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련 >
‘어떻게 벌써 나왔지?’
태호의 머릿속에는 그 생각만이 맴돌았다. 아니, 상황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자.
‘본신의 힘을 모두 되찾지는 못 했을 게 분명하고.’
여지껏 봐 왔던 장군들이 그러했다.
신노스는 본래 일곱 번째 확장팩 ‘신노스의 군단’에서 등장할 예정이었다. 당시의 신노스는 공략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경지까지 이른 난이도로, 많은 유저를 경악하게 만들었었다.
태호는 여지껏 등장했던 두 장군을 떠올렸다.
샤반타, 데샹.
두 녀석은 본래 등장하지 않아야 할 상황에 등장했다. 그리고, 본래 등장해야 할 때 보다 1/3~1/4 가량의 힘 밖에 내지 못 했다.
‘그렇다면.’
신노스 역시 그 정도의 수준으로 등장했다는 가정이 세워진다.
뭔가 뒤틀렸다.
그것이 태호에게 나쁘지는 않을 듯 했다.
태호는 생각을 정리하며 엑셀에게 물었다.
“어디로 갔습니까?”
“모르네. 다만... 놈은 약간 초조해 보였네.”
“초조해 보인다라...”
그나저나.
드워프들의 도시가 초토화 됐으니, 큰일이었다. 태호는 팔짱을 낀 채 생각하다, 물었다.
“도심의 모든 드워프들이 다 죽은 겁니까?”
“크으... 외부에 파견나간 일족은 아직 남아 있네. 그것이 그나마 다행인 건가...”
엑셀의 얼굴엔 체념과 깊은 상실감이 있었다. 하루 아침에 소담스럽던 집이 살육현장으로 바뀌어 버렸으니, 그 상실감과 절망감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혹시... 우리를 도와 줄 수 있겠는가?”
엑셀이 말하자, 눈 앞에 퀘스트가 떠올랐다.
[7급 퀘스트]
[메인 퀘스트]
[검은머리 드워프의 도시, 아젠티움.]
[몰락한 아젠티움을 부흥시키기.]
메인 퀘스트!
태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엑셀이 그나마 한 시름 덜었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우선, 지금 우리는 질 좋은 광석을 모조리 강탈당했네. 이대로는 우리의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 뻔해. 그러니... 우선, 자네 철광석을 수급해 줄 수 있겠나?”
철광석.
태호는 머리를 굴렸다. 잊혀진 왕국에 들어서서, 철광석을 대량으로 떨구는 던전은 꽤나 많다. 그 중 가장 효율 좋은 곳 몇 군데를 떠올린 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 참.”
태호가 재차 물었다.
“순수의 강철을 가공할 수 있는 드워프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겠군요?”
“순수의 강철이라... 나 역시 그것을 가공할 수 있네만, 지금 당장은 힘들 듯 하네.”
의외의 대답이었다.
“혹시, 어떤 방향으로 가공하실 수 있습니까?”
“헉스 녀석은 성미가 급해 망토와 무기 류 밖에 못 익혔지만, 나는 대부분의 종류를 만들 수 있지. 그 녀석을 가르친 것도 나니까.”
별 것 아니라는 듯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뜻은 대단했다. 태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인가.’
* * *
아젠티움을 나선 태호는 노펜시아로 돌아갔다. 대충 돌아가는 상황은 알았으니, 그 동안 모아 두었던 ‘망가진 잡동사니’를 사용해 볼 시간이었다.
인벤토리 창에서 ‘망가진 잡동사니’를 꺼냈다.
잡동사니의 생김새는 마치 반파된 플라스틱 조각 같다. 이대로는 아무 쓸모가 없다. 하지만, 10개를 한 곳에 모으면?
지이잉-!
잡동사니들이 마치 자석처럼 서로에게 달라붙는다. 그리고 착착착, 붙어 저마다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정제되지 않은 마력체’를 획득했습니다.] 잡동사니 10개당 마력체 하나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마력체는 어디에 쓰느냐-
“어서 오게!”
노펜시아의 ‘웨폰&아머’ 상점에 찾아 가, 데런에게 아이템 재련을 맡기는 것이다.
데런은 본래 ‘카오스 스톤’을 이용한 특수옵션 재설정의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확장팩 출시와 함께, 아이템 재련의 역할 역시 추가로 맡게 된 것이다.
태호는 말 없이 그에게 ‘정제되지 않은 마력체’를 보여주었다.
“아닛!”
데런이 특유의 오버스러운 표정으로 마력체를 쳐다보다가, 태호에게 물었다.
“이, 이건...”
“아이템 재련이 가능합니까?”
“그, 그렇네. 이걸 어디서 구했나?”
