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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머니좀 털어 볼까[[유료연재 시작분]] >
태호는 경매장에 올린 물건을 빤히 보았다.
‘기사단의 훈장.’
이 물건은 영광의 기사단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며 얻은 것이다. 태호의 기억에도 당연히 존재했었다.
생긴 것은 육각형의 배지 같다. 이것의 용도는, 여섯 개를 조립해서 큼직한 배지 모양을 만드는 것이다. 그럼 꽤나 멋진 문양이 완성된다.
그렇다.
“......”
진짜로 그냥 장식품이다.
태호는 현재 경매장에, 기사단의 훈장을 1000골드~1100골드 사이에 다섯 개 올려 두고 499골드, 498골드 등으로 가격 책정을 해 다섯 개 올려 두었다.
리얼포스의 경매장은 올린 이의 아이디를 보여주지 않는다. 또한, 아예 입찰제 방식이 아니라 정찰가로 물건을 올린다면 경매장에 언제 올라왔는지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
남이 검색해서 이 정보를 본다면?
‘드랍률이 낮은데 판매하는 사람이 몇 명 있다. 가격을 조금씩 깎아서 자신의 물건을 빨리 팔고 싶어하는 듯-’
정도의 정보를 얻어갈 정도였다.
그대로 가만히 지켜본다.
물건은 한참이 지나도 팔리지 않았다.
당연했다. 500~1100골드 사이의 가격.
이는 일개 재료 아이템 하나로서는 비정상적인 가격이었다. 허나 똥줄이 타는건 태호가 아니다.
태호는 느긋하게 몸을 일으켰다. 사든 말든, 안 사면 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태호가 가장 잘 알았다.
‘저걸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들을 내가 다 해먹었는데.’
영광의 기사단 퀘스트를 클리어하며 싹 쓴 것은 물론이고, 던전인 ‘증오의 피라미드’ 는 이미 태호의 소유였다.
-형님!
그 무렵, 라간에게 귓속말이 왔다.
-그래.
-난 지금 메아리 섬에서 퀘스트 중! 하하하!
-이쪽도 순항 중이다.
-옛서! 아무튼 파이팅이요!
라간이 유쾌하게 떠들었다. 태호는 라간과 잡담을 나누며 걸음을 옮겼다.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다.
[대륙 어딘가에 존재하는, 고대 잊혀진 제7왕국의 단서 찾기.]
바로, 메인 퀘스트다.
‘단서라...’
리얼포스의 제1확장팩, 잊혀진 왕국.
고대 여섯 왕국과 잊혀졌던 과거의 또다른 왕국 하나가 부활한다는 것.
리얼포스의 확장팩들은 서서히 등장하는 혼돈의 힘이 대륙을 위협하기 시작하고, 해결해 가는 과정을 따른다.
주된 골자는 ‘타락’ 이다.
우선, 로키에게도 한번 물어 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신’ 들을 이용하는 것은 죽기 전에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들을 이용해야 해.’
그렇게 하기 위해선?
가호를 최대한 받아 두는 편이 좋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생각해 보면, 가호야말로 에픽 아이템에 뒤처지지 않는 고성능 스킬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돼 보니 그렇네.’
신을 두 명 소환했을 때 까진 그럴려니 했다. 하지만 로키까지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굴기 시작한 것으로 보았을 때, 신을 이용하는 방법에 힘이 실린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태호는 라이언을 나섰다.
라이언 북동쪽, 죽음의 늪지대.
그 곳에 들어간 태호는 숲의 여신 우리아를 소환할 수 있는 샘 앞에 섰다. [서, 설마... 또 신님을 부르려는거냐아악!]
야타가 깜짝 놀라 빼액 소리질렀다.
“그래.”
[히이익! 이 미친 인간은 대체 왜 이렇게 신님들이랑 친한 걸까악!]
‘흐음... 뭘 줘야 하나.’
막상 오니 고민이 된다. 레어나 유니크를 주기엔 아까운데, 저등급 장비를 던지면 나와서 오두방정을 떨 것이 뻔했다.
그러다 문득.
“아-”
태호는 인벤토리 창에서 세계수의 씨앗을 꺼내, 샘 속에 던졌다.
화아악!
곧 하얀 빛과 함께 숲의 여신 우리아가 나타났다.
