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40화 (40/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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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정산

라이언.

언제 돌아와도 기분 좋은 대도시에 태호가 들어섰다. 레벨 190을 달성하는 것은 순전히 던전을 독식한 덕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올렸어.’

라간의 레벨도 상당히 올랐으니, 당분간은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놔 둬도 될 것 같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던전을 자신의 소유로 만든 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

‘이건 거의 에픽 몇 개 급인데.’

기연이 쏟아진다.

보통 유저는 하나만 얻어도 인생이 바뀐다는 에픽을 원하는 옵션으로 골라서 맞추고, 하나 보기도 힘들다는 순수의 강철을 200개나 모았다. 기쁘지 않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기쁘다.

허나 앞으로 조우할 싸움이 얼마나 가혹한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직 가야 할 길이 구만리였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라이언의 큼직한 보관소로 향했다. 보관소는 창고를 이용할 수 있는 은행 같은 역할을 한다.

창고 이용을 위해 은행원 같은 NPC에게 말을 걸어, 창고 탭을 띄웠다.

태호의 창고에는 1~5급의 장비들이 그야말로 수두룩 빽빽이었다. 게다가 현재 인벤토리에 보관하고 있는 5~6급 장비들도 노멀과 레어를 포함해 수백 개가 있었다.

이번에 싹 털어낼 것은 1~3급 사이의 장비들이었다.

4~6급 장비들은 집어넣고 1~3급 아이템들로 인벤토리창을 꽉꽉 채운 뒤, 경매장으로 들어선 태호는 문득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경매질을 하는 저 남자는, 분명 예전에 본 사람이었다.

“......”

강민이었다.

강민은 향후 리얼포스의 경제를 쥐락펴락하게 될 거상이었다. 과거, 태호는 강민을 알바롱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태호가 그의 옆에 가 털썩 주저앉자, 강민이 슬쩍 태호 쪽을 보았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 접었네?”

“그쪽도.”

리얼포스는 기본적으로 돈 버는 것이 그리 쉬운 게임은 아니었다. 태호가 비정상적으로 강하기에 몬스터를 몰아 잡는 등의 행동으로 쉽게 돈을 버는 거지, 보통 유저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경매장 가격을 검색해 본다.

‘3급 노멀이 대충 25골드, 레어가 110골드. 2급은 10, 60. 1급은 5, 30.’

노멀과 레어의 격차가 심한 것은 단순한 이유 때문인데, 노멀은 추가스텟이 1로 고정이기 때문이다. 레어부터는 최대치와 최소치 스텟을 갖기에 가격차이가 심한 것이 인지상정.

아무 특수옵션도 붙지 않은 장비를 '커먼' 이라고 칭한다.

특수옵션으로 추가스텟1이 붙은 것은 '노멀' 이다. 특수옵션이 2개 붙고 1~5사이 최대치 최소치를 갖는 아이템이  '레어'였다.

특수옵션이 3개 붙으면 '유니크'. 그리고 향후 등장할 전설급, 즉 '레전더리' 아이템들은 특수옵션이4개거나, 고유의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 사이 뭐가 생기든 최종단계는 역시나 에픽이었다.

돌아와서.

이전과 시세가 대동소이했다.

허나 이제 급 낮은 장비들은 적당히 올라서 판매해도 될 터였다. 물론 더 쌓아 놓고 나중에 팔아도 된다. 그럼 분명히 시세는 오른다. 기다리면 기다린 만큼 오르리라.

하지만 골드를 충분히 가지고 있어야 향후 다가올 컨텐츠에 능동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당장 에픽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도 물론 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까.

어차피 이제 태호에게 있어 1~3급 장비들은 큰 의미를 부여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인벤토리와 창고만 차지하게 된다.

마음만 먹으면 자신 소유의 던전에서 5급 이상 아이템을 무한정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태호는 현재, 1~3급 장비를 엄청나게 많이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경매장에 조금씩 올려, 판매가 되는 즉시 조금씩 추가해 올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경매창을 종료한 태호가 강민에게 물었다.

“요즘도 아이템 사?”

“언제든. 갑자기 유저가 늘어서 어제 직원들 새로 고용했어.”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것은 태호 뿐만이 아닌가보다. 태호는 피식 웃으며 강민에게 물었다.

“요새 2~3급 장비 매입시세가 어때?”

“3급 커먼은 10. 노멀은 20, 레어 100. 2급은 그보다 떨어져. 원랜 최소최대스텟 따져가면서 사는데, 지금은 안 따지고 일괄구매야.”

곧 매입가를 줄줄 읊었다.

경매 수수료를 생각하면 경매장에 올려 파는 것과 그다지 다를 것은 없었다.

