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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전설-69화 (69/194)

< 배수의 무서움 >

[흐음... 그렇겠군. 그럼, 너와 네 동료에게 부탁을 하나 해 볼까.]

가이아의 말과 함께 태호와 라간의 눈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7급 퀘스트]

[서브 퀘스트]

[땅의 기운의 정수 수집]

[:땅의 정수를 모아, 가이아에게 바치기]

[보상 : ???]

땅의 기운의 정수.

태호는 잠깐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몇 군데 포인트를 알고 있었다.

“아, 그리고.”

[그래.]

“카실론이란 사람을 아십니까?”

태호의 물음에 가이아는 빙긋 웃었다. 그녀가 알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태호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가 네메데스겠지요?”

네메데스.

-네메데스라면 알 지도 모르겠다. 혹여, 네가 그의 제사장을 찾을 수 있다면... 네가 바라는 답의 절반 정도는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는 우리 중에서도 특별하거든.

과거, 물의 여신 에테리얼이 말 한 신. 태호는 이쯤 되자, 카실론이 네메데스라는 의혹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태호가 시계탑에서 본 과거의 장면들 중, 자신을 회귀시켜 준 여신 ‘아우슈리네’ 와 대화를 하던 남자를 떠올렸다.

‘어쩌면 그가 네메데스, 즉 카실론.’

그녀는 태호를 보며 나지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단다.]

‘역시나.’

[허나 어디에 있는지는 나 역시 알 방법이 없구나. 그는, 우리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니까.]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천계를 거스를 수 있는 이 중 하나라는 의미지. 그 이상은 금제가 걸려 있단다.]

이 정도겠군.

태호는 고개를 까닥이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라간이 앞으로 나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라간은 품 속에서 뭔가의 씨앗으로 보이는 큼직한 것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네 물건은 잘 받았다. 네게는 나의 가호 하나를 내려 주도록 하마.]

“옛서!”

라간이 쾌활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가호가 내려졌다. 이제 정말로 그녀에게는 남은 신력이 없어 보였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로, 그녀가 말했다.

[다음에 나를 부를 땐, 땅 기운의 정수를... 바치면 된다.]

샤라락!

그리고 사라졌다. 태호는 라간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서로에게 남는 것이 많은 거래였다.

* * *

“어디로 가야 해 이제?”

태호의 물음에 라간이 대답했다.

“음, 난 이제 남부 샤미드 수림. 이거 메인 퀘스트가 꽤 복잡하고 길어서 귀찮은걸.”

라간이 어깨를 으쓱였다.

“목적은?”

“그, 그쪽에 자생하는 특수한 식물을 구해서 엘프의 숲으로 가기.” 무엇을 위함인지는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우선 거기 끝내고 연락 줘.”

“오케이. 아, 그리고 형님. 좀아까 말했던 건, 조만간 시작해도 되지?”

라이언 앞마당 유저들 육성계획을 말 하는 듯 했다.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성사되면 연락 주고.”

“옛서!”

“아.”

태호는 마침 그에게 해 줄 말을 떠올렸다.

“샤미드 수림에, 괜찮은 탈것 하나가 있을 거야. 잘 기억해 둬. 생김새는...”

그것은 샤미드 수림에 서식하는 은빛 늑대였다. 녀석은 잊혀진 왕국이 등장하면서 지형이 바뀐 뒤부터 나타나며, 꽤 준수한 성능을 자랑하는 지상탈것이었다.

“......”

이야기를 전달해 들은 라간의 두 눈이 묘해졌다. 그는 태호를 빤히 보다가, 팔짱을 낀 채 뭔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형님은, 팀 아스라이의 운영진 같은 거야?”

“아니.”

“그럼 보통 유저?”

“그런 셈이지?”

“진짜 그냥 유저?”

그의 물음에 태호는 가만히 생각했다. 빤히 라간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사연이 있지만, 뭐 일단은 보통 유저라고 봐도 돼.”

“무슨 사연인지 아직 말 해 주긴 힘들겠지?”

“흠... 그렇지. 들어도 납득할 수 있을 진 모르겠다.”

태호의 말에 라간은 대충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형님. 언제든 편해지면 얘기 해 줘도 돼. 그럼 연락 할게!”

라간이 빠르게 스크롤을 찢은 뒤 사라졌다.

라간이 어떤 추측을 하든, 태호가 회귀자라는 것 까지 추측했을 리는 없다.

태호는 어쩐지 쓴웃음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어둠의 추적자’를 발동시켰다.

‘아직도?’

놈들이 아직도 대륙 중앙에 꽁박혀 있었다. 이쯤 되면 의구심이 들었다.

