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린의 공중정원 >
“아, 카이저! 나의 오랜 친구!”
“넉살이 더 느셨군요.”
태호의 말에 흑마탑주 아파치 레퓨어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나이는 먹고, 느는 건 그것뿐이더라고. 모쪼록, 잘 지냈어?”
“저야 뭐 그냥 그렇죠.”
태호가 그의 맞은편 소파에 앉으며, 그가 건넨 찻잔을 들었다.
“다름아니라... 우리가 최근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말이야.”
태호는 선수를 쳤다.
“대륙 상공을 지나가는 거대한 섬 같은 것에서, 흑마법의 단서를 발견했다 이겁니까?”
“......”
아파치 레퓨어는 머리를 긁적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지. 독심술이라도 익혔어?”
갑자기 자신을 호출한 흐름이 그랬을 뿐이다.
“어떻게 그런 걸 아신 겁니까?”
“간단하지. 탑이 반응했거든.”
“탑이라.”
“속성의 마법사들이 탑을 짓는 이유를 알아?”
“글쎄요.”
“첫째론, 하늘의 신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하늘의 신님들의 속성을 빌어쓰고 있잖아?”
그리고?
태호가 다음 말을 기다렸다.
“둘째론, 이 탑이란 신들의 약속이거든. 신력이 대륙에 만들어 낸 거대한 약속 말이야. 뭐 그렇다고 해.”
그랬던 건가.
태호는 그 말들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태호의 눈 앞에 퀘스트 발생이 떠올랐다.
[퀘스트 발생!]
[7급 퀘스트!]
[서브 퀘스트!]
[엘린의 공중정원]
“백 년에 한 번 리얼포스의 대륙을 지나간다는 엘린의 공중정원! 그 곳에 우리 흑마법의 비전마법서 하나가 있는 게 분명해.”
* * *
흑마탑을 나서며 태호는 현재의 상황을 정리했다.
‘엘린의 장갑, 그리고 찬란한 은총의 팔찌.’
장갑, 착용귀속의 팔찌.
이것이 엘린의 공중정원 레이드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들이었다.
레이드 급 던전!
이것은 사실상 솔로플레이 불가능의 영역에 있는 던전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호승심이 드는 것은 별 수 없는 일이었다.
‘에픽을 조금 더 파밍해야 해.’
태호는 이제 불의 신 아그니까지 포섭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 과제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빛의 신, 그리고 바람의 신.’
마지막으로.
‘전쟁의 신.’
세 신에게 추종자들에게 메인 퀘스트를 내려주기를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빛속성, 바람속성, 마지막으로 무속성까지 메인 퀘스트 수여가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제물이 필요한데.’
빛의 신과 바람의 신에게는 에픽을 하나씩 가져다 주면 될 듯 했다. 그리고 전쟁의 신 아테나는, 아무래도 독자적인 것을 요구할 듯 했다.
그 후에, 태호는 전신을 에픽으로 도배할 생각이었다. 어둠 기사 세트를 벗을 날이 슬슬 다가오고 있었다.
-형님.
그 무렵, 라간에게 귓속말이 왔다.
-그래.
-저번에 말씀드린 거 기억해? -저번? 아-
라이언 앞마당 유저들을 키우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생각난 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한다. 시작됐어?
-응. 멤버 보내줄게.
곧, 개인 메신저로 멤버들의 스크린샷이 도착했다. 하나 하나 확인하던 태호가 미소를 지었다.
‘유명인사들이 여기있네.’
태호가 기억하기로, 라이언 앞마당에서 ‘용병단’을 만들어 어세신즈와 대립하던 원년멤버가 고스란히 모여 있었다.
‘솔리타드, 하로, 킹카터, 멜, 데우스.’
어떤 것들이 변해도, 결국 이렇게 된단 말인가? 태호는 운명이라는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까닥였다.
-알았다. 던전 입장 제한 바꿔 놓을게.
-옛서. 앞서 말했다시피, 드랍되는 아이템 50%는 따로 보내 줄게.
-......
태호는 피식 웃었다. 이 터무니없이 물욕이라곤 한 톨도 없는 재벌집 막내아들을 어찌해야 할까.
-거기 나오는 다른 아이템은 다 알아서 나눠 가져. 그리고, 부탁이 하나 있는데.
-뭔데?
-거기서 나오는 ‘순수의 강철’ 만 내게 줄 수 있을까?
-순수의 강철?
라간의 물음에, 태호는 솔직히 대답하기로 했다.
-그걸 모아서 에픽아이템 하나를 제작할 수 있어.
-......