[오호, 너 제법 똑똑하구나?]
[꽥!]
야타는 곧바로 기절했다.
“......”
우리아는 중립 성향이었다. 인간에 딱히 별 관심이 없다는 말.
그녀의 얼굴에 뭔가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럴 듯 한 제물을 바쳐 주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아무튼, 용케 구해 왔군.]
태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 동료도 세계수의 씨앗을 구해 올 겁니다. 동료에게도 보상을...”
[당연하지. 너는 신이 약속한 것을 뭐라고 생각하느냐? 이미 신력을 이용하여 약속하였으면 거부하였을 때의 제약이 훨씬 더 강해지노니... 세계수의 씨앗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단다.]
우리아가 투덜거리며 씨앗을 매만지다 품 속에 집어넣었다.
태호는 ‘신이 약속한 것’ 이 바로 ‘퀘스트’ 임을 깨달았다. 퀘스트로 임무를 부여하였을 때, 신은 그때 약속한 것을 주지 않으면 큰 제약을 받게 된다는 말이었다.
‘신들과 접촉하는 것이 늘어나니 이것 저것 정보가 쌓이는군.’
“천계에는 세계수가 없습니까?”
[아스가르드에 있지. 헌데 로키 그 쫌생이가 씨앗 나누어 주는데 인색하거든.]
로키가 누구인지, 아스가르드가 뭔지 모른다면 도통 알쏭달쏭한 이야기일 터다. 이런 것이 보통은 신들의 대화방법 이었다. 딱히 인간에게 맞춰 이야기해 주지 않고, 본인 편의적으로 이야기한다.
[퀘스트 완료]
[세계수를 찾아서...]
[경험치 획득]
[레벨이 올랐습니다.]
우리아가 꽤 만족한 듯 고개를 까닥이며 재차 입을 열었다.
[내 네게 나의 가호를 내리노라!]
화아악!
우리아는 태호에게 손을 뻗어, 진청록색 기운을 쏘아냈다. 기운이 태호에게 스며들며, 메시지를 띄웠다.
[패시브 스킬 : ‘숲의 가호’를 획득했습니다.]
숲의 가호.
태호는 스킬 정보를 띄웠다.
[패시브 : 숲의 가호]
[설명 : 숲의 여신 우리아의 마음에 들어, 그의 권능을 아주 조금 부여받았다.]
[숲 속에서 높은 은신효과를 부여받는다.]
‘......’ 은신이라.
태호는 곰곰이 생각했다. 은신이라는 것은 본래 어세신류 직업군의 고유 스킬이었다.
고유 스킬이라는 것은, 스킬북으로도 배울 수 없으며 오직 어세신류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라는 것. 즉,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
‘향후 컨텐츠 중에는 숲을 배경으로 한 것도 아주 많으니까.’
우리아는 태호를 가만히 보며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태호가 입을 열었다.
“또 뭔가 맡기실 일이 있으십니까?”
[물어볼 것이 있구나.]
“예.”
[이 씨앗은 어디서 얻은 거지?]
우리아의 물음에 태호는 잠시 고민했다. 그녀는 로키와의 관계가 그리 나쁘지는 않아 보이지만, 빈정이 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로키 님께 부탁드려 받았습니다.”
[엥? 그래?]
우리아는 어쩐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 쫌생이가 유독 인간에게 약하단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그놈 그거 보통 놈이 아닌데, 용케도 받아 왔구나.]
태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흠... 생각보다 빨리 구해오기도 했고, 의외로 수완이 좋군.]
그리 기분 나빠하진 않고 오히려 태호를 한 등급 높게 봐 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정도까진 맡겨도 될 지도 모르겠는데.]
우리아는 한참동안 고민하다 재차 입을 열었다.
[너는 엘프의 숲에 대하여 아느냐?]
엘프의 숲.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태호의 기억 속 엘프의 숲은, 인간을 적대하는 엘프 무리가 살고 있는 지역.
엘프들은 그야말로 일당 백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투사였으며,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집단이었다.
엘프나 드래곤의 후예 등의 고등지능을 가진 존재들은 유저나 다를 바 없는 사고와 인지를 한다.
[본래 나의 제사장이 그 곳에 있었건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와의 연결이 끊겼단다. 그렇다 보니 아주 답답하구나... 너는 그 곳으로 향해 전말을 분석하고 내게 알려주도록 해라.]
