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착 >
움직임이 말도 안 되게 빨라졌다. 태호는 매우 가볍게, 날아오는 마법을 피해 반대편 땅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너무 빠르게 움직임이 변한 터라 적잖이 당황한 태호가 재빨리 스킬을 띄웠다.
[패시브 스킬 : 극한의 몸놀림]
[설명 : 혼돈의 장군(샤반타, 데샹, 릴리트, 키탄카, 란텔)을 사냥해, 그들의 힘을 일부 획득하였다.]
[이동속도가 3배 상승합니다.]
[모든 공격에 직격했을 때, 50%의 확률로 회피합니다.]
흘끗 보니, 이런 스킬을 얻었다.
‘맙소사에 맙소사군.’
그렇다면?
[패시브 스킬 : 쇄도하는 마력]
[설명 : 혼돈의 장군(샤반타, 데샹, 릴리트, 키탄카, 란텔)을 사냥해, 그들의 힘을 일부 획득하였다.]
[마력량이 2배 상승합니다.]
[스킬을 사용할 때 마다 5%의 확률로 ‘모든 쿨타임 초기화’를 발생시킵니다.]
태호의 머릿속에서 계산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대박이다.’
50%의 확률로 완전회피가 뜨고, 스킬을 쓸 때 마다 5%의 확률로 모든 쿨타임이 초기화된다?
전투방법 자체가 달라져야 했다. 태호는 케노스의 이어지는 외침을 들었다.
[남은 수호자는... 단 하나 뿐... 헌데... 헌데... 어찌하여 고작 인간이... 그 힘을...?]
케노스는 이내, 싸늘하게 뇌까렸다.
[그렇군... 그녀가... 결국 권능을 써 버렸음이다...]
케노스는 아우슈리네가 권능을 썼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콰아아아아-!
동시에 태호의 사방으로 불덩이작렬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수십 발에 달하는 마법들은 그야말로 한 대 라도 맞으면 즉사의 위력을 뽐냈다.
허나 태호는 냉정하게 놈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본신의 힘의 1/10. 혹은 약간 이상.’
태호가 현재 어떤 대단한 스킬들을 얻었든, 어떤 에픽을 둘렀든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케노스가 자신의 힘을 단 20%라도 회복했더라면 이 전투는 승산이라곤 전혀 없는 무의미한 싸움이 됐을 터. 수백만에 달하던 유저들은 그 자리에 무덤을 만들 것이며, 태호의 모든 공세는 거의 무가치해질 것이다.
지금이야 사용하는 스킬이 적은 것을 보니, 태호가 아까 유저들에게 알려 준 간단한 공략법 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힘을 조금씩 더 회복한다면, 기상천외한 스킬들이 더 추가될 것이다. 단례로 순간이동과 지옥의 업화를 날리며 유저들을 순간삭제 시키던 그 위용을, 지금은 볼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환술의 비중도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과거 온전한 힘을 갖춘 놈의 환술은, 그야말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들었기에 환술임을 구분하는 것 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덕분에 케노스는 확장팩 보스 중에서도 역대급 난이도로 손꼽히던 놈이었다.
그 정도로 대장군이라는 존재는 엄청나다.
콰콰콰콰콰!
-탱커 앞으로! 메인탱커 하나로는 절대 못 막습니다! 각 파티의 메인탱커들한테 버프와 힐 몰빵 주세요! 못 막으면 전멸입니다!
마르코가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태호가 홱, 고개를 돌렸다. 수천의 인원을 통솔하는 대형 길드의 간부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그들 사이에서 탱커들이 달려나와 각자의 생존기를 돌렸다.
콰지지지직!
그들에게 불덩이작렬이 내리꽂혔다. 탱커들이 버프와 힐링을 몰아 받으며, 한 번을 버텨냈다.
물론.
-아악!
-젠장!
불덩이 작렬을 막아낸 뒤가 문제다. 불덩이 파편이 남아, 뒤편의 유저들 사이로 떨어진 것이다. 삽시간에 수십 명이 죽어나갔다.
