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41화 (41/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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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의 씨앗

리얼포스의 신들의 성향은 세 가지다.

인간에게 적대적이거나, 딱히 별 관심이 없거나, 호의적이거나.

인간에게 적대적인 신을 재수 없게 소환하면 저주를 맞을 가능성도 높았다.

그런 신들은 유저에게 패시브 스킬로 패널티를 먹이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호의적인 신에게 중화 스킬을 받아 해제해야 할 때도 있었다.

저주를 받은 유저들이 불공평하다고 건의를 하거나, 공개 영상으로 항의를 한 적도 있었다. 해결이 됐냐고?

그건 태호도 잘 모른다.

저주를 받은 것은 극소수의 유저였고, 아마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적었을 테니까.

아무튼.

지금 만나러 갈 신은, 적대적인 신은 아니다. 그렇다고 호의적이지도 않고, 엄밀히 따져 별 관심은 없는데 호기심 정돈 있는 느낌일까?

‘로키.’

놈의 이름은 로키. 악당이며, 때론 지혜롭지만 보통 대부분은 장난과 기만을 일삼는 신이었다.

그 녀석을 소환하려면 놈이 가장 좋아하는 과실을 바쳐야 했다.

‘그리고.’

태호는 아주 중요한 정보 하나를 알고 있었다. 로키를 입맛대로 움직이기에 충분한 정보를.

* * *

용과(龍果) 는 리얼포스에서도 꽤나 고급 재료에 속하는 과일이다.

리얼포스에는 다양한 직업군이 존재하는데, 요리사도 당연히 있었다.

용과의 맛은 달고 시원하며, 복잡미묘한데 약간은 고소하기도 하고 톡 쏘는 상큼함이 있기도 하다.

“흠.”

태호는 대륙 중앙의 대초원을 누비며 용과 나무를 찾기 시작했다.

일단, 아르카네를 소환해 옆에 두었다. 사과 하나를 건네 주며 입을 연다.

“용과를 아니?”

[알지.]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해?”

[좋아해.]

사과를 베어 먹던 소녀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런데, 사과가 더 좋아. 정령계엔 사과 거의 없어.]

“흠.”

문득 궁금해져 물어 본다.

“정령계는 어떻게 생겼는데?”

문득 아르카네가 오물오물거리던 입을 멈추고 태호를 빤히 쳐다보았다.

[커.]

“커?”

[엄청 커. 넓어. 까맣고, 파랗고, 하얗고, 꽃도 있구, 그래.]

“......”

소녀가 문득 이 세상을 돌아보다가 덧붙였다.

[비슷해.]

이 세상과 비슷하다는 말이렷다. 태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막시무스도 소환한다.

[하하하하! 내가 돌아왔노라!]

막시무스가 경쾌하게 소리치며 지상에 나타났다. 덩치도 커지고 30대의 건장한 남성의 형체가 완전히 갖추어졌다. 막시무스는 예전엔 전혀 알아볼 수 없던 맑고 또렷한 두 눈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주인 카이저여! 내게 부탁할 게 있나!]

“......어.”

[무엇인가! 말 만 하거라! 내 당장......]

녀석, 밝아졌군. 태호는 음울하고 어두침침했던 저 녀석이 밝아진 것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태호는 마지막으로 ‘어둠 기사단 세트’ 의 세트옵션을 발동시켰다.

슈우우웅!

빛이 네 갈래로 뻗어져 나오며, 4인의 기사들이 무릎을 꿇은 채 태호의 명령을 기다렸다. 이들이 바로 어둠 기사단이었다.

이들의 갑옷은 어둠 기사단 세트와 똑같았으며, 이름 구분이 돼 있지는 않았다.

“너희들, 가서 용과를 좀 찾아봐라.”

[분부대로.]

4인의 어둠 기사단과 막시무스, 그리고 아르카네가 저마다의 방향으로 사라졌다.

태호는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편하군.’

분명 이 근방에 용과나무가 하나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둠 기사단은 생명력이 다 되면 사라지는데, 그 전까진 유용하게 써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땅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태호의 시선에, 작고 귀여운 소녀의 얼굴이 쓱 들어왔다.

[이고.]

소녀의 손에는 용과가 세 개나 들려 있었다. 양 손에 쥐고, 하나는 품에 안고 있다.

개중 하나는 오면서 먹었는지 자국이 남아 있었다. 태호는 피식 웃으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주 장하네.”

[응.]

