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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전설-84화 (84/194)

< 대형 이벤트 >

5차전직.

‘여기까지 왔구나.’

400레벨을 기점으로, 레벨 올리기는 정말로 힘들어진다. 순수 노가다가 필요한 시점이 분명히 오게 돼 있었다. 만렙은 999이지만, 그 시점까지 가기까지 10년이란 시간이 걸리는 것이 과거의 리얼포스였다.

‘더 빨리.’

만렙은 더 빨리 찍어야 한다. 태호는 최소 그 시간을 1/10 이상 줄일 생각이었다.

우선.

아파치가 준 스킬북을 펼쳤다.

[‘교환불가 : 흑마법사 비전마법-어둠 강화Ⅱ’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예”

스킬은 바로 배워졌다.

[패시브 : 어둠 강화Ⅱ]

[어둠 마법의 모든 지속시간이 30% 상승.]

“흠.”

이는 태호에게는 크게 별 볼 일 없는 옵션이었다. 다만, 다른 흑마법사들에게는 체감이 제법 클 것이다.

태호야 지금 마법 성능2배증가가 두 개 중첩돼 있으니 아무 의미 없는 스킬이지만, 타 흑마법사들에게는 충분히 체감이 클 테니 그럴려니 하기로 했다.

이제 남은 것은 5차전직이었다.

[당신의 몸에 깃든 볼카노스의 가호가 더욱 강해집니다.]

[5차 전직에 성공하였습니다.]

[전직 보너스로 지능 스텟이 10 상승했습니다.]

[위업 : 최초의 5차전직자]

[보상- 전직자의 올 스텟 +5]

[흑마도사 궁극기 : 마신강림(魔神降臨)을 얻었습니다.]

마신강림이다.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마신강림이란, 5차전직때 주어지는 클래스별 궁극기 중 하나였다.

그리고 5차전직을 기점으로, 새로운 스킬들은 그렇게 많이 늘어나지 않는다. 50~100레벨을 기점으로 한두개 생길까 말까인데, 스킬북의 가격이 오르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아무튼.

5차전직의 위업으로 올스텟이 5 올랐고, 지능스텟이 10 추가로 올랐다.

“다음에 뵙죠.”

“어, 그래.”

아파치 레퓨어가 기분 좋게 태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또 보자고.”

* * *

태호는 새로운 궁극기를 실험해 보기도 전에,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우선.

발빠르게 전쟁의 신 아테나를 찾아갔다.

아테나에게 바칠 제물은 이미 준비돼 있다. 바로, 엘린의 장갑이다.

솔직히 말 해, 신들에게 제물을 바쳐 뭘 하는 것은 효율이 굉장히 좋다만 태호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이득이라고 할 수 없는 행위였다.

‘아깝긴 하다.’

모든 신들이 불의 신 아그니처럼, 신노스의 죽음을 조건으로 건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런 신은 좀처럼 없다. 긴 한숨을 쉬며, 태호는 중부의 풍요의 평야로 향했다.

본래 전쟁의 신을 부르기 위해선 제물로 유니크 급 아이템이 필요했다.

태호는 망설임 없이 인벤토리 창에 집히는 유니크 하나를 제단에 올린 뒤, 그녀를 불러냈다.

[그대. 용건은?]

아테나는 무뚝뚝한 여자였다. 필요한 대화 외에는 하지 않았으며, 전신에 걸친 갑주와 날카로운 창이 섬뜩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저번에 말씀드린 용건을 기억하십니까?”

[한다.]

“제물을 바칩니다.”

태호가 엘린의 장갑을 내밀었다. 아테나는 그것을 빤히 보다가, 자신의 품 속에 집어 넣었다. [혼돈의 힘... 그것에 집착하는 이유가 뭐지?]

드물게 그녀가 물어왔다.

태호는 그녀의 질문에서,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애초에 알고 있다. 혼돈의 힘을 여기서 틀어 막아 봐야, 어차피 최종장에서 다 같이 튀어나온다는 것을.

그녀조차 반쯤은 포기했을 것이다.

“그럼 묻겠습니다.”

[물어라.]

“당신이 모험가를 이용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힘쓴 까닭은 무엇입니까?”

[......]

그녀는 어쩐지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차피 예견됐다지만, 그렇다고 그냥 놔 두기엔 마음의 가책이 생기기 때문이다.]

예견돼 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면할 수는 없었다는 말. 태호는 그 말에서 어쩐지 그녀가 가진 인간에 대한 연민을 느꼈다.

“그렇군요. 저도 비슷하다고 해 두죠.”

[...]

아테나는 잠시 눈을 감은 채 사방으로 자신의 신력을 뿌렸다. 그리고 눈을 뜬 그녀가 말했다.

