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괴물일까, 네가 괴물일까? >
유적을 나와 뒤를 돌아보았다.
금빛 광채가 번쩍이던 그곳은, 천천히 녹색 이끼에 뒤덮혔다. 그리고, 태호가 이 곳을 처음 발견했던 그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
-수호자의 힘을 온전하게 각성하게 되면, 다시 찾아와라.
온전한 각성이라.
태호는 그 뜻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 균형 수호자는 1단계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졌을 뿐이다.
이걸 다 업그레이드 하려면, 어쩌면 5대장군을 모두 잡아야 할 지도 모른다.
-이 세계의 일부가 되어 버리겠지.
이 세계의 일부가 된다?
태호는 그 말을, 과거 들었던 나잘과 란마의 대화에서 유추할 수 있었다. 그들은 리얼포스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마치 금단증상처럼, 그들에게 달라붙어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을 당했다고 하는 그들의 이야기.
하나 확실한 점은 알았다.
‘카실론은 내가 아우슈리네의 권능으로 회귀한 회귀자인 것을 안다.’
그를 믿을 수 있을까?
아무래도, 현재로선 그가 믿을 수 있는 신이라는 가정을 해 두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우선.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다. 태호는 머릿속으로, 대충 계획을 다져 놓았다.
나파.
카자토스에게 전해 들은 나파는, 두 개의 길쭉한 장검을 사용하며 등 뒤로 여섯 개의 창을 무형창(無刑槍)으로 자유자재로 움직인다고 했다.
대강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그림이 있었다.
‘한 대 맞으면, 아마도 즉사.’
즉사할 가능성이 높다. 태호는 이미 탈유저급이고, 1/10 신노스와 케노스를 때려잡은 바 있지만 그 점은 변하지 않는다.
위의 두 대장군을 상대할 때도, 한 대라도 정통으로 맞았으면 아마 즉사했을 거다.
“후...”
태호는 문득 벽이란 것을 느꼈다.
‘얼마나 더 강해져야 할라나.’
온전한 수준으로 등장하는 대장군을 상대하려면, 지금의 태호가 수십 명은 있어야 할 거다. 어쩐지 고지는 아직 먼 듯 해, 머리를 긁적이며 유령표범을 소환해 냈다.
* * *
요새.
카자토스의 마지막 방어선인 이 요새는, 기본적으로 산의 한 면에 만들어져 있다. 요새의 뒤쪽은 가파른 절벽이었다.
요새로 돌아온 태호는 가장 먼저, 상장군 퉁가에게 향했다. 요새에 남은 두 상장군은, 테무 일족의 계급으로 치면 대장군 바로 아랫단계에 있는 직위였다.
퉁가는 메이스와 철제 방패를 사용하는 전통적인 전사였다. 장신은 대략 2.5미터가 조금 넘는 듯 했고, 전신에는 테무 일족을 상징하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저, 부탁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외형은 흉악스러운 범죄자 같았지만, 알고 보면 차분하고 정돈된 성격이었다. 온화한 목소리에 태호는 빙긋 웃으며 물었다.
“무 대륙의 이동 스크롤이 있겠죠?”
“있습니다. 다만, 타 지역에서는 이동이 불가합니다. 오직 무 대륙 내부에서만 사용이 가능하죠.”
그건 이미 알고 있다.
슬슬 신대륙이 각광받기 시작할 것이다. 본대륙의 크기는 광활하나, 그곳에는 이미 대형 길드들이 하나 둘 등장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유저들은 또 다른 꿈을 안고 신대륙으로 향한다. 곧, 본대륙에서는 조선업이 더욱 활성화될 거다.
자연히 선박의 가격이 수직상승하게 된다.
신대륙행 선박을 운영하는 유저들 연합이 생기며, 그들 사이에 분쟁도 생겨나고 이야기가 재미있어지는데, 그건 조금 훗날 이야기.
그중 가장 고가에 거래되는 선박티켓은 역시 ‘무 대륙 행’ 이다. 그 이유가 바로 이 스크롤 문제 때문이었다.
‘무 대륙은 스크롤로 올 수가 없으니까.’
허나 이 정도면 충분하다.
태호는 그에게 물었다.
“제가 조금 구할 수 있겠습니까?”
“얼마든지요.”
무 대륙 내부를 움직이는 스크롤은 대략 하나당 10골드 선에서 거래가 된다. 게다가 이 스크롤은 무 대륙 내부 지역을 랜덤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나중에도 크게 쓰이진 않는다.