아르카네는 칭찬해 달라는 듯 태호를 빤히 보았기에, 태호는 녀석의 양 뺨을 토닥여 주었다. 하나 하나 칭찬받고 싶어하는 모습이 꽤나 재미있었다.

용과 두 개를 챙기고, 하나는 아르카네에게 주었다.

[등급 : 6급]

[종류 : 재료]

[이름 : 용과(龍果)]

[새콤! 달콤! 화끈! 짜릿!]

용과는 마치 오렌지가 울룩불룩 튀어나온 형상을 하고 있었다. 껍질 채 먹으면 되니 따로 손질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곧, 어둠 기사단과 막시무스 역시 용과를 하나씩 들고 도착했다.

이제 용과는 총 일곱 개.

“수고했어.”

[응! 맡겨만 달라!]

막시무스가 굉장히 씩씩하게 굴어서, 어쩐지 돌려보내기가 미안했다. 결국 주먹만 한 크기로 변한 막시무스가 태호의 어깨에 앉았다.

이제 신을 불러내러 갈 차례다.

* * *

중북부, 폐신전.

이 신전의 정보가 풀린 것은 리얼포스가 서비스되고도 족히 4년은 지난 뒤의 일일 것이다.

한 요리사 유저가 용과를 구하러 다니다 이 신전을 발견했고, 제단이 있길래 심심해서 용과를 올렸더니 로키가 소환된 것이다.

그는 로키에게 비전의 요리법을 알려 달라 간청했다. 그러자 로키는, 요리사가 가진 용과를 모조리 받아가고 그에게 비법을 전수해 주었다.

그게 그 유명한 ‘썩은 생선 구이’ 였다. 한 마디로 엿 먹인 거다.

반면, 그 이후 로키를 만난 유저는 그와 거래를 해 합당한 대가를 받아 간 적이 있었다.

즉.

이 녀석과의 대화가 중요했다.

폐신전의 사방에는, 과거에는 고풍스러웠을 조각들이 반파되어 있었고 음침한 기운이 가득했다.

그 신전 한가운데 유일하게 멀쩡한 접시 하나가 보였다. 큼직하고, 신성해 보이는 제단 위에 놓인 접시였다.

태호는 그 곳으로 걸어가 접시 위에 용과 하나를 내려놓았다.

지이이잉-!

이윽고, 제단 전체에서 빛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하늘에서 누군가가 쑤욱- 하고 나타났다.

[오- 지상에서 나를 부르다니. 이 얼마만에 돌아오는 지상계의 냄새란 말인가!]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 정면을 보니, 20대의 미남자가 서 있었다.

고급스러운 검은 색 양복을 입고 머리를 한껏 빗어 넘긴 얼굴은 마치 중세 귀족을 보는 듯 미려했다. 허나 두 눈에선 참을 수 없는 장난기가 이글거렸다.

태호는 그에게 고개를 까닥였다.

놈과 딜을 할 방법은 이미 생각해 두었다.

[너는 뭐냐, 인간?]

“제 이름은 카이저. 당신을 소환했습니다.”

태호의 말에 로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용과는 맛있게 먹었다. 나를 부른 이유는?]

“아, 별 건 아니고.”

태호는 품 속에서 용과를 하나 더 꺼냈다.

“지나가다 용과를 좀 발견해서 드시라고요.”

[오.]

로키가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

[정말이냐? 그냥 주는 거냐?]

“예 뭐. 저는 개인적으로 로키 님을 연구하는 대륙의 사학자입니다. 개인적으로 로키 님께 존경의 감정을 가지고 있어요.”

물론 거짓말이다.

이 장난꾸러기 악동을 존경하는 유저는 미래에도 없었다.

[오...... 진짜? 요즘 인간들에겐 내가 유명한가?]

“아뇨.”

[......]

어쩐지 꽤 시무룩해진 얼굴이었다. 태호가 덧붙였다.

“하지만 저는 로키 님의 위업을 기리고, 또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지요.”

[진짜로?]

“그럼요.”

[흐음...... 헌데 수상쩍은걸. 그럼, 말 해 보아라. 내가 무슨 업적들을 남겼는지!]

로키가 어쩐지 미심쩍다는 얼굴을 하자, 태호가 지체 없이 입을 열었다.

“과거 로키 님께서는 악신(惡神) 로두스와의 결전에서 그를 두들겨 패서 천계의 변방으로 내쫓아 버리신 적이 있지요.”