더할 나위 없는 일이다.
신에게 직접 퀘스트를 부여받는 것은, 상당히 좋은 대가들을 동반하는 것을 이미 알았기 때문이다.
다만.
태호가 만약 우리아의 마음에 들지 않는 방법으로 ‘세계수의 씨앗’을 얻었다면, 어떤 변덕을 부릴 진 모를 일이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내 그럼 네게, 나의 힘이 담긴 보물 하나를 하사하겠다.]
문득 태호가 물었다.
“제 동료도 세계수의 씨앗을 구해 올 텐데, 그에게도 같은 임무를 부여하시렵니까?”
[아니. 애초에 나는 너희 둘에게 각기 다른 임무를 주려 했다. 씨앗을 구해 올 정도로 유능한 인간을 한 곳에 보내는 것은 시간 낭비이기 때문이지.]
그렇다면야.
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최선을 다 해 수행해 보죠. 아- 그리고.”
[음?]
“혹시, 우리아 님께서는 대격변 이전 고대시절 잊혀진 왕국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잊혀진 왕국이라...]
우리아는 별로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은, 울크랜드를 말하는 것이렷다?] 울크랜드.
과거, 잊혀진 왕국의 이름이 맞았다. 태호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바로 그렇습니다.”
[울크랜드를 아는 인간이라니... 도통 네 정체가 뭔질 모르겠군.]
태호는 자신이 기억하는 정보의 일부만 입 밖으로 내 놓기로 했다.
“저는 울크랜드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울크랜드의 왕은 앙헬 바로스, 그는 혼돈의 주인의 수하가 아닐까- 라는 것이 제 추측입니다만.”
사실은 그게 정답이겠지.
우리아는 두 눈을 깜빡거리다, 놀랍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 정보는 어디서 얻은 게냐?]
“대륙을 돌아다니며 고서적들을 읽어 단서를 조합해 본 것입니다.”
[흐음... 그렇다. 과거에 분명히 그러했지. 그런데, 울크랜드는 왜?]
“혹시 그 왕국이 있었던 위치나, 정보, 남은 유적 등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1 확장팩 잊혀진 왕국.
잊혀진 왕국 ‘울크랜드’ 는 패치가 완료된 날 당일, 대륙 한복판에 홀연히 그냥 생겨난다.
때문에 그 나라의 단서 자체는 태호도 몰랐다.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흘러갈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울크랜드라... 그 역시 엘프의 숲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군. 답이 되었니?]
“충분히요.”
답은 엘프로군.
태호가 고개를 숙이자, 우리아가 양 손을 활짝 펼쳤다. 동시에 태호의 눈앞에 퀘스트가 떠올랐다.
[7급 퀘스트]
[메인 퀘스트]
[엘프의 숲, 제사장.]
[엘프의 숲을 방문하여 제사장의 행방 찾기.]
[그럼, 네 녀석의 행보를 지켜보겠다. 그나저나, 저 까마귀는 왜 저렇게 뱀 눈을 뜨고 흘끔거리기나 하는 것이냐? 다음에도 저런다면 내 친히 신력을 소모하여 저주를 내리겠다.]
화아악!
재차 빛과 함께 사라진 우리아, 이제 늪지대에는 태호 뿐이었다. 어쩐지 긴장이 탁- 풀렸다.
딸꾹!
야타가 딸꾹질을 하는 것이 보였다. 저렇게 비정상적으로 신들을 두려워하는 것도 꽤나 독특한 일이었다.
그 무렵.
[경매장에 등록한 아이템이 판매되었습니다.]
판매되었다는 메시지가 정확히 다섯 개 떠올랐다.
태호는 피식 웃었다.
‘물었군.’
* * *
대륙 남부, 대도시 안타라스 슬램.
머더러의 패널티를 전혀 받지 않을 수 있는 대륙 유일의 대도시의 경매장에 앉아 있는 것은 바로 로만이었다.
로만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했다.
‘뭔 재료템이 이렇게까지 비싸?’
토탈 5개 사는데 2500골드가 들었다.
문제는 드랍되는 곳 자체가 정보가 없다는 점이다. 분명히 어딘가에서 몇 명의 유저들이 매물을 올리는 듯 하다.
