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46화 (46/194)

< 그럼 안녕. >

‘이쯤 되면 경쟁자가 있다고 착각했겠지.’

태호는 이제부터 훈장을 단 하나씩만 올리기 시작했다.

1200골드 정도던 훈장은 점점 커져 2000골드를 넘어섰다. 그리고 2500골드가 넘어갈 때, 올린 매물이 팔리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리게 됐다.

‘너무 비싸게 올렸나?’

이 정도가 한계인 모양이었다.

‘28개 팔았군.’

[경매장에 등록한 아이템이 판매되었습니다.]

2500골드도 팔렸다.

‘이제 29개.’

마지막 하나가 남았다.

태호는 마지막 기사단의 훈장을 5천 골드에 올리고 나서, 웹사이트를 켰다.

‘제일 큰 포럼이...’

렛츠고 리얼포스, 리얼포스 커뮤니티 포럼 중엔 가장 큰 곳. 또한 비회원으로도 글이나 댓글을 남길 수 있어, 글 올라오는 속도가 가장 빠른 포럼이었다.

그 곳에 들어선 태호는 ip를 몇 번 바꾼 뒤, 글을 하나 남겼다.

[기사단의 훈장, 이거 뭔데 이렇게 비싸게 팔려요?]

내용에는.

[이거 콴의 숲에서 나오는데... 렛맨 기사 잡으면 가끔씩 떨어짐... 꿀 빠는 노가단가?]

이 정도로 남겨 볼까.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콴의 숲은 대륙 중남부에 위치한 중저레벨 사냥터였다. 그야말로 넓고 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숲이었는데,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약1미터 정도 크기의 렛맨들이다.

생김새는 쥐가 사람처럼 이족보행을 하며 사람 행세를 하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태호가 올린 글은 너무나도 빠르게 쏟아지는 또다른 글들에 의해 금세 2페이지, 3페이지로 밀려났다.

하지만 조금씩 조회수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것을 주시하며 초보자 마을 이동 스크롤을 찢었다.

찌직!

이동한 곳은 중남부의 초보자 스타트지역이다.

* * *

콴의 숲.

그다지 인기 있는 사냥터는 아니었다. 렛맨들은 귀여운 쥐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흉포하고 징그러운 외형을 자랑했고, 넓은 숲에 비해 몬스터 양이 적었다.

샤아악-

숲으로 들어서자마자, 태호의 온몸이 반투명하게 변했다.

[숲의 가호가 발동중입니다.]

‘진짜 은신이 걸리네.’

체감상 은신의 등급이 5급정돈 되는 것 같았다. 어세신들이 사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은신이, 숲 한정으로 걸리는 것이다.

‘신의 가호가 좋긴 좋구나.’

태호니까 스스로가 반투명하게 보이는 거지, 남들에게는 아예 보이지 않을 것이다.

우선, 온 김에 이쪽 지역 히든피스나 하나 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콴의 숲은 저레벨 지역 답게 에픽은 없다. 다만, 저레벨 때 쓰기 좋은 옵션이 붙은 고유 아이템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과거 설원에서 얻었던 ‘얼음걸음’ 같은 것 말이다.

숲을 누비기 시작했다.

여기 저기 간간히 유저가 보이는 것을 보니, 리얼포스 동시접속자 500만명 넘어갔다는 말이 허튼 말은 아니었다. 이 곳이 이 정도라면, 인기 사냥터는 그야말로 북적거릴 터다.

한참 동안 숲을 뒤지던 태호는 근방에서 가장 커 보이는 나무 밑둥에서 거의 파묻혀 끝만 살짝 보이는 뭔가를 발견했다.

‘이거였나?’

언뜻 보면 돌멩이 같아 지나치기 마련이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태호는 그 곳을 파기 시작했다.

적당히 파내자, 파묻힌 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바로, 녹슨 상자였다. 상자의 모서리 부분이 쑥 튀어나와 바위처럼 보인 것이다.

상자를 연다.

[아이템 : 숲의 인도자를 획득했습니다.] 숲의 인도자.

[등급 : 4급]

[종류 : 장비(발)]

[이름 : 숲의 인도자]

[옵션 : 방어력 40]

[숲 지형에서 이동속도가 10% 상승합니다.]

바로, 과거 얼음걸음과 같은 옵션을 지닌 녀석이었다.

노멀이나 레어가 아닌데 이렇게 특이한 옵션이 있는 아이템을 고유 아이템이라고 한다. 특정 지형에서만 힘을 쓰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벤토리 창에 넣고, 또 다른 히든피스를 떠올려 본다.

‘음...’

태호도 일단은 사람이었기에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 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로만은 오늘 방송을 켜지 않았기에, 무엇을 하는 지 아직은 불분명하다. 5천골드에 올린 아이템도 아직은 팔리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 씨! 뭐야... 억!

-아 짜증나 웬 머더러 새끼...

