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딸의 계약자가 너냐? >
“이번 확장팩 이후, 동대륙 최악의 던전 최초 공략에 도전하는 심경이 어떤가요?”
노블레스 길드의 수장, 마르코는 태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최선을 다 하여 준비했으니, 준비한 만큼의 결과만 얻어가고 싶습니다.”
이 곳은 노펜시아.
노펜시아에 사람들이 가득 밀집해 있었다. 그들 한가운데에 아름다운 커스터마이징의 여성과, 열 명의 팀원이 서서 인터뷰를 나누고 있었다.
여자는 현재 지상파 게임TV의 유명 리포터, 박하늘이었다.
리포터가 재차 말했다.
“이는 리얼포스 최초의 PPV(Pay Per View-유료 방송) 레이드 중계인데요. 굉장히 많은 유저들의 기대를 받고 있거든요. 공략할 던전에 대한 소개를 짤막하게 한번 부탁드려도 될까요?”
마르코가 고개를 까닥였다.
“저희가 이번에 공략할 던전은, 동대륙의 신규 던전 ‘카론 호수’입니다. 전체적으로 250레벨대의 쫄 구간과, 260레벨의 중간보스 둘, 그리고 280레벨의 보스가 존재합니다.”
“현재 노블레스 길드의 레이드팀은 리얼포스의 레벨 랭킹 상위권에 들어 있을 정도로 높은 레벨들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레벨 공개가 가능한지요?”
“당연히. 저는 현재 193레벨, 그리고 제 팀들 역시 180~190레벨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와!”
리포터가 감탄한 얼굴을 했다.
“길드마스터 마르코 님은 현재 레벨랭킹 4위,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레벨랭킹 30위 안에 멤버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현재 ‘카론 호수’ 는 보통의 던전보다 상위급 던전인데요.”
“그렇습니다.”
마르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이는 확장팩이 출시되며 등장한,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던전입니다. 실제로 던전에 입장하게 되면 ‘레어 던전’ 이라는 문구가 뜹니다. 드랍되는 재료나, 각종 아이템들도 상위급이고요. 몬스터들은 표기된 레벨보다 강하며, 일반 쫄 구간에도 ‘정예’ 가 포함돼 있습니다.”
마르코가 말을 이었다.
“또한, 많은 유저분들이 예상하셨듯 ‘레어 던전’ 에서는 리얼포스의 기존 아이템 등급인 ‘유니크’ 윗단계의 아이템이 드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니, 거의 확실시 된다고 봐야겠군요.”
잊혀진 왕국이 출시된 이후, 정말 드물게 ‘레전더리’ 등급의 아이템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에픽아이템이라는 종결단계 아이템이 물론 있지만, 매우 극소수라는 것을 다들 아실 겁니다. 현재 리얼포스 각지의 ‘필드보스’ 들이 하나 둘 쓰러지며, 레전더리를 떨구기 시작했습니다. 이 던전 역시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 후로 이런 저런 인터뷰가 이어졌다.
인터뷰의 막바지에, 마르코가 씩 웃었다.
“현재, 많은 직업군이 새로운 ‘메인 퀘스트’를 부여받고 잊혀진 왕국의 최초공략 준비에 들어가는 중이라 들었습니다. 저희 노블레스는, 잊혀진 왕국의 최초공략 타이틀 역시 거머쥘 생각입니다. 이번 PPV,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네! 여기까지 노블레스의 길드마스터, 마르코 님의 인터뷰였습니다! 리얼포스 사상 첫 PPV! 많은 시청 부탁드리며, 시청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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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태호는 웹사트를 통해 생중계를 보다가 눈을 깜빡였다.
“많이 올렸네.”
마르코가 그새 레벨을 많이 올렸다. 과거, 노펜시아에서 태호는 마르코에게 비밀 던전의 위치 하나를 가르쳐 준 바 있었다. 예상대로 그는 팀원들과 함께 빠르게 성장한 듯 하다.
‘카론 호수라...’
마르코의 말대로 현재 ‘레어 던전’ 이 등장한 상태였다. 이는, 태호가 목표로 하는 ‘마력의 결정체’를 떨구는 잊혀진 왕국 이후의 추가 컨탠츠였다.
추가 확장팩이 발매될수록, 던전 등급이 늘어난다.
예를 들어, ‘니힐럼’ 의 불마법사가 광역누커 세팅을 유행시킨 적이 있다.
그 때는 두 번째 확장팩, ‘혼돈의 좌’ 때 등장한 유니크급 던전 ‘살라딘의 황폐한 사원’ 때였다.
이 던전 등급은 ‘레전더리’ 급까지 있는데, 역시나 던전의 최고 상위에는 ‘레이드’ 가 있었다.
