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50화 (50/194)

< 균형의 수호자((2권끝)) >

엘프의 숲 문지기가 방문자를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리고 원래 리얼포스의 엘프들은 인간들 적대하고 있었다.

태호는 천천히 저 편을 바라보았다. 인상을 찌푸린 채 저 편에서부터 활을 겨눈 상태의 엘프 하나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목적 여하를 불문하고, 입장을 금한다. 돌아가라. 돌아가지 않으면 즉시 사살하겠다.”

태호는 일단 막시무스를 돌려보내고 입을 열었다.

“나는 숲의 신, 우리아 님의 부탁을 받고 이 곳에 왔습니다.”

“......뭐야?”

엘프의 얼굴에 의문이 새겨졌다. 이내, 그가 반문했다.

“우리아님께서 인간에게 부탁을 하셨단 말인가?”

“예. 엘프의 숲, 제사장과의 연결이 끊어진 지 오래라고 말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말재간이 발동 중입니다.]

태호의 말을 믿었는지, 엘프는 빤히 태호를 보며 말했다.

“과연... 그대에게서 숲의 가호가 느껴지는군요.”

말투가 존대로 바뀌어 있었다.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는 숲의 가호를 받았습니다.”

엘프는 한동안 고민하는 듯 했으나, 결심을 굳힌 듯 대답했다.

“들어오시지요. 지금 엘프의 숲은 비상이 걸렸으니까요.”

* * *

비상사태.

엘프의 숲 내부는 딱 그 것이 맞았다. 바깥에서는 여전히 평화로워 보이지만, 내부에는 삼엄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숲은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그리고 엘프를 따라 이동한 숲의 한가운데, 엘프들이 모여 눈을 감은 채 온 집중을 다하고 있었다.

“......?”

도합 백여 명이 넘는 엘프족은 현재 모두 합장하듯 손을 모은 채, 눈을 감고 고대의 주문을 읊고 있는 중인 것이다.

“무, 무슨?”

그리고 그들의 한가운데, 노쇠한 엘프 하나가 가부좌를 튼 채 신음성을 흘리고 있었다.

태호는 그의 상태가 꽤나 익숙해 보여, 자신도 모르게 과거의 한 사건을 떠올릴 수 있었다.

바로, 에테리얼 신의 제사장!

-가까이 오지 마시오! 몇년 전, 혼돈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간신히 이성을 붙잡고 있지만...... 언제 이성을 잃고 당신들을 해하려 할지 몰라요!

분명히 스쳐 지나간 기억이었지만, 정확히 오버랩되어 보였다.

다만.

그 정도가 훨씬 심각했다. 태호는 다급히 물었다.

“혼돈의 신이 만들어 낸 사념체에 저주를 받았습니까?”

엘프가 화들짝 놀란 듯 대답했다.

“어, 어떻게 그것을?”

“......”

어쩐지.

태호는 노쇠한 엘프의 몸 위로, 반투명한 형체가 형성되었다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뭐지?’

가만 보니, 반투명한 형체는 뭔가 낯이 익다.

머리 위에 뿔이 두 개 있었고, 아가리는 늑대의 것이었다. 허나 팔과 다리는 인간의 것이며, 하반신은 사슴의 것!

태호는 그 정체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샤반타!’

저 마물의 이름은 샤반타.

다섯 대장군과 그 휘하 스물 다섯의 장군.

즉, 그 장군에 속하는 괴물이었다.

허나, 샤반타는 아직 리얼포스에 등장하기 전이었다. 분명히 놈은 첫 번째 확장팩이 등장할 때 최초로 대륙에 등장할 예정이었으니까!

잊혀진 왕국의 군단을 이끄는 괴물로서 대륙에 첫 등장할 예정이었던 놈이 왜 저 곳에서?

‘역사가 바뀌고 있어!’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뿌드득 갈았다.

리얼포스의 역사는 회귀한 자신으로 인해 이미 바뀌기 시작했다. 미래에 등장할 일이 모종의 사건에 휘말려, 미리 등장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젠장, 그 샤반타라면 큰일이다.’

지금의 유저들 수준으로는 버거울 지경의 괴물이었던 것이다.

태호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막시무스와 아르카네를 소환했다.

막시무스는 소환되자 마자 눈을 부릅떴다.

[나의 주군 카이저. 역시나 이 곳엔 혼돈의 힘이 요동치고 있다.]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무래도 저 놈이 범인인 것 같군.”

[......샤반타!]

막시무스가 신음성을 흘렸다.

[샤반타가 어째서?]

“저 놈을 알아?”

[그렇다. 과거 우리의 왕국을 정벌하러 온 혼돈의 세력 중 하나였다.]

세력 중 하나.

