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보시겠습니까? >
‘벌써 50%?’
태호는 가만히 앉아 볼카노스를 기다려 보았으나, 아직인 모양. 생각보다 파급력이 세서, 기대했던 100%를 금세 채울 수 있을 듯 했다.
‘응?’
그 사이, 유튜브 계정에 메일이 여러 개 날아와 있었다.
[산성전자 마케팅팀에서 연락드립니다.]
[KR GAMING에서 연락드립니다.]
국내에서 이름난 대기업쪽에서 스폰서 메일을 보내오고 있었다. 산성전자는 국내 스폰서로 치면 톱클래스로 쳐 주는 곳이다. KR게이밍은 국내 넘버원 통신산업체였고, 그 외 각종 프로게임단에서의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었다.
리얼포스의 랭커들에게 대기업 스폰이 날아드는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과거의 태호는 대기업 및 중견기업들의 스폰을 무수히 많이 받으며 게이머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돌아 보면, 돈을 위해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이해관계가 시작돼.’
이는, 게임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그룹에 속하게 되기 시작한 순간부터, 자유로운 게임 플레이에 제약이 걸린다.
‘딱히.’
이제 와서는 돈에 대해서 구애받을 필요도 없다. 태호는 이제 돈이란 것으로부터 완전히 초연해질 수 있는 상태였다.
리얼포스의 게임 속 사정이 제법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음은 이미 인지한 바 있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변하지 않을 미래의 고부가가치 아이템들은 널려 있었다.
일단 태호는 ‘엘 로스의 던전’에서 만든 영상을 김택환에게 보냈다.
그 뒤, 몸을 일으켰다.
* * *
부리나케 달린 유령표범이 도달한 곳은, 아젠티움이었다. 아젠티움에는 여정을 떠났던 드워프들이 돌아왔는지, 제법 생기가 살아나고 있었다.
입구를 지키던 드워프 하나가 태호에게 도끼를 겨누며 물었다.
“누구냐, 인간!”
“카이저입니다. 이 도시의 엑셀 님과 약속한 것을 지키러 왔습니다.”
“카이저?”
그가 의심 가득한 얼굴로 태호를 쳐다보다가, 옆의 드워프에게 이야기했다. 드워프가 들어가더니 곧 엑셀을 데리고 나왔다.
“오, 자네 왔는가.”
의심이 풀리고, 태호는 엑셀과 함께 아젠티움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무수히 많던 사체는 사라지고 부서진 기관들이 어느정도 수리가 돼 가고 있었다.
“좀 어떻습니까?”
“어떻기는... 죽을 맛이네.”
엑셀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는 대륙의 대도시들에게 물건을 납품하고 있지.”
대륙 각지에 퍼진 기초 상점 장비들이 대부분 드워프산이라는 설정은 알고 있었다.
“예.”
“충분한 철광석이 없다면, 일정을 맞출 수가 없을 걸세.”
태호는 고개를 까닥이며 대답했다.
“광물 창고가 어딥니까?”
“응?”
“철광석을 구해 왔습니다.”
“엉? 그 말이 진짜였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엑셀과 함께 창고로 향한 태호는, 인벤토리 창에서 철광석 1400개 가량을 모조리 쏟아냈다.
그것을 본 엑셀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세, 세상에... 이리도 많은 철광석을 단 며칠 사이에 캐 왔다는 말인가?”
“운이 좋았죠.”
과연.
창고 안은 어느새 철광석으로 꽉 차 있었다. 아마 저것 만으로도 일정 맞추기엔 충분할뿐더러, 심지어 쏠쏠하게 남을 것이다.
태호가 빤히 엑셀을 바라보자, 엑셀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고, 고맙네. 철광석을... 이 정도면 우리의 반년 치 할당량은 채우고도 남을 거야.”
[초과 달성!]
눈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퀘스트 완료]
[검은머리 드워프의 도시, 아젠티움]
[경험치 획득]
[평판 경험치 획득] 태호는 초과 달성이라는 뜻을 알고 있었다. 가끔, 퀘스트 완료에 개수가 많은 것들을 요구하는 게 있다. 요구한 NPC의 상황에 따라, 초과해서 많은 물건을 가져다 주면 드물게 떠오르는 요소였다.
“이리도 고마울 데가 있나...”
엑셀이 엉엉 울며 태호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사방의 드워프들이 그것을 보고 엑셀에게 달려와 자초지종을 물었다.
엑셀이 창고를 보여주며, 사정을 설명하자 드워프들의 얼굴에 그야말로 경외의 감정이 담겼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태호는 그들을 보며 씩 웃었다.
[검은머리 드워프들이 당신에게 신뢰를 가집니다.]
[검은머리 드워프들과의 평판은 현재 ‘신뢰’입니다.]
‘나쁘지 않군.’
