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49화 (49/194)

< 너를 기억하마. >

크르릉!

샤미드 수림에 득시글거리는 것은, 200~250레벨대의 뱀과 거대한 곤충들이었다.

[Lv. 200]

[붉은 눈의 아나콘다]

아나콘다를 시작으로.

[Lv. 210]

[흉폭한 거대 사마귀]

족히 체장이 3미터에 육박하는 거대 사마귀를 비롯한 곤충들까지.

타타타타탁!

태호는 그들 사이를 달리고 있었다.

[꾸애애애액! 나 죽는다악!]

야타는 필사적으로 날개짓을 하며 태호를 따라가고 있었다. 하늘을 날아 도망치면 되지 않겠냐? 라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나.

[Lv. 240]

[흉폭한 거대 잠자리]

샤미드 수림의 하늘은 이미 거대 잠자리가 먹잇감을 찾아 활보하고 있다. 이대로 하늘로 날아간 그 순간, 잠자리에게 잡혀 먹을 것이 뻔했다.

태호는 그렇게 따라오는 야타를 보며 낄낄낄 웃었다. 그러는 한편으론 사방으로 마법을 쏘아내고 있었다.

‘중독, 절망.’

1초 쿨타임의 중독. 그리고 절망은 쿨타임이 0초이지만, 1초나 다름없다. 아무리 100%의 일체감이어도 마법이 쏘아져 나가는 시간과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독의 스킬 등급은 4. 절망은 3이다.

샤미드 수림에서 스킬 숙련도 작업을 왕창 하려는 계획을 이미 세웠기에, 광역기는 최대한 배재한 채 사냥해 보려고 한다.

우선은 1초 쿨타임을 가진 스킬들부터 맥스 숙련도를 찍을 생각이었다.

투-웅! 투-웅!

사방으로 쏘아져 나가는 중독과 절망은 귀신같은 적중률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뛰어다닌 결과, 태호는 어느새 등 뒤에 까마득하게 많은 몬스터들을 몰고 다니게 된 것이다. 태호는 요리 조리 피하면서도 놈들 하나 하나에게 중독과 절망을 마구잡이로 날려댔다.

그러던 어느 순간. 태호가 소리쳤다.

“막시!”

[기다리고 있었다!]

막시무스가 소환되며 놈들의 앞을 틀어막았다.

[무한의 방패!]

막시무스의 사방에 방패로 된 길고 거대한 벽이 생성되었다.

쿵쿵쿵쿵!

태호는 막시무스의 뒤에서 한숨 돌리며, 바닥난 스태미나가 차오르길 기다렸다. 그러면서도 쉬는 법이 없었다.

‘중독, 절망, 중독, 절망.’

번갈아 가며 중독과 절망을 리필하던 태호는 눈 앞에 마구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스킬 : 중독의 숙련도가 상승하였습니다.]

[스킬 : 절망의 숙련도가 상승하였습니다.]

크르릉! 쿠아악!

거대 곤충들과 아나콘다들이 비명을 지르며 벽을 깨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들고 있었다.

쾅! 어느새 벽이 깨졌다. 막시무스가 도발을 걸며 놈들의 한가운데로 파고들었다.

[나는 영광의 기사가 될 지어다!]

우렁차게 소리치는 막시무스의 전신에 황금빛이 어리며 스킬이 발동되었다.

스킬, 영광의 기사. 올스텟의 합산만큼 공방이 상승하는 변신기였다.

“......”

태호는 굳이 저렇게 뭔가를 사용할 때 마다 우렁차게 읊조리는 막시무스를 보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으어억! 아프다앗!]

아프겠지... 적은 200레벨대니까.

막시무스는 한동안 얻어 맞으며 저항하다가, 이대론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후다닥 몸을 빼냈다.

태호는 킬킬거리며 아르카네를 소환했다.

소환된 아르카네가 정면에 손을 뻗었다.

‘어둠의 망토.’

사방으로 흩어지려던 몬스터들이 거대한 어둠의 망토에 싸악 쓸려 한 곳으로 모였다.

‘어둠의 장막.’

20초간 가두고 지속 대미지를 주는 어둠의 장막까지 놈들의 사방에 생겨났다.

태호는 그런 놈들을 보며 하나 하나 차근차근 겨눴다.

‘중독, 폭사.’

쾅!

폭사는 5초의 쿨타임이 있으니, 쿨타임이 돌 때 까지 중독과 절망을 다시 돌리다가.

‘폭사.’

쾅!

아르카네의 상태이상이 해제될 무렵, 태호는 그제야 광역기를 사용했다. 우선, 정 가운데의 몬스터에게.

‘어둠의 폭탄.’

그리고.

‘대규모 범위 시력상실, 어둠의 비.’

촤아아아아!

기껏 풀려난 몬스터들이 다시 상태이상 지옥에 빠졌다. 그리고 마무리는.

‘대규모 범위 폭사.’

콰과과광! 쾅!

콰광!

폭사와 어둠의 폭탄이 연달아 터지며 사방엔 이제 살아있는 녀석이 하나도 없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태호는 그제야 한 숨 돌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막시무스의 생명력이 절반으로 떨어져 있었다. 아무리 녀석이 200레벨의 정예라지만, 상대 역시 200~250대의 몬스터들.