[당시 놈은 두 명의 강력한 존재들과, 휘하의 사도들을 이끌고 아나크레온을 침략해 왔다.]

두 놈이 더 있었다.

태호는 그것이 장군급 존재들임을 깨달았다.

“...그땐 이겼나?”

[필사적으로 방어하며, 저 녀석은 살해하는 데 성공했던 게 생각난다. 우리의 마지막 병력이 모조리 갈려 나가며, 간신히 목에 칼을 꽂아 넣었었는데...?]

막시무스의 목소리에 당혹감이 어려 있었다.

태호는 머리를 정리했다.

‘리얼포스의 확장팩들.’

확장팩들은 매번 출시될 때 마다, 저마다의 보스들이 존재한다.

판타로스의 다섯 대장군들도 마찬가지다.

놈들은 등장할 때 마다 하나씩 확장팩을 달고 등장하며, 유저들의 손에 죽음을 맞는다.

예를 들어 다섯 번째 확장팩 ‘샴의 사원’ 에서는 대장군 샴이 등장하며, 여섯 번째 확장팩 ‘환각의 케노스’ 에서는 대장군 케노스가 등장하는 식이었다.

허나, 이상한 점이 있다.

마지막 확장팩에서 판타로스가 부활할 때, 놈들의 다섯 대장군도 함께였다.

즉.

죽어도, 다시 돌아온다.

‘왜지?’

태호는 그 물음에 대한 해답 중 하나로, 신들이나 다른 존재들과 대화를 할 때 들었던 ‘세계의 맹약’ 에 대해 되뇌었다.

비밀!

이 세계가 감추고 있는 깊숙한 비밀 때문이리라.

[큭, 크크크크큭! 이 얼마만에 마셔 보는 지상의 공기란 말인가! 아-하하하!]

“크으읏!”

합장을 한 채 중얼중얼 주문을 읊던 엘프 하나가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자, 장로님!”

엘프가 급히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혼돈의 힘이 더욱 거세지고 있네... 이, 이 정도가 한계인가?”

엘프 장로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때.

지지직!

그들의 결계진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 중앙에서 신음을 흘리던 노쇠한 엘프의 전신에, 반투명한 형체가 완전히 덧씌워진 것이다. 그의 입이 열리며 괴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건... 히히히... 엘프의 몸인가. 그래... 나쁘지 않지...]

태호가 다급히 장로에게 물었다.

“어, 어떻게 해야합니까?”

“다... 당신은?”

장로의 물음에 태호가 다그쳤다.

“시간이 없으니 방법을 말 하시오!”

장로는 고개를 저었다.

“엘프의 힘으로 막을 수 없었으니, 이젠 끝이오.”

“염병!”

태호가 입술을 깨물며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지지지지직! 콰지직!

이윽고 결계가 완전히 깨졌다.

콰과과과광!

폭발과 함께 사방의 엘프들이 몸을 피했다.

“자, 장로님!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태호는 엘프 장로와 함께 거대한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마력으로 만들어낸 결계가 찢어지며 굉장한 파동과 함께 거대한 나무 밑둥이 휘청였다.

태호는 되뇌었다.

‘샤반타라면.’

놈의 장기는 근접전이다. 또한 999레벨 유저 대여섯 명이 달라붙어도 간단하게 제압하던 놈이다.

‘승산이 없는데.’

살짝 입술을 깨물어 보았다.

하지만, 의외의 생각도 든다.

‘그 때는 판타로스가 온전히 깨어나 있었지?’

그렇다면.

지금, 판타로스가 잠들어 있고 혼돈의 힘이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할 뿐인 지금이라면?

태호는 슬쩍 나무 뒤를 쳐다보며 저벅 저벅 걸어 나오는 샤반타를 살펴보았다.

놈의 전신은 반투명하게 엘프족 제사장의 몸 위에 덧칠돼 있듯 존재했다.

장신은 대략 3미터, 울끈불끈한 다리 근육과 섬뜩한 발톱과 이빨이 인상적이었다.

“네 이놈! 성스러운 엘프의 숲을 침범한 죄, 죽음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사방에서 몸을 수습한 엘프 전사들이 이를 갈며 검과 활을 빼들었다.

[킥, 키키키킥! 내 비록 본신이 아니다만, 너희 까짓 것들에게 질 것 같으냐.]

‘본신이 아니다?’

타앗!

놈이 땅을 찼다. 그리고 쏜살같이 선두의 엘프 전사에게 돌진해 들어가, 섬뜩한 아가리로 콰드득! 머리통을 뜯어 냈다.

‘엘프 전사는 대략 200레벨 전후.’

태호는 그 와중에 냉철하게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한 방.’

탓!

동시에 반대편으로 쇄도해 들어간 샤반타가 엘프 전사의 검을 섬뜩한 발톱으로 막아낸 뒤, 내질렀다.