평판을 한껏 올린 태호가 썩 만족해할 무렵, 엑셀이 재차 말을 이었다.
“자네라면 순수의 강철로 제대로 된 녀석을 만들어 줘야겠군.”
“음?”
“헉스 녀석에게는 채 알려주지 못한, 아젠티움 비전의 제조법이 있다네. 다만 문제는,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린다는 점이겠지. 물론 물건의 질은 보장하겠네만.”
시간은 큰 문제는 아니었다.
“헉스의 물건과 뭐가 다릅니까?”
“훨씬 더, 순수의 강철의 힘을 끌어낸다고 해야 할까.”
헉스가 만든 에픽보다 괜찮은 수준이라는 말일 터. 태호는 고개를 까닥였다.
“얼마나 걸릴까요?”
“약 일 주일이네. 괜찮겠는가?”
“나쁘지 않군요.”
그나저나.
드워프들은 에픽 아이템 만드는 것 정도가 끝인 건가? 태호는 엑셀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정도면 조금 조악한 느낌인데.’
가만히 생각하던 태호가, 돌아서려는 엑셀에게 물었다.
“혹시, 이 물건에 대해 아십니까?”
태호가 꺼낸 것은, 망가진 잡동사니 10개를 합쳐 만든 마력체였다.
“으응? 그건... 불완전한 마력체가 아닌가?”
“다룰 줄 아시는 지 궁금합니다.”
“당연하지.”
“한번 재련이 된 물건도요?”
“그 물건은 최소 두서 번은 재련이 가능할 걸세. 인간의 기술력으론 힘들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생각이 맞았다.
“다만... 지금 당장은 조금 힘들 듯 하구만.”
사방을 둘러본다. 아무래도 망가진 도시의 복구에 여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겠군요.”
태호는 그 자리에서, 어둠 기사단 네 명을 소환했다. 삽시간에 태호의 눈 앞에 네 명의 어둠 기사단이 나타나, 무릎을 꿇은 채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는 지금부터 이 도시의 재건을 돕는다.”
[분부대로.]
이는 나름대로의 고육지책이었다.
이 도시는 과거, 신노스의 공격이 있었다. 혼돈의 존재들이 이 곳의 위치를 기억하고 있을 테니, 이 녀석들을 풀어 놓고 일종의 보초병 역할을 시킬 생각이었다.
대미지를 입어 되돌아가기 전 까지는 이 곳에서 태호의 명령을 수행할 녀석들이었다.
“아, 아니 저들은 또 뭔가?”
“제 부하들입니다. 힘든 일이나 어려운 일은 모조리 쟤들 시키면 됩니다.”
“그, 그래도 되겠나?”
“그야 뭐 어려운 일은 아니죠. 그리고... 이 곳으로 한 번에 올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태호의 물음에, 엑셀은 옆의 드워프에게 뭐라 이야기를 했다. 드워프는 달려갔다가, 한 손에 양피지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남은 게 이것 하나 뿐일세. 괜찮나?”
“감사합니다.”
태호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덧붙였다.
“일 주일 뒤에 돌아오죠.”
그리고 막 돌아서려던 그 순간이었다.
샤아아악!
어느새 사방에서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태호는 직감적으로 볼카노스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좌우를 돌아보니, 어느새 드워프들은 보이지 않고 시커먼 공간 속에 홀로 남겨져 있는 느낌이었다.
화르륵-!
저 편, 마치 검은 불꽃처럼 머리카락이 일렁이는 한 남자가 천천히 태호에게 걸어와 섰다.
[나의 아이야, 현재 나의 힘이 급속도로 돌아오고 있다.] 태호는 그의 앞에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제 의도대로 되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나를 추종하는 모험가들이 대폭 늘어난 것은, 오롯이 네 덕이리라. 고맙게 생각한다.]
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 유저는 정말로 얼마 안 될 것이다. 태호는 씩 웃었다.
“별말씀을.”
[나는 네게 직접적인 가호를 내려 줄까 한다.]
“감사합니다.”
볼카노스의 손이 태호의 심장을 가리켰다. 곧, 시커먼 기운이 태호의 사방으로 몰려와 심장부에 스며들었다.
[패시브 스킬 : ‘볼카노스의 가호’를 획득했습니다.]
이름부터 심상치가 않다. 태호는 그 가호를 보며 씩 웃었다.
[허나, 네가 가져다 준 가치는 그 가호보다 더 큰 것. 바라는 것이 있느냐?]
태호는 빤히 그를 보았다.
‘보통의 신들과는 조금 다르군.’
볼카노스는 아마도 ‘인간을 좋아하는 신’ 의 축에 속할 것이다. 하긴, 생각해 보면 물의 여신 에테리얼도 인간을 좋아하는 신이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가진 흑마법사의 기술들을, 바꿔 주실 수 있습니까?”
