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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전설-106화 (106/194)

< 되네? >

북부 대해 초입에는 필드보스가 있다.

바다속을 활보하는 필드보스는 잡기가 워낙 까다로워, 공략당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녀석이었다. 일명, 수문장이라 불리던 보스다.

북부 대해는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유저들의 발길이 닿았다. 워낙 신대륙이 많고, 대부분의 배들이 서부 대도시 라이언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바다라지만, 이 대해의 수문장은 정말로 많은 유저들의 범선을 부수어 악명을 떨쳤다.

콰아아아아-!

시커먼 바다속을 활보하는 거대한 형체가 보였다. 곧, 그 형체는 심해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었는지 모습을 감추었다.

허나 그것은 놈이 목표물을 공격하기 전 모습일 뿐. 태호는 고개를 까닥였다.

‘온다.’

아르카네가 삽시간에 조져지기 전에, 태호는 아르카네를 데려와 자신이 양 팔로 꼭 감싸안았다. 아르카네가 흥미롭다는 듯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뭐해? 뭐야? 싸우는거야?]

“그렇지.”

곧.

콰아아아아아!

바닷물이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거대한 소용돌이가 섬뜩하게 사방을 일그러트리며, 유령선을 바다 한가운데로 몰았다.

태호는 마력을 한껏 주입해 유령선을 소용돌이 외곽으로 몰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바다속에서부터 거대한 파동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곧, 소용돌이가 멈추고 유령선의 사방에 바닷물이 치솟아 올라왔다.

콰아아아아-!

거대한 용오름이 일어났다. 유령선은 그야말로 쑤욱! 하늘로 튕겨져 올라갔다.

태호는 튕겨져 나감과 동시에 유령선을 축소시켜 인벤토리 창에 쑤셔넣고,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 그 상태로 저 아래를 바라보았다.

[Lv. 470]

[정예][월드보스]

[북부 대해의 지배자, 카리브디드]

바다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름이 족히 백 미터는 돼 보이는 아가리를 쩍 벌린 채 빨아들인 물을 쏘아내고 있는 괴물이었다.

생김새는 뱀과 흡사한데, 전신에 검푸른 비늘이 덕지덕지 뒤덮혀 있으며 쩍 벌린 아가리는 완연한 원형을 띄고 있었다. 그 아가리 사이로 수천 수만 개는 돼 보이는 섬뜩한 가시들이 번뜩이고 있다.

이 놈은 바다속에서 물을 빨아들인 뒤 내뿜어, 해상의 존재들을 격살한다. 놈의 섬뜩한 생김새에 아르카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괴물?]

“비슷해.”

태호는 그 거대한 아가리에 지팡이를 겨누었다.

퉁퉁퉁-!

어둠의 폭탄, 강화된 중독이 날아가 놈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 상태로 저 편으로 축소된 유령선을 던졌다.

펑!

유령선이 금세 원상태의 크기를 되찾았다. 허나 사방의 물살 때문에 금세 저 멀리로 멀어져 간다. 태호는 그곳을 향해 ‘어둠의 발걸음’을 사용했다.

펑!

백수십미터를 단숨에 이동했지만, 유령선에 닿기엔 아직 부족하다. 그때, 태호는 유령선이 만들어 낸 그림자를 겨누며 읊조렸다.

‘발동.’

쑤우욱!

칠흑신발의 옵션이 발동되며, 태호가 그림자 속으로 이동했다. 두 단계의 이동은 엄청난 거리를 이동해, 다시 유령선에 올라 탈 수 있었다.

카르릉- 카르릉!

쿠구궁-! 쾅쾅! 저 뒤에서 카리브디드가 태호를 겨냥한 채 울음소리를 퍼트려 갔다. 태호는 씩 웃으며 유령선에 마력을 집중했다.

쏴아아아-!

