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대륙으로 가는 겁니다. >
카자토스의 전신에 피가 낭자했다. 검과 검이 맞부딪히며 만들어내는 파장은 온 사방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다.
처음에는 나파가 우세했다. 나파의 힘은 카자토스보다 조금 더 위에 있었고, 그렇게 접전이 펼쳐졌다면 필연적으로 나파의 승이었다.
쾅! 쾅쾅쾅!
허나.
[크으으읏!]
틈만 나면 도망쳤다가 다시 달려오는 저 빌어먹을 인간 마법사 때문에, 모든 것이 틀어졌다.
나파는 자신에게 꽂히는 흑마법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저리도 강한 거지?’
처음에는 우습게 보았던 것도 사실. 허나, 놈의 마법 대미지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높았다.
쇄쇄쇄쇗!
나파의 등 뒤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여섯 개의 창이 카자토스에게 쇄도했다. 카자토스는 침착하게 창을 쳐내고, 나파가 내지르는 장검을 상쇄한다.
깡- 깡- 까가강!
쿨럭!
나파가 피를 토해냈다. 저 편, 다시 유령표범을 탄 채 달려오는 인간이 보였다. 저 인간의 모습이 마치 괴물처럼 보였다.
[이, 이이익!]
나파가 태호에게 손을 뻗었다. 쇄도하는 여섯 개 창이 태호에게 쏜살같이 날아갔다.
그 순간.
촤촤촤촥!
태호의 전신에 어둠가시 장벽이 만들어졌다.
[시전 시, 반경 1~5미터를 시전자의 의지대로 수호하는 가시의 장벽을 만들어낸다. 가시의 장벽은 무적상태로 10초간 흑마도사를 절대 수호한다. 이때, 흑마도사는 공격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
‘통한다.’
태호는 장벽 속에 숨으며 씩 웃었다. 여섯 개 창은 무의미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장벽의 무적상태는 시스템이 공인한 절대적인 것!
허나,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놈이 보유한 패시브 스킬이 무엇이냐에 따라, 이 무적장벽 역시 헛되이 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쩌저적-!
아니나 다를까.
태호는 고개를 까닥였다. 나파가 보유한 패시브 스킬 중, 무적 장벽 같은 종류를 깨부수는 스킬 역시 있는 모양이었다.
‘거의 만능캐릭터네.’
태호는 혀를 찼다. 솔직히 예상은 했다만, 이렇게 빠르게 깨지니 허탈할 지경이었다. 일단, 장벽이 깨어짐과 동시에 어둠의 발걸음을 사용했다.
펑!
쇄쇄쇄쇅!
여섯 개의 창이 섬뜩하게 장벽을 깨부수고, 태호를 겨냥한 채 달려든다.
그 사이, 태호는 다시 나파에게 마법을 난사하고 곧바로 ‘칠흑신발’ 의 옵션을 발동한 뒤, 스크롤을 찢었다.
[크아아아아아!]
나파가 분통이 터진다는 듯 고함을 내질렀다.
후우웅!
콰지직!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카자토스의 묵직한 양손검이 놈의 오른팔에 내리꽂혔다. [크아앗!]
나파는 지지않고 태호에게 향하던 여섯 개의 창과 자신의 장검을 휘두르며 카자토스의 옆구리를 찔렀다.
푸욱-!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대처는 한 발 늦었다. 뼈를 주고 살을 취한 셈이다.
[......나파. 오늘이 네놈의 제삿날이다.]
카자토스가 으르렁거리며 오른팔의 검에 힘을 주었다.
콰드득-!
나파의 오른팔이 잘려나갔다. 동시에 카자토스의 옆구리에도 거대한 상흔이 만들어졌다. 둘다 피가 콸콸콸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틈을 놓치지 않고 카자토스가 밀고 들어온다. 양손검 두 개가 질풍처럼 나파의 사방을 베어왔다. 스엉 스엉, 섬뜩한 바람소리가 들려올 때 마다 땅이 움푹 패이고 온 사방에 소용돌이가 만들어졌다.
[크아아아아앗!]
나파와 카자토스가 그야말로 칼춤을 추었다.
파파파팟!
그 사이 돌아온 태호가, 이제는 아예 최대사거리에 말뚝을 박듯 서서 마법을 난사해 오기 시작했다.
[이, 이, 이, 이런 개자식들!]
나파가 고함을 쳤다.
[비겁한 개자식들!]
허나, 태호에겐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비겁?’
