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 죽일 셈인가? >
유명해진다.
딱히 그런 것에 어떤 감흥이 남아 있진 않다.
죽기 전, 태호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 플레이어였으니까.
유명해 지는 방식에 대해 태호만큼 잘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다만 회귀해 버린 이번 생에는 딱히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뿐.
‘아니지.’
그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흑마법사를 대량으로 늘리면, 볼카노스의 힘이 돌아올 터. 그럼, 태호는 에픽 아이템들을 먹는 것 만큼이나 큰 이득을 얻을 수도 있을지 몰랐다.
또한.
볼카노스는 태호를 기억한다고 했다. 즉, 다른 흑마법사들과는 다른 메리트를 줄 확률이 매우 높다.
이번에 샤반타와의 일전은 태호에게 여러 가지 깨달음을 주었다. 또한, 균형의 수호자라는 패시브 스킬과 함께 혼돈의 권좌로 돌아가지 못 하게 완전소멸 시키는 능력도 부여해 주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이용해야 했다. 최대한 판타로스가 깨어나기 전, 그 중간보스급을 쳐내 놈 혼자만 남겨두어야 한다.
유튜브.
태호는 씨익 웃었다.
태호만큼 유튜브 관리에 철저했던 사람이 있었을까? 인기의 척도가 곧바로 돈과 직결되는 동영상 플랫폼은 유튜브 뿐이다.
죽기 전 태호는 유튜브 1억 팔로워를 보유한 수퍼스타이기도 했다. 수입 창출 루트를 다각화 하는 것은, 리얼포스 게이머로서 돈을 벌기 위한 당연한 수단들이었으니까.
사람이 열광하기 위한 조건.
아무리 뛰어난 실력이라도 인간은 청각과 시각, 그리고 상상으로 동영상을 본다. 뛰어난 편집자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택환.’
과거 태호의 유튜브를 편집했던 것은 김택환이라는 유명한 편집자였다. 처음부터 유명했던 것은 아니고, 태호와 함께 하며 같이 유명해진 케이스였다.
태호는 유튜브를 켜, ‘택환’을 검색했다.
[택환이의 실험]
[팔로워 : 120]
가끔은 이런 사람들이 있다.
매우 뛰어난 편집 실력을 가졌지만, 정작 크리에이터(동영상을 올려 수익을 창출하는 직종)로서의 중요한 재능 하나가 빠져 있는 사람 말이다.
[안녕하세요 김택환입니다. 오늘은...]
그는 한 마디로 더럽게 재미가 없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것을 뛰어난 편집 실력으로 커버하는 종류였지만, 그것으로 살아 남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태호는 그의 채널을 보며 빙긋 웃었다.
“여전히 재미는 없구만.”
그의 이메일 주소는 암기하고 있다. 동영상을 주고받은 세월이 십 년에 가까우니까.
태호는 우선 리얼포스의 게임 데이터를 뒤졌다.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유저를 공격할 때는 리얼포스 내에서 자동 동영상 저장이 이루어진다.
그 동영상 목록이 리얼포스의 별도 저장폴더에 가득 존재했다.
하나 하나 살펴보던 태호는, 샤반타를 사냥할 때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이 자식! 네놈부터 죽여 주마!]
이 정도까지는 분명히 육성으로 알아 들을 수가 있었다. 허나, 놈이 죽음에 직면하고 나서부터.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
놈의 목소리는 괴상한 음성으로 바뀌었다.
“......”
또한, 머리 위로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모습도 정작 동영상에는 보이지 않았다.
‘언어를 바꿨군.’
아무래도 혼돈의 권좌에서 사용하는 그들만의 언어로 바꾸어 이야기하는 듯 했는데, 게임 내에서는 모조리 다 알아 들었던 태호인지라 당황스러웠다.
‘이 역시 상위 가호 같은 것 때문인가?’
살짝 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튼.
태호는 동영상을 되돌아가, 플레이 초반부부터 PK위주의 동영상들을 골라냈다.
쉬폰과의 1:1이 두 번, 그리고 로만제국과의 PK가 서너 번.
그 중에서 가장 격렬하고 임팩트 있던 동영상들로만 추렸다. 너무 압도적으로 이기면, 인간은 경외감보다는 의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딱히 자신에 대한 별 정보가 등장하지 않는 정도로 가볍게 잘라내기를 한 뒤, 그 동영상들을 이메일에 첨부했다.
[김택환님께.]
[동영상 편집자를 구하고 있습니다. 높은 페이를 약속드리며, 연봉협상 당연히 가능합니다. 새로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할 생각이며, 원하신다면 채널 수익의 퍼센테이지 지분을 드리죠. 생각 있으시면 연락 주십시오. -Unknown.] 일부러 뒤에, 언노운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신도 모르게 올라온 동영상에서, 자신도 모르게 붙은 별명.