그대로 유령선이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소모되는 마력이 클수록 유령선의 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진다. 기존의2배 보너스를 받은 마력이 그야말로 물 새듯 줄줄줄 새 나가, 결국 바닥을 보일 즈음.

‘체마교환.’

태호가 체마교환을 사용해, 마력을 꽉 채웠다. 생명력의 대부분이 소모됐다. 허나, 그런 부분은 ‘데스나이트의 심장’ 이 해결해 준다.

단숨에 꽉 차오른 생명력과 마력. 태호는 잠깐 조종대를 놓고, 유령선 뒤쪽으로 달려가 카리브디드에게 중독과 어둠의 폭탄, 그리고 절망을 날렸다.

퉁퉁퉁!

끼이이아아악!

놈이 괴상한 비명소리를 냈다. 놈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으니, 그대로 조종대를 잡고 쾌속질주해 나갔다.

쿠구궁- 쿠궁-

하늘은 시커멓게 죽어 있고, 뒤를 쫓아오는 것은 악몽에나 나올 법 한 끔찍한 바다괴물! 하지만 아르카네는 겁대가리가 애초에 없는 것인지, 신나게 노래를 불러대고 있었다.

[아하하하! 너무 신나! 너무 좋아! 재밌어!]

“......”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먹구름 저 멀리로, 점 같은 것 하나가 하늘을 부유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기 있군.’

엘린의 공중정원이다.

다시 마력이 올인. 체마교환으로 마력을 채우고, 달리고를 한참이나 반복할 무렵.

태호는 엘린의 공중정원에 한없이 가까이 도달할 수 있었다.

콰아아아아-!

뒤를 보니, 카리브디드는 여전히 끈덕지게 태호를 쫓아오고 있었다.

이제 놈을 광분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생명력을 일정량 이상 깎아내면, 놈은 광분상태가 돼 그야말로 거대한 용오름을 만들어낼 것이다.

‘마신강림.’

태호가 마신을 강림시켰다. 그리고 강화된 어둠의 땅이 깔리며, 공격태세를 갖추었다.

파파파파파팟!

태호는 놈에게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날아드는 5중첩 상태이상, 그리고 폭사.

데-엥!

어둠의 종소리가 석화까지 걸어 주니, 그야말로 한동안 박 터지듯 두들겨 맞는 수 밖에 없다. 카리브디드가 정신을 못 차리고 얻어 터질 동안, 놈의 전신을 덮은 비늘이 점점 시뻘건 기운을 뿜어냈다.

‘광분상태다.’

이 정도가 생명력을 대략 1/10쯤 깎은 상태.

카리브디드는 생명력이 절반가량 깎이면, 심해 밑으로 쏙 숨었다가 생명력이 차오르면 기습을 한다. 그 패턴이 시작되면 잡기가 아주 까다로워지니, 어차피 죽이는 것은 생략하기로 했다.

콰아아아아-!

놈은 바다 밑으로 내려가 다시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아까 당했던 소용돌이보다 족히 서너 배 이상은 거대한 소용돌이였다. 물을 한껏 빨아 들인다는 증거다.

이내.

콰아아아앗!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용오름이 시작되었다. 삽시간에 사방의 고도가 높아지며, 유령선은 비행선마냥 까마득하게 높은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꺄하하하!]

아르카네가 유령선 바깥으로 튕겨져 나가며 슈퍼맨이라도 된 듯 양 손을 쫙 펼쳐들었다. 태호는 피식 웃으며 소녀를 소환해제 했다. 하늘을 날아가, 재수가 없다면 곧 조져졌을지 모르는 소녀는 안전귀환을 했다.

용오름은 끝을 모르고 계속해서 치솟아 오른다. 물줄기가 하늘을 꿰뚫을 기세로 튀어오르고 있었다.

허나 까마득한 창공의 공중정원으로 닿기엔 역부족.

태호는 그대로 하늘을 보며 ‘어둠의 발걸음’을 사용했다.

펑-!

