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는 게 뭐야? >
쾅! 콰과광! 쾅!
아르카네가 작은 몸으로 낑낑거리며 포탄을 옮겼다. 그리고 옆에서 덩치 큰 4인의 어둠기사, 그리고 막시무스가 포탄을 두 개씩 옮기는 것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크다!]
아르카네는 유령선 위를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태호가 부싯돌로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것을 보며 깔깔깔 웃었다.
[뭐하는거야?]
“응. 이건 쟤들을 조지는 거야.”
태호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조지는 게 뭐야?]
“이승에 있던 애들을 저승으로 보내 버리는 거지.”
[아항.]
치이이익-
콰과광! 쾅!
유령선 위에는 포탄이 많았다. 산더미처럼 여기 저기 쌓여 있는 포탄들을 여섯 개의 함포로 쏘아대니, 그야말로 부둣가에는 재앙이 닥쳤다.
태호는 경험치 바가 오르는 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쯤 했으니, 해적들이 죄다 골로 갔을 거다.
“자자, 잠깐 스톱!”
포탄을 옮기던 막시무스와 기사단이 멈췄다. 태호는 핸들을 잡고 배를 부둣가 근처로 옮겼다. 그리고 자세히 여기 저기를 살펴보았다.
데샹이 죽지 않았다는 건, 당연하게도 알고 있었다. 이 정도로는 택도 없을 터.
한참을 부둣가에서 알짱거리자, 반파된 나무 밑둥에서 쓱! 튀어나온 데샹이 포효했다.
[이런 쥐새끼같은!]
“이크.”
태호는 다시 핸들을 옮겨 부둣가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다시 포탄을 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놈의 움직임은 확실히 샤반타보다 둔했다. 샤반타가 아웃복서라면, 데샹은 인파이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먼 포탄에 맞아 줄 정도로 멍청하진 않으리라.
태호는 의미 없는 소모전보단, 직접 대결을 선택하기로 했다. 배를 끌고 부둣가로 가까이 가자, 데샹이 이를 갈며 다시 등장했다.
“이리 와 겁쟁아!”
태호가 소리쳤다.
[이, 이이이! 이 빌어먹을 인간이 감히 누구보고 겁쟁이라는 것이냐!]
데샹이 분노하며 달려왔다. 태호는 놈이 배 로 올라 타, 자신에게 달려들려던 그 순간 배를 움직였다.
지이잉-!
배가 다시 바다로 바다로 향했다. 아르카네가 손가락을 까닥이자, 데엥- 하고 어둠의 종소리가 울리며 석화를 걸었다.
[아, 아니 이런 비겁...]
놈이 말을 하다 말고 돌덩어리가 되었다. 석화의 지속시간은 본래는 훨씬 길어야 하지만, 놈들에게는 채 5초가 안 된다.
그렇게 바다로 나아간 배 위에서, 태호가 막시무스에게 소리쳤다.
“밀어버려!”
[......! 알았다!]
막시무스는 아직 채 석화가 풀리지 않은 데샹을 힘껏 밀쳐, 바다로 떨궈 버렸다.
바다로 떨어진 놈이 석화가 풀린 것을 깨닫곤 태호에게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런 비겁한 자시이이익! 부끄럽지도 않느냐!]
“전혀.”
태호는 배를 마법의 최대사거리까지 벌려 놓았다.
‘어둠의 땅.’
촤아악 하며 바닥에 어둠의 땅이 깔렸다. 이제 놈에게는 동일한 상태이상이 3회까지 중첩된다.
놈에게 흑마법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퍼엉- 퍼엉- 퍼엉-!
어둠의 폭탄, 중독, 절망, 어둠의 화살을 비롯한 가진 모든 스킬들이 작렬했다.
[억! 어억! 어어억!]
놈이 비명을 지르며 헤엄을 쳤다. 태호는 핸들을 잡고, 놈이 멀어진 만큼 접근하며 마법을 계속해서 난사했다.
[......]
막시무스는 그것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문득, 과거 태호를 처음 만났던 그날이 생각났다.
[......저, 정말 비겁하지만 대단하군!]
그리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데샹은 촉수로 된 양 팔과 다리를 필사적으로 움직였지만, 배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 했다.
[으억! 어억! 아아악!]
한참동안 비명을 지르던 데샹이 이를 갈며 태호에게 소리쳤다.
[너, 너, 너어! 너 얼굴 기억했다! 혼돈의 권좌에서 내가 돌아오는 날 기필코 너를... 우어억! 이런 빌어먹을!]
째깍 째깍 째깍!
머리 위에 시곗바늘이 떠오른 것이다! 태호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영원한 죽음을 맞아라, 이 자식아.”
째깍! 째깍! 째깍!
[이, 이건... 대, 대체 어떻게?]
놈이 헤엄치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바다에 떠, 태호를 보았다. 그 눈에 당혹감과 경악이 가득했다.
[이건... 시간의 굴레가 만들어 낸... 균형의 힘...]
놈이 이윽고 공포에 사로잡힌 얼굴로 읊조렸다.
