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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전설-83화 (83/194)

< 제사장이 되다 >

사실 유저들은 크게 관심이 없겠지만, 본래 엘린의 공중정원의 스토리 자체는 이러하다.

공중정원의 왕이 되어 대대로 통치해 오던 엘린 가문과, 카잔 가문이 있는데 현 상황은 카잔이 반역을 일으켜 엘린을 감금한 뒤 공중정원의 지배권을 손에 넣은 상태이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 정원의 최종보스 카잔이 태호의 손에 죽었으니, 엘린을 구출하면 통상적인 퀘스트는 끝.

하지만.

‘2인자가 반역을 일으켰다고 해서, 1인자가 선한 자라는 보장은 없지.’

태호는 천천히 감금된 엘린에게 걸어갔다.

봉인석이 만들어낸 결계에 갇혀 있는 엘린이 고개를 들어 태호를 바라보았다.

[아... 모험가여. 제 부탁을 들어주셨군요.]

“네 뭐.”

태호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그녀의 앞으로 걸어가 쪼그려 앉았다.

[자, 이제 봉인석을 해제하고 저를 풀어주세요.]

“흐응...”

태호는 팔짱을 낀 채 입을 열었다.

“그 전에, 당신. 장갑 하나 가지고 있지?”

[......예?]

“장갑 줘 봐.”

[......]

“그 왜 에픽등급 장갑 있잖아, 다 알아. 안 주면 안 풀어줄거야.”

이 레이드 던전의 진최종보스는, 이 여자다. 결계를 풀어주면 원래의 힘을 회복해서, 유저를 덮친다.

방금 전 최종보스 카잔을 상대하며 느꼈다. 솔직히 진최종보스 엘린은, 혼자서는 아직 무리다.

[......어떻게, 엘린의 장갑에 대해서 알고 계시죠?]

“어쩌다 보니. 안 주면 안 풀어줘. 여기서 평생 갇혀 살든가 마음대로 해.”

태호가 코를 후비적거리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막시무스가 태호에게 속삭였다.

[저 여자는 혼돈의 존재가 아니다.]

“알아.”

태호도 낮게 대답했다. 이 세상에 선과 악이 있다면, 그것은 오롯이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일이다. 혼돈의 힘에 속해 있지 않더라도 악인이 있다.

과거의 ‘엘린의 공중정원’에서, 첫 번째 공략에 실패했다. 이 엘린에서 틀어 막혀 전멸해 버린 것이다.

그 뒤, 공중정원은 대륙을 벗어나 타 대륙으로 향했고 약 일년 쯤 뒤에야 돌아왔다. 그때는 이미 공중정원은 과거보다 훨씬 강력해진 뒤였다.

돌아와서.

태호는 결국 엘린을 살려서 돌려 보낼 것이다. 그리고 향후 다시 돌아왔을 때, 박살내고 새로 아이템을 취할 예정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잡담을 나눌 무렵.

[......좋아요.]

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순수해 보이던 두 눈은 표독스러워졌고, 말투는 날카롭다. 태호는 씩 웃었다.

“좋아 좋아.”

철컹!

뒤편에 큼직한 기둥이 열리더니, 그 안에 보존돼 있던 장갑 한 켤래가 나타났다.

태호는 천천히 그 곳으로 걸어가, 장갑을 확인했다.

[등급 : 에픽]

[종류 : 방어구(손)]

[이름 : 엘린의 장갑]

[장갑에서 구린내가 나네요. 아무리 아름다워도, 내면의 악함을 속일 수는 없는 법이죠.-초보 학자, 카실론]

[힘스텟이 100상승합니다.]

[공격속도가 25% 상승합니다.]

[일정 확률로 방어무시 대미지를 가해, 평소의 대미지x2배의 대미지를 줍니다.] [방어무시 대미지를 주었을 때, 일시적으로 공격속도와 이동속도가 15% 상승합니다.]

힘스텟에 주목할 만 한 녀석이었다.

게다가 공격속도를 보정해 주기 때문에, 물리공격 클래스에게는 굉장히 괜찮은 녀석이었다.

물론, 태호에게는 큰 가치가 없다. 막시무스에게 가치가 있냐면, 그것 또한 애매하다.

‘제물로 바쳐야겠다.’

태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템을 챙겼다.

[자! 이제 그 장갑을 드렸으니, 저를 풀어 주세요!]

“아아, 잠깐잠깐.”

당초의 목적은 장갑이나, 태호는 하나를 더 얻어야 했다. 태호는 장갑을 든 그대로 그녀에게 가 다시 물었다.