“흠.”

태호가 생각하는 척 하자, 강민이 태호를 유심히 보다 물었다.

“몇개 있는데?”

“몇개 있으면? 골드 많아?”

“골드는 뭐 있을만큼은 있지. 개수 많으면 조정 가능.”

“3급 노멀 100개에 2200골 하자.”

“......?”

강민이 잘못 들었냐는 듯 태호를 다시 보았다.

“100개?”

“그래. 어차피 나중에 팔 거면 잘 좀 쳐 줘. 커먼 장비랑 레어도 많으니까 다 너한테 넘길게.”

“......콜.”

“레어 50개당 5300골.”

“그것도 콜.”

녀석이 태호를 못 믿겠다는 눈으로 보았지만, 태호는 개의치 않고 개인 거래창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멀과 레어가 대량으로 팔려나갔다.

태호는 인벤토리 상황을 살피다, 추가로 레어를 50개씩 더 판매했다. 마지막으로는 커먼 급 장비를 팔아버렸다.

3급 장비가 싹 다 팔려나갔다. 공격속도나 이동속도가 붙은 것은 없었기에 딱히 고려할 것은 없었다.

그 뒤론 2급 장비가 다 팔려나간다.

1급 장비는 가격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퀘스트로 얻을 수 있는 잡템도 그 정도보단 좋게 나오기 때문이다. 때문에 게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무기보다는 방어구나 악세서리 류가 그나마 가격이 있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1급, 노멀, 레어를 대거 넘겼다.

1급 장비는 유일하게 이후에도 시세가 그다지 오르지 않는다. 리얼포스의 세계에서 스텟과 공격력, 방어력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리저리 1~3급 장비들을 모조리 해치우자 대략 16000골드가 만들어졌다. 사냥하며 얻은 골드가 1200골드가 조금 넘으니, 태호의 골드는 현재 17200골드였다.

강민이 조금 질렸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너, 사냥을 얼마나 했길래? 작업장 돌려?”

“......”

태호는 대답하는 대신 씩 웃었다.

강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친하게 지낼까?”

지극히 장사꾼다운 접근이었다.

“그럼 나야 좋고.”

“물건 사고 싶은 거 있으면 나한테 말해, 친구한텐 적절가 에 넘길 테니까. 물론, 팔고 싶을 때도 날 통해 줘. 경매장에 파는 것 만큼 쳐 주지.”

어차피 지금당장은 무조건 매입해도 오르기 때문에 수수료를 깎는 등 치사하게 굴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태호에게도 딱히 나쁠 건 없다. 어차피 이건 일종의 잡템처리 같은 느낌이었다.

진짜배기는 4급부터 시작되는 수백개의 장비들이었다. 이건 적어도 지금보다 서너배 이상의 가격이 책정될 거고, 유니크 등은 말 할 것도 없다.

1~3급의 장비는 엄밀히 따져 ‘초보’ 의 범주에 있다. 소위 말하는 쪼렙이다. 허나 4급부터는 어느정도 리얼포스를 즐기기 시작하며, 레벨을 상당히 올리기 시작할 즈음이다.

이쯤의 유저층이 가장 많고 튼튼하다.

“아참.”

태호는 강민에게 재차 입을 열었다.

“스킬북들은?”

“......스킬북?”

그간 저레벨의 스킬북들을 제법 모아 왔다. 그간 사냥한 지역들은 스킬북을 잘 떨구지 않는 녀석들이라 그리 많지는 않아, 그것까지 적당히 처리한 태호가 강민에게 물었다.

“에픽 있어?”

“에픽은 아직. 그거 입수 난이도도 그렇고, 옵션들이 하나같이 사기급이던데... 파는 사람 나타나면 무조건 웃돈 얹어서 사긴 할 거야.”

“흠......”

강민이라고 해도 에픽을 구하는 것은 무리인 모양. 유니크 아이템은 이제 태호에게 딱히 의미가 없다. 이미 어둠 기사단 풀세트를 입고 있었으며, 빈 부위들은 어차피 에픽으로 채울 수 있으니까.

“유니크 스킬북이나 에픽 스킬북 입수하면 연락 줘.”

“......콜.”

강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친구 신청을 보내왔다. 태호가 가볍게 수락한 뒤, 이제 경매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태호도 경매질을 할 차례다.

언제나처럼 잡템 목록을 싹 뒤졌다.

‘망가진 잡동사니가 매물이 더 늘었네.’

현재 5만개를 보유하고 있는 망가진 잡동사니. 이 아이템의 존재가치는, 제1차 확장팩인 ‘잊혀진 왕국’에서 빛을 발한다.

