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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전설-54화 (54/194)

< coming soon! >

[매드무비요?]

매드무비.

정석적인 뜻이 있지만, 적어도 게임계에서는 ‘활약상을 멋지게 편집한 뮤직비디오’ 쯤 된다. 레이드도 있고 사냥도 있지만, 가장 인기 있는 장르는 역시 PVP다.

1:1 PVP보다는, 압도적인 실력과 장비로 다대일을 해치우는 영웅! 그것이 최고의 인기인 것은 자명했다.

[하하하. 매드무비 좋죠.]

김택환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이 들려왔다.

태호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컴퓨터를 종료한 뒤, 늘어지게 기지개를 폈다.

온 몸이 뿌듯해지는 기분이 좋았다.

‘흠.’

문득 드는 생각.

‘이상하게 피곤하지가 않네.’

그간 태호는 18시간 게임, 그리고 나머지 6시간동안 대부분의 일상의 일들을 해결했다. 빨래도 돌리고 장도 봐 오고, 없는 시간을 쪼개 잠도 자야 했다.

피곤이 누적되는 것이 자명한 일. 허나, 오늘은 유독 피곤하지가 않았다.

그대로 잠깐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본다. 당장 피곤하지 않아 자지 않으면, 졸음에 다음 일정을 망치게 된다.

“......”

허나.

태호는 반짝 눈을 떴다. 오늘은 유독 잠이 오지 않았다. 우두커니 소파에 앉아서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태호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다.

냉장고는 비어 버린지 제법 오래됐다. 그간은 남은 라면과 밥, 김치 정도로 해결했지만 오늘은 잠도 안 오는 겸 해서 장이나 봐 올 생각이었다.

집을 나선 태호는 또다시 약간의 괴리감에 사로잡혔다.

“흠...”

시야가 무척이나 또렷해진 기분이었다.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매우 좋아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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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컨디션이 최고조였다.

장을 봐 오고 음식도 손수 해 먹고 잠을 청했는데, 고작 서너시간을 잤을 뿐인데 몸의 상태는 최고조였다.

리얼포스.

태호는 이 기묘한 세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다. 이 세계가 또다시 자신에게 뭔가를 주려는 걸까? 무엇을 위해? 판타로스를 억제시키기 위해?

아니면, 또 다른 위협의 시작을 간접적으로 알리기 위해?

그 모든 비밀을 품고 태호는 걸음을 옮겼다.

대강 해결해야 할 것들을 대부분 해결했다.

태호는 이제 로키의 과제를 생각해야 했다. 로키는 자신의 신전을 옮겨 달라는 부탁을 했다.

아무래도 인적이 드물고, 용과나무가 풍부하게 있는 곳이 좋겠지만 그런 곳을 찾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부분에서 예전부터 머릿속에 그려 놓은 장소가 한 군데 있었다.

태호는 자신의 개인정보에서 ‘광휘의 궁전’을 선택했다.

[당신의 소유지 ‘광휘의 궁전’ 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예.”

화아악!

태호의 몸이 다시 나타난 것은 광휘의 궁전 안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 하나 없는 광휘의 궁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태호는 여기 저기를 살펴 보았다.  이 곳은 아지트로 쓰기 딱 좋다.

과거에는 던전이었지만, 클리어와 함께 몬스터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타인의 출입 또한 제한된다.

태호의 소유 ‘던전’ 인 증오의 피라미드와는 달랐다. 그곳은 유용한 던전으로 사용될 테니까.

이 근방은 아주 넓으니, 용과 나무 심기도 제격이다. 요모 조모 고민을 하던 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로 해야겠군.”

태호는 궁전 밖으로 나왔다. 본디 산이었지만, 이제는 겉의 흙을 다 털어 버리고 산 자체가 거대한 궁전이 되었다.

형태로 치면, 산의 중턱 까지는 가파르고 화려한 계단이 만들어져 있고 그 중턱부터 정상까지는 궁전인 셈이다.

계단을 올라 정문에 닿기까지 충분히 넓고 휑한 공간이 있었기에 그 곳에 용과나무를 심으면 제격이지 싶다.

우선, 인벤토리 창에서 우리아에게 받은 ‘비옥한 양토’를 꺼냈다.

비옥한 양토를 어찌 쓰는지 곰곰이 살펴본다. 생김새는 구슬 같았는데,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비옥한 양토가 생성될 범위를 선택해 주세요.]

동시에 시야에 녹색으로 범위를 설정할 수 있는 탭이 떠올랐다. 태호는 계단과 정문 사이의 모든 공간에 설정을 한 뒤, 수락했다.