“이 곳 어딘가에, 고대 아나크레온 왕국의 비전 마법서가 있다던데? 어디야?”

바로, 흑마탑주의 의뢰였다.

비전 마법서가 남아 있었다.

[......아, 아나크레온.]

그녀가 당황했다. 태호는 그녀를 빤히 보며 대답을 재촉했다.

“빨리. 영원히 결계 속에 갇히고 싶나보지?”

[......]

“그래? 그럼 별 수 없지. 안녕.”

태호가 귀환 스크롤을 꺼내 들고는 막 찢어 버리려 하자, 그녀가 입술을 앙 깨물며 소리쳤다.

[잠깐!]

“그래.”

[......아나크레온의 비전 마법서 중 하나가 이 곳에 있는 것은 맞습니다.]

철커덩!

그리고 그녀가 손짓하자, 반대편 기둥이 열리며 그 안에 잠들어 있던 스킬북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것입니다.]

“오냐.”

태호는 스킬북을 집어들었다.

[아이템 : 고대 비전 흑마법의 서(하)]

“어떻게 이걸 너희가 가지고 있지?”

[......과거, 우리의 선조가 혼돈의 일족과 거래를 했기 때문이죠. 우리의 풍부한 마력석과 비전 마법서를...]

그녀가 분노를 씹으며 대답하고 있었다.

“오케이. 그럼 됐어.”

태호는 멀찍이 떨어졌다. 그리고 막시무스에게 고개를 까닥였다.

막시무스가 막 그녀의 봉인석을 움직이자 봉인진은 점점 흩어지기 시작했다.

태호는 냉큼 막시무스를 소환해제한 뒤,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1년 뒤에 보자고!”

굳이 봉인을 풀어 준 이유는, 그래야 1년 뒤에 다시 번성하여 돌아오기 때문이다. 풀어주지 않으면 1년 뒤에도 갇힌 이 상태 그대로일 거다.

[이, 이이이!]

엘린이 분노하며 변신하기 시작했다. 전신에 철갑이 덧씌워지고, 마력이 깃든 양 손이 태호를 향했다.

[이런 빌어먹을 하찮은 지상의 인간이...]

“대사가 길다.”

찌지직!

태호는 귀환 스크롤을 사용하며 냉큼 도망쳤다.

[퀘스트 완료] [공중정원의 주인 엘린의 메시지]

[경험치 획득]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어느새 태호는 가장 가까운 초보자 마을인, 알바롱에 도달해 있었다.

‘후.’

저 하늘에서 유유히 북쪽으로 향하는 엘린의 공중정원이 보였다. 태호는 씩 웃으며 그 곳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레벨은 이제 320.

레이드급 던전을 오롯이 솔로플레이에 성공한 자신이 꽤나 대견해 바닥에 누운 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태호는 자신의 전신에 장비돼 있던 어둠 기사단 세트를 벗었다. 사람들이 많아, 혹여라도 정보가 노출될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그 무렵.

“어랍쇼. 여기 웬 일이냐?”

강민의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렸다. 녀석은 사방에 왁자지껄한 유저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아주 난리가 났군. 너도 주우러 왔냐?”

아닌 게 아니라, 여기 저기에 떨어진 기계 수호병들이 떨군 잡템들이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기에 유저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태호는 역시 피식 웃었다.

“어.”

.

.

.

.

.

.

[아이템 : 고대 비전 흑마법의 서(하)]

[흑마법사의 소실된 마법중 하나가 탑으로 돌아갔습니다.]

[흑마법사의 탑을 방문해, 소실된 마법을 익힐 수 있습니다.]

흑탑으로 돌아온 태호가 흑마법의 서를 열자, 과거와 같은 메시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퀘스트 완료]

[엘린의 공중정원]

[경험치 획득]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파치 레퓨어가 부여해준 퀘스트도 클리어됐다. 태호는 그제야 한시름 덜며, 곧 닥쳐 올 사태를 방지했다.

“역시나야!”

아파치 레퓨어는 태호를 와락 끌어 안으며 뺨에 입을 맞추려 했지만, 태호가 냉큼 피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빨리 스킬북이나 줘요.”

“으흠, 아, 알았어.”

그때였다.

화아악!

사방에 시커먼 어둠이 들어차기 시작한 것이다.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씩 웃었다. 아파치 레퓨어는 이런 상황을 처음 겪어보는 듯 허둥지둥대다, 태호를 보았다.

“카이저! 이, 이건 설마!”

