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쭙고 싶은 것 >
우선.
당장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현재 태호는 가이아가 부여한 퀘스트를 가지고 있다.
[7급 퀘스트]
[서브 퀘스트]
[땅의 기운의 정수 수집]
[:땅의 정수를 모아, 가이아에게 바치기]
[보상 : ???]
이는 필연적으로 가이아와 밀접한 관계가 될 퀘스트. 우선 당장 직면한 문제부터 해결할 생각이었다.
땅의 기운의 정수.
이것을 구하는 것은, 과거에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이유는, 이 정수라는 것은 ‘잊혀진 왕국’ 확장팩이 열림과 동시에 특수한 제조법에 사용되는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바로, 스킬북이다.
땅 계열의 스킬북을 만드는 데 소모가 되며,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등급은 당연하게도 에픽이다. 물론 에픽을 만들기 위해서는 굉장한 노력과 시간을 갈아 넣어야겠지만.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구해야 하느냐?
바로, 평판작업을 통해서다. 땅 기운의 비밀부족들이 대륙 각지에 숨어 있는데, 그들의 부족평판을 확고한 신뢰까지 올려 보상으로 받는 방법 뿐이었다.
‘금세 해치울 수 있겠군.’
현재의 태호는 ‘가이아의 수호’ 덕분에 모든 땅 부족과의 관계가 ‘확고한 신뢰’ 의 상태.
가장 먼저 들려야 할 곳은 역시나 엘 로스의 던전이었다.
* * *
로키의 ‘속임수’를 통해 엘로스의 던전에 들어간 태호는 곧바로 던전의 끝까지 달렸다.
사방에는 여전히 유저가 많았다. 아무래도 태호의 크레이지도그 척살이 시작된 이래, 유저가 더욱 늘었다. 이제와서는 대표적인 국민던전이 되어 버린 것이다.
던전의 끝자락.
[Lv. 200]
[정예]
[엘 로스의 문지기]
문지기가 태호를 보더니 물었다.
[다시 돌아왔군, 자격을 갖춘 이여.]
“그래. 너와 한 약속대로, 엘 로스의 가면은 가이아님께 바쳤다.”
[......그런가. 약속을 지켜 주어 고맙다.]
쿠구구궁- 쿠궁!
그가 육중한 몸을 움직였다. 사방에서 모래가 떨어지며, 그가 살짝 허리를 숙여 태호에게 인사했다. 이 거대한 괴물에게 인사를 받은 이가 얼마나 될까, 라는 뜬금없는 생각을 하며 태호가 재차 입을 열었다.
“증거로, 이걸 보여주지.”
태호는 장착귀속중인 가이아의 수호를 슬쩍 보여주었다. 장착귀속중인 물건은 타인의 손에 양도되지 않기에, 그저 보여주는 것만 가능하다.
[가이아 님의 수호...! 그렇군. 그분께서도 너를 인정하였다는 말. 약속을 지켰음을 확인했다.]
문지기는 매우 만족한 얼굴이었다. 태호는 팔짱을 낀 채 그에게 물었다.
“이걸 바치면, 네게는 뭐가 좋은 거야?”
[나는 생성되었을 그 시점부터 내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였다는 만족감을 얻겠지.]
“그렇군. 아, 부탁이 하나 있다.”
[부탁?]
“그래. 땅 기운의 정수를 구하고 있다. 가이아 님의 신력을 회복시키기 위해선 그게 필요해.”
[땅의 기운의 정수라... 그렇군.]
쿠구구구궁-! 문지기는 두말 할 것 없다는 듯 자신의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그리고, 사방에 포진해 있던 토병들에게 손을 뻗었다.
지이잉-!
[Lv. 130]
[고대의 토병(土兵)]
토병들은 저마다 뒤를 돌더니, 문지기에게 고개를 숙였다. 곧, 그들의 온 몸이 진흙 덩어리처럼 뭉개져 내렸다. 진흙 덩어리들은 곧 하나의 구슬처럼 뭉쳐, 문지기의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이제 가이아 님께 가면을 바쳤으니, 우리의 수호병들은 필요하지 않을 터.]
문지기가 그것을 태호에게 내밀었다.
[받아라.]
태호는 그것들을 받아 들었다.
[땅의 기운의 정수를 140개 획득하였습니다.]
140개나?
태호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깜빡였다. 문지기는 그런 태호를 빤히 내려다 보았다. 문득, 그가 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나 역시 필요하지 않을 터.]
쿠구구구궁-!
문지기는 천천히 무너져 내리며 거대한 구슬로 변했다. 병사들의 구슬이 주먹 만 하다면, 문지기의 구슬은 그것의 열 배는 족히 넘을 크기였다.