촤아악!

구슬이 깨어지며 사방에 질 좋은 흙이 깔렸다. 신기하게도 기존보다 크게 높이가 차이나지 않음에도, 푹신한 감각과 흙 특유의 기분좋은 냄새가 났다.

‘이 흙만 있으면 뿌리가 아무리 길어도 아공간마냥 자란단 말이지.’

과거 이 흙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적이 있었다. 길드 아지트에 세계수를 하나씩 심는 것이 트랜드일 무렵의 일이었는데, 딱히 별 관심이 없어 그렇구나 하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태호는 그리고 나서, 인벤토리 창에서 남겨 둔 용과 하나를 꺼내 과육을 발라냈다.

씨앗은 총 열 다섯 개. 두툼하고 큼직한 씨앗인지라, 용과를 먹을 땐 이게 늘 문제다.

흙이 있는 범위에 용과 씨앗을 충분한 간격으로 심은 뒤 다른 아이템을 꺼냈다.

[천상의 영수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예.”

천상의 영수는 작은 물약병에 담겨 있는 연푸른색 액체였는데, 식물들은 이거 한 방울만 떨어트려도 급속성장을 하게 된다. 그만큼 구하기 어렵기에 과거의 길드들도 이 정도까지 구해 사용한 것은 드물었다.

아무튼.

씨앗 하나당 네 방울씩 아껴가며 떨군 태호는 흙을 잘 덮은 뒤 일어섰다.

“호오.”

과연.

한 방울만 떨궈도 효과가 좋은 녀석을 네 방울씩 떨구었으니, 그 성장속도는 기대 이상이었다. 게다가 비옥한 양토는 일반 토질보다 열 배 이상의 성장속도를 자랑하는 신의 물건.

곧, 여기저기서 땅을 뚫고 싹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태호는 한 걸음 물러서 용과나무들이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싹은 곧 작은 나무가 되고, 나무의 크기가 점점 더 성장하며 푸르른 이파리를 펼쳤다. 대략 2미터 정도까지 자라난 나무가 서서히 더욱 풍성한 잎을 만들어내더니, 어느 순간 그 사이 사이 작은 열매가 달리기 시작했다.

“정말 빠르긴 하네.”

열매가 영글기까지는 꽤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용과 열매가 쉽게 익었다면 경매장에도 매물이 충분해야 할 터. 그게 아니기에 구하기도 힘든 것이다.

이제 태호는 광휘의 궁전안으로 들어와 생각에 잠겼다.

흑마법사 양성 계획!

키워드는 뽕맛.

요컨대, ‘성능이 좋아서 한다’ 가 아니라 ‘가슴이 시켜서 한다’ 가 돼야 했다.

그렇다. 로망이 살아 있어야 한다. 최대한 임팩트 있는 모습으로, 요즘 말로 ‘간지’ 가 나야 하는 것이다. 태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결정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컨셉으로 해야겠군.”

컨셉은 확실히 잡았다.

그럼, 그 다음부터는 ‘명분’ 이다.

명분이 없이 그저 PVP를 즐기는 유저 라는 타이틀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쉬폰은 이미 WOF의 투신이라는 뒷배경이 있으나, 태호는 그렇지 않았다.

‘악당을 처치하는 어둠의 기사!’

흑마법사라는 이름이 가져오는 어두운 이미지와 부합하는 느낌을 주면 딱이다.

유명해지는 것은 동영상 단 두 개면 충분하다.

요즘 가장 악명을 떨치는 유저들은?

웹 서핑으로 충분한 정보를 수집해본 결과, 역시 부동의 넘버원은 ‘로만제국’ 이다.

그 수장 로만 역시 개인방송계에서는 관심종자로 찍힌지 오래고, 대중의 여론도 안 좋다. 자극적인 방송으로 인한 시청자 유입은 역시나 최고 시청자수를 매일 갱신하게 만들지만, 그에 반하는 악영향도 분명히 존재했다.

‘로만은 앞으로도 조질 일이 많으니까 조금 아껴 두고.’

그럼.

두 번째는?

‘크레이지 도그’

최근 대륙 남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머더러 길드다. 리얼포스가 머더러에게도 특혜를 주며, 유독 머더러 길드가 많은 것이 사실이었다.

쉬운 레벨업, 쉽게 얻을 수 있는 고등급 장비, 그리고 살상에 특화된 스킬들.