버티는 데엔 한계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막시무스의 생명력 재생률은 상당하기에 가만히 놔 두면 다시 꽉 찰 터.

태호는 막시무스와 아르카네가 빨빨거리며 아이템들을 수거해 올 동안, 스킬 숙련도를 살폈다.

[기본 흑마법사 스킬]

[등급 : 4급]

[쿨타임 : 1초][숙련도 : 726][소모마력 5]

[스킬명 : 중독]

[상대를 중독 상태이상에 빠트려, 15초의 시간 동안 매초 적당한 중독 대미지를 준다. 같은 대상에게 중복 사용은 불가능하다.]

‘빨리 오르네.’

숙련도가 500을 진작에 넘고 파죽지세로 올라가고 있었다.

[기본 흑마법사 스킬]

[등급 : 3급]

[쿨타임 : 0초][숙련도 : 426][소모마력 5]

[스킬명 : 절망]

[상대를 절망 상태이상에 빠트려, 10초의 시간 동안 이동속도 감소 상태이상을 건다. 같은 대상에게 중복 사용은 불가능하다.]

숙련도가 500을 돌파하면 1급 상승이 있다. 잠시 쉬는 시간 동안 획득한 아이템들을 분류했다.

‘이쯤에서는 7급이구나.’ 7급 레어가 다섯 개. 그리고 노멀이 열 개 떨어졌다. 아이템들을 인벤토리 창에 쑤셔넣은 뒤, 잡템들을 보았다.

이 쪽은 눈여겨 볼 만 한 아이템이 떨어지는 장소는 아니었다. 다만, 스킬북은 몇 개 제법 쓸만한 것들이 보였다.

지진, 강렬한 일격, 독성 강타.

모두 급수로 치면 5급 정도 되며, 꽤나 잘 팔릴 스킬북들이었다.

스킬북까지 모조리 쓸어 넣은 뒤 태호가 일어섰다.

[어, 언제까지 여기 있을 생각이냐악!]

야타가 빽 소리쳤다. 태호는 가볍게 대답했다.

“흠... 하루 정도?”

야타는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구강구조의 특성상 그러지 못 하는 것이 한이었다.

* * *

그렇게 사냥이 한동안 이어졌다.

수림 자체는 매우 긴 편이었기에, 일직선으로 통과하더라도 무수히 많은 몬스터들을 조우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

하나 하나 숙련도를 생각하며 패잡던 어느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스킬 : 중독의 숙련도가 상승하였습니다.]

[중독의 숙련도가 1000을 달성하였습니다.]

[중독의 등급이 1급 상승합니다.]

고대하던 숙련도 1000을 달성할 수 있었다.

절망과 폭사의 숙련도는 500을 갓 넘겼기에 각1급씩 상승했다.

이제 절망과 폭사는 4급, 중독은5급이다.

1급 차이는 대략 20%의 대미지 증가와 효과 시간 증가가 있으니, 이로서 기본 스킬들은 어느정도 기반을 다져 놓은 셈이었다.

태호는 정면의 마지막 몬스터 무리를 보았다.

콰과과광!

콰광!

광역기에 놈들까지 쓸려 나가고 나니, 태호의 레벨도 200을 달성할 수 있었다.

아이템을 싹 쓸어 담고, 인벤토리를 다시 뒤적여 책 한 권을 꺼낸 태호는 망설임 없이 책을 펼쳐들었다.

[4차 전직을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곧, 태호의 몸에 검은 기운들이 스며들며 메시지들을 띄우기 시작했다.

[당신의 몸에 깃든 불카노스의 가호가 더욱 강해집니다.]

[4차 전직에 성공하였습니다.]

[전직 보너스로 지능 스텟이 5 상승했습니다.]

[위업 : 최초의 4차전직자]

[보상- 전직자의 주력스텟 +5]

[지능 스텟이 5 상승했습니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모든 어둠 계열 스킬의 등급이 1등급 상승하였습니다.]

[기본 흑마도사 스킬 : 어둠의 땅을 얻었습니다.]

[기본 흑마도사 스킬 : 고통의 연쇄를 얻었습니다.]

그 순간.

태호의 사방이 시커멓게 변하기 시작했다.

“......?”

4차 전직은 별로 특별할게 없었다. 예전에도 별 탈 없이 진행됐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태호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허나, 사방에는 아무도 없다. 아르카네도, 시끄럽게 구는 야타도, 막시무스도.

오직 시커먼 세상만이 펼쳐져 있을 뿐!

그때.

화악!

까만 세상에, 마치 시커먼 불꽃 같은 것이 피어났다. 태호는 그 불꽃을 주시했다.

이내, 그것은 인간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마치 불덩어리가 머리카락처럼 일렁이고, 팔짱을 낀 채 상반신은 고스란히 드러낸 한 남자였다.

하반신은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전체적으로 어둠으로 된 안개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태호는 그를 빤히 보았다. 그 역시 태호를 빤히 보았다.