[약속을 훌륭히 지켜 준 그대에게 내어 주겠다.]
“......”
문득, 태호는 어쩐지 찡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어느 정도도 가늠이 가지 않았다.
태어난 목적!
그것을 수행하고 난 뒤, 죽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확고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존재.
“가면을 가이아에게 바치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 거냐?”
[당연하다.]
그 확고함에서, 태호는 어쩐지 자신을 돌아보게 돼 버린 것이다.
“......”
문득 자신 역시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태호는, 회귀를 했다. 회귀한 후, 자신의 삶은 오롯이 미래를 위한 대비에 소모돼 가고 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론, 판타로스만 막을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런가.”
하지만, 태호는 그 모든 것을 이룬 뒤 적어도 삶의 모든 목표를 이뤄냈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지금은, 판타로스를 막은 이후 더 빛나는 미래를 위해서이다.
“고맙게 받으마.”
[최상급 땅의 기운의 정수를 획득했습니다.]
이 녀석은 최상급 땅의 기운의 정수를 주었다. 이것의 용도는 불분명했다. 적어도 과거의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던 아이템이었다.
허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땅의 기운의 정수보다 더 대단한 물건을 만들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단품으로 에픽 제작에 소모될 지도.
이런 저런 가능성을 남긴 채, 태호는 귀환 스크롤을 찢었다.
* * *
땅의 기운의 정수 140개를 모았지만, 태호는 기왕이면 조금 더 모아 갈 생각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초과 보상에 대한 건 때문이다.
태호는 아젠티움, 드워프들의 도시에 철광석을 초과 보상으로 주며 이득을 취한 바 있었다. 그 대상이 신이라면, 더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당연지사.
두 번째로 향한 곳은, 대륙 중동부의 그리 넓지 않은 습지였다. 이 곳에 사는 부족 이름은 ‘진흙거인’ 일족.
[어서 오게... 친구여...]
진흙거인 일족의 부족장이 태호를 맞았다.
과거에는 그다지 임팩트 있는 곳은 아니어서 유저들의 발길이 뜸했지만, 땅의 기운의 정수를 얻을 수 있는 평판지라는 게 밝혀지며 유저들의 발길이 끊이는 날이 없던 인기지역이었다.
진흙거인들은 이름답게 진흙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인간형 괴물들이었다. 딱히 유저를 선공하지도 않고, 보통은 습지 속에 숨어 있기에 발견하기도 쉽지가 않았던 녀석.
태호는 그들에게서도 땅 기운의 정수를 50개정도 얻었다.
그 뒤, 대륙 각지를 돌아다니며 이것 저것 수집해 나가다 보니 어느새 정수는 300여개에 도달해 있었다.
‘확실히.’ 확실히 회귀자라는 특전은 어마어마한 장점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지역을 찾아다니는 데에만 며칠 이상이 걸릴 정도로 리얼포스의 대륙은 넓고 광활하다.
허나 태호는 초보자 마을 이동 스크롤을 통해, 대륙 각지를 빠르게 이동하며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는, 순전히 맵 전체를 빠삭하게 알고 있는 기억력 덕분이었다.
‘조금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아.’
이는 최근 느낀 감정이었다.
장군급을 잡으며 현실의 신체가 점점 더 강화되고, 비현실적인 능력들도 태호의 소유가 되었다.
기억력이 명확해지는 것은, 그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솔직히 아무리 태호가 대단해도 10년이 훌쩍 넘은 과거의 기억을 이토록 명확히 회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보통 인간들은 그렇다는 말.
하지만 태호는 점점 더, 과거 누볐던 리얼포스의 대륙 방방곳곳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과거에 본 바 있던 풍경이나 정보 등이 사진으로 찍은 듯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아무래도 장군들을 잡으며 태호의 몸이 변했듯, 기억력과 정신적 탄력성이 굉장히 늘어났다는 체감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땅의 기운의 정수를 300개 모은 뒤.
태호는 망설임 없이 가이아를 찾았다. 정수 하나를 제단에 놓자, 가이아가 나타났다.
[음... 너는?]
가이아는 살짝 놀란 눈치였다.
[설마하니, 벌써 땅의 기운의 정수를 모아 온 것이냐?]
“예.”
태호는 고개를 까닥이며 대답했다. 가이아의 얼굴에 이채가 띄었다.
[대단하구나. 쉬운 일은 아니었을지언대...]
“우선, 받으십시오.”
태호는 300개의 정수가 있지만, 애초부터 전부 다 줄 생각은 없다.