하지만 그게 썩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언노운이라...”
태호는 그 이름을 곱씹어 보았다.
.
.
.
.
.
.
[안되겠다악.]
“뭐가?”
태호가 묻자, 야타가 대답했다.
[네놈과 함께 돌아다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악. 차라리 네 펫이 되어 주마악.]
“......”
야타는 투덜거렸다.
[시부럴, 망했다악. 까악! 까아악!]
[‘야타카라스’를 펫으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야타카라스는 경험치를 통해 레벨업을 할 수 없으며, 특수한 조건을 필요로 합니다.]
나쁠 것 없다.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그리고 힘차게 노를 저었다.
촤악- 촤악-
겐트 섬.
본래는 겐트 섬에 들르기 전, 메아리 섬에 들려 라간을 보고 갈까 했지만 계획 변경이다.
라간은 평판작업에 전념하고 있으니, 방해하면 시간만 늘어날 뿐.
조각배에 올라탄 채 노를 젓던 태호는 저 편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작은 섬을 바라보았다.
저 곳이 바로 겐트 섬.
겐트 섬의 설정은 단순했다. 딱히 어떤 것이 있었다- 라거나, 희귀한 생물이 산다거나 하는 설정은 없다.
그냥 바다에 떠 있는 외딴 섬.
그것이 태호가 기억하는 섬의 정보였다. 허나 그 주변을 돌아다니는 유령선은 제법 문제가 된다.
과거에도 그 인근에는 유령선이 돌아다니며 무역선이나 범선을 몇 척씩이나 해먹곤 했다. 공격당해 침몰한 배는 바다에 가라앉는데, 무역물품을 건지는 난이도가 높아 울며 겨자먹기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솨악- 솨악-
겐트 섬에 도착한 태호가 고깃배에서 내린 뒤, ‘대여해제’를 선택했다.
대륙 남부 끝자락의 어민에게 빌린 고깃배는 대여해제를 선택하면 이렇게.
샤아악-
사라진다.
태호는 몸을 돌려 겐트 섬을 보았다. 이 섬은 무인도였다. 과거 이 곳을 방문해 본 적은 없었다. 굳이 시간 낭비를 할 필요가 없어서였는데, 이제 와 보니 새삼 후회가 된다.
무인도답게 사방엔 수풀이 우거지고 기괴한 새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허나, 저 편.
크게 솟아 있는 봉우리 위에는 기묘한 건축물이 세워져 있었다.
* * *
[Lv. 211]
[마력에 물든 케러번]
지나치면서 여기 저기, 몬스터들이 활보하는 것이 보였다. 주된 종류는 ‘마력에 물든’ 시리즈였는데, 생김새들이 마치 공룡 같았다. 예를 들어 케러번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한 익룡이었다.
[Lv. 231]
[마력에 물든 랩터]
지상은 3~5미터 정도는 돼 보이는 육식공룡이 활보하며, 어느새 하늘이 어두침침해져 있었다.
태호는 이들을 잘 알았다.
‘잊혀진 왕국 확장팩 때 등장하는 몹들이잖아.’
태호가 이 섬에 대해 안 것은, 1차 확장팩이 나오고도 조금 뒤의 이야기. 그 때 스크린샷으로 본 섬은 이런 몬스터들이나, 기묘한 건축물 등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변화가 있었군.’
어떤 변화일까?
우선.
이 곳을 주파하여, 정상으로 향한다.
타타타탁!
태호가 걸음에 힘을 주고 달리기 시작했다. 사방의 사물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여러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냥 하기엔 나쁘지 않아 보이기도 하고.’
저 놈들의 드랍템을 생각하던 그 무렵이었다.
타타타탁-
저 편에서도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울창한 수풀도 서서히 끝이 보인다. 풀 한 포기 없는, 높은 봉우리의 입구로 접어든 그 순간이었다.
파악!
수풀을 뚫고 등장한 것은, 한 남자였다. 머리 위에는 시뻘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쉬폰]
“......?”
“......”
쉬폰 역시 적잖게 당황한 듯 태호를 빤히 보다가, 싸늘하게 읊조렸다.
“우연 치곤 기묘하군.”
“......이쪽이야말로.”
쉬폰은 살짝 인상을 찌푸린 뒤, 몸을 돌렸다.
파아악!
수풀을 뚫고, 속속 몬스터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Lv. 250]
[마력에 물든 벤타우루스]
벤타우루스 무리다.
놈들은 다른 놈들에 비해 크기는 1~2미터 사이로 작지만, 수십 마리가 무리 지어 다니는 종류로서 매우 귀찮았다.
“칫.”
쉬폰은 낭패라는 듯 혀를 찼다. 그리고 태호에게 물었다.
“날 죽일 셈인가?”
태호는 그를 빤히 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리고 물었다.