저 멀리서 유저들의 목소리가 하나 둘 들려오고 있었다.

태호는 씩 웃으며 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과연.

머리 위에 시뻘건 아이디를 띄운 머더러들이 숲으로 들어서서, 사방을 수색하고 있었다.

‘정말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군.’

그 와중에 로만은 없다. 장비의 외형을 보았을 때, 대충 60~80 사이의 머더러들 열댓명이 파견된 모양이었다. 그들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한 것이, 어쩐지 꽤나 재미있었다.

조금 가까이 가 볼까.

태호가 그들에게 천천히 접근해 들어갔다. 땅 밟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각별히 유의하며 접근하자, 그들은 태호의 정체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육성은 들리지 않는다.

허나.

-아니, 대장 지금 방송도 안 켜고 뭐 한 대? 씨발, 길드 괜히 들어왔나? 수고비 준다고 해놓고 갑자기 왜 미루는건데?

-몰라 시발, 사람 죽이는 거 재미는 있었는데 이러다 캐릭 다시 키워야 할 수도 있음. 그냥 수고비 좀 받고 새 캐릭 키울까?

-개 부려먹기만 하고 뭐 나눠주는게 없어. 지만 쳐먹는거 아냐? 로만 그새끼 원래 그런새끼긴 한데.

-게다가 요새 어세신즈가 진짜 무섭지 않냐? 거기 대장 쉬폰이는 진짜 완전히 미친 놈이라던데. 어제 유튜브에 쉬폰이 5:1 써는 영상 공개됐잖아.

-영상 떳다고?

-어. 근데 거기 댓글이, 저거 윤형석이일 확률이 95%는 된다더라. 배틀 스탭이랑 자세 같은 게 윤형석이랑 똑같대.

머더러들이 파티 대화를 나누는 듯 했다.

태호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꾹 눌렀다.

이는 모두 ‘중급 머더러 헌터’ 패시브 스킬 덕이었다.

중급 헌터로 스킬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지며, 머더러들에게 접근해 있을 시 그들의 비밀대화를 엿듣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란 도란 이야기를 하며 머더러들이 사방의 렛맨 기사들을 잡아 족치기 시작했다.

‘그 글을 봤구나.’

글 하나 뿐인데 이렇게 빨리 파견이 나왔다는 건, 혈안이 돼도 단단히 돼 있다는 뜻.

-1팀은 아이템도 잘만 사다 채워 주면서 나머진 찬밥인 거 보니, 우리 곧 나가리 당할 거 같다.

-도로스 분지인가, 거기 갔다던데.

-엥? 너 1팀애들이랑 친해?

-거기 내 친구 있음. 걔가 나 보다 일주일 빨리 시작해서 렙이 높아서 1팀 됐나봐. 하, 나도 좀 빨리 시작할걸.

그러는 한편으론 친구 있다고 말 한 유저의 귓속말이 중복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거기서 뭐하냐?

-여기서 메인퀘 작업중인데 졸라 귀찮아. 가끔 꿈에 나온다니까, 으으.

-언제 끝나? 오늘도 18시간 꽉 채워서 하냐?

-곧 오늘치 끝날걸?

아하, 그렇단 말이지?

태호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멀어져 울창한 수풀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굳이 흑마법을 쓸 생각은 없다. ‘리벤지 대상 해제.’

이렇게 해제시켜 놓는다면, 리벤지 메시지가 뜰 일도 없으니 정체가 밝혀질 염려도 없다.

그 상태로 태호가 막시무스를 소환했다.

“막시.”

[나를 불렀는가, 주군이여!]

“저 악의 종자들을 조지는데 한 몫 할 기회를 주마.”

[음...! 기사의 피가 끓는군!]

단순 무식해진 것은 마음에 드는 녀석이다.

그리고 태호는 ‘어둠 기사 세트’의 세트옵션을 발동시켰다.

화아악!

네 명의 어둠 기사단이 등장했다. 이들로도 저 정도의 저레벨 유저들을 학살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자, 너희는 지금부터 막시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목표는 저기 빨간색 머더러들, 가서 조져.”

[분부대로!]

4인의 기사단이 고개를 숙이며 짧게 대답한 뒤 저 편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퍽퍽퍽- 퍽-

“아 시파! 여기서 왜 갑자기 저렇게 쎈 몹이 튀어나와!”

“끄악!”

“억!”

그 많던 머더러들이 순식간에 삭제됐다. 막시무스는 태호가 저 멀리서 손짓하는 것을 보자,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악의 종자들은 이 숲에서 아무것도 얻어갈 수 없으리니! 나, 숲의 기사 막시무스가 너희를 벌하노라!]

태호는 놈들이 모조리 다 죽어나간 것을 확인하고 떨군 아이템을 싹 쓸어온 뒤, 망설임 없이 스크롤을 찢었다.

