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애비 냄새가 난다! >
[언노운, 맞서 싸우다.]
유튜브 팔로워는 천만명이 넘었다.
그간 태호가 한 행적들은 고스란히 유튜브로 올라갔다. 특히, 케노스의 불덩이 작렬과 어둠 마법이 격돌하는 장면은 채널에 올라간지 단 사흘만에 3천만뷰를 찍었다.
산산이 부서지는 불덩이들과 산화하는 어둠마법의 풍경은 그야말로 절정의 장면이었다.
[언노운 저거 신 아님?]
언노운 신 설이 대두됐다.
[아님. 저번에 말 하는 거 봤는데, 사람 맞음.]
[근데 진짜 쩐다. 템빨을 떠나서 그냥 상황이 멋짐.]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 경외감을 느끼는 사람, 부러워하는 사람. 인간 군상이 그곳에 다 모여 있었다.
케노스가 쓰러지고.
신노스와의 마지막 격돌도 화젯거리였다. 돌진해 오는 신노스를 필사적으로 틀어막는 언노운의 난사! 가히 영화의 한 장면처럼 끝난 싸움. 모든 상황이 언노운을 돋보이게 만들었고, 실제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전투는 끝났다.
[현시대 리얼포스 최고의 유명인사, 언노운. 베일에 뒤덮힌 그의 정체는?]
이제 어딜 가도 이런 말을 흔히 찾아볼 수 있었다. 누군가는 그를 보았다고 한다. 누군가는 초등학교나 중고교 동창이었으며, 누군가는 직장 동료였다고 증언했다.
허나 그 어떤 증언도, 태호는 아니었다. 태호는 그저 태호였을 뿐이다.
촤아악-!
범선이 바다를 가르고 나아갔다. 비릿한 바닷냄새, 그리고 바닷바람이 훅 불어왔다. 하늘은 맑고 갈매기의 끼룩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에메랄드빛 바다는 한없이 펼쳐져 있었다. 범선 위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첫 번째 신대륙으로 향하는 인원들이다. 모험을 즐기는 유저도, 무역을 하려는 유저도, 새 사냥터를 찾는 유저도 있었다.
배 위는 왁자지껄한 느낌이었다. 태호는 범선의 구석에 앉아, 저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즐겁게 떠드는, 즐거워 미치겠다는 표정의 유저들이 보였다. 그렇다. 리얼포스의 세계는 그런 세계였다.
태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과거의 태호는, 이 세계가 너무 좋고 즐거워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는 이 세계를 사랑했었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현실과는 다르게, 이 세계는 태호에게 부와 명예 그리고 삶의 기쁨을 주었다.
“......”
그래, 주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세계의 비밀을 파헤쳐 가야 한다.
이 길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리얼포스의 종말?
복잡미묘한 심정을 뒤로 한 채, 범선은 빠르게 바다를 가르며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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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륙, 마탄.
마탄은 대략 반나절 쯤 배를 몰면 도착할 수 있는 신대륙이었다. 특산물은 열대과일, 그리고 희귀광석들이다.
광석들은 각종 아이템 제조 등에 유용히 쓰여, 교역품으로 인기가 많다. 당연하게도 지형은 열대우림지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범선이 정박하고, 태호와 라간은 마탄에 내렸다. 이 범선이 다시 출발하려면 반나절의 시간이 지나야 한다. 그러니, 태호는 인근의 어부들에게서 고깃배 한 척을 빌렸다.
마탄 섬은 무역을 하는 유저들에겐 중요한 섬이었다. 본대륙의 아이템들을 가져와 이곳의 npc들에게 물물교환을 하는 식으로 교역은 이루어진다.
경우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무역시세는 바뀌기에 신대륙을 통한 무역은 최근 각광받는 돈벌이 수단이었다.
우선.
이 곳에서 챙길 것은 딱히 있는 편은 아니다. 무역품이란 본디 제때 팔아야 효용가치가 생기는데, 지금 태호와 라간은 꽤 긴 시간 동안 본대륙으로 돌아가지 못 할 것이기 때문이다.
“와, 열대우림이네!” 라간이 한껏 들떴다. 열대과일을 이것 저것 사 인벤토리에 집어 넣는게 엄마 따라 장보러 나온 어린아이 같아 미소를 머금었다.
한두시간 정도 이 곳을 돌아다니며 풍경을 즐긴 뒤, 태호와 라간은 탈것을 소환해 섬의 반대로 이동했다.
‘이 쯤이겠지.’