꿀꺽! 마르코는 생각했다.
‘공격을 한번 막아내도, 그 잔흔 때문에 즉사한단 말이야?’
상식을 벗어난 종류의 보스였다. 보통의 게임에서는 등장할 리 없고, 나와서도 안 되는 종류다. 밸런스란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소리쳤다.
“자, 다시 돌진!”
수천의 군대가 재차 돌격해 들어갔다. 케노스는 싸늘하게 읊조렸다.
[고통에 몸부림쳐라, 버러지같은 존재들이여.]
지이잉-!
동시에 온 사방에 광역 환각진이 펼쳐졌다. 태호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환각입니다! 파훼법을 쓰세요!]
그리고 자신도 유령표범에서 내렸다. 그 순간 온 사방의 풍경이 바뀐다.
뒤 따라오던 유저들이 거대한 몬스터들로 변했다. 섬뜩한 살기가 살을 에어 오는 듯 했고, 세상은 어느새 거대한 지옥으로 변해 버렸다.
땅에는 유황이 들끓고 하늘에는 저주의 비가 내렸다.
태호는 눈을 감았다. 뒤로 두 걸음 앞으로 한 걸음.
오른쪽으로 두 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양 엄지 손가락을 깨물어 핏물을 낸 다음, 바닥에 십자를 그었다.
파시시식-!
케노스의 환각이 만들어낸 그 공간에, 하나의 출구가 생겼다. 태호는 다시 유령표범에 올라탄 뒤 그 곳으로 달려나갔다.
‘자연화.’
쿨타임이 돌아온 자연화가 은신을 걸었고, 태호는 공간을 빠져나가 케노스의 시야를 벗어난 뒤쪽의 건물 지붕에 자리를 잡았다.
슬쩍 유저들 사이를 본다. 환각진의 파훼법을 알려 주었지만, 실전에서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유저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은 자명한 일.
유저들끼리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죽음을... 목도하라...]
케노스는 비릿한 웃음을 보이며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쿠구궁- 쿠궁! 쿵!
하늘이 울부짖고 천둥 번개가 쳤다. 메테오 스웜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게 끝나면, 정확히 울크랜드보다 조금 넓은 범위에 메테오 스웜이 작렬할 것이다. 그럼 끝이다. 저 상태의 케노스는 그 어떤 상태이상 효과를 받아도 주문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면.
두들겨 패서 끊어야 한다.
태호는 싸늘한 얼굴로, 자신의 궁극기를 가동시켰다.
‘마신강림(魔神降臨)’
콰아아아아-!
태호의 전신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시커먼 형체로 태호의 몸 위로 덧씌워졌는데, 약 3미터에 달하는 반투명한 거대한 남성의 형체였다.
전신에선 시커먼 마력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머리카락은 삐죽빼죽했으며 온 몸에 기묘한 문신이 새겨져 있다. 마신이 태호의 몸에 강림한 것이다.
[마신강림이 발동 중입니다.]
[모든 어둠 마법의 대미지가 2배 증가하며, 쿨타임이 15% 감소합니다. 또한 모든 스킬에 들어가는 비용은 0으로 변합니다.]
마신강림은 본래 15초 지속의 궁극기다. 쿨타임은 60분으로서 매우 긴 편인데, 현재 태호에게는 조금 다르게 적용된다.
우선, 선지자의 해골이 부여한 ‘마법 성능2배’.
거기에 ‘볼카노스의 가호’ 가 부여한 ‘마법 성능2배’.
즉, 지속시간은 말도 안 되게 길어지게 된 것이다. 그 상태로 어둠의 땅을 깐 태호는 케노스를 정확히 조준한 뒤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어둠의 폭탄.’
을 시작으로 중독과 절망 등 가진 모든 스킬들을 쏟아냈다.
‘어둠의 명령.’
어둠의 명령은 생명력을 100% 모두다 소모해도, 마신강림 중에는 비용이 0으로 변하기 때문에 생명력에 아무 지장을 받지 않는다.
