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용 에픽 >
[쉬폰, 통한의 KO!]
다음날 헤드라인은 이것이었다.
쉬폰이 로만에게 넉다운 당한 것은 그야말로 센세이션한 일이었다. 어차피 지금 언노운은 탈(脫)유저급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평이었다.
언노운이 둘둘 말고 있는 에픽은 추산 불가라는 말이 있었고, 수십 대 일도 가볍게 찜쪄먹는 사기적인 위용을 이미 모두가 보았다.
그러니 언노운은 일단 경쟁상대에서 빼 놓고, 그 다음 적어도 인간계에서만 따지면 쉬폰이 최고라고 쳐 주는 분위기였다.
쉬폰은 전적도 화려하고, 일단 WOF에서 온 불패의 투신 윤형석이라는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언노운에게 패배했지만, 그건 뭐 별 수 없다고 치는 게 여론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공개된 로만의 PVP 동영상은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다.
“......이 자식 일체감이 대체 몇 퍼지?”
태호는 놈의 동영상을 보며 심도 깊게 고민했다.
마지막으로 로만을 보았을 때, 놈의 직업은 ‘디펜더’ 였다. 생명력이 무식할 정도로 높은 퓨어 탱커 클래스다. 동영상 속의 로만은 양손에 하나씩 방패를 들고 있었다.
‘로열 디펜더!’
로열 디펜더는 디펜더의 4차 전직으로, 양 손에 든 방패들을 이용해 공격과 방어를 하는 직업군이었다. 각 방패는 길이 80센티미터 정도의 직사각형 크기로 로열 디펜더의 전용 방패다. 공격력 스텟이 없는 다른 방패들과는 달리, 공격력이 나름대로 있는 편이다.
그 두 개의 방패로, 놈은 쉬폰과 대등한 근접전을 펼쳐내고 있었다.
쉬폰은 검과 방패를 사용하는 전통적인 전사였는데, 나름대로 대등하게 5분여간 합을 나누다 어느 순간 훅 밀리기 시작했다.
태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동영상을 지켜보았다.
‘일체감이 일순간 확 올라갔어.’
그 뿐 아니라, 공격력도 대폭 상승한 듯 했다. 5분 이후로 쉬폰은 계속해서 수세에 밀리다, 결국 10분가량을 더 버티다 결정타를 맞고 쓰러졌다.
웹 포털에 난리가 났다.
‘혼돈의 유산을 개방한 게 분명한데.’
개방한 놈들은 예상컨대 총 넷. 로만, 그리고 뱀파이어즈의 간부진 셋이다.
‘어떻게 되는 거지?’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문득 웹사이트에서 TV채널을 켜자, 실시간 게임토픽 채널에 시청자 30만명이 넘게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방송에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 하나가 보였다.
‘로만이잖아?’
로만은 현실에서 직접 방송에 출연하고 있었다.
[어제, 윤형석 선수를 꺾으신 동영상이 장안의 화제인데요...]
인터뷰를 보니 놈은 실존하고 있는 듯 했다. 이런 저런 인터뷰들이 이어지다가, 문득 놈이 화면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곧, 잊혀진 왕국 레이드가 있을 거라고 하지요?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질 것 같네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그래.
태호는 빤히 놈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 해 보자고.”
.
.
.
.
.
.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우선 노펜시아에서는 진작에 ‘창공 세트’ 의 옵션 작업을 끝낸 바 있었다.
[등급 : 8급][레전더리]
[종류 : 방어구(손)]
[이름 : 창공의 장갑]
[옵션 : 방어력 1000]
[특수옵션]
[지능 +5]
[지능 +5]
[체력 +5]
[체력 +5]
[세트 옵션이 존재합니다.*비활성화*]
[세트옵션 : ‘마력포 난사’를 발동하여 사방의 적들에게 물리/마법 공격력에 비례한 무차별 난사를 가한다.] 장갑만 봐도 대략 이런 식이었다. 그 외, 아쉽게 맥스스텟 5를 찍지 못 하고 4~3 짜리들도 있었지만 일단 적당히 만족하기로 했다.
현재 창공 세트가 올려 주는 스텟은 도합 다음과 같다.
‘방어력 5천, 지능 46, 체력 47.’
아직 재련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태호는 아젠티움으로 들어서, 엑셀에게 인사를 건넸다.
“기다리고 있었네.”
드워프 엑셀은 태호에게 투구 하나를 건네주었다.
“마음에 들지 모르겠구먼.”
사전에 제작을 맡겼던 에픽 투구였다.