잊혀진 왕국에서 이 잡동사니들은 조합을 통해 아이템에 특수옵션을 부여하는 조합품으로 변한다. 누군들 예상을 했겠냐만, 결국 그 가치는 족히 50배를 뛴다.

즉.

지금 1실버인 이 잡템이, 확장팩이 등장하면 50실버가 된다는 말이다.

태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일괄 구매.’

이쯤 되면 딱히 눈치 볼 것도 없다. 경매장에 존재하는 모든 망가진 잡동사니가 싹 다 쓸려나갔다. 모조리 다 쓸려 나가 1실버짜리는 싹 다 사라졌다.

이미 망가진 잡동사니에는 경쟁자 따위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기에 별 망설임도 없었다.

[망가진 잡동사니 : 152000]

약 102000개를 구매했다. 1020골드를 소모한 셈.

그렇게 잊혀진 잡동사니를 모조리 구매한 뒤에, 다른 잡템들을 살펴 보았다.

이제 태호는 ‘세계수의 씨앗’을 구하러 가야 했다.

두 가지의 루트가 있다.

첫째, 대륙 남쪽 끝의 메아리 섬으로 향해 그 곳 부족의 퀘스트를 클리어한 뒤 얻는 방법.

둘째, 대륙 중북부의 폐허 신전에서 특수한 신을 불러내 그의 마음에 드는 방법.

첫째 방법은 라간에게 맡길 셈이다.

태호는 메아리 섬까지 갈 시간이 없을뿐더러, 토속부족은 긍지 높은 전사의 후예로서 전사계열 직업이 가야 대우가 좋다.

태호가 취할 방법은 두 번째 방법이다.

그 녀석을 만나기 위해선 특수한 재료들이 필요한데, 역시나 경매장에는 없었다.

‘귀찮게 됐군.’

태호는 혀를 차며 에픽이나 유니크를 찾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또 보자고.”

“잘 가라.”

강민이 엄지와 새끼 손가락을 귀에 대고 까닥였다. 나중에 연락 하라는 뜻이었다.

* * *

라간은 도심 중앙의 큼직한 벤치에 앉아, 저 멀리 떠나는 범선을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태호가 옆으로 와 앉자 그가 씩 웃었다.

“정말 순식간에 지나간 3일이었죠?”

라간이 손을 내밀었다.

“리얼포스의 은인이나 다름없는데 말 편히 하는게 어떨까요. 내 형님이라고 부르지.”

엄밀히 따지면 이 시대 라간의 나이는 태호보다 많았다. 다만, 저 느낌은 아마 ‘브라더’ 라고 부르는 형태일 거다.

태호는 가볍게 고개를 까닥였다.

“그럴까.”

“오케이, 브라더.”

라간이 키득대며 웃었다. 태호도 빙긋 웃었다.

잠깐 잡담을 나누고, 태호는 라간에게 이런 저런 주문을 했다.

“메아리 섬이라.”

라간이 턱을 괸 채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 볼게. 모험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니까.”

“시간이 제법 걸릴 거야. 끈기를 가지고 쭉 퀘스트를 클리어 해 나가면, 꽤 괜찮은 보상을 받을 지도 모르고.”

이는, 그쪽 섬에 존재하는 히든피스를 뜻했다.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리지만, 전사 계열에게는 유의미한 히든피스였다.

“흠, 기대되는걸. 그나저나, 형님.”

“음?”

“형님은 대체 어찌 이런 걸 그렇게 잘 알아?”

“그냥저냥.”

“하긴, 형님 정도면 이 게임 최고 랭커쯤 되겠지? 아무튼 난 굉장히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라간은 진심으로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벌떡 일어섰다.

“그럼 다녀올게!”

라간이 떠났다.

태호는 혼자 남은 그 시간을 만끽하며 몸을 풀었다.

‘대륙 중앙쪽 스타팅 포인트가......’

중앙 쪽이라면, 세계수 씨앗을 구한 뒤 드디어 주 무기인 지팡이 에픽을 먹으러 갈 만 했다. 지역상 나쁘지 않았다.

찌직!

마을 이동 스크롤을 찢은 태호가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 * *

다시 나타난 태호는 대륙 중앙의 스타팅 포인트, 멜 하울의 초원에 도착했다.

이쪽에서 북부로 향하면 폐신전이, 그리고 북동부로 향하면 에픽 아이템인 ‘군자의 지팡이’를 구할 수 있다.

그리고 군자의 지팡이는 제법 험난한 지형을 거쳐 가야 했기에, 꽤나 재미있을 것 같았다.

태호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스킬창에서 ‘초급 머더러 헌터’를 보았다.

[리벤지 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위치가 갱신되기 시작합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

그럼 출발해 보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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