스킬 쿨타임이 문제라면. [스킬 쿨타임이 모두 초기화되었습니다.]
흑마법사의 스킬은 0초 짜리 중독으로 시작한다. 즉, 스킬을 무차별 난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매우 짧으며 5%라도 스킬 쿨타임은 거의 확정이다.
스킬 쿨타임이 모조리 다 초기화되었다.
‘지옥의 어둠불꽃.’
중첩이 불가한 스킬도 ‘3중첩’ 되게 만들어 주는 어둠의 땅 덕분에, 지옥의 어둠불꽃도 3중첩이 걸리게 된 것.
보통은 쿨타임 때문에 중첩이 되더라도 온전히 쿨타임이 끝난 뒤에야 가능할 테지만, 이번엔 단숨에 중첩시킬 수 있다.
[크으읏! 이, 이건... 볼카노스의 힘... 이런 쥐새끼 같은...]
케노스가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주문을 멈추지 않았다. 태호는 다시 박차를 가해 가진 모든 스킬을 다시 쏟아부었다.
케노스의 몸으로 어둠의 화살, 대규모 광역 스킬들, 시력상실을 비롯한 스킬들이 꽂혔다.
태호는 그 스킬들을 마구잡이로 난사해 나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사방으로 마력 지뢰를 뿌려댔다.
[스킬 쿨타임이 모두 초기화되었습니다.]
초기화 메시지가 떴다.
다이 이어지는 ‘지옥의 어둠불꽃.’ 그리고.
‘폭사.’
한번 터트려 준다.
콰과과광 쾅!
콰과광!
[크으으으읏! 이, 이런 빌어먹을 힘을 대체 어찌... 이런 짧은 시간에?]
케노스가 말도 안 된 다는 듯 경악했다. 대답 같은 것을 해 줄 시간이 없다.
‘어둠의 명령.’
100%의 생명력 소모를 건 어둠의 명령이 다시 케노스에게 작렬했다.
콰지지직!
우악스러운 소리와 함께 케노스의 몸이 살짝 휘청였다.
‘타격이 있다.’
[스킬 쿨타임이 모두 초기화되었습니다.]
쿨타임이 초기화 됐다는 소리와 함께 다시 난사가 시작되었다. 어둠의 폭탄이 걸리고, 중독이 금세 3중첩을 쌓았으며 상태이상 스킬들이 모조리 작렬했다.
‘폭사.’
쿨타임이 쉼 없이 돌고 있었다.
콰지직!
콰콰쾅!
한바퀴 더 스킬들을 모두 돌린 뒤.
‘폭사.’
콰쾅! 쾅!
콰광!
[크아아아아앗!]
기어코 케노스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자연히 외우던 주문도 캔슬되었다.
쿠구구구궁-!
본래는 수백여 개가 떨어져야 할 메테오 스웜의 초라한 모습이 하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떨어지는 것은 고작 열 개 정도의 운석 덩어리였다.
-붙읍시다!
-와아아아!
그 새를 놓치지 않고 유저들의 무리가 케노스에게 달려들었다. 근거리 딜러들이 병장비를 쑤셔 넣고, 마법이 케노스의 전신에 작렬해 나갔다.
케노스의 딜링 타임이 시작되었다. 패턴을 몇 개나 파훼했으니, 이제 케노스는 잠깐 동안 무방비 상태가 된다.
태호도 멈추지 않고 스킬을 무자비하게 난사해 나갔다. 콰지직! 콰지지직!
[크아악! 아아아아악!]
케노스가 발악하며 얻어맞다가, 사방으로 불덩이 작렬을 갈겼다.
-아아악!
-시팔!
삽시간에 수백 명의 유저가 터졌다.
화르륵- 화르륵!
날아드는 불덩이 작렬을 버티지 못 하고 금세 1/4의 유저가 삭제됐다. 허나 그 사이 누적된 대미지가 상당했는지, 케노스가 다시 한쪽 무릎을 꿇었다.
[큽!]
쏴아아아아-!