[등급 : 에픽]
[종류 : 방어구(머리)]
[이름 : 순수의 투구][재련3회]
[순수의 강철을 제련해서 만든 투구를 보는 기분이 어떤가요? 라고 물어보길래, 아 네 뭐... 생긴게 투구 같네요 라고 대답했어요. 그리 유쾌해 보이진 않더군요, 잘못한 건가? - 초보 학자, 카실론.]
[마법 방어력 3000]
[옵션 : 사용자의 레벨 1당 10의 마법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상태이상의 지속시간이 30% 감소하며, 마법 공격에 적중당했을 때 일정 확률로 마법 면역 효과 1회가 발생합니다.(쿨타임 10초)]
[재련(X3)옵션 : 지능 15]
[이 옵션은 특수옵션으로 취급되며 ‘카오스 스톤’ 으로 변경이 가능합니다.]
마법 방어력이 대폭 상승하는 투구였다.
‘나름 유용하겠군.’
상태이상과 마법 면역 효과는 아주 유용한 옵션이다.
또한, 재련X3 이라는 것도 한눈에 들어왔다. 재련을 중첩시킬 수 있는 능력은 이곳 드워프들만이 가능한 영역이었다.
“유용하겠군요.”
“하하하!”
엑셀이 기분 좋게 웃었다.
태호는 엘린의 공중정원에서, ‘마법 면역’ 이라는 스킬을 배운 바 있었다.
스킬의 성능은 다음과 같다.
[공용 스킬]
[등급 : 8급][유니크]
[쿨타임 : 20초][숙련도 : 0][소모마력 : 100]
[스킬명 : 마법 면역]
[마법 면역을 사용해, 자신에게 가해지는 마법 1개를 막는다. 그 어떤 스킬도 면역 효과를 받는다.]
마법 면역은 분명히 있으면 좋은 스킬이었다. 특히 불마법사 등, 한 방이 강력한 마법이 날아올 때 ‘한 방’을 면역으로 막아낸다면 금세 역전이 가능하다.
우선 투구를 챙긴 태호는 자신이 소유한 에픽 아이템들의 재련을 맡겼다.
재련 작업은 크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기에, 보유한 에픽들에 금세 재련을 마칠 수 있었다.
재련에는 ‘공격속도, 이동속도’ 가 연관된 옵션과, ‘스텟’ 올리는 옵션이 있다.
개중 공격속도는 크게 필요가 없어도, 이동속도는 아주 유용할 것이다. 다만, 이동속도 중첩에는 한계가 있었다. 재련으로 중첩되는 이동속도는 ‘공격시, 피격시’ 1개씩으로 한정돼 있었다.
그 이상은 착용해도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장착귀속’ 에픽에는 재련이 불가하다.
즉.
에픽으로 ‘공격시, 피격시 이동속도 증가’를 1개씩 맞춰 놓고, 나머지는 스텟으로 올리는게 효율적이다.
태호는 에픽 아이템들에 추가 재련을 넣었다. 그 다음, ‘창공 세트’ 에도 하나씩 재련을 넣은 뒤 카오스 스톤을 돌려 원하는 스텟을 만들어냈다.
결과적으로 에픽과 창공세트 재련으로 얻은 도합 스텟은, 이렇다.
‘방어력 5천, 지능 78, 체력 71.’
‘공격시 15초간 이동속도 대폭 증가’
‘피격시 15초간 이동속도 대폭 증가’
즉.
기존의 아이템들로 얻을 수 있는 기본 옵션에, 저 숫자들이 재련으로 인해 추가된다고 보면 된다.
태호는 대강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더 돌리자면 매일 아침 7시7분7초에 맥스 스텟을 맞출 수는 있다. 그건 시간이 날 때 마다 해 놓기로 하고, 각인을 시작했다.
[찬란한 은총의 팔찌에 ‘창공의 장갑’을 비롯한 ‘세트 아이템’을 각인시키시겠습니까?]
바로, 창공 세트를 각인시키겠냐는 말.
“예.”
샤아악!
이로서, ‘찬란한 은총의 팔찌’ 에 ‘창공 세트’ 가 각인되었다. 이제 태호는 ‘어둠 기사단’ 세트의 세트옵션, 그리고 ‘창공 세트’ 의 세트옵션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태호는 제법 마음이 급했다.
‘아마 조만간 첫 도전이 시작될 것 같은데.’
시대의 흐름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유저들의 레벨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오른다. 이유는 단순했다. 바로, 얼마 전 태호가 ‘엘린의 공중정원’을 클리어한 보상, 그리고 태호가 부여한 메인퀘스트들 덕분이었다.
엘린의 공중정원을 클리어하고 난 뒤, 지상의 모든 유저들에게는 축복이 내려졌다.
