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77화 (77/194)

< 비싸게 팔아 먹으면 되겠다. >

[등급 : 에픽]

[종류 : 장신구(목걸이)]

[이름 : 멸망의 큐브]

[나의 힘 앞에 복종하라.]

[옵션 : ???]

[개방까지 필요한 생명과 영혼 : 0/1000]

“흐음...”

태호는 대충 혼돈의 유산들의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머더러 새끼들이 PK를 안 했을 리가 없는데.’

개방까지 필요한 생명과 영혼이, 태호가 입수할 때 마다 0/1000 으로 초기화 돼 있었다.

즉.

‘주인이 바뀌게 되면, 그동안 쌓아 온 것들은 무효가 되는군.’

대강 그 패턴을 알았다.

생김새는 정육면체의 큐브. 크기는 대략 주먹보다 조금 더 큰 크기였다.

‘어떻게 쓰는 거지?’

곰곰이 생각하며 요모 조모를 살펴보았다. 놈들은 이 물건으로 퀘스트를 수행 중이었다. 개방이 되지 않더라도, 어떻게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는 듯 했다.

[흐음... 혼돈의 유산이로군.]

소환된 막시무스가 신음을 흘렸다.

“어떻게 쓰는 걸까?”

[음... 일단 이 자체로도 충분히 혼돈의 기운을 가득 머금고 있는 편이다. 아마 근처에 두기만 해도 효과를 볼 것 같은걸.]

막시무스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태호는 그것을 가만히 바닥에 내려놓아 보았다.

잠시 후.

큐브에서는 천천히 회색 기운이 스멀 스멀 뿜어져 나와, 사방을 잠식해 나갔다.

“재앙이군.”

그렇다. 그 자체로 재앙.

사방의 풀이며 땅이 시커멓게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기괴한 형상이었다.

태호는 새삼 느꼈다.

‘위험한 물건이야.’

다른 유저들에게는 그저 ‘게임 아이템’ 의 일종일 테지만, 태호에게는 아니었다. 이런 것들이 얼마나 더 뿌려져 있을까? 얼마나 막아내야 할까.

하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점.

‘나아가고 있다.’

이것으로 혼돈의 주인, 판타로스에게 한 방을 더 먹여 주는 셈이 된다.

한 대 씩, 차근차근 치명타를 먹여 주마. 한 대, 두 대, 가랑비에 옷 젖듯 네가 가진 것들을 하나씩 무너트려 주마.

다가올 미래에 너는 홀로 나타나게 될 거다. 그리고, 이 세계 안에서 목숨을 잃게 될 거다.

나는 기필코 네놈을 없애, 내가 사는 세상을 지켜 낼 거다. 그리고, 네놈 따윈 없는 10년 뒤의 미래에서 행복하게 살 거야.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 퍼질 미래의 그 날, 나는 절망 대신 축배를 들 거야.

태호는 싸늘한 눈으로, 멸망의 큐브를 인벤토리에 집어 넣었다.

* * *

이제부터는 스킬북을 만들어야 한다.

그간 쌓인 재료는 물 기운의 정수 150개, 마력의 결정체 320개. 거기에 망가진 잡동사니는 태호에게 끝도 없이 많이 있으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스킬북 조합은 별다를 게 없다.

대도시마다 존재하는 조합석을 이용하면 된다.

이 조합석이란, 약 3미터 높이의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건축물 비스무리한 것으로서 아이템 조합 제조서를 입력한 뒤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조합석을 향해 걷던 태호는 노펜시아의 신전을 바라보았다.

노펜시아에서 숭배하는 신은, 풍요의 여신 헤페. 그녀는 도심의 정 중앙에 석상으로 우뚝 서 노펜시아를 굽어 보는 여신이었다.

여신의 신전은 고요하고, 관광하러 온 소수의 유저들을 제외하면 인적이 드문 편이었다.

‘헤페 여신은 철저한 중립으로 유명했지.’

그녀는 철저한 기브 앤 테이크를 고수하며, 중립 성향의 신으로 유명했다.

헤페를 소환하기 위해서는 최소 레전더리급 아이템이 필요했다.

언젠가는 마주쳐야 할 신이긴 했다. 태호는 노펜시아를 손에 넣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협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다.

신전을 스쳐 지나가, 조합석 앞에 선 태호는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지이잉!

조합석이 반응하며 눈 앞에 조합창이 떠올랐다. [조합서를 등록해 주세요.]

태호가 조합서를 굳이 에테리얼에게 달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재료가 있어도 조합서가 없으면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태호는 인벤토리 창에서 ‘에테리얼 마법서’ 의 조합서를 꺼내 등록했다.

[조합식이 등록되었습니다.]

[스킬북 ‘에테리얼 마법서’]

[조합식을 공유하시겠습니까?]

