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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전설-61화 (61/194)

< 들끓는 인기 >

100레벨 미만의 유저들이 모여서 오순도순 파티사냥을 하는 곳. 머더러들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은 사냥코스는 또 없으리라.

가만 보니 버프를 한껏 두르고 온 것이, 고레벨 버퍼에게 광역버프를 받은 모양이었다. 거기에 도핑 물약까지 빨고 물량으로 치러 왔으니, 평범한 유저들이 머더러를 당해 낼 재간이 없다.

속속 유저들이 썰려 나가고 있었다.

태호는 유저들 틈에 껴서 가만히 생각했다.

‘뱀파이어즈라.’

현재의 리얼포스 3대 머더러 길드는 태호의 기억에도 비슷했다. 다만, 과거의 기억에는 3대가 아닌 4대 길드였을 뿐이다. 어세신즈가 포함돼서 말이다.

어세신즈가 생각보다 더 빨리 노선을 바꾸었다. 이제 어세신즈는 ‘머더러를 사냥하는 머더러’ 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튼.

특히 엘 로스의 던전은 100레벨 미만 입장가능이라는 제한 덕에, 머더러들이 사냥하는 유저들 썰러 와 레벨업 코스로 쓰는 던전이기도 했다.

위기감이 느껴진다?

그건 아니다. 태호가 생각하는 것은, 철저히 비즈니스적 요소였다.

-뒤로 빼요! 저 새끼들 지원사격 날아오니까 깊숙이 가서 싸웁시다!

선두에 서서 머더러들을 막아내던 탱커가 외쳤다. 뒤로 빠지던 그가, 머더러의 단검에 목덜미를 맞고 픽! 쓰러졌다.

유저들이 우왕좌왕하며 뒤로 뒤로 물러섰다. 동굴 한복판으로 들어온 유저들이 똘똘 뭉쳐, 머더러들과 대치상태를 만들어냈다.

“우하하하! 역시 버프가 좋긴 좋구만!”

머더러들의 선두에 선 유저가 소리쳤다. 태호는 그의 아이디를 눈여겨 보았다.

[간즈]

‘간즈가 이쯤에 시작했나보군.’

훗날 뱀파이어즈의 부길드마스터가 될 녀석이었다. 뱀파이어즈도 로만 제국이랑 비교했을 때, 나쁘면 나빴지 딱히 더 잘 한 게 없는 녀석들이었다.

기본적으로 머더러 길드들이 대부분 그렇다. 선량한 유저 등쳐먹고, 패죽이고, 통제 걸고, 삥 뜯는 것이 일상인 양아치들.

‘대의명분은 충분히 갖췄고.’

태호는 그 생각을 하면서 조금 더 기다렸다.

간즈가 천천히 유저들 앞으로 걸어나왔다.

“오늘부로 엘 로스 입구는 뱀파이어즈 통제다, 이 새끼들아.”

놈이 으스댔다. 직종을 보니, 암살자 클래스 같았다. 양 손에 든 단검, 그리고 얄쌍해 보이는 갑옷이 그것을 증명한다.

뒤에 서 있는 녀석들은 조합이 아주 좋다. 마법사, 궁사, 탱커와 함께 힐러진이 중앙에 포진돼 있는 전투형 진영을 철저히 갖추고 있었다.

“이 개새끼들아! 너희가 뭐 전세 냈냐!”

유저 하나가 소리치자, 간즈가 싸늘하게 웃었다.

“꼬우면 앞으로 통행료 내든가, 우리 길드에 들어오든가. 어차피 가상현실 게임은 약자멸시(弱者蔑視)야, 등신들아.”

“동영상 찍고 있다 지금! 니들 유튜브 스타로 만들어줄게!”

“어이구 고마워라. 우리 수고를 대신 해 준다니까 너는 맨 나중에 죽여 주지.”

“이이익!”

간즈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다시 누군가가 소리쳤다.

“언노운이 니들 다 썰러 올 걸!”

“언노운? 엘 로스는 100렙 미만만 올 수 있는데? 그 허세충 새끼는 여기 절대 못 와.”

간즈의 말은 일리는 있다. 통상적인 방법으론 올 도리가 없다. 언노운은 전체랭킹1위에 빛나는 랭커. 200렙은 훌쩍 넘었을테니, 못 오는 것이 인지상정이었다.

“자자, 긴 말 할 것 없고. 다들 잘 가라고!”

간즈가 말을 마친 채 손가락을 까닥이자, 뒤쪽에 포진해 있던 마법사들이 마법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물 마법사.’

태호는 그들의 직종을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매즈(상대를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드는 스킬)’ 기술에 특화된 물 마법사들은, 대미지 딜링에는 쥐약처럼 약하지만 광역 매즈기술이 많았다.