푸욱!

엘프 전사가 반항해 보려 애썼지만, 한 방이었다.

‘최소 350레벨 정예 급은 넘는 건가.’

얼추 계산해 보아도 그 정도였다. 태호는 박 터지게 머리를 굴리며 생각하다가, 막시무스에게 물었다.

“막시. 지금 싸우면 비벼볼 만 할까?”

[음...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엘프 궁사들과의 협력이 있다면 시도해 볼 만 할 지도. 확실히 예전보다 약해졌다는 게 느껴지는군.]

태호는 이런 사건에는 영 큰 관심이 없는 아르카네를 보면서 한번 혀를 찼다.

정령들도 엄밀히 따져, 인간과는 다르다. 이런 살육상을 보면서도 태연할 수 있단 것이 그 반증. 그렇기에 오히려 소환사의 부름에 따라 힘을 사용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태호는 좌우를 살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엘프 전사들이 나무 뒤에 숨어 상황을 엿보고 있었다.

‘나서려면 지금이다.’

더 엘프들이 죽어 나가, 전력이 약해지기 전에 나가는 게 현명했다.

‘에라이.’

태호는 장로를 내려놓은 뒤 나섰다. 투-웅!

태호의 지팡이에서 어둠의 폭탄과 중독, 절망이 쏘아져 나갔다.

파팟!

그것이 샤반타의 몸에 적중했다.

[응? 뭐야, 아직도 아나크레온의 잔당이 남아 있었나?]

놈이 다음 엘프 전사에게 달려들려다가 멈칫하곤, 뒤를 돌았다. 그리고 태호를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너는... 뭐지?]

“알아서 뭐 하시게? 가자!”

[알겠다, 카이저!]

막시무스가 힘차게 달려가 샤반타의 몸에 검을 찔러 넣었다.

[으응? 이건... 막시무스인가? 아나크레온이 재건이라도 된 건가?]

샤반타가 도통 모르겠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씨익 웃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겠군. 큭, 크크크큭!]

놈이 막시무스에게 손을 뻗었다. 막시무스는 이를 악물고, 스킬을 시전했다.

‘영광의 축복.’

태호와 아르카네, 그리고 막시무스의 전신에 올스텟5의 버프가 걸렸다.

‘오러블레이드.’

그리고 검에 오러블레이드가 덧대어져, 절삭력과 대미지를 가중시켰다.

그 사이, 태호의 마법이 속속 놈에게 꽂혔다.

‘어둠의 화살, 시력상실.’

절망이 이동속도를 낮추고, 어둠의 화살이 공격속도를 낮추었다. 시력상실까지 가미된 상태이상이 놈에게 전신의 감각을 빼앗아갔다. 태호는 잊지 않고, 자신을 보호할 마법도 사용했다.

‘마력 갑옷.’

2차 전직 스킬로 얻은 마력 갑옷은 일정 대미지의 50%를 마력으로 소비하게 하는 방어스킬.

그간은 데스나이트의 심장으로도 충분했기에 굳이 사용하지 않았던 스킬이었다.

허나.

이 놈과의 전투에서는 꼭 필요하다.

샤반타는 아랑곳 않고 태호를 향해 몸을 날렸다. 태호는 놈이 쇄도해 올 때, 어둠의 발걸음을 사용했다.

팟!

삽시간에 순간이동한 태호의 몸. 그리고 방금 전 까지 서 있던 곳에 속박진이 남았다.

[큿!]

놈이 귀찮다는 듯 이를 빠드득 빠드득 갈았다. 태호는 이번에 4차전직 하며 얻은 스킬을 사용했다.

설명 한번 읽어 본 게 전부. 아직 전투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본 적은 없었지만, 그럴 틈이 없다.

‘어둠의 땅.’

태호가 밟고 있던 땅에 마치 검은 색 먹물이 떨어지듯 촤악- 떨어져 사방을 시커멓게 변화시켜 나갔다.

[어둠의 땅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땅은 상대에겐 보이지 않으며, 이 영역 안에서 흑마도사는 같은 상대에게 본래는 중첩불가였던 상태이상을 3중첩 가할 수 있습니다.]

즉.

이 땅 위에서는 중독, 절망, 어둠의 화살 등을 비롯해 태호가 가진 모든 ‘상태이상 중첩 불가’의 스킬이 가졌던 제약을 벗어나, 3중첩까지 걸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중독은 한 상대에게 한 번만 걸 수 있었다. 다시 걸려면, 중독이 끝나거나 폭사로 해제시킨 다음에야 가능하다.

허나, 어둠의 땅 위에서는 중독이 세번 연달아 걸려 3중첩이 가능해진다는 말.

중독 외 다른 스킬들도 같은 식이었다.