물론 그에 반하는 패널티가 분명히 존재했다만, 일정 규모를 갖춘 머더러 집단을 궤멸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현실이 아니라 게임이었으니까!

‘우선은 이 놈들부터 해결해 볼까.’

태호는 자신이 정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자신은 아마, 엄밀히 따지면 위선자의 축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태호는 강해져야 했고, 인간이 할 짓이 아닌 것들을 뺀 대부분의 일들을 할 생각이었다. 비열해질 필요가 있으면 비열해진다.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을 생각이다. 그런 것 쯤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

사람들은 아마 이해도, 납득도 못 할 일들.

태호는 그런 일들을 눈 앞에 두고 당장 어제도 겪었다. 더욱 강해지고, 악독해져서 향후 나타날 판타로스와 그의 수하들을 모조리 조져 놓는다.

자리에서 일어난 태호의 두 눈은 독기를 머금고 있었다.

목표는 남부 대도시 ‘안타라스 슬램’.

머더러들에게 아무 제약이 없는 그 대도시를 기점으로 몇몇 대형 머더러 길드가 암약하는데, 그중 ‘크레이지 도그’ 는 인근의 저레벨 던전 하나를 통제하며 인근의 유저들을 학살하는 악질이었다.

* * *

[님들, 그거 알아요? 안타라스 슬램 쪽에 던전 통제하던 애들 오늘 다 썰린거?]

[크레이지 도그? 걔들이 누구한테 썰려요? 어세신즈가 거기도 털고 있나?]

[아뇨. 한 명한테 털림... 언노운 알아요?]

[언노운? 네임드 언노운?]

[네. 언노운이 걔들다 털어버림. 지금 남부 던전 통제 풀려서 유저들 개떼로 몰려들고 있어요. 몹 리스폰 자리마다 꽉차있음ㅋㅋ]

다음날.

예상했던 대로 커뮤니티 포럼이 난리가 났다. 태호는 웹서핑을 하며 여론을 살폈다.

[그 개새끼들 꼴 좋다 ㅋㅋ 이참에 접으면 좋을 텐데.]

거의 모든 유저들이 태호의 업적을 칭찬하며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태호는 피식 웃으며 메일을 확인했다.

[인트로 동영상으로 뿌려 볼까요?]

어제, 태호는 크레이지 도그가 통제하고 있는 초보용 던전 ‘고블린의 탄광’을 덮쳤다.

그리고 그 곳을 점거하는 열댓명의 크레이지 도그 길드원들을 썰어버린 뒤, 추가로 도착하는 놈들도 속속 썰었다.

아르카네나 막시무스, 기사단들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둘둘 말고 있는 에픽 아이템들의 성능은 그대로다. 조금 더 극적으로 보이기 위해, 일부러 싸움을 장기전으로 끌어 갔다.

그 영상을 보내 주고, 바로 다음날 가장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형태의 인트로 동영상이 도착한 것이다.

태호는 영상을 확인했다.

[Hidden Class, Dark mage.]

[Unknown.]

국내 유저도 중요하지만, 해외 유저들을 위해 영어로 된 글자가 만들어졌다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윽고, 화면에 태호가 나타났다. 평범한 커스터마이징의 태호가 절벽 위에 우뚝 선 채, 가만히 저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머더러들이 얼쩡거리며 통제를 가하는 것이 보인다.

태호는 그 아래를 내려다 보며,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눈을 감았다. 문득, 바람이 불어 망토가 펄럭인다.

태호는 그 순간 고개를 들고, 어둠 기사단 투구를 썼다.

그 다음, 어둠 기사단 투구의 얼굴 덮개를 내렸다.

철컹!

동시에 태호의 온 몸에 어둠 기사단 세트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쏴아악!

삽시간에 전신이 시커멓게 윤기 나게 변하며 태호는 마치 어둠의 기사처럼 멋진 모습이 된 것이다.

다시 일어난 태호가 절벽 위에서 뛰어내리며, 사방에 어둠의 마력이 솟구친다.

[Coming soon]

태호의 펄럭이는 망토가 줌인, 이내 화면이 시커멓게 변하며 동영상은 끝.

태호는 자신이 의도한 대로 찍힌 동영상을 보며 씨익 웃었다. 편집은 완벽했다.

그대로 새로이 만들어 낸 유튜브 채널에 동영상을 게시했다.

하지만 뒤따르는 부작용은 어쩔 수 없었다. 태호는 팔뚝을 벅벅 긁으며 중얼거렸다.

"으... 오글거려."

< coming soon!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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