정확히 말해, 레이드 아랫단계의 던전이 점점 늘어나며 유저들의 장비 파밍(고등급의 장비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수준을 늘리기 위한 수순이었다.
돌아와서.
여태까지 태호는 굳이 레어 던전을 돈 적이 없다. 아니, 그렇다기 보단 돌 시간이 딱히 없었다.
솔직히 말 해, 지금의 태호는 몸이 두세 개면 딱 좋을 정도로 바쁘게 게임을 진행 중이었다. 그 와중에도 피곤함이나 버거움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의 신체 강화가 주효한 듯 싶었다.
어느새 새해.
2021년의 새해가 밝았다.
태호는 일부러 제야의 종소리도 듣지 않았다. 솔직히 말 해서, 태호는 제야의 종소리가 아주 질색이었다.
그 종소리와 함께 현실로 튀어나왔던 판타로스가 자꾸만 생각나서다. 그 재앙, 끔찍했던 회색 빛, 그리고 악몽의 연속.
피로 피를 씻던 그 지옥같은 세계.
“......”
태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그 기억을 날려 보냈다.
아무튼.
카론 호수는 본래 태호의 목표지역 중 하나였다. 이유는 바로, ‘물의 기운의 정수’ 때문이다.
땅의 기운의 정수를 구하는 것은 쉬웠다. 땅 속성 존재들에게 무조건 평판 맥스가 찍혀 있는 태호에겐, 굳이 사냥을 할 필요가 없었다.
허나 물은 다르다.
‘다른 데 가면 되니까 별 상관은 없지.’
어차피 태호의 기억속에는 저런 레어 던전이 수십 개는 존재했다.
그리고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저것이 현재 최상위권 유저들의 수준이었다. 지금의 태호는 저런 최상위권 유저들 수십 명이 달려들어도, 가볍게 찜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열심히 하네.’
이런 장면은 태호가 과거에는 본 적 없는 광경이었다.
본래 노블레스 길드가 명성을 떨치는 것은 ‘잊혀진 왕국 공략’ 때였다.
과거 태호가 나눈 한 마디가 미래를 바꾼 걸까?
“......”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태호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뒤를 돌아 보았다.
지난 일주일 간, 태호는 여러 신들을 만났다.
빛의 신 돌로라는 북동쪽의 신전에 있었고, 힐러 계열의 직업군에 영향을 미치는 신이었다.
또한, 바람의 신 라르는 북풍지대에 있었다. 허름하다 못해 바람에 풍화돼 구분도 잘 가지 않는 제단을 찾느라 제법 고생했었다.
전쟁의 신 아테나는 무기를 사용하는 직업군에 영향을 미치는 신 중 하나였다.
속성의 지배자들이 속성을 가진 유저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무속성 직업군에 영향을 미치는 신들은 대부분 전쟁이나 싸움의 신들이었다.
그녀를 만나는 것은 쉬웠는데, 쉬폰이 대수롭지 않게 정보를 공유해 주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그들을 만나, 일단 좋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문제는 교섭품이었다.
“흠.”
최소 에픽 단위의 제물이 필요했다. 또한, 불의 신 아그니를 만나기 위해서는 에테리얼 마법서를 빠르게 퍼트려 유행시켜야 한다.
태호는 선뜻 이런 저런 신들에게 에픽을 바치기도 하고, 교환을 하기도 하고, 손쉽게 여기저기서 얻기도 한다.
이는 순전히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다는 회귀자의 최강점 때문이었다.
보통 유저는 평생을 플레이해도 에픽 하나 보기가 힘들다. 라간처럼 에픽을 얻어도 그저 좋은 아이템 얻었다고 여기는 유저는 극히 드물었다.
아마, 라간만큼의 재벌가 집안을 가졌거나 순수하게 게임을 게임으로만 즐기는 극소수의 인간 뿐일 거다.
‘그러고보니 라간은 둘 다에 포함되는군.’
아무튼 별종이다.
물론 에픽이라고 해도 신들마다 호불호가 있고, 높은 보상을 주는 경우나 낮은 보상을 주는 경우가 있다. 때때로 어떤 신은 저주를 내리기도 한다.
왜냐? 그 에픽을 만들어낸 신이나 존재들과 사이가 안 좋은 경우다. 자신을 모욕했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에픽을 가졌다고, 모두 다 태호처럼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메인 퀘스트를 부여하는 것은 그에 따른 ‘명분’ 과 ‘신이 그것에 대해 느끼는 가치’ 가 동반되어야 한다.
아무튼.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이것 저것 필요한 것들이 많아 머리가 터지기 직전이라는 거다.
“휴우, 입장해 볼까.”
태호는 심호흡을 하며 정면의 던전을 바라보았다.
이 곳은 레어 던전 중 하나, ‘기괴한 해변’ 이었다.