‘뭘 하는 거지?’

지금 이 시각에도 흑마법사 유저들이 정화의 샘에서 샘물을 길어다, 죽음의 땅을 정화해 나가고 있었다. 그쪽 반응을 잠깐 살펴볼까.

[죽음의 땅 정화 퀘스트 원정대 모집!]

[쪼렙들끼리 가면 죽으니까, 최소 50명 파티씩 해서 갑시다!]

퀘스트 진행자들이 올린 스크린샷 등으로 보면, 타락한 몬스터들이 유저들을 덮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건 당연한 일.

태호가 궁금한 건, 왜 대장군 신노스와 장군 키탄카가 중앙에 쳐박혀 있느냐다. 유저들을 썰어도 진작 썰었어야 하는데, 제스쳐가 갈수록 늦는 것이 어째 수상쩍었다.

일단, 아무리 늦어도 조만간에 제스쳐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제는 아젠티움으로 향할 시간이었다.

태호는 망설임 없이 인벤토리 창에서 아젠티움 행 스크롤을 찢었다.

찌직!

화아악!

태호의 몸이 하얀 빛에 휘감겨 사라지고, 아젠티움 한복판에서 등장했다.

깡- 깡-

요란한 망치질 소리와, 돌아온 활기가 새삼 느껴지고 있었다. 태호가 좌우를 두리번거리자, 저 편에서 열심히 자재를 나르고 보수공사에 열을 올리는 어둠 기사단 네 명이 보였다.

과연.

아젠티움은 확실히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가는 것 같았다. 무너진 건물들은 대부분 수리가 끝나고, 철광석 제련과 무기 제조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 카이저! 왔는가!”

저 편에서 엑셀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태호가 고개를 살짝 숙이자 그가 태호의 양 손을 잡은 채 환히 웃었다.

“그간 우리는 아젠티움 복구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네. 그리고, 이제 대부분 복구를 했지.”

“다행이군요.”

“자네의 네 부하들이 아주 큰 몫을 했네. 저들은 단 한시도 쉬는 일 없이 묵묵히 일만 하더군... 혹여 묻는데, 사람이 아닌 겐가?”

태호는 빙긋 웃었다.

“예. 정령 비슷한 존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아, 역시 그랬군.”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는 듯 엑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태호에게 재차 입을 열었다.

“자, 내 자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장비가 무엇인지 깊은 생각을 했다네. 그리고 자네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지.”

태호도 눈빛이 바뀌어 물었다.

“어떤 겁니까?” 과거 태호는 아젠티움을 떠나기 전, 엑셀에게 순수의 강철 100개를 주고 갔었다.

그는 일 주일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는데, 그보다 더 뒤에 태호가 도착한 셈이었다. 아무튼, 그가 무엇을 결정했는지 새삼 기대가 되는 태호였다.

엑셀은 태호에게, 아이템 하나를 꺼내 주었다.

“보게!”

그것의 생김새는 마치 단검 같았다. 단검이면서도 성스러운 기운이 물씬 풍겨나는 것이, 심상치가 않다.

꿀꺽!

태호가 침을 꿀꺽 삼키며 아이템을 받아 들고, 옵션을 살펴보았다.

[등급 : 에픽]

[종류 : 무기(보조장비)]

[이름 : 순수의 보조자]

[순수의 강철을 이용해, 드워프만큼 다양한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종족은 없을 거에요. 가끔 그들은 재료가 가진 본질을 꿰뚫어 보거든요.-초보 학자, 카실론]

[이 장비는 본장비에 어떤 것이 있어도 보조장비로 착용할 수 있습니다.]

[본장비의 마법 공격력을 고스란히 부여받습니다.]

[보유한 지능 스텟x10의 마법 공격력이 추가로 부여됩니다.]

“......”

입이 쩍 벌어지는 옵션이었다. 태호는 자신이 뭘 잘못 봤나 싶어, 다시 보았지만 실제상황이었다.

‘맙소사.’

지금 태호가 보유하고 있는 것은, 마법 공격력계 최강사기템인 ‘군자의 지팡이’ 다. 단일 부위로 마법공격력을 근 5천 가까이 올려 주는 정신나간 깡딜(다른 옵션 없이 공격력만 올려주는) 템인 것이다.

허나, 지금 그 주문력을 두 배로 뻥튀기 시켜주는 보조장비까지 얻게 된 셈인 것.

‘이 정도면 레이드 보스한테도 비벼 볼 만 할 것 같은데?’

어째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태호가 가만히 서서 눈을 깜빡거리자, 엑셀이 살짝 초조해진 듯 태호에게 물었다.