라간이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
-굳이 그걸 얘기해 주는 건, 나를 믿기 때문이군?
-그렇겠지.
-하하하하! 그렇게 하지. 중대사안이니 타인에겐 비밀엄수 할 테니 걱정 말고.
-고맙다.
교신은 그것으로 끝이다.
태호는 ‘증오의 피라미드’ 의 입장제한을 ‘자신의 파티원’ 들에서 ‘자신이 지정한 친구의 파티원’ 으로 바꾸었다.
입장제한은 아주 다양한 카테고리가 있었다.
우선.
현재 태호에게는 ‘멸망의 큐브’ 가 있다. 그리고, 에픽 스킬북인 ‘맹렬한 지진’ 도 신들과의 교섭품이었다.
조금 더 귀중히 다룰 아이템은 멸망의 큐브다. 이는 혼돈의 유산이기 때문에, 조금 더 가치가 높다.
‘우선.’
태호는 그 누구보다 먼저, 엘린의 공중정원에 입장해 보기로 했다.
과거에는 당연히 겪어 본 적 있는 레이드 던전. 허나 예전과 지금의 태호는 전혀 다른 인간이었다.
일단 한번 겪어 봐야 계획을 세울 수 있을 듯 싶었던 것이다.
.
.
.
.
.
.
[창공에 떠오른 거대한 비행체!]
[추측에 의하면 그 자체가 거대한 던전일 가능성 농후!] 세상이 요동치고 있었다. 어딜 가도 리얼포스의 이야기가 들끓었다.
동시접속자가 3천만명에 육박한단 소리를 들었다. 비정상적인 성장세였지만, 리얼포스의 광풍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창공의 섬에 도달하는 방법은?]
많은 이들이 그 방법을 찾아 나선 듯 했다.
미개척지대!
베일에 뒤덮힌 하늘의 섬!
그것이 유저들의 모험심과 호승심을 자극했다. 많은 추측이 있었고, 연구가 시작되었다.
다만.
태호는 그 와중 정확한 방법을 알고 있는 유일한 유저일 것이다.
* * *
태호가 도착한 곳은 과거 데스나이트를 잡기 위해 ‘심연의 미궁’으로 향하던 바다였다.
엘린의 공중정원으로 향하기 위해선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타이밍 맞게 바람복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 외, 대륙의 토네이도를 타고 올라가거나 바다의 용오름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다.
모든 것들이 가능성이 있고, 유저들은 결국 해 낸다. 하지만 지금 태호가 하는 방법처럼 확실하고 간편한 방법은 없었다.
바다 위의 조각배에 앉아, 드러누운 채 하늘 저 편을 바라보았다.
쿠우우웅-!
저 멀리서부터 거대한 공중정원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마치 하늘을 덮는 먹구름마냥 움직이는 저것은 대륙을 일정 패턴으로 빙글빙글 돌다, 시간이 지나면 대륙 너머로 사라진다.
그 뒤로는 다시 돌아오기까지 몇 달의 시간이 걸린다.
[등급 : 1급]
[종류 : 재료]
[이름 : 바람복어]
[살아 있는 생명체입니다. 인벤토리 창에 들어가면 사망합니다!]
태호는 슬슬 그물을 이용해 바람복어를 잡아들였다. 그물 한가득 잡힌 바람복어는 요맘때가 막바지 철이었다. 산란기가 거의 끝나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우우우우-!
점점 더 공중정원이 가까워진다. 태호는 그물 한가득 잡은 바람복어를 배 위로 끌어 올린 뒤, 거대한 보자기에 꽁꽁 놈들을 싸맸다.
잠시 바람의 기운을 살핀다.
‘호재로군.’
해안가를 향한 강한 바람이 이어지고 있었다.
팍!
가볍게 보따리를 들었다 내려놓으며 충격을 주니.
팡!
몸을 부풀린다. 태호는 보따리의 끝자락을 잡고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둥실 둥실!
몸은 점점 더 바다에서 멀어진다. 저 편의 공중정원은 점점 해안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태호의 몸이 바람을 받아 정원 쪽으로 날아갔다. 점점 더 하늘로 떠오르고, 또 떠오른다.
저 아래는 어느새 까만 점처럼 변한 배가 보였다.
[대여한 고깃배가 자동반납 되었습니다.]
쌔애애애앵-!
높은 고도의 바람이 태호를 반겼다. 그리고, 태호는 방금 공중정원의 바닥이 아닌 정면을 보고 있었다.
조금 더.
태호의 몸이 더 하늘로 떠오르려 할 무렵.