섬 반대편에는 유저가 보이지 않았다. 태호는 빌려온 고깃배를 소환한 뒤, 그 곳에 올라탔다.
그리고 어둠 기사단과 막시무스를 소환했다.
[나의 주군 카이저!]
막시무스가 힘찬 목소리로 태호를 불렀다.
[위대한 나의 주군 카이저! 아하하하!]
“너 왜 이렇게 신났어?”
[거대하고도 패악한 두 혼돈의 대장군이 자네의 손에 개박살이 나 버렸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쏘냐!]
“......그렇냐.”
태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막시무스에게 노를 내어주었다.
[아하하! 내게 맡겨만 달라!]
막시무스와 어둠 기사단이 힘차게 노를 저어 나갔다. 태호는 곧이어 아르카네도 소환했다.
아르카네는 쏙, 튀어나와 태호의 옆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그리고 똘망똘망한 눈으로 라간을 보며 말했다.
[크다!]
“엥? 나?”
[응! 크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커져? 사과를 많이 먹었어? 맛있었어?]
분위기가 금세 왁자지껄해졌다. 아르카네는 라간이 꽤 마음에 드는 듯 가까이 다가가 양 볼을 꼬집어 보기도 하고, 킁킁 냄새를 맡아 보기도 했다.
[우리 오빠 냄새가 난다!]
“오빠?”
[응. 홀애비 냄새가 난다!]
“그게 무슨 뜻인진 알아?”
[모르지만 큰언니가 항상 그러는걸. 좋은 냄새일 거야.]
아르카네가 고개를 끄덕이며 신중한 얼굴로 말했다. 태호가 이마를 짚자, 라간은 배를 잡고 웃었다.
그렇게 한가로운 여정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어두침침한 기운이 사방을 장악해 오기 시작했다. 사방은 금세 자욱한 안개로 뒤덮히고, 하늘에선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제대로 왔군.’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부근은 유령섬이다. 과거, 태호는 이미 유령선을 한번 겪어 본 바 있다. 그 비슷한 유령선이 이 근방도 떠돈다.
‘어디보자.’
현재 시각은 오후 5시.
서서히 해가 기울고, 밤이 찾아올 시간. 사방이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 곧, 한 치 앞도 구분할 수 없는 어둠이 찾아왔다.
“와, 분위기 호러네.”
라간이 재미있다는 듯 좌우를 둘러보았다. 태호는 그 쯤에서 야타카라스를 소환했다.
[까아악-! 주인님! 존경하는 나의 주인님!]
허나 태호가 자신에게 마력의 결정체를 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빈정상한 얼굴로 물었다.
[뭐냐, 거지냐?]
“......”
태호는 인벤토리 창을 뒤적여, 그나마 몇 개 남아 있던 결정체를 꺼내 한 입 먹여 주었다.
[까악! 까악!]
“이제 너는 가서 유령선을 찾아라.” 야타가 저 편으로 날아간 뒤 얼마 안 돼 돌아왔다.
[저쪽에 배가 있다악!]
태호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 이제 하나 더 달락-]
녀석을 소환 해제했다. 배를 저어 이동한 곳에는 과연, 과거 겪어 본 유령선보다 훨씬 큰 배가 천천히 부유하고 있었다.
* * *
고깃배가 유령선에 가까워지자, 그 곳에서 희끄무리한 유령 하나가 나타났다.
[웬...놈...이..냐...]
태호는 가만히 올려다 보다가 지팡이를 겨누었다. 중독과 폭사가 이어졌다.
쾅!
“갑자기?”
라간의 물음에, 태호는 씩 웃었다. 그리고 막시무스에게 말했다.
“날 던져.”
휘익!
막시무스가 태호를 던졌다.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 태호는 유령선의 외벽을 한번 짚은 뒤 재도약해 유령선 안으로 들어섰다.
곧.
파파파파팍! 쾅! 쾅! 우지직!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린 뒤, 저 위에서 밧줄이 내려왔다. 라간이 밧줄을 타고 올라오자, 유령선 위는 이미 정리된 뒤였다. 태호는 놈들이 떨군 아이템들을 하나 하나 주우며, 조종석으로 향했다.
“형님, 이거 유령선이면 얼마 못 가는 거 아냐?”
“응 보통이면 얼마 못 가지.”
촤아아악-!
유령선은 바다를 가른다. 태호가 마력을 불어 넣자, 그야말로 귀신처럼 바다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범선의 속도보다 족히 대여섯 배는 빨랐다.
