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타라스 슬램 >
태호는 자신의 모습을 전신 스크린샷을 찍어 확인해 보았다.
‘이게 낫나?’
현재 태호는 ‘창공 세트’를 입은 채였다. 창공 세트는 기본적으로 근미래적인 디자인이었다. 어찌 보면 약간 우주복 같기도 했다.
우선, 전체적으로 불투명한 푸른빛으로 빛나는 재질이었다. 전체적으로 환하게 빛나는 느낌은 충분했는데, 너무 눈에 띄는 것이 문제였다.
“어때 보여?”
[흠... 내 취향은 아닌걸. 너무 화려하다.]
막시무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치? 나도 그런데.”
태호는 고개를 까닥이며 창공 세트를 벗었다. 아무래도 이것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는다면, 만인이 자신을 알아볼 것이다.
그건 곤란하다. 필요할 때만 알아봐 주면 되니까, 일단 이것을 각인시키기로 했다.
이 곳은 노펜시아의 비밀 카페.
카페에 들어가, 비밀 방을 빌리면 시간당 1골드라는 높은 가격에 비밀 방을 빌릴 수가 있었다. 태호는 그 방 안에서 이런 저런 것들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자, 그럼 이걸 보자.”
이번에 꺼낸 것은, 엘린의 공중정원에서 위업 보상으로 받은 ‘창공의 심장’ 이었다.
[등급 : 8급]]레전더리]
[종류 : 재료]
[이름 : 창공의 심장]
[하늘의 심장, 이것을 이용해 고귀한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을지도?!]
“......”
이는 과거에는 본 적 없는 아이템.
태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에픽 같은 걸 만드는 걸까?”
[흠... 나 역시 본 적 없다.]
막시무스의 말에 태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찌됐든, 위업 보상에 재료로서는 드문 ‘레전더리’ 였다.
‘심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에픽이라면.’
태호는 그리 어렵지 않게 자신이 착용하고 있는 ‘데스나이트의 심장’을 떠올릴 수 있었다.
데스나이트의 심장이라면 리얼포스의 역사에 남을 정도로 사기적인 아이템.
‘또 다른 심장 에픽을 만들 수 있을 지도 모르겠네.’
이런 정도의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지금 태호의 인벤토리 창에는 유니크 아이템이 50개는 넘게 쌓여 있었다.
솔직히 이쯤 되니 창고에 하도 아이템들이 쌓이고 쌓여, 도저히 분류가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자 그럼, 이번엔.
[까아아악! 주인님! 주인님!]
소환된 야타카라스는 주인님 열창을 부르기 시작했다.
“......”
마력의 결정체는 대략 1100여개가 모여 있었다. 태호는 그것을 하나 하나 야타에게 먹였다.
[까악! 까아악! 까아아아악! 기분좋다악!]
야타가 기묘한 신음소리를 내며 그것을 낼름낼름 먹어 치웠다. 야타의 레벨이 1씩 오르고 있었다.
[Lv. 45]
[Lv. 55]
[Lv. 72]
레벨이 오를수록 필요한 마력의 결정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결국 야타의 레벨이 75를 찍을 무렵.
1100여개에 달하던 마력의 결정체는 고작 100개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거 완전 결정체 먹는 하마네.”
[까악! 강해졌다악!] 아닌 게 아니라, 야타의 크기는 이제 진짜로 많이 커졌다. 잘 하면 등짝에 올라 탈 수도 있긴 할 것 같은데, 크게 효용을 보이긴 힘들 듯 하다.
“네놈 먹여 살리기 정말 힘들구나.”
[까악! 까악! 하하하! 꼬시다악! 아니, 고맙다악!]
묘하게 엿을 먹이는 것 같다. 태호는 그런 야타를 소환해제 한 뒤 나머지 전리품들을 살폈다.
-형님! 그 저번에 말 한 순수의 강철이라는 거, 대충 많이 모았는데 어디쇼?
그 무렵 라간의 귓속말이 와, 태호는 고개를 까닥이며 일어섰다.
-노펜시아 광장으로 와.
-옛서!
태호는 라간이 오기 전, 일일 퀘스트를 끝내기로 했다.
* * *
“아, 야! 야 이 개새끼야! 적당히좀 해!”
이제는 친근해진 크레이지도그의 길드마스터 나잘이 태호를 보더니 한숨부터 내쉬었다.
“얼마 전에 멜랑꼴리가 에픽 떨궜다면서, 이 개새끼야! 그거면 됐지 왜 지랄이냐고!”