[무(武)의 신들은 대부분 혼돈의 힘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허가는 이루어졌다.]

무의 신.

그것은 무속성을 관장하는 많은 신들을 지칭하는 듯 하다. 그들의 허가를 맡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나보다.

[그들은 네 제안에 대해 흥미로워하고 있다. 신이 인간에게 흥미를 표하는 것은 크게 드문 일이지, 네 바람은 이루어졌다.]

“감사합니다.”

태호는 그녀를 떠나, 이번엔 빛의 신을 만나러 갔다.

* * *

빛의 신 돌로라는 북동쪽의 신전에 있었다.

그녀에게 바칠 것을 물색하고 있던 그 때였다.

어찌 된 일인지,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쓱 나타나 버린 것이다.

“......!”

[볼카노스에게 전언을 들었다.]

“......”

돌로라는 순백의 여신이라고 보면 될 듯 했다. 볼카노스와는 정 반대의 느낌이 풀풀 풍겼다.

[그가 거의 힘을 되찾았더구나, 신계의 험준한 마력결계를 뚫고 전언을 내게 건네줄 정도가 되었다니... 물론 그와 나는 아주 밀접한 사이... 다른 속성의 지배자들에게 목소리가 전달되지는 못 했을 것이다.]

그녀의 말에서 몇 가지 단서를 찾아낼 수 있었다.

‘볼카노스는 다른 속성의 지배자들보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게 틀림없다.’

즉, 볼카노스의 힘은 신계가 속성의 지배자들에게 내린 ‘유배지’ 의 결계를 뚫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생각보다 볼카노스가 대단하구나.’

[그와 나의 생각은 일치한다. 또한, 나는 네가 장차 다가올 거대한 위협에 저항할 수 있는 인간이라고 판단하였다. 미래의 그 날을 대비해, 지금 쌓아두는 경험은 아주 소중한 자산이 될 테지.]

그들이 예상하지 못 하는 단 하나의 비밀은, 태호가 바로 균형의 수호자라는 점일 거다.

그것을 미리 알리고 싶진 않다.

“예.”

[나는 네게 에픽급 제물을 요구하지 않으마.]

그것이 돌로라의 조건이었다.

‘볼카노스가 그녀와 흥정을 했구나.’

고마운 일이다.

태호는 그녀에게 유니크 10종을 내밀었고, 그녀는 흔쾌히 조건을 들어주었다. 유니크 10종의 가격은 솔직히 높은 편이나, 에픽을 주는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마지막은 바람의 신 라르였다.

태호는 그녀에게 바칠 것을 이미 정해 둔 바 있었다. “당신께 이것을 바치죠.”

태호가 내민 것은 에픽 스킬북, ‘맹렬한 지진’ 이었다.

[네 바람이 이루어졌다.]

라르 역시 흔쾌히 동의했다.

생각보다 저출혈로 나머지 신들의 동조까지 얻어낸 태호는 그녀의 제단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떻게든 됐네.’

솔직히 말 해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모든 유저들에게 메인 퀘스트를 내려, 신노스를 공격해 들어가게 하는 것은 분명히 일리가 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자신이 에픽파밍을 해 강화하는 것이 이득일지 모른다.

물론 당장은 그러하나, 훗날을 기약한다면 그렇지 않다.

태호는 지금 ‘유저들을 움직이는’ 신들에게 미리 도장을 받아 둔 셈이었다.

다음에 다시 이런 의뢰를 부탁할 때, 태호는 훨씬 더 효율적으로 유저들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유저가 생각보다 그리 많지는 않다.

동시접속자 수천만명 수준인 것.

허나 향후, 리얼포스의 동시접속자는 억대로 뛴다. 지금이야 이 정도 제물로 대충 땜빵을 하더라도, 훗날에는 지금의 몇 배 이상의 제물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 태호가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호감도를 쌓아 놓았으니, 훗날에 조금 더 저렴하게 유저를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득이다.

* * *

[세상에. 정말 혼자서 레이드급을 클리어하신겁니까?]

[보시다시피.]

[말도 안 돼...]

편집자 김택환은 어쩐지 기겁한 듯, 한참 동안 말이 없다 물어왔다.

[이걸 올리면 파장이 클 거에요. 당신을 시기하고 헐뜯고, 또 비난을 하는 사람도 대폭 늘 겁니다. 상대적 박탈감이란 게 원래 그래요. 누군가는 분명히 그렇게 합니다. 그래도 올리실 거죠?]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태호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지금 태호가 가진 재정상황은 그야말로 리얼포스 전체를 씹어먹는 사기 수준이었다. 과거엔 그냥 상상의 나래로만 가능하던 것들이 태호에게는 현재진행형이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누군가가 분명히 존재하게 된다. 시기를 한몸에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네.]

그래도 해야 한다.