[영원한 죽음을 가져오는... 태고에... 소실된... 권능을... 네가 어떻게...]
파시식!
놈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태호는 지팡이를 멈추고, 휴-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눈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균형 파괴자를 처치하였습니다.]
이내 양팔저울이 나타나더니, 오른쪽으로 픽! 꺾여 있던 저울이 점차 수평을 되찾았다.
[장군(2/25)]
[앞으로 ‘3’ 의 균형 파괴자를 사냥하면 다음 단계로 업그레이드 됩니다.]
“후.”
이제 끝인가. 태호가 막 뱃머리를 돌리려던 그때. 추가 메시지가 있었다.
[‘균형의 수호자’ 의 스킬 업그레이드 시, 사냥한 균형 파괴자들의 능력을 일부 흡수할 수 있습니다.]
“......!”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균형 파괴자들을 하나 하나 사냥할 때 마다, 추가 단서를 제공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놈들은 경험치를 주지도 않았고 그럴듯한 아이템을 떨구지도 않았다. 아마 저런 보상 때문에 그럴 것이다- 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이번 전투에서도 성과가 있었다.
‘태고에 소실된 권능이라...’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그 때.
[조진 거야?]
아르카네의 목소리에 고개를 내려 소녀를 쳐다보자, 소녀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응?”
[저고, 조진 거야? 조져졌어?]
“음... 그렇지. 조져 버렸어.”
[글쿠나.]
태호는 그렇게 말 하며 약간의 자괴감을 느꼈다. 애들에게 가르쳐서는 안 되는 것들을 가르치는 것 같았다.
.
.
.
.
.
.
“으... 여긴?”
기절해 있던 흑마법사는 눈을 뜬 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초토화 된 부둣가가 제일 먼저 보였다. 그 다음엔,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며 분주하게 뭔가를 챙기는 태호가 보였다.
“......?”
태호는 부둣가에 떨궈진 세세한 잡템 하나 하나까지 모조리 다 주운 뒤, 유령선으로 올라가더니 그 안에서도 뒤적이며 이것 저것을 죄다 챙겨 넣고 있었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챙길 것이 없어졌는지 곰곰이 배를 쳐다보다가, 막시무스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 저기...”
그가 입을 열자, 태호는 뒤를 돌아보더니 후다닥 달려와 그를 보며 빙긋 웃었다.
“당신이 흑탑에서 파견된 흑마법사죠?”
“어, 예... 그쪽은?”
“카이저. 흑탑에서 당신을 구출하기 위해 지원나왔습니다.”
“아...!”
그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태호는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아 물었다.
“뭡니까?”
“예?”
“이 곳에서, 소실된 흑마법의 단서를 찾았다고 하던데요.”
“아, 예.”
그는 품 속을 뒤적이다가, 마법서 한 권을 꺼냈다. 태호는 그것을 받아 요모 조모 살펴보았다.
[아이템 : 고대 비전 흑마법의 서(상)]
“혼돈의 마물들이 이 섬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저는 놈들을 따돌리며 저 위, 기형적인 건축물 속 마법서를 탈취해 도주하는 중... 해적들에게 붙잡히게 됐죠.”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밀었다.
“알 하자드입니다.”
“카이저에요.”
태호가 그의 손을 잡았다.
* * *
스크롤을 찢어 라이언에 도착한 그들은 흑마법사의 탑을 찾아갔다.
그 안에서 전전긍긍하던 아파치 레퓨어가, 태호를 보더니 와락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아하하하! 역시!”
그는 뒤따라 오던 알 하자드까지 꼭 끌어안아 준 뒤 어깨를 두드렸다.
“자네도 고생했어! 우리 동지가 이렇게 살아 돌아오다니, 이리도 기쁜 일이 있다니!”
그는 한동안 기분이 아주 좋아져,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태호는 그런 그에게 마법서를 내밀었다.
“알 하자드 씨가 목숨 걸고 찾아온 거에요.”
아파치는 빤히 태호와 알을 번갈아 가며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음. 정말 너희들 고생 많았어. 이로서...”
그가 책을 펼쳤다.
화아악!
[흑마법사의 소실된 마법중 하나가 탑으로 돌아갔습니다.]
[흑마법사의 탑을 방문해, 소실된 마법을 익힐 수 있습니다.]
아파치는 신이 나서 책상으로 달려가, 마법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일필휘지로 글을 써 내려가던 그가, 태호와 알에게 마법서 한 권 씩을 내밀었다. “자! 이것이 우리가 찾아 낸 고대의 흑마법 중 하나야!”
우리라니.
이 자식, 뻔뻔하다는 생각을 했다.
[‘교환불가 : 흑마법사 비전마법-어둠 강화’를 획득했습니다.]
헛웃음을 흘리며 태호는 책을 펼쳤다.
스킬은 바로 배워졌다.
[패시브 : 어둠 강화]
[어둠 마법의 모든 대미지가 30% 상승.]
‘그렇구나.’
이런 식으로, 다른 비전 마법서는 또 다른 패시브를 제공하는 형태로 적용되는 듯 했다.
이런 식이면 일리가 있다.
