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36화 (36/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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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의 의뢰

저 편.

수풀들 사이 저 너머에, 작은 샘 형태의 늪이 있었다. 그 주변에 몬스터들이 모여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Lv. 150]

[썩은늪지 리자드맨]

리자드맨 계열로, 150레벨들이었다. 이쪽 부근에선 가장 레벨 높은 녀석들이다.

태호는 가만히 놈들을 바라보다, 곰곰이 생각했다.

‘저 샘 같은 곳은 특별해 보이진 않는데?’

라간은 숨죽인 채 기다리다가, 놈들이 떠나자 그 곳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샘 앞에 서 있었다.

태호가 샘을 바라보았다. 탁한 물인지라 속이 들여다 보이진 않았지만, 식수로 사용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라간은 태호를 보더니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연찮게 발견한 건데, 이 샘에... 봐요.”

그리고 인벤토리 창에서 장비 아이템 하나를 꺼내더니, 그 곳에 던졌다.

첨벙!

“......”

뭐 하나, 지켜본다. 그러자.

번쩍!

샘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빛은 잠시 번쩍이다 이내 사라졌다.

호오.

태호는 곰곰이 과거를 되짚어 보았지만, 이런 종류의 히든피스가 늪지대에서 발견되었다는 정보는 아직 들어 본 바 없었다.

태호라고 무조건 정확히 다 아는 것은 아니나, 이런 발상을 이곳에서 보이는 것은 꽤나 독특했다.

“어떻게 이걸 발견한 거에요?”

“그냥, 어쩌다 보니.”

그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정리해 보자.

이 샘은 아이템을 넣으면 반짝인다. 그리고 그 끝에 뭔가가 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라간은 던전이라고 확신하는 듯 했다.

태호도 눈을 반짝이며 인벤토리 창에서 노멀 미만 아이템들을 꺼내 떨구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십 종의 장비를 던지듯 때려넣던 어느 순간이었다.

화아악!

환한 빛이 하늘에서 내리꽂혔다. 이내, 샘 위로 한 여자가 나타났다.

[아이씨, 어떤 놈들이 자꾸 쓰레기를 던져대?]

“......”

“.....?”

태호와 라간이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희들이냐? 죽고싶냐!]

그녀는 녹색과 흰색이 섞인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옷에 비해 그 외에는 평범해 보였다. 태호는 팔짱을 낀 채 고민하다가 물었다.

“저기...... 누구십니까?”

[이 몸은 우리아, 지고한 신님에게 쓰레기를 제물로 바치는 것이 하도 한심하여 직접 나타났노라!]

우리아라 자신을 소개한 여자가 태호와 라간에게 호통을 쳤다.

[다음에 또 그러면 너희 모두 죽어!]

태호는 우리아란 이름은 알고 있었다.

‘숲의 여신, 우리아.’

우리아는 훗날 등장할 신 중 하나였다. 리얼포스의 역사에서 유명하다거나 하는 신은 아니었지만, 이름 정돈 들어본 적이 있었다.

흐음...

태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물었다.

“우리아 님 께서 왜 이런 늪지대의 샘에?”

[흥, 그걸 네가 알아서 뭐 하려고 하느냐? 너희는 고작 인간에 불과하고, 별로 관심도 가지 않는다. 으휴, 세계의 맹약만 아니었으면......]

그녀가 꽤 까칠하게 구는 것이 수상쩍다.

그리고 두 번째로 듣는다.

‘세계의 맹약.’

-세계의 맹약에 따라 재성장의 필요가 있습니다.

얼마 전, 어둠의 최상급 정령이 그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흘려 들었지만, 두 번째로 들으니 흥미가 동했다.

본래 신이었던 이가 왜 샘 속에 숨어 있는지도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신을 부르는 방법은 제사장을 만나 제물을 바치거나, 신이 원하는 특수한 화신체 강림 조건을 충족시키는 수 밖엔 없었다.

화신체 강림 조건이 샘 속에 아이템을 제물로 바치는 거라면 이상할 게 없지만, 굳이 늪지대라는 것이 이상하다.

태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르카네를 소환했다.

아르카네는 소환되자 마자 태호를 빤히 올려다 보았다.

사과 주려나?

그 생각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기에, 태호는 인벤토리 창에서 여분의 사과를 꺼내 주었다.

[착해!]

소녀가 으흥흥, 웃으며 사과를 받아들었다. 앙- 하고 베어 물며 정면을 보자, 우리아의 눈에 이채가 띄어 있었다.

[오호, 어둠의 정령계 공주가 아니신가?]

아르카네는 빤히 우리아를 보다가, 태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모르는 아줌마. 나빠?]

[아줌마? 저 꼬맹이가!]