‘볼카노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전직할 때 마다 ‘볼카노스의 가호가 강해진다’ 라는 메시지를 항상 봐 왔기 때문이다.

다만, 여태까지 직접적으로 볼카노스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어쩐지 생소했다. 4차 전직을 통해 만난다는 것도 꽤나 이상한 일이었다.

[나의 가호을 받는 유일한 모험가가 너로구나.]

볼카노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웅장하였으나, 한없이 부드러운 느낌이 공존했다. 태호는 처음 보는 볼카노스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볼카노스 님이시군요.”

유일한 모험가.

아직 유저가 전직한 흑마법사는 태호 혼자임을 의미했다.

[네 덕분에 약간의 힘을 회복하였다. 고맙게 생각하고 있단다.]

“예?”

[지상에 나의 추종자가 힘을 키워간다는 것은, 곧 그 힘의 주체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 그 중, 모험가의 힘이 커지는 것은 더욱 효과적이지. 네 공이 크다.]

“아...”

[마음 같아선 네게 직접적인 가호라도 내려 주고 싶다만, 혼돈의 주인에게 당한 상처가 아직 크게 남아 있다. 그 점은 미안하구나.]

태호는 기억을 되새겼다.

-허나 어둠의 신 불카노스께서도 결국 판타로스의 힘에는 미치지 못하셨음이다.

리치가 했던 말이었다. 결국, 불카노스는 판타로스에게 왕창 깨지고 그 힘을 회복하지 못 하고 있는 듯 했다.

태호는 어쩐지 묘한 기분을 느꼈다. 태호는 과거, 물의 여신 ‘에테리얼’ 에게서 불카노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그는 신들과도 교류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했었다.

즉.

불카노스를 만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저는 서피드 쿤을 만났습니다.”

리치이자, 과거 왕국 아나크레온의 왕의 본명이다.

[오호.]

그의 두 눈이 이채를 띄었다.

[그 아이는 혼돈의 힘에 손을 대었을 텐데. 안타깝게 생각한다.]

“후회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게 이 목걸이를 남겨 주었습니다.”

태호는 목에 차고 있던 ‘선지자의 해골’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렇구나, 아나크레온의 증표가 확실하군.]

그는 어쩐지 씁쓸한 얼굴이 되었다.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허나, 놈의 힘은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었으니... 흐음. 이런 정도의 접속도 꽤나 신력을 소모하게 되는군.]

볼카노스가 덧붙였다.

[나는 너를 기억하였다. 모험가, 카이저. 나를 따르는 이들의 힘이 강대해질수록, 나의 본신은 힘을 되찾을 것이다. 또한, 추종자들이 소실된 나의 힘들을 모아 준다면 제단 또한 제 기능을 되찾을 터.]

제단!

태호는 눈을 반짝였다.

어둠의 정령을 소환하는 과정에서, 흑마법사의 탑으로 소실된 마법이 돌아갔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렇다.

지금 흑마법사의 탑의 일원들이 하는 일들은, 모두 볼카노스의 제단이 제 기능을 되찾게 하기 위함도 있었다.

‘그렇구나!’

비전 마법서를 되찾는다는 것! 그것은 볼카노스의 제단을 다시 되살리는 일이었던 것이다!

[너를 기억하마, 모험가 카이저. 다른 이들과는 달리, 나는 네게 특별한 호감이 드는구나. 나의 힘이 돌아오는 날, 나의 추종자들에게 축복을 내리리라.]

샤아악!

어느새 어둠이 사라지고, 태호는 샤미드 수림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마치 그간의 시간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밝은 세상에 선 태호는 하하하, 웃어 버렸다.

[기뻐?]

아르카네가 묻길래, 태호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응.”

* * *

길고 긴 샤미드 수림도 서서히 끝을 보이고 있었다.

사방 천지에서 쏟아지는 몬스터들도 잠잠해지고, 기분나쁜 벌레 소리와 아나콘다의 쇳소리도 사그라들었다.

태호는 수림을 나섰다.

일직선으로 쭉 달렸는데도, 하루가 꼬박 걸렸다. 쉼없이 사냥을 계속했지만, 숙련도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졌기에 정신적인 피로가 상당했다.

수림을 벗어나자 긴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어느새 시간은 밤.

새액 새액-

기분 좋은 풀벌레소리가 들려오는 적막한 평야 한곳에 신비로운 분위기의 또다른 숲이 보였다.

에메랄드빛 반딧불이들이 마치 길을 인도하듯 사방에서 모여들어 태호의 앞쪽에 행렬을 만들었다.

태호는 천천히 그 길을 걸어갔다.

“여전하군.”

과거에는 이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에 도취해 무방비로 걷다가.

[위협이 감지되었습니다.]

쐐애액!

팟!

엘프족 문지기의 화살에 맞아 죽는 유저가 부지기수였다.

태호는 가볍게 백스탭을 밟으며 날아온 화살을 피해냈다. 접근하기만 했는데도 화살을 쏘아 대니, 제대로 온 것이 확실해 보였다.

저 편.

아름다운 숲이, 바로 엘프의 숲이다.

< 너를 기억하마.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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