아직은 아니다.

태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조합식이 ‘카이저’ 님에게 귀속됩니다. 조합식을 타인에게 공유하려면 설정을 변경해 주세요.]

이내 눈 앞에 조합창이 또다시 떠오른다. 아이템을 등록한 뒤 ‘조합’을 누르면 스킬북이 만들어진다.

물 기운의 정수 30개, 망가진 잡동사니 1000개, 마력의 결정체 50개가 1개 제조에 들어간다.

‘조합.’

[스킬북 ‘에테리얼 마법서’ 5개가 조합되었습니다.]

[등급 : 10급][유니크]

[종류 : 스킬북]

[이름 : 에테리얼 마법서]

[옵션 : 워터 애로우를 다연발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제 태호가 가진 에테리얼 마법서는 총 6개다.

지금부터가 문제였다.

이것을 팔아 먹는 것도 팔아 먹는 건데, 문제는 이 성능을 사람들이 체감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다 좋다 얘기 해 봐야, 막 등장했을 때 성능을 체감하기란 어렵다. 자연히 가격책정에도 문제가 생긴다.

이 방법을 해소하려면?

유명인사가 쓰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태호는 현 랭커 중, 미래에 가장 잘 나갈 물 마법사를 알고 있었다.

과거에는 ‘콴’ 이라는 모험가 유저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된 에테리얼 마법서는, 처음엔 기대보다는 헐값에 팔렸다. 그것을 처음으로 구매해 간 유저는, 물 마법사 랭커였던 ‘부스트’.

부스트는 노르웨이의 유저로서, PVP에 한 획을 그었던 유저 중 하나였다.

그의 귀신같은 물 마법사 플레이는 에테리얼 마법서를 얻음으로서 완벽해진다. 대미지 딜링은 개나 줘 버린 물마법사에게, 그나마 솔로플레이는 용이해지는 딜링스킬이 주어지는 것.

태호도 과거, 그를 적으로 만나 몇 번 고생했던 것이 아직도 생생했다.

‘어디...’

PVP랭킹을 확인해 보았다.

[PVP 랭킹 1위]

[Unknown(가명)]

[2위 : 쉬폰]

[3위 : 레이븐]

[4위 : 토모]

[5위 : 로만]

.

.

[32위 : 부스트]

미래의 유명인사들이 랭킹에 대거 포진해 있었다. 개중, 로만의 랭킹이 제법 눈에 띄었다.

‘이 새끼 어디 쳐박혀 있는 거지?’

쉬폰의 말이 아직 뇌리에 남아 있었다. 접속 중인데 모든 메신저가 차단돼 있고, 태호의 ‘상급 머더러 헌터’ 의 추적기능도 작동하지 않는다.

‘혹시.’

혹시라도, 놈은 이미 판타로스의 유산들 몇 개를 이미 개방해 사용하는 중이 아닐까?

여러 추측을 뒤로한 채, 부스트를 확인했다.

현재 그의 랭킹은 32위. 유튜브 팔로워는 대충 50만명 정도로, 유명한 편이라고 보면 된다.

태호는 그의 유튜브 채널을 확인했다. 마침, 그는 생방송 스트리밍 중이어서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투쟁의 평야에 있군.”

* * *

부스트는 자신의 방송을 종료했다.

팀원들도 하나 둘 귀환 스크롤을 찢었고, 이제 자신만 남았다.

현재 레벨은 185.

물 마법사 특유의 메즈기술과 팀원들과의 호흡 덕분에 그는 PVP상위 랭커가 될 수 있었다.

리얼포스의 PVP 랭킹 시스템은, 대련이나 머더러 사냥 등 외에도 ‘전투 허용 필드’의 전투점수도 포함된다. 리얼포스 북서쪽, 투쟁의 평야는 제한적으로 PVP가 허용된 땅이었다. 이 곳에서 사망한 캐릭터는 사망 패널티를 받지 않기에, 부담 없이 PVP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PVP를 하게 된다면 전투점수를 얻게 되고, 그 점수로 살 수 있는 고유의 아이템이 있었다. 때문에 이 곳은 아이템 파밍을 위한 한 방법이기도 했다.

막 방송을 종료한 그가 기지개를 폈다.

‘이거, 너무 서포튼데.’

물 마법의 결정적 단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셈이었다.

메즈기술에 몰빵된 스킬특성은 팀전 서포터의 스페셜리스트가 되게 해 주었지만, 그 흔한 딜링스킬이 단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이 대참사였다.

하나 있는 것이 워터애로우인데, 그것으론 고레벨로 갈수록 솔로플레이조차 불가능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투쟁의 평야에서 벗어날 준비를 했다. 이 곳은 그 자체가 넓은 평야. 여기저기서 제법 많은 유저들이 보여, 시비가 걸린 그 순간 죽은 목숨이었다.