위치는 대륙 동북부, 초보자 스타트 지역이다.

그 곳에 도달하자마자 태호는 남쪽으로 달렸다. 이 스타트 지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도로스 분지가 있다.

막 도로스 분지에 도착할 무렵.

[경매장에 등록한 아이템이 판매되었습니다.]

메시지가 도착했다.

“킥.”

태호는 배를 잡고 웃었다. 얼마나 통한에 차 5천골 짜리 재료를 샀을지, 눈 앞에 훤했기 때문이다.

이로서 로만 제국에서 털어 낸 골드는 경매장 수수료 10%를 제외하고도 대략 4만 천 골드가 넘었다. 태호의 재산은 이제 대략 6만 골드에 육박해진 것이다.

그리고 분지를 내려다본다.

도로스 분지는 무척 작은 지형으로, 지역 대비 몬스터 밀도가 아주 높아 각광받는 초보자 사냥터였다.

크기는 대략 초보자 스타트존 정도인지라, 저 아래가 한눈에 보였다.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작은 물줄기 하나가 흐르는 작은 지형.

저 아래, 머더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사냥중인 유저들을 학살하는 것이 보였다.

학살당한 유저들의 머리 위로 회색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어디론가 빨려가는 것이 보였다.

가만히 지켜보니, 머더러들이 밀집해 뭔가를 지키고 있었다. 회색 기운이 그 곳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저기가 포인트로군.’

그나저나.

1팀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즉, 저 녀석들은 로만제국에서도 1군에 속하는 고레벨+좋은 아이템을 지닌 녀석들이란 말이다.

과연 일리는 있어 보이는 게, 팀 조합이 아주 좋았다. 힐러와 버퍼로 보이는 직업군, 그리고 근거리 딜러와 원거리 딜러진이 합리적인 비율로 갖추어져 있었다.

어떻게 덮쳐야 효율적일지 고민하던 그 무렵이었다.

스팟! 저 편에서, 또 다른 머더러 다섯이 나타나 날쌔게 분지를 내려가고 있었다.

‘뭐야 쟤들은? 지원군 같은 건가?’

머더러들은 태호에게 있어 좋은 경험치 제공원이자, 마르지 않는 아이템 샘이나 다름없었다.

나쁠 게 없어서, 조심스럽게 놈들에게 접근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숲의 가호 효과를 받을 수 있을 지가 궁금해 메시지창을 가만히 지켜 보니, 과연.

[숲의 가호가 발동중입니다.]

걸렸다.

이러면 일이 편하게 될 듯 하여, 태호는 마음을 놓고 놈들에게 가까이 붙었다.

‘어라?’

헌데 하는 짓들이 괴상하다.

새로이 나타난 다섯 머더러는, 로만제국의 1군과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어세신즈다! 타겟 변경! 어세신즈부터 조진다! 저 새끼들 뒤졌어!”

과연.

새로 등장한 녀석들은 어세신즈였다.

[쉬폰]

놈들의 선두에 서 있는 쉬폰이 한눈에 보였으니까. 사방에서 유저를 학살하던 머더러들이 일순간에 한 곳으로 모였다.

그들이 대치상태를 벌이기 시작했다.

태호는 놈들의 시선이 어세신즈에 몰려 있을 때, 슬쩍 접근해 들어가 놈들이 지키고 있는 물건을 확인했다.

‘장치 같은걸.’

완성되기 직전의 구체 같은 형상이었다.

‘아.’

태호는 자신에게 있는 아이템 하나를 떠올렸다. 놈들이 원래 가져갔어야 할 아이템이었다.

[공허의 퍼즐조각(상)]

그것이 없어서 그런지 1/4정도는 완성되지 못 한 모양.

한동안 대치하던 그들에게, 어세신즈가 달려들었다.

-조져!

모두의 시선이 어세신즈에게 꽂혔다.

그 무렵.

태호는 그것을 지키는 머더러들에게, 지팡이를 뻗었다.

광역 시력상실이 그들의 눈을 멀게 했다.

-어? 시력상실임다! 아 씨! 뭐야!

-그 마법사 새낀가보다! 상태이상 해제! 해제!

머더러들이 파티말로 분주하게 대화를 주고받을 무렵, 태호는 후다닥 달려가 놈들이 떨궈 놓은 물건을 쓱 집었다.

‘멍청이들.’

그리고 인벤토리창에 쏙 집어 넣어 버렸다.

* * *

로만은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씨발, 거의 5만골을 썼네.’

하지만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기사단의 훈장 30개를 로키의 접시 위에 놓았다.

화아악!

로키가 나타났다.

로키는 어쩐지 짓궂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너의 제물은 잘 받았다.]

“예, 예에... 하하하.”

로만이 이를 갈며 웃었다.

[그럼 안녕, 새끼야.] 팟!

그리고 로키는 사라졌다.

“......?”

< 그럼 안녕.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