태호는 그의 앞에서 말 없이 귀를 후비적거렸다.
그가 멸망의 큐브를 떨군 것은 사실이었다. 멸망의 큐브는 아직 교섭품으로 남겨 두고 있었다. 이건, 볼카노스와 교섭해 흑마법사 고유의 에픽으로 바꾸든 뭘 하든 할 거다.
“너도 있지?”
태호는 드물게 그에게 말을 걸었다.
“......”
“어차피 창고에 맡기지도 못 하지? 거래도 안 되지?”
“......”
태호는 혹시나 싶은 자신의 추측 하나를 덧붙여 의미심장한 어조로 물었다.
“어차피 그거 네놈 죽을 때 마다 초기화되지? 사람 죽인거 무용지물 되잖아? 나는 네가 그걸 떨굴 때 까지, 너를 죽일 거야.”
태호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하지만, 섬뜩했다. 나잘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시, 시팔 이런 악마같은 새끼!”
익숙한 칭찬이었다.
놈은 적잖게 당황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추측이 맞겠군.’
아무래도 혼돈의 유산은, 소지자가 죽을 때 마다 ‘개방을 위해 필요한 영혼’ 개수가 초기화되는 듯 했다.
“너, 로만 알지.”
태호의 다음 물음에 나잘은 눈을 꿈뻑이다 고개를 저었다.
“로만이랑 마지막으로 말 나눠 본 게 벌써 한 달은 됐다! 어디 쳐박혀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아무래도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럼, 뱀파이어즈 길마랑 부길마는?”
“아, 알지.”
“걔들 본거지가 어디야? 알려주면 너는 봐 줄 수도 있어.”
나잘은 고개를 저었다.
“네놈이 알지 모르겠다만, 거기 길마놈이랑 부길마 둘도 연락두절이다. 원랜 부길마가 셋이었는데, 간즈라는 부길마는 네놈한테 털리고 꼬워서 접었지.”
“......”
태호는 팔짱을 꼈다.
“그래?”
“그, 그렇다. 정말이다!”
“너는 접지 않는 걸 보니, 분명히 인벤토리 안에 에픽 가지고 있겠구나. 잘 알았다.”
“뭐, 뭐? 어, 어이씨!”
태호는 나잘을 단방에 해치우곤 고개를 끄덕였다. 나잘은 어찌 보면, 초보자 마을에 존재하는 허수아비 같은 느낌이었다.
매일 매일 죽일 때 마다 새로운 것이, 얼마나 강해지는지 대강 체감이 되는 것이다.
‘란마는 접었나?’
최근 며칠 째, 부길마 란마가 접속하지 않고 있었다.
뱀파이어즈의 간부진은 부길드마스터가 될 ‘간즈’ 라는 녀석밖에는 만나 본 적이 없다.
간즈는 접었다니, 나머지 길마와 부길마 둘이 의심스럽다. 이로서 리얼포스에 악명을 떨치던 머더러 총 세 놈이 잠적했다.
‘심상찮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노펜시아로 돌아온 태호는 광장에서 라간을 만날 수 있었다.
“아, 형님!”
라간이 간만에 보는 태호가 반가운 듯 후다닥 달려와 어깨동무를 했다.
라간은 태호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이번에도 한 건 했던데? -......
-안그래도 우리 팀도 잊혀진 왕국 레이드 가겠다고 난리거덩. 거의 로또 같은 느낌이랄까?
라간에게 드디어 팀이 생겼다.
태호는 그 말이 기분이 좋아, 빙긋 웃었다.
“그래.”
“아, 일단 이거 받으쇼.”
라간에게 거래창으로 순수의 강철 95개를 받았다. 태호는 그런 라간에게, 인벤토리에 있던 유니크 몇 종을 건네주었다.
“으잉?”
“받아 둬. 이 쯤이면 싼 값이야.”
라간은 씩 웃었다.
“그렇게 해 주면 또 감사히.”
기분 좋은 거래가 끝났다. 라간은 자신의 망토에 새겨진 로고를 태호에게 보여주었다.
“이거 내 새 스폰서. 어때?”
[FANTASIA]
영국 제일의 주류 제조사, 판타지아의 로고였다.
“이 게임 주점에서 술 파는거 알지? 뭐 알콜에 취하거나 그런 건 없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npc들한테 의뢰 넣어서 판타지아 로고가 박힌 술을 주점에 납품하는 식으로 홍보할 거래.”
“독특한걸.”