“그 설맙니다.”

콰아아아아아-!

어느새 시커먼 어둠에 온 사방이 윤곽을 잃었다. 그리고 저벅 저벅 걸어 나온 것은, 시커먼 불꽃을 닮은 어둠의 신 볼카노스였다.

볼카노스가 뿜어내는 신력이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예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신력을 회복한 것이 분명했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군.]

볼카노스의 목소리가 사방에 쩌렁쩌렁 메아리치는 듯 울려퍼졌다.

“보, 볼카노스시여!” 아파치 레퓨어가 납죽 엎드리며 그에게 절을 했다. 태호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그를 맞았다.

“이로서 흑마법 비전 마법서 두 권이 탑으로 돌아왔습니다. 도움이 되셨습니까?”

[당연히.]

볼카노스는 어쩐지 꽤나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가 어쩐지 친근하단 느낌이 들었다.

[네 덕분에, 나는 잃어버린 신력을 모두 복구할 수 있었다. 지상에 만들어진 탑은, 이 몸이 대지의 추종자들과 한 거대한 약속. 그 탑의 힘이 거의 완벽하게 돌아왔으니, 이는 오롯이 네 공이다.]

태호는 고개를 숙였다.

“별말씀을.”

[앞으로 너는, 나의 제사장이 될지어다.]

“......!”

제사장!

태호는 그 말에 적잖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제사장이라 함은, 그를 언제든 소환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또한, 나를 부름에 있어 너는 제물을 필요로 하지 않음이다.]

“......”

[마지막으로, 네게 나의 큰 가호를 내린다.]

화아악!

태호의 몸 속으로 어둠의 기운이 뭉실뭉실 들어왔다. 전신에 충만한 기운이 뿌듯하게 들어찼다.

현재 태호는 이미 ‘볼카노스의 가호’를 패시브 스킬로 받은 바 있었다.

모든 어둠 속성 마법의 성능이 2배 상승하는 가호는, 이미 선지자의 해골과 함께 태호의 마법성능을 뻥튀기 시켜주고 있었다.

이번에 들어올 가호는 ‘큰 가호’ 라고 했다.

과연?

[스킬 : ‘지옥의 어둠불꽃’을 획득했습니다.]

태호에게 스킬 하나가 주어졌다.

다른 이들에게는 없는, 태호만의 스킬이었다. 그리고...

‘패시브가 아니잖아?’

태호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다급히 스킬을 확인했다.

[볼카노스의 힘]

[등급 : ???급]

[쿨타임 : 600초][숙련도 : 0][소모마력 : 1000]

[스킬명 : 지옥의 어둠불꽃]

[상대에게 지옥의 어둠불꽃을 선사해, 죽음에 이를 때 까지 지속 대미지를 준다. 지옥의 어둠불꽃이 가해졌을 때, 상대에게 흑마도사가 지닌 모든 상태이상 기술이 동시에 가해진다. 지옥의 어둠불꽃은 폭사나 범위 폭사를 가해도 해제되지 않으며 그 어떤 상태이상 해

제 스킬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궁극기 같은 거라고 보면 되나?’

두근 두근

태호는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신노스를 잡을 때,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스킬이었다.

[이 내게 바라는 점이 있느냐?]

“......아직은 없습니다. 곧 신노스를 잡으러 갈 겁니다. 그때 다시 뵙죠.”

[그렇게 하지.]

볼카노스는 태호에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엎드려 있는 아파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대, 나의 추종자이자 드래곤의 후예여. 나의 부재가 길었건만, 네 공 역시 크다.]

볼카노스는 그에게도 가호를 내린 뒤 사라졌다.

화아악!

어느새 돌아온 평온한 세상.

“으, 으흐흐흐.” 아파치 레퓨어가 넋나간 웃음을 흘리며 기뻐할 무렵, 태호는 천천히 그의 소파에 앉았다.

‘기대 이상이군.’

이번 레이드급 던전은 여러 모로 얻은 것이 많았다.

무엇보다.

이로서, 태호는 신노스를 잡을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곧 정신을 차린 아파치 레퓨어는 후다닥 자신의 책상에서 스킬북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 이건 새로운 비전 마법!”

그가 내민 책은 두 권이었다.

“그리고 이건!”

“......”

그는 씩 웃으며 덧붙였다.

“네가 더 강해지는 방법!”

태호는 망설임 없이 그 책을 받았다.

[‘교환불가 : 흑마도사 5차 전직의 서’를 획득했습니다.]

< 제사장이 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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