온 사방에서 마법과 화살, 병장기가 쇄도해 오고 있었다. 날아드는 마법들의 알록달록한 색감이 세상을 한없이 물들일 것만 같은 장관이다.
태호 역시 계속해서 쿨타임을 초기화 시키며 마법을 난사해 나갔다.
‘통한다.’
두근 두근 두근!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본래라면 승산을 점치기 힘들 정도의 싸움이었겠지만, 균형의 수호자가 부여한 쿨타임 초기화라는 스킬이 전세를 역전시키고 있었다.
태호는 지금 평소보다 몇 배 이상이나 대미지 딜링에 최적화된 매커니즘을 완성한 것이다.
화아아악-!
재차 이어진 환술.
허나 두 번째 환술에는 사상자가 크게 나지 않는다. 곧바로 환술을 빠져나온 태호가 다시 스킬을 난사하자, 케노스는 더 이상 못 버티겠다는 듯 몸을 뒤로 빼 냈다.
[비, 비, 빌어먹을... 이, 이 시기의 인간들이 어찌 이런 힘을 갖추었단 말인가...?]
놈이 이를 갈았다.
[너... 이 빌어먹을 인간... 네놈...!]
곧 태호에게 수십 발의 불덩이 작렬이 날아왔다. 케노스는 작정을 했는지, 그야말로 수십 발의 불덩이 작렬을 추가로 날렸다.
족히 백여 발의 불덩이작렬이 태호에게 쇄도해 온다.
태호는 침을 꿀꺽 삼키며, 지지 않고 맞섰다.
퉁-퉁-퉁-퉁-퉁-퉁-!
불덩이 작렬에, 태호가 쏘아낸 어둠 마법이 작렬했다.
파싯-! 파싯-!
산화되는 어둠 마법들도 있었지만, 어마어마한 특유의 난사 덕분에.
콰짓- 콰지짓-!
날아오는 불덩이 작렬과 상쇄돼 허공에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사방에 불꽃이 튀고, 어둠 마력의 잔재가 남아 기괴한 풍경화 같은 모습을 연출해냈다.
파파파파파파팟!
태호가 마력을 모조리 끌어 올리며 항전하자, 유저들이 재차 공격을 감행해 왔다.
푹푹푹푹!
우지직! 지지직!
케노스의 전신이 난도질당하고 있었다. 태호는 이를 악물며, 아직 수십 발은 남은 불덩이 작렬이 코 앞에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어둠의 발걸음.’
순간이동을 사용해 냉큼 피해냈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방금 전 까지 서 있던 사방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땅도 건물도 모조리 태워 버리는 끔찍한 화염의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두, 두, 두고 보자... 이 빌어먹을 자식들!]
케노스는 울컥! 하며 피를 토해내며 소리쳤다. 이내 사방을 휩쓰는 불덩이 작렬을 만들어 내며, 주춤 주춤 물러서며 이내 도주를 시작했다.
‘놓치면 안 돼.’
그 무렵.
[크아아아아! 이 개자식들!]
굉음과 함께 등장한 것은, 신노스였다. 놈은 정직한 보스였기에, 물량전에서 밀린 모양이었다. 온 몸이 상처 투성이였지만, 아직 건장해 보였다.
태호는 좌우를 살피다 고개를 끄덕였다. 확성기를 든 뒤 냅다 소리친다.
[신노스를 상대해 주세요. 저는 케노스를 쫓겠습니다!]
유령표범을 소환한 태호가 잽싸게 달리기 시작했다.
탓, 탓, 타타타타탓!
이미 움직임은 3배 빨라졌다. 유령표범의 속도는 이제 그 어떤 유저도, 대장군조차도 능가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잡는다.’
태호의 두 눈이 독기를 띄었다.
‘너희 둘 다, 오늘 죽는다.’
타타타타탓!
유령표범이 질주하자 사방의 풍경이 길게 늘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새, 울크랜드를 벗어나 도망치고 있는 케노스의 뒷모습이 보였다.
[헉, 헉, 헉... 크... 크읏!]
케노스는 자신에게 접근해 오는 태호를 보자 경악했다.
< 결착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