“그치? 이런 세상이 오다니 믿을 수가 없긴 해.”
라간은 씩 웃었다.
문득 주변의 유저들의 시선이 어쩐지 범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태호가 고개를 갸우뚱거릴 무렵이었다.
-라간이다.
-진짜 라간이야?
-와, 상위 랭커 처음 봐.
이유는 태호가 아닌 라간을 보며 웅성대는 사람들이었다. 라간은 그게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나 그럼 다음 리스폰 타임 다 돼서 일단 가 본다?”
“그래. 고생해라.”
라간이 후다닥 사라지고, 태호는 킬킬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 * *
이곳은 아젠티움.
태호의 인벤토리 창에는 이제 순수의 강철 103개가 모여 있었다. 라간에게 받은 순수의 강철로 에픽제작 조건인 100개를 충족시킨 것이다.
“아, 자네 왔는가.”
드워프 엑셀이 태호를 반겼다.
이제 아젠티움은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왔다. 착 가라앉은 분위기가 곳곳에서 풍겨 오지만, 그래도 건축물이나 활기는 많이 돌아온 편이다.
“다름아니라, 제작 의뢰를 드릴까 싶어서요.”
“아, 그렇지 그렇지. 자네라면 언제든 환영이라네.”
엑셀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어떤 부위를 원하는가?”
그 부분에 있어선 곰곰이 생각을 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 향후 나올 레이드 던전을 생각해 보자.
가장 근미래에 등장할 레이드 던전은 ‘바넷사의 해저기지’ 이다. 그 곳에선 상의, 하의 에픽이 떨어진다.
그리고 태호가 얻어야 할 흑마법사의 전용에픽 부위는 ‘장갑, 반지, 신발’ 세 부위. 현재 착용하고 있는 반지인 ‘고대 왕국의 증표’ 는 숙련도 작업에 유용하지, 전투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무튼.
기왕이면 저 세 부위를 벗어난 부위를 맞추고 싶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태호가, 문득 생각나 공중정원에서 얻은 재료들을 엑셀에게 보여주었다.
“이것들 중, 제작에 도움이 될 만 한 물건이 있습니까?”
엑셀은 이것 저것 살피다가, ‘창공의 심장’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흐음... 이것을 어디서 구했는가?”
“하늘을 떠 다니는 섬에서 구했습니다.”
“......”
엑셀은 가만히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아주 귀한 물건일세.”
‘뭔가를 알고 있구나.’
태호는 엑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에 씁니까?”
“창공 뿐 아니라 바다, 대지에도 심장이 있지. 이는 그 세계의 기운들이 만들어 낸 결정체 같은 거야. 그러니, 잘 모아 두게.”
대강 감을 잡았다.
창공의 심장, 바다의 심장, 대지의 심장 뭐 이런 이름으로 존재할 아이템들을 모아 합성하거나 제조에 사용하는 듯 했다.
“모아서 당신께 가져가면 됩니까?” “그래 보게.”
다시 대화를 나누며, 새로이 제작할 에픽 아이템의 부위는 ‘투구’ 로 정했다.
어디에도 겹치지 않으며 당장 유용하게 쓸 수 있으니, 나쁜 선택은 아닌 듯 싶었다.
“아, 그리고 재련도 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 물건은 최소 두서 번은 재련이 가능할 걸세. 인간의 기술력으론 힘들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과거 엑셀은 태호에게 이런 얘기를 해 준 적이 있었다.
“가능하네. 다만, 에픽이라는 고귀한 등급에 한해서만 가능하지.”
“그럼 다음번엔 그것까지 같이 부탁드리죠.”
“알겠네.”
다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젠티움을 떠날 무렵이었다.
혹시나 싶어 ‘상급 머더러 헌터’를 발동해 머더러들을 물색하던 그 무렵.
‘란마다.’
란마가 접속했다.
오늘의 일일퀘스트를 클리어하지 못 한 것이 영 찝찝했는데, 이 녀석까지 잡아 족치려던 그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자식들 죽어도 죽어도 계속 접속하는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하던 태호는, 오늘은 조금 다른 전략으로 움직여 보기로 했다.
* * *
남쪽 대도시, 안타라스 슬램.
그 곳에 접속한 란마는 후다닥 여기 저기를 움직이고 있었다.
착!
안타라스 슬램의 그리 높지 않은 건물 지붕에 올라선 태호는 숨죽인 채 사방을 둘러보았다.
‘머더러 천지네.’
< 안타라스 슬램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