태호는 그 상태로 놈에게 중독과 절망을 연달아 걸었다. 쿨타임이 짧기에 중첩시키기엔 최적이었다.

[크으으윽! 이놈 자식!]

샤반타가 땅을 쾅! 차며 태호에게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시력상실이 걸려 있으나, 단순히 무시무시한 육감으로 돌진해 오는 듯 했다. 태호는 이를 악물며 몸을 틀었다.  쐐애액!

휘리릭!

콰지직!

그저 몸을 틀기에 급급한 수준이었다. 몸을 날려 완전회피 한다거나, 역공을 날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그리고 놈의 발톱이 스쳤을 뿐인데, 어마어마한 대미지가 훅 들어온 것이 느껴졌다.

발톱이 스치는 그 찰나, 순수의 강철 망토가 발동되며 방어를 한 것이 분명했으나.

[순수의 강철 망토가 만들어 낸 보호막이 완전상쇄되었습니다.]

생명력의 100%에 해당하는 방어막이 일순간 상쇄된 것.

‘시팔.’

이건, 한 방이란 말이었다.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대미지를 반사합니다.]

콰지지직!

일순간, 샤반타의 전신에 우직한 타격이 가해졌다. 놈이 자신의 대미지를 스스로 받고, 휘청이는 것이 느껴졌다.

‘중독, 절망.’

그대로 놈에게 중독과 절망3중첩이 이어졌다.

폭사를 한방 먹여 주었다.

‘폭사.’

콰과광

쾅!

어둠의 폭탄과 폭사가 대미지를 한방에 주었다.

[크엇!]

샤반타가 당황스럽다는 듯 전신에 일어나는 폭발에 뒤로 나가떨어졌다.

[샤반타! 나의 검을 받아라!]

막시무스가 그런 놈에게 돌진해 들어갔다.

태호는 어둠의 땅 위에 서서, 재차 놈의 사방에 광역기를 모조리 쏟아냈다.

콰아아아!

막시무스의 사방에 방패의 벽이 만들어지고, 영광의 기사가 발동되었다. 황금빛으로 변한 막시무스가 놈과 칼을 맞대며 필사적으로 접근전을 펼쳐 들어갔다.

태호는 멍하니 서 있는 엘프들에게 소리쳤다.

“지원사격을 해 주세요! 근접전은 차라리 안 하는게 낫습니다!”

얼빠진 엘프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화살을 쏘아 대기 시작했다.

“쏴라! 놈을 쏴라!”

‘어둠의 폭탄. 중독, 절망.’

중독과 절망이 3중첩 이어졌다. 태호는 쿨타임이 도는대로 스킬들을 그야말로 마구잡이로 난사하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대규모 광역기와 어둠의 비가 내리고, 놈의 몸에 생기흡수가 쫘악 이어졌다.

쫘아아아악!

[크아아아앗!]

샤반타가 괴롭다는 듯 울부짖으며 막시무스에게 마구잡이로 팔을 날려댔다.

쾅쾅쾅쾅쾅!

[으윽!]

막시무스가 신음성을 냈다. 이내. 콰지직!

막시무스의 배에 구멍이 뚫리고야 말았다. 젠장. 태호는 혀를 찼다. 막시무스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지, 태호는 아직 모른다. 기존 ‘펫’ 의 시스템대로라면 회복될 때 까지 재소환이 불가능할 터.

“막시! 일단 돌아가!”

샤아악!

막시무스가 사라지고, 태호는 아르카네에게도 고개를 까닥였다.

[응!]

데-엥!

아르카네의 어둠의 종소리, 그리고 어둠의 장막이 쳐졌다. 어둠의 망토는 놈이 근접해 올 때 사용할 생각이었다.

놈의 머리 위로 무시무시한 대미지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폭사.’

콰과과과광!

콰과광!

우악스러운 대미지가 들어갔다.

[이 자식! 네놈부터 죽여 주마!]

샤반타가 입에서 피를 질질 흘리면서 태호에게 달려든다. 태호는 쿨타임이 돌아온 어둠의 발걸음을 써, 간신히 회피했다.

‘젠장.’

육안으로 보고 스킬을 썼는데, 스킬이 발동되는 시간 사이에 놈이 코앞까지 근접해 온다.

물론 당연히 본체를 가졌을 때의 파괴력에 비하면 조족지혈! 그것이 태호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잊고 있었다.’

태호가 미래에 싸우게 될 괴물들은, 지금 고작 에픽 몇 가지 주워 입었다고 해서 쉽게 손 쓸 놈들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 태호는 아마, 유저들 중 가장 강할 것이다. 머더러 정도는 수십이 있어도 혼자서 싹 쓸어 먹기 충분할 정도. 허나, 마지막 싸움에서 판타로스의 일개 장군급 괴물조차 이 정도다.