먼저, 50개를 내밀었다.
정수를 본 가이아가 환하게 웃었다.
[고맙구나.]
정수는 그녀의 몸으로 빨려들 듯 사라졌다. 이내, 그녀의 전신에서 퍼져 나오는 기운이 조금 더 강력해졌다. 창백하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피부에 활기가 들어찼다.
[하아... 이제야 조금 살 것 같구나.]
아직 부족한 것 같다. 태호는 그녀를 빤히 보며 입을 열었다.
“정말 어려운 일이더군요. 대륙 각지에 퍼져 있는 땅의 일족들을 찾아내는 것에 큰 힘을 쏟아야 했으니까요.”
가이아의 얼굴에 조금 미안한 기색이 어렸다.
[그렇구나... 고생을 짐작할 만 하다.]
태호는 인벤토리 창에서 50개를 더 내밀었다.
“부족하실 듯 하여, 조금 더 드리겠습니다.”
가이아가 낼름 그것도 먹어 치웠다.
화아악!
전신의 광채가 더욱 강해졌다. 문득, 그녀의 등 뒤에 날개 같은 발광체가 하나 둘 생겨나는 것이 보였다.
‘호오.’
그녀는 몸을 한번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심지어 전 재산과 가진 인맥을 모두 동원해야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대륙이 원체 넓어야 말이죠.”
태호가 투덜거리자, 그녀의 얼굴에 미안함이 더 커졌다.
[말재간이 발동 중입니다.]
로키의 권능 중 하나, 말재간이 발동되고 있었다. 가이아는 곰곰이 생각하다 물었다.
[내 네게 걸맞는 보상을 해 줄까 한다. 무엇을 원하느냐?]
태호가 입을 열었다.
“당신의 추종자들에게, 신력을 이용한 거대한 약속 하나를 내려 주십시오.”
[흐음?]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힘들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의 신력을 동원하려면, 힘이 모자른데...]
태호는 50개를 더 내밀었다.
“이것이 제가 가진 모두입니다.”
실은 150개가 더 남아 있지만, 일부러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가이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탁을 간신히 충족할 정도의 신력은 되겠구나.]
그녀의 얼굴에 약간의 망설임이 남아 있었다. 아무래도 모든 신력을 소모해야 하는 일이라, 갈등이 이는 모양이었다.
[이유는?]
“가이아님께서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울크랜드에 대장군 신노스가 있습니다.”
[......!]
가이아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그녀는 적잖이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이다가 반문했다.
[신노스가...? 운명의 때는 아직 먼 미래일 지언대...]
“예. 신노스가 있습니다. 놈의 부하인 카반타 역시 등장했으며, 저는 얼마 전 그 놈을 잡아냈습니다. 그리고 신노스를 막아내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혼돈의 존재들과 싸우기 위해 힘을 모으는 중입니다.”
[......]
“가이아 님께 기꺼이 제 전 재산과 노력을 털어 정수를 바치는 것은, 놈을 조금 더 신속하게 해치우기 위함이죠. 이대로 놔 두면, 힘을 모조리 회복해 대륙은 금세 멸망할 겁니다.”
[말재간이 발동중입니다.]
가이아는 망설이던 얼굴에 확신을 띄곤,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많은 신의 가호를 받으며, 그중 볼카노스의 총애를 받는 아이. 네 부탁을 들어 주마.]
태호는 그런 가이아에게 퀘스트의 내용을 이야기해 주었다. 가이아는 가진 모든 신력을 동원하더니, 금세 죽어가는 얼굴로 변해 버렸다.
[으음... 이제는 신력이... 거의 다 떨어져 가는구나.]
150개 정도면 충분하군.
태호는 그 부분을 체크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정수가 다시 필요하시겠죠?”
[그렇구나. 네 부탁은 이것으로 끝인 게냐?]
“그렇습니다. 다시 정수를 구해, 가이아 님의 신력을 충원해 드리겠습니다.”
태호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고 있으마.]
[퀘스트 완료.]
[땅의 기운의 정수 수집]
[경험치 획득]
[레벨이 올랐습니다.]
가이아가 초췌한 얼굴로 덧붙였다.
[다음에 내게 정수를 바친다면, 네가 혼돈의 힘과 겨룰 때 도움이 될 만 한 것들을 고려해 보도록 하마.]
태호는 속으로 씩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일단 가이아는 포섭 완료다.
대충 신들과의 교섭 포인트를 알았으니, 다른 신들과의 교섭 때 고려해 보면 될 듯 싶었다.
"아,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제 다른 속성의 신들의 위치를 알아 볼 차례다.
< 여쭙고 싶은 것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