[흐음...... 가능하다. 허나, 대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균형을 깨는 행위. 때문에, 대가를 받아 균형을 무마해야 한다.]
아무래도 기브앤 테이크를 말하는 듯 했다.
“제가 보유한 기술 ‘갈증’ 그리고 ‘체마교환’을 제물로 바치겠습니다.”
태호는 여지껏 생각해 왔던 것을 이야기했다.
제물에 대한 연구는 여지껏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 신들은 소환에 응할 때 ‘원하는 재물’ 이 있기 때문이다.
그 신들과 직접 거래를 하거나, 흥정을 하는 것은 그렇게 흔한 사례가 아니었다.
하지만 태호는 이번 생에서, 그 누구보다 신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래서 한번 던져 본 것이다.
[네가 가진 기술을 제물로 바치겠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가능하다.]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볼카노스는 태호를 보며 빙긋 웃었다.
[흥미로운 제안이구나. 바라는 기술은 무엇이냐?]
“주실 수 있는 것이 무엇이신지요?”
태호의 반문에, 볼카노스는 양 손을 활짝 펼쳤다.
‘뭐야.’
태호는 퍽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볼카노스가 가진 스킬은, 하나같이 고만고만한 녀석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그것이 네 제물의 가치인 것.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그 이상을 내어주는 것은 균형에 위배가 된다.]
요컨대, 특수한 상황이 된다면 가능하다는 말이다.
태호는 그 부분을 기억해두기로 했다.
가만히 생각하던 태호가 그에게 제안을 했다.
“보유한 스킬 하나를 강화시켜 주십시오.”
[대가가 모자라다.]
그렇다면.
“두 개 기술에, 제가 가진 ‘생기 흡수’ 도 가져가시고, 제가 보유한 ‘중독’을 강화시켜 주십시오.”
태호는 망설임 없이 생기 흡수도 넘겨주었다. 지속 대미지가 터무니없이 약하고, 생명력 회복에만 치중돼 있는 스킬이었으니 별 미련도 없다.
[흐음... 그것이면 되었느냐?]
“예.”
볼카노스는 태호에게 손을 뻗어, 재차 가호 비스무리한 상황처럼 어둠을 흘려 넣었다. [‘중독’ 스킬이 ‘강화된 중독’ 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중독의 스킬 대미지가 100% 상승합니다!]
중독이 이제 대미지 두 배의 효과를 받을 것이다. 태호는 계획대로 돼 가는 것이 못내 기뻐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앞선 세 개의 스킬은 엄밀히 따져 큰 의미부여가 힘든 스킬들이었다. 도통 쓸 일이 없다.
하지만, 중독은 다르다.
이 게임을 시작한 이래 중독보다 더 많이 사용한 스킬은 없었다. 중독이 100% 상승했으니, 태호의 광역중독은 이미 학살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볼카노스에게서는 하나 더 얻어낼 것이 있다.
“그리고.”
[음?]
“볼카노스님께 한 가지 더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유익할 겁니다. 혼돈의 힘과 관련된 이야기니까요.”
볼카노스의 시선이 태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몸을 꿰뚫을 것 같은 시선을 그대로 받아내며, 태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호오... 한번 말 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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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새로 얻은 메인 퀘스트 같이 깨실 분?]
흑마법사 게시판은 새벽부터 난리가 나 있었다.
[정화의 샘 원정대 모집합니다! 흑마법사 15명 이미 대기중!]
다름아닌, 새벽 즈음 갑자기 모든 흑마법사들에게 떠오른 ‘메인 퀘스트’ 때문이었다.
다른 유저들에겐 떠오르지 않았지만 오직 흑마법사에게만 떠오른 메인 퀘스트!
바로, ‘정화의 샘’ 이라는 메인 퀘스트였다.
정화의 샘은 대륙 남서부에 위치한 요정의 샘에서 떠야 하는데, 그곳에는 레벨 100대 몬스터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때문에 저레벨이 대다수인 흑마법사들이 파티를 짜 원정대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정화의 샘 원정대 모집합니다!]
게시글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근데, 그게 무슨 퀘래요? 목적이 뭐임?]
[몰라요. 샘 떠 본 사람 말로는, 대륙 중앙에 죽음의 땅 정화를 시킨다는데? 연계 퀘스트라 아직 최종보상은 모름.]
모든 흑마법사들이 한껏 꿈에 부풀었다.
독자적 메인 퀘스트!
리얼포스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는다면, 당연히 혹할 요소가 흑마법사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다른 직업군의 유저들이 시샘과 질투어린 소리를 내는 것도 당연했다.
[이거 언노운이 무슨 메인 퀘 끝내서 직업군 전체에 주어지는 거 아님?]
일리 있는 분석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흑마법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더더욱 늘어난 것이 사실이었다.
< 들어보시겠습니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