아마, 체감상 지금 놈은 본신으로 낼 수 있는 힘의 1/3도 내지 않고 있을 터.

그래도 싸움은 한 방 싸움이었다. 맞으면 죽는다.

‘이러면 데스나이트의 심장도 소용이 없을 정도야.’

레벨을 더 올려야했다.

에픽 아이템을 더 입수하고, 생명력과 방어력을 더욱 높이 끌어 올려야 했다.

쾅 쾅 쾅!

스킬이 쏟아지고, 폭발하는 소리가 고요한 엘프의 숲을 찢어놓고 있었다.

쐐애액! 파파팟!

샤반타의 전신에 쏟아지는 화살 세례가 점점 먹히기 시작했다. 놈의 무쇠같은 피부를 뚫고 대미지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크르르릉!]

놈이 섬뜩한 엄니를 드러내며 읊조렸다.

[이대로 혼돈의 성좌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가...]

혼돈의 성좌?

태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온전한 부활의 때를 기다려야 하는가...? 킥... 키키키킥! 혼자 죽을 순 없지.]

놈이 마지막 힘을 모조리 끌어 냈다. 그리고 태호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왔다.

아직 어둠의 발걸음은 쿨타임 중이다. 또한, 망토 역시 쿨타임이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태호는 침을 꿀꺽 삼키며 젖먹던 힘을 다 해 땅을 차며 몸을 틀었다.

푸우우욱!

심장을 노리고 날아온 놈의 손이, 기적적인 회피로 인해 옆구리를 크게 찢고 지나갔다.

따끔!

태호는 생명력을 살펴보았다.  ‘미친!’

일순간, 생명력의 95%가 푹! 하고 꺼지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팍! 하고 데스나이트의 심장이 생명력을 온전히 채웠다.

태호는 몸을 날린 그대로 지팡이를 들어, 놈에게 마법을 쏟아냈다.

[킥... 부, 분하다.]

이윽고.

놈의 머리 위에 해골표시가 떠오르고 있었다. 태호는 망설임 없이 폭사를 읊조렸다.

콰과광!

놈이 비틀거리며 터덜 터덜 걷다가, 푹! 하고 무릎을 꿇었다. 정확히는 엘프족 제사장의 몸 위에 반투명한 형태로 깃들어 있었건만, 받은 대미지는 진짜인 듯 했다.

[어, 어차피... 너희 모두... 판타로스 님께서 깨어나신 날... 혼돈의 권좌에서... 돌아올... 우리 군단에게...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혼돈의 권좌!

놈은 죽으면 그 곳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킥... 키키킥... 반항해 봐야... 소용 없는 것... 으...?]

헌데.

뭔가가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놈의 머리 위에 일순간, 반투명한 시곗바늘 같은 것이 생겨난 것이다.

째깍 째깍

[어...? 이, 이건...]

놈이 당황한 듯 머리 위로 손을 휘저었다.

[어? 어어?]

이내 놈은 경악한 듯 태호를 보며 소리쳤다.

[이, 이, 이런 젠장! 네놈, 네놈! 서, 설마!]

째깍 째깍 째깍!

시곗바늘이 점점 돌아가기 시작하더니, 놈의 몸은 점점 더 흩어져 가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지나치게 빨리 흐르며 저절로 쇠하듯, 놈의 얼굴은 점점 더 노화가 진행 중이었다.

[이, 이럴수가. 그 빌어먹을 년이 아직도 살아 있었다니... 부, 분명히 판타로스 님께서 죽이셨... 이, 이리도 빨리 영원한 죽음을 맞게... 될... 줄...]

샤아악!

어느새 놈은 하얀 가루가 되어 소멸해 버렸다.

“......!”

태호는 멍하니 놈을 바라볼 뿐이었다. 정확히는, 사라진 놈이 한 그 말이 아직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아직도 살아 있었다고?’

태호는 아직도 눈 앞에 선했다.

자신을 회귀시켜 준 그 여자!

시계태엽 같기도 하고, 바람개비 같기도 했던 문양을 가졌던 그 여자!

혼란스러웠던 그 시간.

눈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위업 달성.]

[균형의 수호자.]

< 균형의 수호자((2권끝)) > 끝

레전드 마법사 '언노운' >

균형의 수호자.

처음 보는 위업이며, 이제부터 겪는 일들은 그야말로 ‘처음’ 의 영역이었다.

위업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위업 : 균형의 수호자]

[어쩌면 그녀는,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었을 지도.-초보 학자 카실론.]

[보상 : 패시브 스킬 ‘균형의 수호자’를 획득했습니다.]

“......”

패시브 스킬을 살펴보았다.