“아니, 괜찮아.”

태호는 그렇게 말하며 우리아를 흘끗 바라보았다. 우리아의 말투는 험악했지만, 시선이 꽤 호의적으로 변해 있었다. 아무래도 성격 자체가 원래 저런 모양이다.

[너는 보통 인간은 아니로군? 가만...... 어라? 이 녀석 티케의 가호도 받았네? 뭐야, 너는 무사드의 가호를 받았냐? ]

태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응?

태호는 문득 기묘한 이야기를 들은 듯, 라간을 바라보았다.

라간이 눈을 꿈뻑이다가 하하하- 웃었다.

“예!”

무사드의 가호를 받았다고?

무사드는 태호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전쟁의 신이었다. 전쟁이 벌어지면 항상 선두에 서서 맹렬함을 뽐냈다던 그 신의 가호를 받았다니?

‘뭐야 이거.’

태호는 눈을 꿈뻑이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라간은 전생에는 없는 기연을 벌써 얻은 건가?’

무엇 때문에?

그녀가 팔짱을 낀 채 긴 한숨을 내쉬었다.

[흐음...... 뭐, 그렇다면 너희들이 평범하진 않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이런 전개는 전생에는 있을 수 없었던 일들. 태호는 그녀를 똑바로 보았다.

[너희도 알다시피 이 몸은 숲의 신이시다. 그런데 과거 내가 살아가던 이 터전이, 터무니없게도 늪지대가 되어 버렸단다. 모든게 썩고 병들었지. 과거 혼돈의 힘의 사념체와 싸웠던 여파가 너무 크다.]

‘체크할 만 하군.’

과거 혼돈의 힘의 사념체와 우리아는 지상에서 싸운 적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신들은 분명히 판타로스와 맞서 싸웠다는 말이다. 그것도 이 대륙에서.

‘흐음......’

판타로스와의 전쟁.

대격변.

키워드는 딱딱 맞아 떨어진다.

그렇다면.

태호는 머리를 정리한 뒤 물었다.

“그렇다면, 과거의 전쟁이 대격변을 만들었겠군요?”

[뭐, 그것 때문만은 아니란다. 여러 일들이 엮이고 엮여 만들어진 참사이지만, 그건 제약 상 이야기할 수가 없다. 아무튼 이 몸의 땅이었던 이 곳에 내가 나타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란 것이다.]

그건 이해했다.

우리아가 덧붙였다.

[모든게 썩어 병든 늪지대는 혼돈의 힘이 활약하기 딱 좋다. 요즘 같은 시기엔 최악이지, 이 몸은 지상에 만들어 두었던 터전을 싹 다 잃게 생겼노라. 기분이 매우 안좋다.]

태호는 퀘스트의 냄새를 맡았다.

태호가 라간을 보자, 라간 역시 냄새를 맡은 듯 했다. 라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신님! 뭘 원하시는데요?”

[흠...... 이런 상황에서 죽은 땅을 되살리는 것은, 세계수 정도 밖엔 없지.]

세계수!

태호는 세계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미래의 리얼포스에서는 세계수를 하나씩 길드 아지트에 심는 것이 트랜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 그걸 구하기가 쉬울려나?’

방법은 잘 알고 있기에 턱을 쓰다듬자, 우리아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것을 가져오면 내 너희들에게 가호와 보물을 하나씩 내어 줄 지도 모르지. 흥!]

동시에 퀘스트 하나가 떠올랐다.

[퀘스트 발생!]

[7급 퀘스트]

[메인 퀘스트]

[세계수를 찾아서...]

라간의 얼굴에 화색이 띈 것을 보니, 라간과 태호가 동일한 퀘스트를 부여받은 모양이었다.

[그럼 나는 다시 돌아가련다. 그리고 다음에 이 몸을 부를 때, 또 쓰레기를 던진다면 너희를 저 멀리 아젠티움의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 버리겠다! 쓰레기 같은 제물을 받고도 기꺼이 화신체로 강림하여 이리도 긴 시간을 대화해 준 것은, 순전히 이 몸이 가진 힘을 쓴 것인지라 피해가 막심하단 말이다! 어흥!]

우리아가 그렇게 말 하곤 사라져 버렸다. 건방지고 고고하신 신님들 다웠다.

[어 흥!]

그것을 지켜보며 사과를 먹던 아르카네가 그녀를 따라했다. 그리고 잘 했냐는 듯 태호를 올려다 보았다.

태호는 어이가 없어, 킥킥 웃으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쪽은 정령삽니까?”

라간의 물음에, 태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흑마법사요. 이건, 어쩌다 보니 얻게 된...”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태호는 잠시 고민했다.