‘하긴...’
로만이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리얼포스의 상승세가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었다. 얼마 전, 동시접속자 500만을 돌파했다는 말을 들었다. 동시접속자가 500만이란 것은, 하루 평균 수천만명이 이용한다는 말이다.
매일 매일 동시접속자가 수십만명씩 는다는 통계를 보았다. 이건 전례가 없는 상승세다.
방송 시청자도 15만을 웃돌기 시작했다. 예전, 그 어떤 게임을 해도 찍을 수 없는 10만의 벽을 깬 지 옛날이었다. 방송 팔로워는 이미 200만을 진작에 넘었다.
얼마 전 전문가 분석이 있었다.
이대로 가면, 올해가 끝나갈 때 쯤 리얼포스의 동시접속자는 1억 명에 육박할 수도 있다고! 동시 접속자 1억!
그 꿈의 숫자!
로만은 그 꿈의 세계에서 막대한 돈을 끌어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잘 나가는 가상현실 게임의 선두에 서서, 가장 잘 나가는 개인방송인이 되어서, 소위 말하는 ‘월드클래스’ 에 당당히 한 발자국 내딛게 되는 것!
그렇게 되기 위해선, 흐름에 발을 담가야 한다. 아니, 푸욱 젖어 버려야 한다!
이미 다른 TOP 인기 가상현실 게임들은 고인물들의 그들만의 리그로 변해 버린지 오래. 허나 리얼포스는 다르다.
이 게임은 이제 시작이다!
메인 퀘스트!
그것은 리얼포스의 흐름에 탑승하는 것!
주도해 나가는 것!
이건 보통 대박이 아니고, 초대박이었다. 이미 팬사이트를 찾고 해외 포럼과 유튜브를 이잡듯 검색해 보았다. 어떻게 찾아 봐도, ‘일반적인’ 메인 퀘스트만이 존재할 뿐.
자신처럼 특수한 메인퀘스트는 아예 정보조차 없었다. 즉, 이건 대박을 향한 초석이 분명했다. 허나 아직 방심하기엔 이르다.
‘정보 공유를 하지 않는 경쟁자가 있을 수도 있어.’
로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500골드 이하 ‘기사단의 훈장’ 다섯 개를 구매했다.
나머지 다섯 개의 매물은 1000~1100골드 사이였다.
‘우선 사자.’
재수없게라도 경쟁자가 붙거나, 매물이 사라지면 곤란한 건 이 쪽이니까.
‘현찰로 몇 억 정돈 그냥 투자라 친다.’
로만이 입술을 깨물며 다시 경매창을 띄웠다.
‘엥?’
그리고 그의 얼굴이 점점 더 시뻘개져 갔다.
‘이런 시팔... 그새 올랐잖아?’
1000~1100골드 사이의 매물이 귀신처럼 사라진 것이다.
이내 다시 올라온 매물의 가격들은 1100~1200 골드 사이였다.
‘하 씨.’
그래도 이번엔 매물이 12개나 올라와 있다.
로만은 망설이다가, 구매를 시작했다.
* * *
[경매장에 등록한 아이템이 판매되었습니다.]
경매장에서 기다리던 태호는 메시지가 떠오르자 마자, 경매창에 등록돼 있던 물건들을 죄다 내리기 시작했다.
[경매장에 등록한 아이템이 판매되었습니다.]
결국, ‘기사단의 훈장’ 세 개가 판매되고 나머지 매물들을 싹 내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씨익 웃었다.
‘로만 제국 주머니좀 털어 볼까.’
* * *
“아, 아, 아!”
로만은 경악했다.
올라온 매물들이 귀신처럼 사라졌다.
‘시팔, 이거 경쟁자 붙은 거 확실한 거 같은데?’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시세 더 오르면 가진 골드로는 택도 없겠는데. 시, 시팔... 대체 이거 돈을 얼마나 써야 하는 거야? 이거 진짜 중요한 재룐가?’
로만은 손톱을 물어 뜯다가, 웹사이트를 켰다.
아이템 현금거래 사이트로 접속한 로만이 ‘리얼포스’ 게임을 선택한 뒤, 매매글을 보았다.
당장 골드가 필요했다.
< 주머니좀 털어 볼까[[유료연재 시작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