[패시브 : 균형의 수호자Ⅰ]

[설명 : 최초로 균형을 파괴하는 혼돈의 존재를 사냥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스킬. 일정 범위 안의 균형을 탐지합니다.]

[균형의 수호자에게 사냥당한 ‘균형 파괴자’ 들은, 혼돈의 권좌로 돌아가지 못 하고 완전히 소멸합니다.]

[대장군(0/5)]

[장군(1/25)]

[앞으로 ‘4’ 인의 균형 파괴자를 사냥하면 다음 단계로 업그레이드 됩니다.]

태호는 온 몸에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균형 파괴자!’

혼돈의 마물들의 또 다른 이름, 균형 파괴자. 태호는 놈들을 사냥하고 보상을 얻을 수 있는 패시브 스킬을 얻은 것이다.

또한.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여태까지 확장팩으로 등장했던 판타로스의 하수인들은, 어차피 죽어도 나중에 다시 살아났었다.’

하지만.

‘이젠 달라.’

태호가 그 놈들을 사냥하게 된다면, 놈들은 혼돈의 권좌란 곳으로 돌아가 다시 살아나지 못 한다. 그야말로 완벽한 소멸을 맞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나중에, 판타로스가 등장했을 때. 놈은 부하들을 데리고 나오지 못 할 거야.’

여태까지 리얼포스를 플레이하며 막연히 ‘판타로스’를 상대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허나, 그것은 막연한 기분이었다.

분명히 놈은 미래에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나, 아직 10년이나 남은 미래의 일일 뿐이었다.

때문에 태호 자체도 약간은 느슨해진 면이 없지 않아 있었던 것이다. 너무 막막하기도 했고.

하지만, 정신이 다시 화들짝 들었다.

‘안주하면 안돼.’

태호는 아직 너무나도 약했다.

유저들 사이에서 강하다는 것은, 별로 큰 메리트라고 할 수가 없다. 대장군도 아니고, 이미 25인의 장군 중 하나일 뿐인 ‘샤반타’ 의 1/3 힘으로도 한 방이 나 버린다.

고민이 깊어지던 그 무렵, 태호에게 걸어와 고개를 숙이는 이가 있었다.

시선을 돌리자, 엘프족 장로가 태호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우리 부족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리얼포스의 세계에서, 엘프에게 이렇게 정중한 인사를 받아 본 사람이 있을까?

* * *

태호의 앞에 향긋한 차 한 잔이 놓였다.

엘프족 제사장이었던 이는 지금 의식을 잃은 채 간호를 받고 있었다. 정신적 충격이 상당한 모양이다. 그리고, 태호는 장로와 마주하고 있었다.

태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아 님의 제사장이 혼돈의 힘에 저주를 받았기에 교신이 끊어졌던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 힘을 억제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달라붙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늪지대로 가 신을 불러내지 못 했다- 라는 말이었다. 태호는 아까 전, 그 무시무시한 힘을 목도한 바 있음으로 바로 이해했다.

“귀하께서는 제게 물어보실 것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엘프족 장로의 말에, 태호는 빼지 않고 곧바로 말했다.

“잊혀진 왕국, 울크랜드의 단서를 찾고 있습니다.”

“......!”

장로는 놀란 얼굴을 가라앉힌 채,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역시... 당신은 기묘한 인간이군요. 우리 엘프는 본디 균형을 지키며 살아가는 유일한 존재, 때문에 세계의 균형을 파괴할 몇 가지 예언을 알고 있지요.”

예언?

태호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태양의 빛이 하늘의 중심에 다다를 때, 깊은 잠을 자던 고대의 패자가 잠에서 깨어나리라.”

“......”

“겐트 섬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예언입니다. 답이 되셨는지요?” 겐트 섬!

과거, 겐트 섬은 태호의 관심 밖에 있었던 섬이었다. 하지만 지금, 과거와는 전혀 다른 리얼포스의 중심에 들어와 있으니 느끼는 점이 남달랐다.

옛날에 알았던 정보들은, 거의 다 겉핥기 식이었다.

넓고 얕게 알았지, 깊게 알지는 못 했다.

“겐트 섬이라...”

흑마탑주 아파치 레퓨어도 동지가 겐트 섬에 가 있다고 했다. 태호는 그 곳에서 또다른 일들이 벌어질 것이란 걸 직감했다.

막시무스는 태호에게, 과거 아나크레온에 쳐들어온 혼돈의 장군 중 하나가 바로 샤반타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 샤반타는 ‘잊혀진 왕국’ 의 기사단장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따지면 일리가 있다.

‘그런 식으로 엮여 있었군.’

좋다. 그건 넘어가기로 하고.

“그리고, 시계태엽 문양의 여신에 대해서 아십니까?”

엘프족 장로는 신중한 얼굴이 되어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맥이 탁 풀렸다.