“어쩌다 보니까요.”
태호는 가장 먼저, 군자의 지팡이를 내밀었다. 데런이 지팡이와 마력체를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번쩍!
빛이 번쩍이더니, 흥분한 얼굴의 데런이 뛰쳐나왔다.
“이, 이럴수가! 그 이론이 사실이었다니!”
“......”
저건 실패 대사다.
“하, 하지만 실패했네! 하하하! 허나 정말 대단한 일이야. 이 마력체는 장비에 흡수되어, 고유의 능력을 부여할 수 있다네!”
데런은 전형적인 밉상 캐릭터였다. 미래의 데런은 유저들에게 ‘개새끼’ 혹은 ‘씹새끼’ 라고 불리게 되는데, 저런 대사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그는 의뢰금을 받은 어세신즈에게 살해당한다. 아무튼 오래 살기를 바랄 뿐.
재련 성공확률은 대략 40%정도다. 태호는 잡동사니를 계속해서 합성해 마력체를 만들어냈다.
번쩍!
“오오!”
이번엔 성공인 모양이군.
“성공했네! 자, 자네의 장비를 확인해 보게!”
[등급 : 에픽][재련]
[종류 : 무기(지팡이)]
[이름 : 군자의 지팡이]
등급 옆에 ‘재련’ 이라는 말이 추가되었다.
현재, 군자의 지팡이의 달성도는 다음과 같다.
[마법 공격력 1000]
[옵션 : 사용자의 레벨 1당 10의 마법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사용자가 사냥한 몬스터 1당 1의 마법 공격력이 상승합니다.(350/500)]
[사용자가 사냥한 인간 1당 1의 마법 공격력이 상승합니다.(102/500)]
[모든 조건을 충족시킨 뒤, 군자의 시련을 통해 추가 조건을 개방할 수 있습니다.]
군자의 시련.
이는, 군자의 지팡이가 가진 능력치를 더 확대시켜 준다. 때문에 군자의 지팡이를 들고 있으면, 마법 공격력이 계속해서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태호 같은 경우, ‘인간 사냥’ 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킬 머더러들이 있으니 아무튼 나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재련옵션 : 마법 공격을 사용할 때, 5초 간 이동속도가 증가합니다.]
[이 옵션은 특수옵션으로 취급되며 ‘카오스 스톤’ 으로 변경이 가능합니다.]
‘나쁘진 않군.’
이런 식으로 랜덤한 추가 옵션이 하나 더 붙는다. 잡동사니의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
태호는 자신이 보유한 장비들 하나 하나에 재련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어둠 기사단 세트.
고대 왕국의 증표.
선지자의 해골.
순수의 강철 망토.
추가된 옵션들의 총 능력치를 살펴 보자면
‘힘 5 체력 7, 지능7, 피격시 이동속도 증가, 마법공격시 이동속도 증가.’
옵션은 제법 잘 붙은 편이다. 힘만 카오스 스톤으로 수정하면 될 듯 해, 계속해서 돌렸다. 결국, 체력 10 지능 10으로 변환시킨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운이 괜찮군.’
이동속도 증가 옵션이 붙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리얼포스의 공, 이동속도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끗 차이로 생사가 오가는 치열한 공방에서, ‘속도’ 란 절대적인 생존요소다.
옵션 재설정까지 완료한 태호는 다시 경매장으로 향해, ‘망가진 잡동사니’를 싹 다시 구매했다.
‘시세가 조금 오르기 시작했네.’
1실버 짜리가 슬슬 4~5실버가 넘게 팔리기 시작한다. 아까 데런의 가게에도 유저들이 제법 오가고 있었으니, 소문은 금세 퍼질 것이다.
잡동사니를 10만개 추가로 구매한 뒤에야 태호는 움직일 수 있었다. -형님!
라간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그래. 그쪽 작업은 끝났고?
-옛서! 나 에픽 받았는데, 하하하! 단창 받았어. 이거 좋은데?
에픽 단창.
메아리 섬의 토속부족 ‘트로이’ 는 전사의 일족이다. 그들의 평판을 최대치로 올리기 위해서는 섬에 가득한 괴물들과 끝없는 투쟁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결국 라간은 그 작업을 성공적으로 끝냈고, 에픽 단창과 함께 세계수의 씨앗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늪지대로 와. 해결해 버리자.
-옛서! 바로 간다!
태호는 씩 웃으며 스크롤을 찢었다.
* * *
늪지대.
숲의 여신, 우리아를 소환하여 태호도 나름대로 물어볼 것이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라간은 꽤나 늠름해져 있었다. 그는 씩 웃으며 태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형님이 랭킹 1위 다 석권했던데? 대단해.”