과거의 라간은 정말 좋은 동료이자 친구였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치 않으나, 벌써부터 모든 것을 다 알려 주기에는 리스크가 분명히 존재했다.

태호는 회귀하였으나, 라간은 이번 생에서 태호를 처음 만났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 고민할 때 라간이 대충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히든피스로군. 뭐, 이 게임은 그런 요소가 엄청 많은 듯 하니까.”

그 정도로 이해해 주면 고맙겠다.

“그나저나, 이거 터무니없는걸 받아 버렸는데. 하하하!”

라간은 즐겁다는 듯 웃으며 태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거 귀찮을 텐데, 미안하게 됐어요.”

“메인 퀘스트는 흔치 않으니 우리 모두에게 이득이죠.”

태호가 씩 웃었다.

말 그대로였다.

메인 퀘스트가 지금 두 개였다. 이것은 충분한 이득이었고, 절대 나쁘지 않은 장사였다.

심지어 신에게 받은 메인 퀘스트라니?

이건 사실 듣도 보도 못 한 일들이었다. 적어도 과거의 리얼포스에서 우리아가 등장하는 것은, 이것과는 거리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나저나.

태호는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았다.

“무사드의 축복이라면, 어디서?”

“아아. 그건 초보자 마을에서요.”

라간이 어깨를 으쓱였다.

“초보자 마을에 허수아비가 있는데, 그게 꽤 퀄리티가 좋아서 다 때려 부숴 봤거든. 패는 맛이 있더라고. 그러니까 갑자기 웬 아저씨가 나타나더니...”

아.

무사드의 소환 조건이 그런 거였나?

태호는 허탈하게 웃었다. 이건 태호도 몰랐던 일이고, 과거의 누군가가 받아간 것이 확실했던 일이었다.

모두가 받은 정보를 공유하진 않는다. 그런 정보들은 태호가 알 방법 자체가 없으니.

태호가 무사드에 대해 아는 것은, ‘무사드에게 어떠어떠한 것을 받았다’ 라는 정도였다.

“리얼포스에는 언제쯤 접속한 겁니까?”

“한...... 아, WOF의 월드스타 윤형석의 트윗을 보고 접속했죠. 저는 그의 열혈팬이거든요.”

역시나.

태호는 그제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이 태호에게 시작된 변화였다. 태호는 쉬폰을 잡았고, 쉬폰은 그것을 계기로 ‘종목 변경’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 사소한 것들의 변화. 그것이 점점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아마, 과거의 시대에서도 라간은 접속하자마자 심심풀이로 허수아비를 때려 부쉈으리라.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무사드의 가호를 다른 유저가 받은 이후였을 것이다. 과거의 라간에게 무사드의 가호는 없었으니까.

자.

이제 퀘스트를 한번 살펴보자.

[7급 퀘스트]

[메인 퀘스트]

[세계수를 찾아서...]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세계수의 씨앗을 구해 와, 죽어가는 늪지대를 되살리기.]

참 심플하고 단서 따윈 없다.

태호는 세계수의 정보를 알고 있었지만, 이 시대에 처음으로 플레이해 나가는 유저들이 세계수에 대해 접하려면 적어도 반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터다.

아무튼.

태호는 고심했다.

라간.

라간을 키울 필요는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이 녀석은 배신을 하지 않으며, 신의와 의리가 있는 남자였다.

하지만...

태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내, 결정을 내렸다.

“라간. 지금 레벨이 몇입니까?”

“레벨 61. 열렙 하고 있죠.”

그는 아깝다는 듯 샘을 바라보았다.

“아깝네에, 던전인 줄 알았더만. 하하하! 별 수 없지 뭐!”

태생이 낙천적인지 크게 마음에 두지 않는 듯 하다. 태호는 피식 웃으며 그에게 파티 신청을 보냈다.

[‘라간’ 님이 파티에 합류하였습니다.]

라간은 히든피스 던전이라는 추측을 하면서도 굳이 태호를 불러내 공유하고자 했다. 결과적으론 그보다 나은 결과물을 얻은 셈이었다.

태호가 그에게 해 준 것은 고작 아이템 하나였지만, 그는 훨씬 더 가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는 것을 서슴없이 태호에게 공유한 셈.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태호는 천천히 입을 열어, 그에게 말했다.

“저는 지금부터 던전을 탐사하러 갈 겁니다. 같이 가서 레벨이나 올립시다.”

태호의 레벨은 현재 107.

라간의 레벨보다 턱없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파티 플레이를 하면 라간에게 들어가는 경험치가 굉장히 줄어들 가능성이 높았다.

허나, 무사드의 가호를 받았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우선은 깔끔하게 메인 퀘스트를 해치울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이래저래 지체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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