이는 북서부 끝자락의 해변가에 숨겨져 있는 던전으로, 난이도로 치면 ‘카론 호수’ 보다 조금 높다.
우웅- 우웅-
이 레어 던전은 독특한 방식을 사용했다.
눈 앞의 푸른색의 일렁이는 소용돌이를 들어서면, 이면세계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 세계는 현재 태호가 서 있는 해변가가 필드가 된다. 다양한 패턴을 지닌 몬스터들이 등장하며, 보스는 바닷속에서 여덟 개의 거대한 다리를 이용하는 크라켄이었다.
화아악!
망설임 없이 들어선 태호의 눈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던전 : -레어-기괴한 해변]
[해당 레어 던전을 첫 개방한 유저입니다.]
[특별 던전 보너스!]
[축복!]
[3일 동안 던전 내의 경험치량과 아이템 드랍률이 50% 상승합니다.]
[던전이 오픈된 첫 날 한정, 올 스텟 10 상승의 축복을 받습니다!]
이 던전은 레어던전 답게, 리스폰 타임이 24시간에 단 1번 뿐이다. 매일 정각 0시에 리스폰되니 시간은 제법 넉넉한 편이었다.
쏴아아아아아-!
이면세계! 눈 앞에 너른 해변이 펼쳐져 있었다.
쏴아아-
바닷소리가 울려퍼지고, 시선을 돌려 바다를 보니 검은 바닷물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하늘은 시커멓게 먹구름이 끼어 있었으며, 자욱한 안개가 낀 데다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태호는 천천히 막시무스를 소환했다.
[오오오! 나의 주군 카이저!]
막시무스는 간만에 소환된 것이 기쁜지 태호를 보며 덥석 끌어 안았다.
[한동안 나를 불러주지 않아 얼마나 서글펐는지 아는가!]
“......”
생각해보니, 막시무스를 부를 일이 딱히 생기지 않아 부르지 않은 지도 꽤 됐었다.
“미안해.”
[됐다, 됐다. 하하하! 이제라도 나를 불러 주었으니, 이 얼마나 기쁜 날인가!]
적막한 사방에 쩌렁쩌렁한 막시무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태호는 빙긋 웃으며 아르카네 역시 소환했다.
지이잉-!
허공에 시커먼 소용돌이가 생겨나며, 아르카네가 쏘옥! 얼굴을 내밀었다.
[나 불렀어?]
“그래.”
[응! 기뻐!]
아르카네는 활짝 웃으며 쏙, 소용돌이 속에서 튀어나왔다. 소용돌이는 점점 작아지며 사라져 갔다.
“......?”
헌데.
훅!
그 사이로 건장한 팔 하나가 쑥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엥?”
이내, 팔은 사라져 가는 소용돌이를 억지로 늘렸다. 마치 전신거울 크기로 늘어난 그 소용돌이 안쪽에, 팔짱을 낀 중년 남성이 보였다.
“......?”
[네가 내 딸의 계약자인가?]
“......”
오, 잠깐만.
태호는 눈을 비비며 그를 보았다.
“그렇...습니다만?”
[나는 아카드. 저 아이의 아비 되는 정령이다.]
“맙소사.”
지금 태호는 어둠의 정령왕을 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소용돌이 안으로 어둠의 정령계 역시 약간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그 곳은, 아르카네가 언젠가 이야기했던 대로 진짜 인간 세상과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정령왕 아카드가 입을 열었다.
[우리 어둠의 정령계는 인간 카이저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그대 덕분에 우리가 다시 계약자를 만나 지상으로 향할 수 있었으니까.]
“......어, 어... 예에. 저야말로... 감사하죠. 어... 따님을... 제게 주셔서?”
이게 맞는 표현일까?
태호는 정령왕을 보았다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적잖이 당황했다.
[또한, 나의 사랑스러운 세 번째 딸의 성장을 도와준 것도 고맙게 생각한다. 헌데,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뭔가요?”
태호가 묻자, 그가 근엄한 얼굴로 대답했다. [조진다는 뜻이 무엇이냐?]
“......”
태호가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 딸이 여기 저기 많이 조졌다고 이야기하던데, 무슨 뜻이지?]
“......”
[......]
어둠의 정령왕은 진지한 얼굴로 턱을 괸 채 생각하고 있었다. 태호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 적들을... 해치웠다는 말이죠. 음... 아주 많이요.”
[아! 그런가!]
아카드가 눈을 반짝였다. 그는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껄껄껄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하! 그럼 그렇지, 누구 딸인데! 하하하하!]
막 시커먼 소용돌이가 닫히기 시작했다.
“......”
[아빠! 조지고 올게!]
아르카네가 아카드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카드가 전에 없는 사랑스러운 얼굴로 아르카네에게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 내 딸의 계약자가 너냐?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