“그럼, 샤반타가 죽을 때 머리 위에 떠오른 시계태엽 문양 말입니다.”

“예?”

장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반문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

아무래도 그 시계태엽 문양은 태호의 눈에만 보이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리고 그것을 당하는 놈의 눈에까지. 그 외에는 신조차 감지하지 못 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만약 감지가 가능했다면, 태호에게 내려진 다른 신의 가호들을 감지하는 신들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일종의 상위 가호?’

그렇다.

태호는 회귀시켜준 그녀의 가호. 그것도 상위 가호 비슷한 것을 받고 있는 것 같단 추측이 가능했다.

태호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과거 에테리얼 여신히 했었던 말을 떠올렸다.

-네메데스라면 알 지도 모르겠다. 그는 우리 중에서도 특별하거든.

“네메데스란 신에 대해서는요?”

“네메데스!”

엘프족 장로는 뭔가를 아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재차 입을 열었다.

“네메데스란, 고대의 지식가입니다. 저도 문헌에서 몇 번은 본 적이 있습니다만. 그 분이 신님이셨습니까?”

텄다.

“문헌이라면요?”

“고대 문헌에 간간히 기록되어 있는 이름입니다. 그는 네메데스라는 이름만을 사용할 뿐, 그 이상의 단서는 없습니다만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골고루 탐구하였던 학자라는 설이 대다수입니다.”

일단 신의 위치는 모른다는 말이었다.

* * *

얼마 후.

제사장이 깨어났다. 제사장은 그간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 하는 듯 했으나, 장로에게 말을 전해들은 뒤 태호에게 깊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혼돈의 힘이 가한 저주를 벗어난 그는 금세 기력을 회복했다.

곧, 제단 앞에 서서 의식을 행한 그가 숲의 신 우리아를 불러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엘프족 장로가 앞장서서, 그간의 일을 설명했다.

[오호.]

우리아는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혼돈의 장군을 해치웠다니, 정말이냐?]

“본신의 힘을 1/3도 찾지 못 한 듯 했습니다. 죽을 뻔 했죠.”

[대단하구나.]

우리아는 드물게 진심으로 감탄한 모양이었다. 동시에, 눈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퀘스트 완료]

[엘프의 숲, 제사장]

[경험치 획득]

[레벨이 올랐습니다!]

우리아는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태호에게 입을 열었다.

[큰 일을 해 내 주었으니, 네게 나의 보물 하나를 내리노라.]

태호는 그녀가 하사한 보물 하나를 받아들었다. 에픽 아이템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슬쩍 살펴보았다.  ‘숲의 분노.’

에픽 아이템, 숲의 분노였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이 아이템은 그다지 좋지 않다.

이유는  바로 무기였기 때문인데, ‘땅’ 마법에 특화된 마법사용 무기란 점이다.

‘정말이지 별 관심을 갖지 않는군.’

참으로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보상이 아닐 수 없었다. 태호는, 불현 듯 깨달았다.

‘그렇구나.’

신들이 내어 주는 퀘스트는 대부분 자신 본위를 지키기 위한 것들이었다. 그것 중 대의를 위한 것이나, 모두를 위한 것 따윈 없다.

태호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아, 잠깐만요.”

[응?]

“저는 어둠 마법사입니다. 숲의 분노는 필요 없습니다.”

[흐응.]

우리아는 묘한 얼굴로 태호를 보며 반문했다.

[그렇겠군. 딱히 원하는 것이 있느냐?]

태호는 곰곰이 생각했다. 우리아가 주는 에픽에 대해 고심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어떤 것들을 가지고 계십니까?”

우리아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손을 펼쳐, 보유 중인 보물들을 하나 하나 보여주었다.

‘숲의 분노, 대지의 부름, 풍요의 향기, 맹렬한 지진.’

그중, 태호는 하나의 아이템을 고를 수 있었다.

‘맹렬한 지진이군.’

미래의 리얼포스에서, 가장 시세가 오를 아이템은 저 중에서 맹렬한 지진 뿐이다.

땅 마법사의 주가가 한껏 오르는 2차 확장팩. 그때 당대에 가장 잘 나가는 땅 마법사에게 팔면, 큰 돈을 마련할 수 있다.

‘완전히 거지네.’

한 마디로, 우리아는 거지 신이나 다름없었다.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아참. 나무를 크게 재배해 볼까 하는데, 도움이 될 흙과 물을 알고 계십니까?”

[오, 숲을 가꾸려는 게냐.]

“비슷합니다.”

[그런 의도라면, 내 친히 네게 이것들을 하사하마.]

자신의 관심사가 나왔는지 매우 기뻐하며 우리아가 태호에게 아이템 두 개를 내려주었다.

[아이템 : 비옥한 양토를 획득했습니다.]