로두스는 인간을 싫어하기로 유명한 악신이었다.

[......헐. 그게 지상까지 퍼졌단 말이냐?]

“의로운 로키 님께서 천계에서 악신을 두들겨 패고 다니시는 건, 아직 그리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 외에도 프나틴, 셴, 아자무스 등의 신님들도 로키님께 얻어 터지셨잖아요. 심지어 천계에서 제일가는 꽃미남이시구요.”

[음음.]

이런 정보들을 어찌 알았느냐.

이는 과거 로키를 만난 요리사가, 그가 자화자찬 하는 것을 동영상으로 고스란히 올렸기 때문이다.

또한 프나틴, 셴, 아자무스 등은 리얼포스에서 유명한 악신이었다. 재수없게라도 소환하면 안 되겠다 생각하며 외워둔 것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좋구나. 너는 내 추종자가 확실하다. 자, 무엇을 원하느냐? 화신체의 힘이 얼마 남지 않았다.]

로키가 썩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세계수 씨앗 하나만 좀 나눠 주십시오.”

[세계수 씨앗이라?]

로키의 눈에 이채가 띄었다. 태호는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천계에서도 로키 님이 지배하시는 아스가르드 쪽에는 큼직한 세계수가 많다지요? 그 씨앗 하나만 내려 주세요. 그럼 로키 님의 명성이 세계 방방 곳곳에 퍼지도록 제가 열심히 일 해 보겠습니다.”

[흐음...... 그 정도야 뭐 어렵진 않지.]

로키는 별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흔쾌히 품 속에서 큼직한 씨앗 하나를 내밀었다.

[이토록 나를 존경하는 인간에게 이 정도 쯤 못 해 줄까! 하하하!]

태호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제가 용과를 구하면 또 찾아뵙죠.”

[오냐! 하하하하! 나는 용과를 아주 많이 좋아하니, 언제든 부르도록 하라! 혹시 아느냐? 조금 더 내 마음을 풍족하게 한다면, 네게 가호라도 내릴 지! 아하하하!]

로키가 사라졌다.

태호는 피식 웃으며 세계수 씨앗을 살펴보았다.

[등급 : 8급]

[종류 : 재료]

[이름 : 세계수의 씨앗]

[세계수의 씨앗. 신비로운 기운을 가득 머금고 있는 세계수의 씨앗이다.]

로키의 비위를 맞추는 법에 대해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 통했다.

‘씨앗은 구했고.’

로키는 이리 저리 쓸모가 많다. 이 녀석은 그야말로 틈만 나면 장난을 치려고 들고, 인간을 시험하려 한다. 때문에 애초에 납죽 엎드려 찬양을 해 버리면, 그럴 마음이 사라져서 괜찮을 거다.

다만, 맞먹으려 들거나 그저 ‘게임 NPC’ 겠거니- 라는 마음으로 대충 대하면 바로 엿 먹기 일쑤였다.

게다가 녀석이 한 말이 마음에 걸렸다.

‘가호라.’

로키의 가호가 뭔지는 아무도 몰랐다. 녀석이 인간에게 관대한 쪽이라면 몰라도, 중립의 성향인 이상 어떤 식으로 엿 먹을 진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조금 보류.

우선.

씨앗은 성공리에 구했으니, 지팡이를 구하러 갈 차례였다.

이 곳에서 동부로 향하면, 깎아지는 협곡이 나타난다.

이 곳의 이름은 ‘까마귀 협곡’.

군자의 지팡이를 얻어야 할 험난한 지형이 벌써부터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까아아아악-!

요란한 까마귀 소리와 함께 협곡 여기 저기 내려앉아 있는 까마귀들이 보였다.

군자의 지팡이는 본래 고대시절의 마법도구였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마력을 머금고 있었기에, 그 마력에 감응하게 되면 한낱 미물조차 막대한 힘과 지능을 얻게 된다고 한다.

물론, 유저가 얻게 되면 ‘막대한 힘’ 이라는 것 자체가 에픽 아이템의 성능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고대의 마법도구를, 대격변의 틈을 타 거대한 까마귀 한 마리가 낚아 채 이 곳으로 향했다. 까마귀는 지팡이 덕에 막대한 힘과 지능을 얻었고, 이 협곡에 터를 잡아 세를 부풀리고 있다는 설정이었다.

태호는 협곡의 꼭대기에 까맣게 앉아 있는 까마귀들을 바라보았다.

우선, 저 곳을 뚫고 올라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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