태호는 피식 웃어 버렸다. 정정당당? 정의? 웃기고 자빠지는 개소리다.
태호는 자신이 정의의 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태호는 결코 선하지 않다. 필요하면 얼마든지 비열해지며, 손가락질 받을 일도 서슴없이 할 생각이다.
누군가는 태호를 위선자라 부를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별 상관은 없다.
‘엿이나 먹어.’
그런 사소한 것들에 마음 쓰며 나아갈 길이 아니다. 태호는 무미건조한 웃음을 흘리며 읊조렸다.
‘폭사, 이 새끼야.’
쾅! 콰콰콰쾅!
‘냉혹한 정의’
상태이상기술이 모두 리필되고, 다시 폭사.
콰콰쾅!
[크아악!]
나파가 주춤거리는 사이, 카자토스의 양손검이 이번엔 놈의 왼쪽 허벅지를 찍었다. 마치 나뭇꾼이 거대한 나무 밑둥을 찍듯, 우직하게 두 번째로 찍을 무렵.
콰직!
왼쪽 다리가 날아갔다.
태호는 묵묵히 그 자리에서 그야말로 자신이 가진 모든 마법을 난사해 나간다.
마법이 꽂히고, 폭사가 치명타를 안겨주고, 지옥의 어둠불꽃 5중첩은 끈덕지게 나파의 생명력을 갉아 먹어 갔다.
어느 순간.
나파는 정면을 보았다. 후우웅, 하며 바람 소리가 들리고 자신의 시선이 저 하늘로 돌아감을 느꼈다. 시선은 기묘하게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하늘, 땅, 저 아래, 반복하며 빙글빙글 돌다가 풀썩- 하며 풀밭 위에 떨어지는 촉감이 느껴졌다.
문득. 시선 저 편에, 자신의 몸뚱아리가 보였다. 머리가 날아간 채 우두커니 서 있는 몸뚱아리가, 급격히 허물어져 갔다. 그리고 시선은 시커멓게 변한다.
그것이 끝이었다.
나파는 그대로 죽음을 맞았다.
‘됐다.’ 나파가 죽은 뒤, 놈의 몸 위로 아이템 두 가지가 삐죽- 튀어나왔다. 그 뿐 아니라, 놈이 보유한 장검 역시 드랍되는 아이템인 듯 하다.
헌데.
카자토스가 심상치않다. 태호는 카자토스가 뭔가에 홀린 듯, 나파의 몸위로 솟아나온 아이템 두 종을 쳐다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둠의 발걸음.’
팡!
태호가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카자토스에게 소리쳤다.
“저건 사이한 혼돈의 힘입니다!”
“......”
카자토스가 멍하니, 뭔가에 홀린 듯 한 표정으로 태호를 보았다.
태호는 지체 않고 나파가 떨군 두 개의 혼돈의 유산을 자신의 인벤토리 속에 집어 넣었다.
허나 카자토스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멍하니 서서, 뭔가를 생각하듯 한참 동안이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헌데, 자세히 보니 그의 전신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크아아아아아아!]
포효를 터트리며 전신의 기운을 모조리 개방했다.
그 순간, 카자토스의 몽롱하던 눈동자가 원상태로 돌아왔다.
“......!”
그는 마치 꿈을 꾸었던 것처럼,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태호에게 말했다.
“소문대로, 엄청난 마력이군. 금방이라도 홀려버릴 뻔 했다.”
엄청난 마력?
태호는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이유가 뭘까, 에 대해 고민하며 태호는 인벤토리 창을 열어 아이템을 확인해 보았다.
[등급 : 에픽]
[종류 : 장착(캐릭터에 장착귀속됨)]
[이름 : 파멸의 비명]
[나의 힘 앞에 복종하라.]
[옵션 : 공격력 상승 2배]
[공격속도와 이동속도 2배 증가]
[혼돈의 힘과의 계약을 필요로 합니다. ‘미계약상태’]
‘미친.’
이건 이미 개방된 혼돈의 유산이었다.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간 혼돈의 유산들 중, 개방이 완료된 물건은 없었다. 정확히, 유저들에게서 얻은 것들은 이미 ‘개방’ 이 초기화 돼 있었다.
헌데 이 녀석들은 개방이 모조리 풀려 있었던 것.
‘어떻게?’
일단, 다른 하나도 확인해 본다.
[등급 : 에픽]
[종류 : 방어구(손)]
[이름 : 공허의 포식자]
[나의 힘 앞에 복종하라.]