욕을 먹는 만큼, 정비례해서 팬덤은 더 늘어난다.

태호는 이미 리얼포스 최고의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그것 이상의 네임벨류가 필요하다.

말 한 마디로, 이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어야 한다. 유저가 대단한 유저를 바라보는 입장이 아니라, 마치 이 세계의 신처럼 보여야 한다.

[알겠습니다.]

김택환이 짧게 대답했다.

김택환으로부터 편집 동영상이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사흘 뒤의 일이었다.

태호는 망설임 없이 그 동영상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레이드급 던전, ‘엘린의 공중정원’ 솔로 플레이.]

번역하면 이런 제목으로 올라간 동영상은, 그야말로 온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태호는 가만히 스마트폰을 든 채 커피를 홀짝이며 동영상을 확인했다.

동영상 속 태호는 그야말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레이드급 던전을 솔플(솔로플레이) 하고 있었다. 사방에 흩뿌리는 마법들과, 소환수들의 콤비네이션은 솔직히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누가 봐도 에픽을 족히 열 개 이상은 둘둘 말고 있는 듯 한 말이 안 되는 파괴력. 그리고 상식을 벗어난 공략능력.

조회수는 최단기간 100만뷰를 넘어섰다.

사실은 PPV(Pay Per View)를 했어도 수억은 벌었을 소재가 공짜로, 그것도 정교한 편집본이 풀린 것은 유저들 사이에 큰 화젯거리였다.

[소문의 언노운, 레이드급 던전 솔로 플레이에 성공하다...]

[절대무적! 언노운의 솔로 플레이!]

[주인공은 역시 언노운...]

온 사방에 극찬하는 기사가 퍼지고, 유저들의 경악과 흥분이 공존하는 반응이 이어졌다. [메인 퀘스트가 등장하지 않던 ‘힐러’ ‘무속성’ ‘바람’ 계열 직업군에도 드디어 메인 퀘스트가 등장! 잊혀진 왕국 클리어에 더욱 박차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

태호가 만들어낸 흐름은 이제 완벽해졌다. 태호는 리얼포스의 흐름을 쥐고 흔들고 있었다. 대장군 신노스를 패죽일 계획은 이미 완성됐다.

조회수는 단 하루만에 500만을 돌파하고, 그 다음날 700만을 넘어섰다.

전 세계 유튜브 기록 중 가장 빠른 조회수 갱신 기록이었다.

조회수가 천만이 넘고, 천오백만을 향해 달려갈 무렵 언노운의 유튜브에 동영상 하나가 더 올라왔다.

[이벤트 개최]

[잊혀진 왕국, 최초 클리어 팀에게 상금을 겁니다.]

번역하자면 이런 제목이었다.

[최초로 잊혀진 왕국의 최종보스 ‘신노스’를 공략에 성공한 팀에게 ‘언노운’ 의 이름을 걸고 10만 골드의 상금, 그리고 ‘망가진 잡동사니 10만개’ 를 지급합니다.]

현금대비로 치면 대략 합이 12억 이상의 상금이었다. 현재 망가진 잡동사니는 이미 1개에 50실버를 넘어섰다.

유저들에게 가장 필요한 아이템이었기에 언제나 수요가 폭발했으니, 돈 보다 더 반가운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동영상에는, 높은 절벽의 끝에 선 언노운이 있었다. 언노운은 저 편, ‘잊혀진 왕국’ 의 땅을 바라보며 전신에 시커먼 마력을 끓어 올리는 것이다!

이내, 그의 전신에 시커먼 마신(魔神)이 강림했다. 마치 그의 몸에 덧씌워진 것 같은 그 형상이 손을 뻗어, 저 편 잊혀진 왕국을 가리켰다.

마치 다음 목표는 저 곳이라는 듯!

동영상은 그게 끝이다.

“......”

태호는 가만히 동영상을 보다 몸을 벅벅 긁었다. 창피함은 자신의 몫이었으니, 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태호는 할 만큼 했다.

유저들에게 모두 메인퀘스트를 부여했고, 그들에게 동기 부여도 확실하게 했다.

돈은 약 현찰 12억 가량의 상금이다.

향후의 리얼포스에서는 수십 수백억에 에픽 아이템이 거래되지만, 아직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그리고 일개 개인이 거는 금액으로는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금액이 분명했다.

돈을 보고 달려드는 자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명성을 높이기 위해 달려드는 자들도 많을 것이다.

이건 전설의 언노운이 직접 시작한 이벤트.

어쩌면 언노운과 연이 닿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다.

“휴.”

그래. 이 쯤 하면 됐다.

태호는 그제야 무겁게 자신을 짓누르던 짐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이것 저것 얻은 것들이 많기에, 실험해 볼 것도 많다.

< 대형 이벤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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