흑마법이 애매했던 대미지, 지속시간, 방어력 그 외 기타 등등 다양하고 조잡한 스킬 구성까지. 패시브 형태로 채워 나간다면 흑마법사가 나쁘지 않아 질 것 같았다.
지금이야 태호가 말도 안 되는 에픽아이템을 둘둘 말고 있어서 그렇지, 기본 흑마법사의 성능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애초에 기본적으로 대미지가 30%는 올랐어야 평균 수준은 한다는 얘기잖아.’
헛웃음이 나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대미지30% 상승은, 태호가 리치에게서 얻은 ‘어둠의 계약’ 과도 같은 옵션이다. 즉, 그 수준의 아이템이 있어야 남들 평균 대미지가 나온다는 것.
에픽 하나를 먹은 셈이니 나쁘지 않은 장사를 했다. 게다가 이번 여행에서는 얻은 것도 많고, 앞으로 나아갈 길도 확실히 정할 수 있었으니까.
[퀘스트 완료]
[겐트 섬의 유령선]
[경험치 획득]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제 태호의 레벨은 205다.
“자, 자, 알! 알은 어서 가서 쉬어! 얼굴이 너무 안 좋아 보이네. 포상과 여흥을 즐기는 건, 푹 쉰 다음에 해 보자고. 이 쪽의 카이저는 우리 가족이니 안심해도 좋아.”
“아, 예.”
알 하자드가 피로감 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태호에게 인사를 한 뒤 탑으로 올라갔다.
이제 태호와 아파치만이 남았다.
태호는 그를 따라 소파로 간 뒤, 푹신한 촉감을 느꼈다.
아파치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기분이 좋은지 연신 미소를 머금은 채다.
“넌 정말 복덩이군.”
그의 말에 태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별말씀을.”
“아냐. 너는 꽤... 특별해. 다른 모험가 같지가 않다고 할까. 마치, 이 세계를 한두 번 겪어 본 백전노장 같기도 하고 말야.”
그의 말에 태호가 움찔, 했다.
그의 두 눈이 빤히 태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그는 빙긋 웃었다.
“그 정도로 못 하는 게 없다, 이 말이지.”
“칭찬으로 듣죠.”
“그래. 나한테 따로 부탁 같은 건 없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들어 줄게.”
태호는 그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흑마법사의 길에 들어서는 과정이 지금 너무 터무니없습니다.”
“응?”
아파치는 찻잔을 들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그간 우리가 필사적으로 연구했던 것도 그쪽 종류였어. 그간은 정령들과 적대감을 형성하여 어둠의 힘을 이끌어 내는 방식을 썼지만, 그건 그 외의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서였지. 너도 알다시피 좋은 방법은 아니잖아, 거부감도 심하게 들고 말이야.”
아파치가 이내 한쪽 눈을 찡긋였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겐 어둠의 정령이 있잖아?”
대충 예상했던지라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정령사들처럼 어둠의 정령과 친화력을 쌓은 뒤 볼카노스님의 가호를 받게 하자 이 말이죠?”
“음, 바로 그거야.”
아파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이미 따로 실험도 해 봤어. 문제 없이 될 거라고 생각해.”
그렇단 말이지.
과거에는 흑마법사의 고질적인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이제는 흑마법사에게 ‘정상적인 대미지’가 생겼다. 그 뿐 아니라, ‘어둠의 정령’ 도 소환할 수 있다.
그리고 차츰 차츰 더 ‘정상적인’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허나, 유저들은 냉정하다. 엄밀히 따져, 후진 직업은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뽕 맛에 취하게 해야지.’
태호는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웠다.
* * *
현실로 돌아온 태호가 이메일을 확인했다. [Re : 김택환님께.]
답신이 와 있었다.
[혹시, 지금 리얼포스의 네임드이신 언노운 님이 맞으신지요? 맞다면 같이 일을 해 보고 싶습니다만... 보내주신 동영상을 나름대로 편집해 본 샘플을 첨부해 드립니다.]
반응은 좋았다.
태호는 그의 반응을 보며 씩 웃은 뒤, 편집된 동영상을 살펴 보았다.
거친 락 음악과 함께 태호의 움직임이 도드라지게 편집된 영상이었다. 결정적인 한 타를 먹일 때 마다 슬로우 모션과 특수효과가 과하지 않게 삽입돼, 보는 맛이 아주 좋았다.
태호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당장 오늘부터 일 하시죠. 원하시는 임금 조건이 어떻게 되시죠? 맞춰 드리겠습니다.]
기다리고 있었는지, 곧바로 회신이 왔다.
[우선 샘플 동영상 몇 개를 채널에 올려 본 뒤 말씀드려도 될까요? 원하시는 영상이 있으신지?]
그는 본래 신중한 성격인지라 이 역시 예상했다.
[매드무비 하나 찍읍시다.]
태호는 그렇게 보낸 뒤 자신의 전투 동영상들을 하나 둘 첨부해 주었다.
그렇다.
흑마법사 언노운, 첫 번째 매드무비다.
< 조지는 게 뭐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