“별말씀을.”
태호는 피식 웃으며 그와 함께 늪지대로 걸어 들어갔다. 라간은 레벨 랭킹 2위로서, 메아리 섬을 독식하고 있었으니 그 위력을 톡톡히 받고 있었다.
이제 에픽 단창까지 얻었으니 파티 플레이 시 족히 3인분은 할 것이다.
라간이 씨앗을 샘에 떨구자, 우리아가 나타났다.
[세계수의 씨앗을 구해 왔구나?]
“예. 힘들었으니 좋은 보상 주쇼.”
라간이 넉살 좋게 말하자, 우리아가 빙긋 웃었다.
[보아 하니 메아리 섬에 다녀 온 모양이군. 그 노고를 치하하며, 나의 가호 하나를 내려 주마.]
화아악!
라간의 몸이 일순간 반투명해졌다. 태호는 라간이 ‘숲의 가호’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끄응... 너는 대륙 북부의 요정의 숲으로 가, 잠들어 있는 고대의 엔트를 깨우라.]
라간에게 메인퀘스트가 갱신된 모양이다.
‘고대의 엔트?’
태호는 곰곰이 그 이야기를 곱씹다가, 태고적부터 존재했다던 ‘엔트’ 들에 대해 떠올렸다.
엔트는 살아 있는 나무 일족으로, 생김새는 그냥 큰 나무가 걸어다니기도 하고 말도 한다고 보면 된다.
어쩐지 우리아의 표정이 썩 좋지가 않아, 태호는 팔짱을 낀 채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표정이 좋지 않으신데.”
[응? 아아, 최근 여러 일이 있었노라. 균형이 깨어진다는 것은, 그리 좋지 않은 징조이다. 흠... 허나, 그게 나쁘지만은 않을 지도.]
우리아는 턱을 괸 채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임무를 완수하면 다시 내게 돌아오렴. 그럼 네게 내 보물 하나를 내어 줄 테니.]
그녀는 급한 일이 있는 듯,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 * *
태호는 라간에게 잡동사니를 조금 나누어 주었다. 대략 1000개 정도를 나누어 주었으니, 녀석이 쓸 만 한 아이템들을 입수하게 되면 옵션 부여하는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형님은 어디로 가는데?”
라간의 물음에, 태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난 철광석 캐러. 고대의 엔트들은 꽤 유순한 놈들이니, 혼자 가도 상관은 없겠군.”
“아쉽네, 좀 강해진 내 모습을 보여줄까 했걸랑. 하하하!”
라간이 즐겁게 웃으며 자신의 단창을 태호에게 내밀었다. 태호는 그 단창을 받아 보았다.
‘전쟁광의 분노로군.’
아주 쓸 만 한 에픽이다. 특히 발군의 공격력으로, 지금의 라간이 사용하기엔 딱 맞았다. 태호도 어떻게 얻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으나, 시간대 성능비가 맞질 않아서 패스하기로 했던 물건이었다. 우선 메아리 섬의 토속부족들은 전사 클래스가 아니면 쉽게 마음을 열지도 않았다.
태호는 우선, 고대의 엔트들과 연관된 히든피스를 떠올리고 라간에게 몇 가지를 알려 주었다.
“으잉? 그런 게 있어?”
라간은 깜짝 놀란 얼굴로 눈을 꿈뻑였다.
.
.
.
.
.
.
라간이 다시 떠나고.
태호는 라이언의 북부로 걸음을 옮겼다. 유령 표범을 소환한 뒤, 방향을 가리켰다.
목표는 북서쪽, 아직 인적이 없을 것이 분명한 해안가 마을이었다. 철광석이 그야말로 폭풍처럼 떨어지는 던전 한 곳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타타타타타탓!
유령 표범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할 무렵, 태호는 유튜브를 켜 자신의 매드무비를 살펴보았다.
[흑마법사 뽕에 취한다아아앗!]
[저거 크레이지 도그 새끼들 썬 거죠?]
[지린다...]
[흑마법사 전직방법이 어떻게 되나요? 정보 아시는분?]
[여윽시 종합 랭킹 1위 답다. 호쾌하게 썰어 버리네 ㅋㅋㅋ]
댓글이 벌써 2만건을 넘어섰다.
조회수는 이미 50만을 돌파하고 있었다.
‘순조로운걸.’
이대로 인기를 늘리다가, 흑마법사의 전직방법을 공유하며 유저를 폭발적으로 늘리는 것이 일차 목표다.
그리고 볼카노스의 힘을 되돌린 뒤, 그에게 따로 부탁할 것이 있었다.
'그게 생각대로만 돼 준다면 일이 훨씬 쉬워질 것 같은데.'
< 재련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