이 매즈기술이 왜 위험하냐?

바로, ‘전투상태’ 이상을 걸어 버려 스크롤을 찢지 못 하게 한다는 점이다.

촤아아악!

사방에 물결이 치며 유저들에게 속박 상태이상을 걸기 시작했다. PVP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들이 허둥지둥하며 스킬을 어떻게 쓸지 판단하지 못 하는 시점, 머더러들이 달려가려다 문득 멈춰 섰다.

“응?”

눈 앞에, 유저 하나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뭐야?” 99레벨의 물 마법사들을 넷이나 데리고 왔는데, 그 많은 메즈기술들이 하나도 먹히지 않고 있었다.

저벅 저벅!

태호는 속임수를 해제한 채, 어둠 기사단 투구를 벗어 손에 들곤 앞으로 걸어 나갔다.

[레벨이 온전한 상태로 돌아갑니다.]

메시지와 함께 스텟과 생명력, 공격력과 방어력이 온전하게 돌아왔음을 알렸다.

“......”

태호는 그들 앞에 서서 동영상을 녹화하고 있었다. 대사를 치는 것은 촌스러우니, 일부러라도 아무 말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사방에서 물 속성의 매즈기술이 들이닥쳤지만, 그래 봐야 99레벨. 태호는 현재 260레벨이라, 매즈가 걸려도 아주 찰나의 시간만 적용될 뿐이다.

태호는 그 앞에 서서 팔짱을 꼈다.

“넌 뭐냐고 이 새끼야!”

태호는 빤히 간즈를 바라보았다.

‘이 자식들은 멍청한 건지, 허세에 쩌든 건지.’

굳이 대사 한 마디 안 해도 알아서 삼류 악역을 자처해 주니 이 쪽에선 편할 뿐이다.

그 무렵. 뒤쪽에 포진해 있던 유저들 중 하나가 태호의 복장을 가리켰다.

“어? 저 복장!”

지금 태호는 투구를 벗은 어둠 기사단 세트를 입고 있다. 때문에, 매드무비 예고편에 나왔던 초반의 복장 상태였던 것이다.

“언노운이 입던 옷 아니야?”

“진짜? 근데 언노운 여기 못 오잖아.”

유저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에이 씨! 다 죽여!”

간즈가 귀찮다는 듯 빼액 소리질렀다. 이어 태호에게 마법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피융! 피융!

화살이 날아들고, 사방에서 칼과 창을 든 머더러들이 달려온다. 태호는 그 장면까지 화면에 넣곤, 천천히 오른손에 들고 있던 어둠 기사단 투구를 뒤집어 썼다.

찰캉!

화아악!

태호의 전신에 시커먼 기운이 솟구치며, 윤기를 띄는 검은 갑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의 비.’

쏴아아아-

동시에 태호는 정면에 어둠의 비를 내렸다. 머더러들이 달려오다 말고, 어둠의 비의 속박에 걸려 허둥지둥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비가 내리는 것이 끝나고.

태호의 온전한 모습이 드디어 드러났다.

“언노운이다!”

“언노운이 어떻게 여길?”

“와아아!”

유저들이 환호하는 것이 들려왔다. 태호는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사방으로 시커먼 마력을 뿜어냈다. 마치 검은 날개처럼 망토가 펄럭이며 사방으로 마력이 흩어진다.

“와아아아!”

‘......’

정작 하는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만인의 관심을 직접 받으면서 의도된 행동을 하니 영화배우라도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기왕에 하는 거, 최선을 다 해서.

타타타타탁!

그대로 달린다. 정면으로 날아드는 머더러 둘이 검을 휘두른다. 태호는 그 상태로 왼손을 들어, 정면의 머더러 하나의 팔을 잡고 몸을 띄웠다.

빠악!

그대로 무릎이 오른쪽의 머더러의 안면을 가격한다. 가격이 들어간 동시에 마법이 꽂혔다.  ‘중독, 절망.’

가볍게 착지한 태호는 어깨로 놈의 명치를 밀쳤다.

“어, 어어!”

쐐액! 팍! 팍!

날아드는 머더러들의 화살과 마법이 놈의 등짝에 작렬했다. 파티원들에게는 대미지가 들어가지 않으니, 일종의 퍼포먼스일 뿐이지만 태호는 놈의 몸을 밀치며 쭈우욱 앞으로 달려갔다.

‘대규모 범위 시력상실.’

뒤쪽에 포진해 있던 힐러와 마법사들이 시력을 잃고 우왕좌왕할 무렵 태호는 밀치고 가던 놈의 다리를 걸어 넘어트린 뒤 놈의 앞으로 달리며, 뒤로 지팡이를 겨눴다.

‘폭사.’

쾅!