[아이템 : 천상의 영수를 획득했습니다.]

“......”

[숲을 가꾸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니라. 하하하!]

그리고 우리아가 사라졌다.

태호는 그 뒤로 엘프족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정보를 얻었다. 마침내 마을을 나서는 그 순간이었다.

태호를 배웅나온 엘프족 장로가, 태호에게 재차 허리를 숙인 것이다.

“......!”

그러자 따라 나온 수백의 엘프들이 모두 태호에게 허리를 숙였다.

“엘프의 숲의 은인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동시에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평판을 획득했습니다.]

[평판 : 엘프의 숲]

.

.

.

.

. .

태호는 현실로 돌아와 늘어지게 기지개를 폈다.

우드드득!

뼛소리가 온 몸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루에 18시간을 꼬박 접속해 있으니, 몸이 점점 더 약해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휴우.”

삭막한 집이 한눈에 들어왔다.

리얼포스 내에서, 태호는 아마 최고의 유저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 지경이니, 어째 주객이 전도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태호는 쓰게 웃으며 다시 소파에 걸터앉았다.

‘어디.’

스마트폰을 들어, 리얼포스의 팬사이트에 들어갔다. 이것 저것 살펴보던 그 무렵이었다.

[화제의 동영상]

“아. 쉬폰이 5:1 써는 영상이 올라왔었다지?”

태호는 피식 웃으며 그 코너로 들어갔다. 그러자, 순위 목록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디보자...”

[5:1 무쌍! 레전드 머더러, ‘쉬폰’]

그럴듯한 제목이 보여 태호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헌데, 문득 고개를 갸우뚱.

“3위잖아?”

1위는 누구지?

“......”

1위를 달성한 동영상은, 아주 최근에 올라온 동영상이었다.

이틀 쯤 전에 올라온 것인데 제목부터 눈에 띄었다.

[10:1? 레전드 마법사, ‘언노운’!]

“......”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클릭하자, 익숙한 장면이 한눈에 들어왔다.

-조져!

-아씨! 저거 왜 이렇게 잘 피해!

바로 태호 본인이었다.

잉카 마을에서 로만제국과 10:1을 해서 간단히 찍어 누른 적이 있었는데, 영상의 시점은 로만제국의 당시 사제 플레이어였던 것 같았다.

당연하게도 태호의 아이디나 레벨은 보이지 않는다. 허나, 신출귀몰하며 귀신처럼 10:1을 썰어 버리는 영상은 그야말로 인기 폭발의 고공행진중이었던 것이다!

[쩔어요! 직업이 뭐지? 마법사?]

[그냥 마법사는 아닌 듯. 흑마법사 같은 건가?]

[공개 직업군 아니잖아요? 히든피스?]

[왜 언노운이에요?]

[이름이 비공개라서요.]

댓글만 1만 개가 넘어가고 있었다.

조회수는 이틀만에 200만 조회수를 넘었다.

“......리얼포스가 인기는 인기군.”

태호는 혀를 차며 2위 동영상을 보았다.

[1:1의 스페셜리스트, 레전드 머더러 ‘쉬폰’을 이긴 ‘언노운’!]

이는 쉬폰 쪽에서 공개한 영상 같았다.

태호는 그 때를 회상했다.

태양초를 구하러 움직일 즈음, 쉬폰을 만나 이겼던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 제법 시간이 흐른 셈이다.

그 동영상 역시 이틀 전 공개다.

조회수는 190만을 상회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인기 대폭발이었다.

[언노운이 대체 누구죠?]  [리얼포스는 아이디랑 레벨이 비공개잖아요. 본인이 직접 공개 안 하면 아무도 모를 듯?]

[흑마법사인 듯.]

[와, 쉬폰이 윤형석이란 말이 있던데 어떻게 저렇게 쉽게 이겼지?]

[주작 아니죠?]

[레벨이 엄청 높나? 아니면 일체감이 높나요? 저럴수가 있나요?]

추측성 댓글이 1만개 이상 치솟고 있었다.

“......”

불쾌하냐면, 딱히 그렇진 않았다. 어차피 리얼포스의 시스템은, 본인이 타인과 다른 스킬과 장비를 사용한다고 해도 ‘히든피스’ 라는 명목 하에 다들 ‘그럴려니’ 라는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다.

또한 태호라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 한다. 직접 싸우지 않는 이상, 확인하는 것 조차 불가하리라.

태호는 그 반응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유튜브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그 때였다.

불현 듯 떠오른 볼카노스의 그 말.

-나를 따르는 이들의 힘이 강대해질수록, 나의 본신은 힘을 되찾을 것이다.

“흐음......”

나쁘지 않은 생각이 떠올랐다.

< 레전드 마법사 '언노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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