”

[나를 그런 이름으로 부르지 말고, 차라리 진명으로 불러 다오.]

“그럼, 막시?”

어쩐지 데스나이트와 꽤나 친해진 듯 하여 태호는 장난치듯 물었다.

[......차라리 데스가 낫군. 그래, 혼돈의 기운이 느껴진다.]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도 타락한 걸까?”

주변에는 각양각색의 귀신형 몬스터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누군가는 처녀귀신처럼, 또 누군가는 무섭게 생긴 중년 남성의 형태를.

또 누군가는 마치 정령처럼 생긴 형태를 띄고 있었다.

[어쩌면, 그럴지도. 허나 꽤 의심스러운 부분은 있다.]

“뭐지?”

[인간들의 타락은 좀비나 구울을 비롯해, 영혼은 없고 육체만 남은 상태가 된다. 허나 이들은 기본적으로 육체는 없는 것 같군.]

일리 있는 말이었다.

과거, 잉카 마을을 생각해도 그렇다. 그들은 그대로 며칠만 더 놔 두었으면 좀비나 구울이 됐을 거다. 과거의 영광의 기사였던 이들 역시 영혼은 없고, 같은 말만 반복하는 빈껍데기 같지 않았던가.

“흐음......”

어쩐지 묘한 느낌을 가진 채 산을 오른 태호는 과연 야트막한 정상 부근에 지어진 움막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 * *

“이야, 자네가 바로 그 신입이군.”

흑마법사는 사람 좋게 생긴 30대의 남성이었다. 꽤나 젊어 보였으며, 유쾌한 이였다.

“예.”

“밀란이네.”

“카이저입니다.”

짧게 통성명을 하자, 그가 씩 웃었다.

“꽤나 으스스한 곳이지?”

아닌게 아니라, 선공을 받지 않는다곤 해도 별로 내키는 곳은 아니었다.

“그렇네요.”

“어쨌거나, 잘 왔어. 혼자서는 아무래도 힘들었거든.”

“여기서 무엇을 하시는 중이신지요?”

“나는 이 곳의 귀신들을 연구하고 있지.”

귀신을 연구한다라.

그리고 그가 말을 이었다.

“아무리 봐도, 이들은 타락한 정령들이야.”

바로 본론이었다.

“으잉?”

태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반문했다.

“정령이요?”

“그래.”

그는 반쯤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덧붙였다.

“내가 볼땐 거의 확실해. 혼돈의 힘이 이들을 타락시켜, 지금은 귀신처럼 변해 버린 거지. 정령계로 돌아갈 수 없으니 살던 곳을 맴도는 거고.”

“......”

태호는 팔짱을 낀 채 생각했다.

과거의 우르즈 백 마운틴.

그곳에서 정령과 연관된 키워드는 단 하나도 없었다. 태호가 머리를 긁적일 무렵, 그가 재차 말했다.

“과거에는 정령의 종류가 열 한 가지였다는 고문서의 증거가 있다.”

“열 한 가지요?”

“그래.”

현재 세계관상 정령은 열 종이었다. 눈, 꽃, 불, 물을 포함해 각종 정령들을 말한다.

“그리고, 얼마 전 노펜시아의 대도서관에서 구한 책에서 이것을 발견했어. 볼래?”

그가 자랑스럽게 책을 꺼내 태호에게 보여주었다. 그 책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어둠의 정령이란, 어둠의 마법과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로 추정...]

단 한 줄의 문장일 뿐이었다.

허나, 어쩐지 꽤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든 의문.

“하지만......”

“그래, 우리는 태생적으로 정령과 적대적일 수 밖에 없는 관계지.”

그 역시 업보 스텟에 대해 알고 있는 듯 하다.

정확히는, ‘스텟’ 의 개념이 아니라 적대적 관계 자체를 알고 있는 셈이겠지만.

밀란은 천천히 책을 접었다.

“우리의 흑마법은, 왕국 아나크레온이 일순간 멸망한 뒤 비전 마법서를 소실했기 때문에 구전으로 내려오는 방법들을 취합한 결정체야.”

이는 과거 들은 바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어쩌면 정령들과 적대적 관계가 되지 않고도 흑마법에 입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지도 모르지. 내 연구는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이고.”

과연.

그 역시 일리가 있다. 태호가 그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흑마법사의 탑에 남은 흑마법사들은, 하나같이 어떤 목적을 가진 채 저마다의 환경에 파견돼 있다.’

이것이 퀘스트라면, 분명히 어떠한 과정 뒤에 보상이 있을 것이다. 과거 흑마탑주는 태호에게, '완성된 비전 마법서' 를 공유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을 거라 했었다.

‘어둠의 정령?’

과거에는 어둠의 정령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정령은 총 10종이었고, 정령사와 흑마법사는 성향상 최악의 상성이었다.

‘세상에.’

지금 태호가 걸어가는 길은, 과거의 리얼포스에 등장했던 흑마법사의 역사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새로운 흑마법사의 역사가 시작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고 있었다.

“자, 가자고. 밤이 깊어오니까!”

밀란이 쾌활하게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