“목적이 뭐야? 왜 여기에 있지?”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나는 나의 메인퀘스트의 흐름을 따랐을 뿐.”
“이하동문이군.”
쉬폰 역시 독자적 메인퀘스트를 진행하는 듯 했다. 태호는 사실, 쉬폰이 싫지 않다.
과거 이념이 맞지 않아 끝없이 싸웠던 적은 있다. 그와는 세계가 멸망하는 그날까지도 한 편이 되지 못 했었다. 그렇다고 그가 싫다는 건 아니지만.
언젠가 쉬폰에게 말 했던 대로, 태호는 항상 쉬폰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쉬폰이 전투에 돌입했다.
레벨이 상당한지, 250대 몇 마리와도 호각을 다투는 그는 역시 전투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어 보였다.
그는 빠르게 굵은 나무 밑둥으로 달려가, 그곳을 빙글빙글 돌며 접근해 오는 몬스터들에게 차분히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공격이 날아오면 기둥을 타고 돌며 회피하는 식이다.
‘기둥 타기.’
WOF 1번 맵, 기둥 사원. 통칭 국민맵에서 정석처럼 플레이되던 기둥타기였다. 태호는 빤히 그를 보다가, 손을 뻗었다.
‘어둠의 비.’
꽤애애액!
사방에서 놈에게 달려들던 무리의 뒤쪽에 어둠의 비가 내리고, 광역기가 쏟아졌다.
콰과과광!
삽시간에 놈들이 사라졌다. 태호는 필사적으로 전투하던 쉬폰이 두 마리를 쓰러트린 뒤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깨달았다.
“......”
쉬폰은 다소 불편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태호에게 물었다.
“왜 날 도와줬지?”
“그야...”
태호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번에도 말 했지만, 네가 싫지 않으니까.”
“......”
쉬폰은 그제야 전투태세를 풀고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태호를 보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한동안 태호를 견제하는 듯 했으나, 이내 포기한 기색이 보였다.
지금 당장은 태호를 기습해도 이길 수 없을뿐더러, 태호가 마음만 먹으면 자신을 썰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조금 전 다시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넌.”
문득 그가 물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에픽을 두르고 있길래, 그렇게 강한 거지?”
“글쎄... 말 해 주긴 좀 그런데.”
“...하긴.”
그도 쉽게 납득한 듯 했다. 지금 시점에서 정보 공유는 일종의 독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일체감은?”
“낮은 편은 아닐걸.”
태호도 그를 따라 봉우리로 향하는 길에 발을 딛었다.
저벅 저벅
기묘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태호는 걸음을 맞춰 걷는 그에게 말했다.
“언노운이라는 별명은 누가 지은 거냐?”
“......”
쉬폰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속사에서.”
“레전드 머더러는?”
“그것도. 창피한 일이군.”
“하긴, 자기 입으로 짓기는 좀 창피하긴 하지.”
태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두 사람이 막 봉우리의 끝에 도달할 무렵이었다. 거대한 건축물 하나가 그들 앞에 서 있었다.
형이상학적이기도 하고, 괴기스럽기도 한 기묘한 건축물이었다.
적어도 현대나 과거의 건축양식은 아니었다. 돔 형태의 천장은 힘줄이 솟아 있었고, 사방에서 기둥 역할을 하는 촉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태호가 다시 물었다.
“메인 퀘스트의 목적은?”
“굳이 말 해 줄 이유를 못 느끼겠군.”
허나 쉬폰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별 수 없다는 듯 태호에게서 멀리 떨어진 뒤 인벤토리 창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태호는 조심스럽게 막시무스를 소환해 옆에 두었다. 막시무스에게 물었다.
“막시. 저거, 혼돈의 냄새가 나냐?”
[음...?]
막시무스는 쉬폰과 그가 꺼낸 아이템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니다. 저건... 신성력에 속하는 것 같은데.]
신성력?
태호는 팔짱을 낀 채 그가 하는 일을 지켜보았다. 아직 쉬폰을 신뢰할 수는 없다. 어찌 됐든 그는 태생이 머더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가정은 이렇다.
‘성향 악’ 의 플레이어에게 혼돈의 주인이 만들어 낸 사념체가, 퀘스트를 부여한다.
그들은 퀘스트를 클리어하며, 대륙 각지에 남아 있는 혼돈의 파편들을 각성시킨다!
화아악!
헌데, 쉬폰이 꺼낸 아이템에서 소환된 것은 하얀 빛과 함께 등장한 여신이었다. 태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여신은 한 손엔 긴 창을 들고, 황금색 갑옷을 갖추어 입었다. 금빛 머리카락이 찰랑이며, 두 눈은 독기를 머금고 있었다.
‘전쟁의 여신, 아테나!’
태호는 그녀의 정체를 금세 알 수 있었다.
< 날 죽일 셈인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