태호는 그 스크롤을 50개 정도 구매했다. 2/10정도의 힘을 회복한 신노스를 상대한다고 생각하면, 만약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스크롤을 구매한 뒤 머릿속으로 계획을 정리하며 성벽 위에 걸터앉아 있을 무렵이었다.
문득 기분나쁜 바람이 불어, 하늘을 올려다 본다.
청아한 하늘 가득히 반짝이는 별들이 걸려 있었다. 쏟아질 듯 가득한 그 하늘 사이,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
먹구름은 점점 더 맑은 하늘을 가려 온다. 어느새, 하늘은 우중충하고 시커먼 구름으로 뒤덮혔다. 싸아아아-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어와, 태호는 벌떡 일어서 요새 저 편을 바라보았다.
끼릭-끼리릭- 타악!
무언가가 꽉 조여졌다가 튕겨나오는 소리가 들려오고. 곧, 집채만 한 바위가 성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콰지지직!
태호는 냉큼 성벽 위를 박차고 요새 안쪽으로 뛰어내렸다. 몸을 빙글빙글 돌리며 착지한 태호가 소리쳤다.
“기습입니다!”
콰지지직!
콰지직! 우지직!
성벽으로 날아오는 바위가 계속해서 벽을 부수어 내렸다. 태호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투석기’ 같은 물건이 쏘아낸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카자토스의 진영도 바보는 아닌지라 사방에 척후병을 깔아 두었을 텐데, 미동도 없이 나타난 것을 보니 뭔가 에픽급 아이템을 사용한 듯 싶었다.
[전군, 방어태세를 갖춘다!]
카자토스가 우렁차게 소리치며 성벽으로 올라갔다. 태호도 그를 따라 다시 올라가, 저 편을 보았다.
저 먼 어둠 속에서 거대한 덩치의 한 사내가 저벅 저벅 걸어오고 있었다.
[나파 일족]
[통합족장]
[나파]
나파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역시나 부가적인 레벨이나, 정예 같은 표기가 돼 있지 않은 것을 보니 대장군급 존재임은 확실했다.
나파의 덩치는 카자토스보다 족히 2미터는 더 크다. 즉, 5미터 장신을 가진 거인이란 소리다. 말이 5미터지 직접 그 모습을 보니 위압감이 엄청났다.
나파는 양 손에 하나씩, 집채만 한 바위를 들고 있었다. 그것을 마치 농구공처럼 허공으로 던졌다, 다시 받았다를 반복하고 있다. 섬뜩한 완력이었다.
그의 뒤로, 무수히 많은 수하들이 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시뻘건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고, 입에서 질질 침을 흘리고 있다. 딱 봐도 정상은 아니었다.
[Lv.580]
[나파 일족]
‘평균레벨이 580이라고?’
가늠이 잘 오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치를 가진 놈들이었다.
현재 태호의 레벨은 342.
그렇다면 태호의 레벨보다 240이 더 높은 수준이었다. 물론, 지금의 태호는 상태이상기술들이 상대의 레벨을 가리지 않게 되었기에 큰 무리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저들의 현재 무력 수준이었다.
‘저거, 잡몹 하나 하나가 던전 보스급이야.’
저런게 본대륙으로 향한다면, 솔직히 지금의 유저들로서는 상대해 내기가 벅차다.
두근 두근
심장이 불길하게 뛰고 있었다.
[나파! 네놈이 명을 재촉하는구나. 그리도 죽음이 그립더냐?]
카자토스가 우렁차게 소리쳤다. 그 순간, 태호의 마음 속 불안감이 사라졌다.
‘워 크라이!’
태호는 카자토스의 스킬임을 깨달았다.
[워 크라이!]
[모든 아군의 사기가 대폭 증가하며, 이동속도와 공격속도가 35% 상승합니다!]
눈 앞의 메시지도 떠올랐다.
[카자토스, 오늘이야말로 승부를 내자.]
마치 용암이 끓는 듯 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때.
-아아아악! 기습이다! [뭐라?]
카자토스가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기습이라는 비명소리와 함께, 요새 내부에도 적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태호가 카자토스에게 말했다.
“제가 가 보죠.”
팟!
태호는 유령표범을 소환한 뒤, 그대로 달렸다.
-형님!
-어느 쪽이야?
-여기, 수련장 쪽. 빨리 와 봐.