막 스크롤을 찢으려던 그 시점이었다.

샤아악-!

눈 앞에, 시커먼 갑옷을 입은 유저 하나가 나타난 것이다. 망토를 펄럭이며 유령 표범 위에 올라 탄 그 유저는, 부스트가 아주 익숙하게 알고 있는 유명인사였다.

“어?”

언노운이었다.

“어, 언노운!”

그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 들어찼다.

현재의 언노운은 그야말로 신화와도 같은 존재였다. 문득, 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여긴 파밍하러 온 겁니까?”

태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요?”

“투자를 해 볼까 해서.”

태호는 그렇게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부스트의 얼굴에 의문이 생겼다.

“투자...말입니까?”

태호가 고개를 끄덕인 뒤 입을 열었다.

“스킬북 하나를 얻었는데, 물 마법이더군요.”

“물 마법...”

태호는 망설임 없이 에테리얼 마법서 하나를 그에게 꺼내 주었다.

“받아요.”

“엥?”

부스트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물욕이 앞서는 것은 당연하나, 이리도 간단히 내어 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냥 주는 겁니까...?”

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아, 아, 아니. 이거 영상 찍어도 돼요?”

“얼마든지. 그럼 이 쪽도.”

“영광입니다.”

부스트는 꾸벅 태호에게 허리를 숙이며 스킬북을 받아 들었다.

정보를 확인한 그가 흠칫 놀랐다.

“유니크...?”

그는 유니크란 단어가 붙은 아이템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심지어, 10급이다.

10급이란 현존하는 급수 중엔 가장 높다. 그 급수에 유니크라니, 사실 어이가 조금 없어 현실감각이 생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 이거 정말 주시는 겁니까?”

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당신이 베스트니까.”

“......”

울컥!

부스트의 가슴이 뛰었다. 동경하는 언노운에게 이런 소릴 듣다니, 솔직히 영광스러워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었다.

태호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부스트가 태호의 손을 잡아 악수를 나눴다.

부스트는 스킬북을 곧바로 펼친 뒤, 스킬을 익혔다. 그리고, 잠시 놀란 얼굴을 한 뒤 태호에게 물었다.

“워터 애로우를... 다연발로 사용한다?”

태호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양 손을 펼쳐 워터애로우를 사용했다.

촤아악-!

사방에 열 발의 워터애로우가 만들어졌다. 그것까지 영상으로 촬영한 태호가 입을 열었다.

“또 뵙죠.”

태호는 그대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

홀로 남은 부스트는 가만히 서서 손의 촉감을 느꼈다.

“하하하.”

그가 환하게 웃었다. “아하하하!”

.

.

.

.

.

.

‘으...’

태호는 새삼 자신의 모습이 이질적이어서 팔뚝을 벅벅 긁었다.

부스트에게 에테리얼 마법서를 건네 주는 장면을 다각도로 촬영한 상태인데, 이 장면을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것이 당초의 목표였다.

[요즘 무슨 일을 꾸미시는겁니까?]

편집자 김택환의 물음에, 태호는 빙긋 웃으며 메신저로 대답했다.

[있어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조만간 일감이 쏟아져 내릴 테니까.]

[하하하하하!]

김택환이 웃으며 대답했다.

[언제든 환영이죠.]

며칠 뒤.

김택환으로부터 도착한 영상이 태호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갔다.

‘언노운’ 이 된 태호가 유령표범에 올라탄 채 부스트를 만나는 장면, 그리고 그에게 에테리얼 마법서를 내미는 장면.

그와 대사를 나누고, 마지막으로 스킬북을 익힌 뒤 양손을 쫙 펼치자 동시에 생성되는 열 발의 워터 애로우!

-왜...?

-당신이 베스트니까.

라는 대사까지 자막으로 삽입됐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편집된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하얀색 글자와 함께 영상은 끝난다.

[Water Mage, Voost]

“......이 짓도 못해먹겠군.”

언제나 오글거리는 부끄러움은 태호의 몫이었다.

동영상은 올라가자 마자 대히트를 쳤다.

특히, Voost 라는 이름을 검색한 유저들이 부스트의 유튜브 채널을 팔로우하며 그의 팔로워 수치까지 급속성장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와중, 부스트는 기회를 놓치지 않은 채 들어온 물에 노를 젓기 시작했다.

[에테리얼 마법서, 놀라운 스킬!]

번역하면 대략 이런 제목이었는데, 워터애로우 다연발을 이용해 사냥과 PVP를 하는 모습이 공개돼 스킬의 정확한 성능과 가능성을 요약한 제목이었다.

태호는 그것까지 확인한 뒤 씩 웃었다.

이제 나머지를 비싸게 팔아 먹으면 되겠다.

< 비싸게 팔아 먹으면 되겠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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