[옵션 : 아군을 처치하여, 소유한 모든 능력치의 20%를 일시적으로 자신의 능력치로 흡수합니다.(최대한도, 20개체)]
[혼돈의 힘과의 계약을 필요로 합니다. ‘미계약상태’]
‘둘 다 개방돼 있어!’
이런 상태의 아이템을 보는 것은 태호도 처음이다. 게다가, 필요조건에 붙어 있는 요건도 불길했다.
‘혼돈의 힘과의 계약을 필요로 한다?’
카자토스가 했던 말도 이해가 갔다. 마력에 홀릴 뻔 했다면, 개방된 이 상태의 혼돈의 유산들 때문일 거다.
의문이 이어졌다.
‘씨드가 쓰던 혼돈의 유산은 개방이 풀린 채로 떨궈졌는데?’
대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태호가 곰곰이 머리를 굴릴 무렵.
그런 태호에게 카자토스가 입을 열었다.
“테무 일족의 긍지로, 혼돈의 힘의 유혹을 이겨냈노라.”
“......대단하십니다.”
이건 진심이었다.
[퀘스트 완료]
[무 대륙의 패자]
[경험치 획득]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무 대륙의 패자가 완료되었다.
태호는 그제야 마음이 놓여, 하아- 한숨을 쉬며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 무 대륙의 패자는 우리 테무 일족이 되었다.”
카자토스가 그런 태호를 번쩍 들어, 자신의 어깨에 올렸다. 성벽 위로 무수히 많은 백성들이 이 곳을 바라보며 환호하고 있었다.
카자토스가 우렁차게 소리쳤다.
[우리가 승리했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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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카자토스는 전신에 칭칭 붕대를 감고 있었다. 태호는 가진 힐링포션들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으나, 상처 치유는 빠르지 않았다.
“혼돈의 힘에 당한 상처는... 오래 가더군. 쉽게 아물지 않는다. 크게 걱정할 것 없다.”
카자토스의 말에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태호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할 수 있어 좋았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이 땅에 아직 로만을 비롯한 양아치들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놈들이 개방된 혼돈의 유산으로 나파를 타락시켰다면, 카자토스를 타락시키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저런 고민이 오갈 무렵이었다.
대장군의 방에는 한 시도 쉴 새 없이, 부하들이 오고 가며 이런 저런 정보들을 내놓고 있었다.
그 정보들을 취합한 카자토스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이 땅을 떠나야 할 것 같군.”
“떠난다고요?”
“그렇다. 일대의 짐승들이며, 부족들이며 모조리 혼돈의 힘에 타락해 버렸으니... 우리의 터전은 이미 망가졌다.”
묵묵한 목소리였지만, 어쩐지 씁쓸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무한히 빛나던 테무 일족도, 이젠 고작 백여 명 만이 남았구나.”
“......”
“너는 이방인들을 발견했나?”
“한 놈 발견했습니다만...”
“그렇군. 아직 잔당이 남아 있을 확률이 높다.”
확실히, 그 역시 태호가 생각하는 것을 염두해 두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와 동시에 새삼 놀라웠다. 무 대륙의 전사로서, 일단 나머지를 무작정 잡아 족치자! 라고 나올 줄 알았는데 그는 미래를 고려할 줄 아는 대장군이었던 것이다.
“혼돈의 유산을 본 후, 깨달았다. 그것의 마력은... 나로서는 쉽게 이겨낼 수가 없었다.”
그는 마치 악몽을 본 듯 한 얼굴로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나 조차도 이러할지언대, 나의 수하들은 말 할 것도 없다. 이 땅을 떠나야한다.”
말이 통한다.
태호는 그런 느낌에 강렬한 전율을 느꼈다. 단순무식한, 그저 무력만을 숭상하는 멍청이가 아니다. 그는 현명하고, 과감한 판단을 내릴 줄 아는 리더다.
“그렇단 말씀이시죠...”
태호는 팔짱을 낀 채 고민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까, 혼돈의 유산을 사용하던 ‘씨드’를 본 뒤 계속해서 생각하던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음?”
“본대륙으로 가는 겁니다.”
“......”
본대륙에는 태호 소유의 던전이 하나, 그리고 아지트가 하나 있다.
그 아지트는 굉장히 넓으니, 테무 일족 백여 명이 와서 살기에는 딱이었다. 게다가, 거긴 심지어 안전하기까지 하다.
“본대륙이라...?”
카자토스의 두 눈이 빛났다.
< 본대륙으로 가는 겁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