팡- 파파팡-
복어들이 제 몫을 다 한 채 공기를 뱉어내고 있었다. 태호는 다급히 보따리를 풀어, 놈들을 버렸다. 뽕 뽕 뽕!
녀석들이 바람을 뿜어내며 허공에서 마치, 바람 빠진 풍선마냥 돌아다니다 하나 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태호의 몸도 이제 중력을 정면으로 받는다. 허나.
태호는 정면의 저 편, 공중정원의 지상을 향해 시선을 겨누었다.
저 곳 까지의 거리는 대략 30여미터가 조금 넘어 보인다. 아래는 끝없는 추락뿐!
‘어둠의 발걸음.’
팟!
태호의 몸이 사라지며, 공중정원의 지상에 나타났다. 순간이동이 성공했다.
“휴.”
그제야 씩 웃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리 태호라고 해도 이 높이에서 추락하는 경험을, 심지어 일체감 100%의 몸으로 겪고 싶지는 않았다.
아마, 진짜 오랜 시간동안 내리꽂히는 롤러코스터를 안전장비 없이 타는 기분일 거다.
“으으.”
태호는 새삼 몸서리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엘린의 공중정원]
태호의 눈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사라져 갔다.
사방은 평온했다. 그러니까, 그냥 지상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문제는 그 규모일 것이다.
‘크다.’
눈 앞에 펼쳐진 것은 그야말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 같은 넓은 필드였다.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지역이었다. 엘린의 공중정원은, 그 지역들을 하나 하나 파훼해 가는 레이드 던전이었던 것이다.
‘휴.’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레이드 던전을 홀로 공략하는 것. 그것은, 모든 리얼포스의 사람들이 그야말로 꿈으로만 꾸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독식하며, 홀로 해 내는 존재는 있을 수 없다. 그저 호사가들의 이론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 과거의 이론적으로 완성형 흑마법사가 그랬다.
20종의 에픽 아이템을 모아, 완성된 흑마법사는 그야말로 전천후 만능캐릭터!
그렇게 완성된 흑마법사는 개인딜, 광역딜, 방어력, 생존력, 레이드, PVP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다.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에는, 타 직업군에게는 드문 흑마법 고유의 시너지를 증폭시켜주는 에픽 아이템들이 다수 존재했다는 점. 공용 에픽이 아니라, 전용 에픽이 있다
는 것이 무엇보다 큰 이유다.
과거에는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다. 왜 다른 직업군에는 드물게 존재하는 것들이, 흑마법사 직업군에만 많은 걸까?
그 이유를 이제 대강은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흑마법의 신 볼카노스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것!
판타로스에 맞서 싸운 속성의 지배자들 중, 볼카노스는 유독 인간을 사랑했다. 대륙에, 아무래도 자신의 신력을 이용한 여러 물건들을 퍼트려 놓았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아직 손에 넣지 못 한 그 아이템들을 손에 넣는 날까지 그리 멀지 않았다. 확장팩들이 열리며, 레이드 던전들이 열리며 태호는 그것들을 모조리 손에 넣을 것이다.
태호는 지금부터 이론을 실제로 재현해 보는 첫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 * *
이 정원의 설정은 단순하다.
현재 엘린의 공중정원은 내분이 일어나고 있었다. 본래 이 정원의 주인은 ‘엘린’. 허나, 그 휘하의 2인자 ‘카잔’ 이 반역을 일으키며 엘린을 봉인해 둔 상태.
그리고 정원을 수습한 카잔은 지상으로 세력을 뻗치려 하고 있는 것.
태호의 기억 상, 엘린의 공중정원이 등장한 뒤 1년이 지난 즈음에 놈들의 지상침공이 시작된다.
이는 혼돈의 힘과는 상관 없는, 그들의 독자적인 판단이었다.
그로 인해 큰 이벤트가 벌어지게 된다만 그것은 미래의 이야기.
지금 이 땅은 내분으로 혼란스러운 와중일 터.
이 땅에 입장한 유저들은, 이런 메시지를 받게 된다.
화아악-
태호의 눈 앞이 컴컴해지며 영상 하나가 나타났다.
[저를 구해주세요, 지상의 모험가여.]
아름다운 미녀가 사방의 결계석에 둘러싸인 채, 애절하게 이 쪽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공중정원의 전체적인 모습이 와이드뷰로 한번 보여진 뒤, 던전은 시작되는 것이다.
[8급 퀘스트]
[서브 퀘스트]
[공중정원의 주인 엘린의 메시지]
[: 내분을 일으킨 카잔의 수하들을 해치운 뒤, 봉인된 엘린을 구출하라!]
[보상 : ???]
< 엘린의 공중정원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