[지상의 모험가들에게, 올 스텟 10의 ‘엘린의 축복’이 내려 일주일 동안 지속됩니다!]
[지상의 모든 모험가들에게 경험치 50% 보너스 축복이 일주일 동안 지속됩니다!]
그간 유저들의 레벨업 속도에는 충분히 가속이 붙은 상태였다. 4차전직자들도 속출하고 있었고, 200레벨 중후반대 유저들이 대량 생산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물론 축복은 이제 끝났지만 말이다.
‘약 일 주일.’
앞으로 일 주일 정도면, 과거 잊혀진 왕국이 공략됐을 때 보다 유저의 평균레벨이 오를 것이다.
이제 태호는 군자의 지팡이를 쳐다보았다.
[사용자가 사냥한 인간 1당 1의 마법 공격력이 상승합니다.(420/500)]
이 조건만 충족시키면, ‘군자의 시련’ 이 열릴 것이다. 군자의 시련까지 클리어하면, 군자의 지팡이는 더욱 높은 마법 공격력을 갖게 된다.
‘대충 신노스 파트가 끝나면, 신대륙도 찾아 가야 하는데.’
신대륙은 태호가 보유한 ‘에픽 콜렉트’ 때문이었다.
[추가 개방 조건 : 미지의 대륙을 찾아, 그 곳에 숨겨져 있는 에픽 콜렉트의 유적 찾기.]
이 조건을 클리어하면, 에픽 콜렉트는 더욱 업그레이드된다.
최대 24개의 에픽까지 추가 대미지와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전신에 두룰 수 있는 에픽에는 한계라는 것이 명확히 존재했다.
머리, 손, 상, 하의, 신발.
목걸이, 반지, 팔찌, 귀걸이.
9개는 고정돼 있다.
즉, 앞으로 태호가 얻어야 할 에픽들은 대략 ‘장착귀속’ 으로서 마치 ‘데스나이트의 심장’이나 ‘메소드의 기운’ 처럼 지속효과를 가져오는 것들 위주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저런 상황들을 확인한 태호는 마지막으로, 볼카노스를 부르기로 했다.
이제 남은 일 주일간, 태호도 최선을 다 해 놈들과 신노스를 쳐부술 준비를 마쳐야 했다. 유저들을 움직이는 것은 이제 할 만큼 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마지막 준비를 할 차례다.
화아아악!
‘볼카노스 신을 만나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자, 사방에 마력이 몰아치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
눈을 뜨니 세상은 시커멓게 변해 있었고, 눈 앞에 볼카노스가 서 있었다.
[불렀느냐, 나의 종이여.]
“예.”
태호는 그를 보며 씩 웃었다.
“흑마법사의 전용 에픽등급 장비들을 지상의 대륙에 흩어 놓으셨지요?”
[...그렇다.]
볼카노스가 짧게 대답했다.
“가지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있다. 단 한 개이지만...]
“교환하시죠.”
단도직입적인 말에 볼카노스는 빙긋 웃었다.
[좋다. 무엇을 바치겠느냐?]
태호는 망설임 없이 인벤토리 창에서 ‘멸망의 큐브’를 꺼냈다. 그것을 보자, 볼카노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혼돈의 유산이군. 훌륭한 제물이다. 허나... 그것으론 균형이 충족되지 않는다.]
이걸론 모자라다 이거군.
“얼마나 모자랍니까?”
[절반 정도가 충족되었다.]
에픽 두 개 급이라고?
태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살짝 꺾었다.
“신노스를 처단하기 위함인데도 온전한 대가가 필요합니까?” [필요하다. 신력을 이용하는 약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신력을 이용한 메인 퀘스트 등은 어느정도 융통성이 생기지만 물건을 거래할 때는 정확히 ‘균형’을 맞춰 주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과거 태호는 로만제국의 퀘스트를 방해하고 '공허의 혼돈' 을 완성시킨 바 있었다. 그것은 '장착귀속' 인 혼돈의 유산이었고, 가치가 보통 에픽보다 훨씬 높았다. 아무래도 이건 그 급 까진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이것까지 드리죠.”
태호가 다시 내민 것은 ‘대지의 걸음’ 이었다. 이는 가이아에게 얻은 신발로, PVP시 유용해 제물로 바치기 아까워 놔 두었던 물건이었다.
[흐음...]
볼카노스는 그것을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균형은 성립되었다.]
태호가 내민 두 개의 에픽이 볼카노스의 품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볼카노스가 내민 것은 신발 한 켤레였다.
흑마법사의 전용 에픽이다.
< 전용 에픽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