“억!”

머더러 하나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사라졌다. 이것이 현재 태호가 가진 힘의 수준이었다.

99레벨의 수준에서는 이미 중독 하나만으로도 빈사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이 태호가 가진 장비와 레벨의 격차.

양민학살!

말 그대로 잡몹 수준정도로조차 버티지 못 하는 머더러들과의 싸움은 일방적인 학살일 뿐.

그대로 태호는 힐러와 마법사들 틈으로 파고들었다. 정면의 힐러의 목덜미를 한 대 후려치고, 몸을 빙글 돌려 방패로 삼으며.

‘어둠의 폭탄, 중독, 절망.’

달려오는 상대에게는.

‘어둠의 화살.’

힐러의 머리 위에 해골 표시가 떠오르자 마자, 발로 등짝을 걷어차 밀쳐내며.

‘폭사.’

콰과과광!

콰광!

어둠의 폭탄이 걸린 힐러는 절명했고, 사방의 힐러진이 일순간 큰 타격을 입고 그로기상태에 빠질 무렵.

태호는 새로이 얻은 스킬들을 쏟아냈다.

‘고통의 연쇄.’

4차전직으로 얻은 고통의 연쇄다.

이 스킬은, 숙주가 된 유저 하나에게 가해진 모든 상태이상기술이 사방에 전이된다.

그리고.

‘냉혹한 정의.’

현재 태호가 가진 모든 상태이상 기술을 한번에 걸 수 있는 냉혹한 정의가 도망치려던 힐러 하나에게 작렬했다.

“으억!”

순식간에 힐러의 몸에 태호가 보유한 모든 상태이상기술이 중첩되었다.

힐러는 살아 보겠다고 도망쳐 마법사들의 한복판으로 들어갔고, 사방에 고통의 연쇄가 시작되었다.

“억! 어억!”

여기 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려올 무렵. 태호는 어둠의 땅을 사용했다.

‘어둠의 땅.’

이제 태호의 상태이상기는 모두 3중첩까지 가능하다. 그대로 사방에 쏟아지는 광역기술.

쏴아아아!

“이런 씨팔!”

간즈가 경악했다.

“이게 뭐야! 이런 미친 게임! 씨발 이게 말이 돼!”

고래고래 소리질러 봐야, 소용 없는 일이다. 태호는 그런 간즈의 이마에 지팡이를 가져다 댔다.

꾸욱-

자. 동영상 시점을 살짝 조절한다.

놈의 경악하는 얼굴, 그리고 부들부들 떠는 온 몸이 클로즈업 됐다.

‘폭사.’

콰과과광! 콰광!

콰과과광!

‘고통의 연쇄’ 가 아쉬운 점은, ‘어둠의 폭탄’을 전이시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콰과광! 쾅! 허나 대규모 범위 폭사가 이어진 사방에는 폭발은 대부분의 머더러들을 끔살시키기엔 충분했다.

“와아아아아!”

유저들의 함성소리와 함께 태호는 정면을 보았다. 남은 것은 총 다섯. 태호는 목을 좌우로 꺾으며 천천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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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사도?!]

[언노운, ‘엘 로스 던전에서의 혈전’ 승리.]

[뱀파이어즈 2기의 머더러진이 탈탈 털린 혈전의 결과... 언노운 압승!]

[언노운의 정체는?]

[머더러들이 남긴 전리품, 하나도 손 대지 않은 채 사라져...]

팬사이트며 유튜브며 이젠 대놓고 언노운을 추앙하기 시작했다. 흑마법사는 어느새 국민 직업 수준으로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생각보단 딜이 좋은 편은 아니네요.’ 나, ‘약간 애매한 수준이긴 한데..’ 정도의 의견은 딱히 힘을 발휘하지 않았다.

그 와중.

WOF 측에서 대형 기사 하나를 내보냈다.

[비공식적 일체감 100% 데이터 발견돼...]

일체감 100%!

그 불가능의 영역에 있던 경지가 발견됐다는 기사를 내보낸 것이다. 이는, WOF 측에서 100%라는 폐기 데이터에 오점을 찾아내지 못 했음을 의미했다.

[과연, 일체감 100%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버그나 시스템 오류가 아닌 '사실' !  WOF 측, 오류 데이터는 없었다고 밝혀...]

이 모든 것들이 얽히고 섥혀, 유저들이 수근대는 하나의 카더라가 있었다.

‘언노운이 사실은 일체감 100%의 주인공일 지도 모른다는 것!’

특히, 엘 로스 던전에서의 혈전을 직접 눈으로 본 유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리얼포스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더욱 들끓고 있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태호의 눈 앞에,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볼카노스의 힘이 50% 이상 돌아왔습니다.]

< 들끓는 인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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