요새의 후미 부분, 수련장 부근에 도착하자 회색빛 게이트가 만들어지고 그 곳에서 구울과 좀비들이 끝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혼돈의 유산.’
분명히, 혼돈의 유산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고 생각되는 게이트다.
[불렀어?]
아르카네가 고개를 쏙! 내밀며 생글생글 웃었다.
‘어둠의 망토.’
휘리릭-!
아르카네가 사방의 적들을 한 곳으로 뭉쳐 놓았다. 태호는 그 곳에 광역기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폭사.’
콰과과과광!
난입한 적들은 곧바로 처리했지만, 문제는 게이트였다. 게이트에서 끝없이 좀비와 구울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막시!”
곧이어 등장한 막시무스가 대답했다.
[불렀는가!]
“너, 라간이랑 아르카네 데리고 여기서 쟤들 퍼지는거 막아.”
[음! 알았다!]
뒤이어 상장군 두 명, 오르카와 퉁가도 병력을 이끌고 도달해 적들을 틀어막을 준비를 마쳤다.
라간은 자신의 방패를 꺼내 든 뒤 태호에게 한쪽 눈을 찡긋였다.
“얘들 레벨 진짜 높다! 엄청난 곳에 와 있는걸!”
“그럼, 부탁한다.”
태호는 그대로 유령표범을 달려, 사방을 누비기 시작했다. 저게 혼돈의 유산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면, 분명히 근방 어딘가에 저걸 쓴 놈도 있을 것이다.
일단, 태호는 장비 하나를 바꾸어 신었다. 어둠 기사단 신발을 장착해제하고, 그 자리에 ‘칠흑의 어둠 밟기’를 착용했다.
흑마법사의 전용 에픽이었다.
‘자연화.’
그대로 은신한 뒤, 상승한 이동속도를 느끼며 사방을 누비던 태호는 문득, 요새 뒤편. 절벽 끝자락을 올려다 보았다.
까마득하게 높은 절벽 끝, 누군가가 서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단 말이지.’
태호는 그대로 유령표범을 돌려, 절벽에 근접한 가장 높은 건물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리고 ‘칠흑신발’ 의 옵션을 발동했다.
‘가속.’
[가속 효과를 발동해, 5초 동안 300%의 이동속도로 이동합니다. 발동되면 시전자에게 가해진 모든 상태이상이 해제되고, 전투상황이 해제됩니다.]
파파파파파팟!
그대로 질주한 유령표범은 펄쩍 뛰어, 절벽면에 안착했다. 그대로 조금 달리다가, 힘이 떨어졌는지 추락하려던 그 때.
태호는 유령표범의 등짝을 밟고 힘껏 도약하며 저 절벽 끝을 향해 ‘어둠의 발걸음’을 사용했다.
현재 어둠의 발걸음은 마법 성능2배가 2번 겹쳐, 족히 150미터 이상을 단숨에 좁힐 수 있다.
펑!
허공에서 사라진 태호가 거의 절벽의 꼭대기까지 일순간 쏘아져 나갔다. 순간이동해 다시 나타난 곳은, 절벽 꼭대기보다 조금 높은 하늘.
그대로 절벽 꼭대기에 서 있던 유저를 쳐다보았다. 상대도 태호를 보더니, 흠칫 놀란 얼굴을 했다. 일시적인, 무중력 상태에 떠 있는 것 같은 짜릿함이 온 몸을 덮어 온다.
[씨드]
씨드라는 이름은, 분명히 뱀파이어즈의 부길드마스터 중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태호는 그 와중에도 씨익 웃으며 지팡이를 겨누었다.
‘어둠의 폭탄, 강화된 중독, 지옥의 어둠불꽃.’
그리고 동시에.
‘칠흑신발’ 의 두 번째 옵션을 발동했다.
이 모든 것이 찰나의 순간, 복합적으로 이루어졌다. 일체감 100%의 힘이 오롯이 드러나고 있었다.
[발동 시 그림자 속에 숨어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와 그림자 사이를 이동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발동.’
쭈우욱-!
추락할 것만 남았던 태호의 신형은, 그대로 씨드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큿, 크아악!”
홀로 남은 씨드는 괴롭다는 듯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태호는 그런 놈의 그림자에서, 스으윽- 몸을 일으켰다.
“허, 허, 헉! 괴, 괴물!”
씨드가 소리쳤다. 태호는 놈을 보며 싸늘하게 웃었다.
“내가 괴물일까, 네가 괴물일까?”
< 내가 괴물일까, 네가 괴물일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