헌데 향하는 방향은 유령들이 산다는 섬, ‘홀로 섬’ 이었다.
태호는 그곳에 배를 대충 댄 다음 내려섰다.
홀로 섬은 유령의 섬이라고 불리는 곳. 이 곳은 바다에서 죽은 망자들이 모여 있다. 이 곳의 유령들은 혼돈의 힘에 영향을 받지는 않았지만, 태생이 악해 바다 위의 유저를 덮치는 것이 일상이다.
태호가 섬에 정박하자, 사방에서 인간의 형체를 한 유령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산 자다...]
[산 자가... 이 곳에... 왔다...]
사방은 더욱 자욱한 안개가 껴, 정말이지 한 치 앞 구분이 되지 않는다. 태호는 그 곳을 저벅 저벅 걸어가며 사방에서 달려드는 유령들에게 지팡이를 휘둘렀다.
쾅!쾅!쾅!
[Lv.300]
[홀로 섬의 망령]
300대의 망령들은 찍소리도 못 하고 마구 터져나갔다. 그렇게 한참 동안 공격을 퍼붓던 와중.
[누구냐아아아! 누가 감히 망자의 땅을 침범하려 하느냐!]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사방이 요란하게 울렸다. 사방에 자욱하게 깔려 있던 안개가 홍해 갈라지듯 좌우로 갈라지더니, 이내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콰아아아아-!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거대한 체구의 노인이었다. 두 눈은 텅 비어 있었고, 긴 수염이 인상적이다.
[Lv. 450]
[정예][월드보스]
[홀로 섬의 망령왕, 효가.] 태호는 가만히 녀석을 보다가, 지팡이를 겨누었다.
“어, 어어, 저거 월드보슨데? 어?”
라간이 당황했지만.
퉁-!
망설임 없이 강화된 중독이 날아갔다. 놈의 몸에 스며든 중독은 그야말로 미친 듯한 속도로 생명력을 깎아 나갔다.
‘폭사.’
콰과광!
[억! 어억!]
효가는 당황했는지 허둥지둥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막 결전태세를 갖춘 효가와는 달리, 태호는 어쩐지 추가타를 날리지 않은 채 빤히 놈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넌 누구냐?]
“요구조건은 하나다. 굳이 널 죽이고 싶진 않거든.”
[나, 나, 날 죽일 셈인가?]
“경우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고.”
태호의 말에 놈이 경악했다.
[겨, 경우에 따라서?]
“유령선의 소유권을 내게 넘겨라. 그럼 군말 없이 떠난다.”
놈은 당황한 듯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방금 당해 본 마법공격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대미지를 선사했다. 한번 맞아 보니 싸울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어디서 저런 말도 안 되는 괴물이 나타난 거지?
[준다. 주마. 주면 떠날 거냐?]
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효가는 유령선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곧, 유령선의 형체가 흐물거리는 안개처럼 변했다. 안개는 그의 손으로 빨려들어왔다.
곧, 효가는 주먹 만 한 크기의 배 모형 하나를 태호에게 내밀었다.
[약속의 인을 맺어라.]
“그러지.”
효가의 손가락 하나에서 하얀 실 같은 것이 만들어져, 태호의 손가락에 머물렀다.
[‘불살조약(不殺條約)’을 체결하시겠습니까?]
[보상 : ‘거래불가’ 효가의 유령선]
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자, 효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이, 이건 네 거다.]
[‘교환불가 : 효가의 유령선’을 획득했습니다.]
태호는 그제야 씩 웃었다.
“고맙군.”
가만히 지켜보던 라간이 물었다.
“저건 가만 놔 두고 가는 거야?”
“그래.”
월드보스를 잡으면 레전더리를 준다. 잡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만, 정작 저걸 잡으면 유령선을 얻을 수는 없다.
리얼포스의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월드보스들이 등장하고, 가끔은 이런 희귀조건을 충족시켜야 숨겨진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녀석들이 있다.
효가가 죽으면 홀로 섬은 완전히 개방되는데, 그때부터는 무인도로 취급된다.
“나는 이제 쟤 못 죽여. 다음에 네가 잡든 해.”
태호와 라간은 다시 바닷가로 나섰다. 바다 위에 효가의 유령선을 내려놓자, 유령선은 일순간 조금 전 보았던 크기로 커졌다.
이제 이 유령선은 유통기한이 없는, 온전한 태호의 것이 되었다.
< 홀애비 냄새가 난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