“어, 호, 혹시 이게 마음에 들지 않나? 내 일주일간 식음을 전폐한 채 몰두한 것인데...”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없다. 태호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마음에 드는군요.”

“아, 하하하! 그런가!”

어쩐지 꽤나 뿌듯해진 얼굴로 엑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호는 그 아이템을 요모 조모 살펴 보았다.

문득 기묘한 생각이 들었다.

‘이거, 왜 월드제한 다 썼다고 메시지가 안뜨지?’

눈을 가늘게 뜬 태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순수의 보조자’를 손에 쥘 무렵이었다.

[검은 머리 드워프족의 월드 제한 제작 아이템입니다.]

[앞으로 ‘1’ 개의 아이템이 추가 제작 가능하며, 그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군.’

아무래도 노펜시아의 드워프인 헉스에게 만들 수 있는게 월드제한 에픽이 2개.

그리고 이 드워프 부족에게서 만들 수 있는 월드제한 에픽이2개인 모양.

‘그럼 앞으로 최소 두 개는 더 만들 수 있겠어.’

헉스에게 하나, 그리고 아젠티움에서 하나. 어쩐지 태호는 꽤나 마음이 놓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픽이 많은 것은 절대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에픽 아이템은 그 어떤 것 보다 효율적이고 뛰어난 거래품이었다. 유저들 사이에서야 수십억 수백억을 호가할 아이템이겠지만, 태호에게 있어서는 신들과의 훌륭한 교섭품이다.

우선.

이제 태호는 아젠티움의 구석의 벤치에 앉아, 이번에 얻은 아이템들을 하나 하나 착용해 보기 시작했다.

먼저, 가이아의 수호다.

가이아의 수호는 마치 브로치처럼 생겼다. 그것을 만지작거리다, 착용하자.

[에픽등급 아이템, ‘가이아의 수호’를 사용하시겠습니까?]

[본 아이템은 사용 시 캐릭터에 착용 귀속되며, 거래가 불가능합니다.]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 사기적인 성능이 현찰로 바꾸면 얼마나 갈까? 수백 억? 하지만 태호에게 있어서는, 그저 강해지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태호는 문득 자신이, 돈이라는 것에 있어 굉장히 초연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네.’

과거에는 그토록 혈안이 되어 벌었던 돈. 그것에 초연해지는 기분은, 어쩐지 그렇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

마치, 인간이 아니게 된 기분 또한 들었다. 이내, 태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예.”

[가이아의 수호가 발동 중입니다.]

이제 태호에게는 가이아의 수호라는 장착귀속템까지 합세하였다.

동시에. [에픽 콜렉트]

[현재 보유한 에픽 아이템은 총 9종입니다.]

[3단계 추가 대미지가 개방되었습니다.]

[현재 추가 대미지는 100%입니다.]

태호의 에픽 콜렉트가 9종을 달성했다. 추가 대미지는 100%이며, 과거보다 약 2배 이상 강해졌음은 확실했다. 어쩐지 들끓는 힘을 느끼며,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씩 웃었다.

“끝내주네.”

[보유 패시브 스킬 ‘에픽 콜렉트’ 의 추가 조건이 개방되었습니다.]

태호는 그 조건을 살펴보았다.

[추가 개방 조건 : 미지의 대륙을 찾아, 그 곳에 숨겨져 있는 에픽 콜렉트의 유적 찾기.]

‘드디어 여기까진 왔군.’

이것은 신대륙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이 조건을 클리어하면, 에픽 콜렉트는 최대 24개의 에픽까지 수용하는 추가 대미지와 추가 보상을 제시한다.

‘일단 이건 그렇다 치고.’

태호는 아젠티움을 한동안 둘러보다가, 어둠의 추적자를 다시 띄운 뒤 두 눈에 이채를 띄었다.

‘어라?’

삑! 삑!

대륙 정 중앙에 꽁 쳐박혀서 며칠이고 가만히 있던 두 녀석이 급격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신노스.

신노스가 움직인 곳은 대륙 북쪽 끝자락이다. 놈은 빠른 속도로 대륙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하지만 장군급 키탄카는, 남하하고 있었다. 태호는 씩 웃으며 품 속에서 스크롤을 꺼내 들었다.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었는지, 한번 들어 보자고.’

마침 태호는 이제 첫 번째로 사냥했던 ‘샤반타’를 상대할 때 보다, 서너 배 이상은 강해졌다.

말로는 크게 와닿지 않지만, '몇 배' 라는 개념은 정말 끔찍할 정도의 무력 변화가 있었다는 말.

키탄카에게 배수의 무서움을 맛보여 줄 생각이었다.

< 배수의 무서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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