어둠의 발걸음이 백수십미터를 단숨에 좁힌 뒤에야 공중정원과 같은 위치에 도달할 수 있었다. 먹구름을 너머선 하늘에 짜릿한 태양광이 느껴졌다. 저 편, 공중정원의 그림자를 향해 이동한 태호가 그 속에서 쓰윽 몸을 일으켰다.

‘어디 쯤이지?’

좌우를 두리번거릴 무렵.

“어, 어, 어...?”

어쩐지 당황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와 몸을 돌리니, 엘린이 서 있었다.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는 가만히 서서 눈을 깜빡이며 태호를 보다가, 금세 경악했다.

“히이이익!”

[공중정원의 지배자, 엘린]

엘린이 빼액 소리지르며 양 팔을 쫙 펼쳤다.

철컥철컥철컥철컥!

그녀의 전신에 기계로 된 갑주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허나 태호는 예나 지금이나, 한 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어릴 적, 변신로봇 만화를 보면 꼭 주인공 일행의 합체나 변신 등을 가만히 지켜봐 주는 악당들에 대한 의문이다.

쾅!

태호의 지팡이에서 쏘아진 ‘생명력 50% 어둠의 명령’ 이 변신하려던 엘린의 명치를 냅다 후려갈겼다.

콰지직!

“악!”

엘린이 뒤로 날아가며 쳐박혔다. 사방에 변신하려던 갑주들이 마력으로 산화돼 사라졌다.

지금의 엘린은, 엄밀히 따지자면 ‘레이드 보스’ 로서 취급되지 않는다. 엘린은 완전히 변신해야만 레이드보스가 된다.

시점에 따라.

[Lv. 460]

[정예][레이드보스]

[공중정원의 지배자, 엘린]

이런 식의 머리 위 표기가 돼야 레이드 보스 클리어 보상과 업적, 그리고 경험치를 받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변신하기 전의 그녀는, 레벨460의 정예 수준의 생명력과 방어력을 보유하고 있다. 별로 위협적이지 않은 수준이란 이야기다.

엘린이 나가떨어지자, 태호는 그녀에게 다가가 지팡이를 거침 없이 휘둘렀다.

지옥의 어둠불꽃은 상대를 무조건 죽을 때 까지 괴롭히니, 그건 빼고 상태이상기술이 모조리 엘린의 몸에 직격했다.

“끼야아아악!”

엘린이 오도방정을 떨며 사방을 뒹굴었다.

[스킬 쿨타임이 모두 초기화되었습니다.]

태호는 그대로 ‘어둠의 명령, 생명력 90%’를 사용해 그녀의 목에 매어진 목걸이를 가격했다.

빠지직!

목걸이가 깨졌다. 저건 엘린의 변신을 돕는 마법장치로, 유저는 사용불가한 아이템이다. 오직 공중정원의 지배자만 사용할 수 있다.

일정 대미지를 받으면 깨지는데,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복구 될 거다.

태호가 다시 엘린의 미간에 지팡이를 겨누었다.

“비, 비, 빌어먹을! 왜 또 다시 나타난 거지?”

엘린이 표독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태호는 묵묵히 입을 열었다.

“공중정원을 조종해서, 내가 원하는 곳으로 향해라.”

엘린이 코웃음쳤다.

“하! 개소리 집어 치워! 그렇게 되면 나는 수하들을 복구할 마력을 써야 한다! 못 해!”

“10초 뒤 죽는다.”

태호는 별 거리낌 없이 말하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빌어먹을 개자식! 밑천까지 다 긁어 간 주제에, 또 와? 감히? 감히 이 공중정원의 지배자인 나 엘린을 뭘로 보고!”

표독스러운 눈빛의 엘린에게, 태호가 대답했다.

“5초 남았다.”

“나가 뒈져!”

“3초.”

“지랄 마!”

“그럼 죽어라.”

태호가 전신에서 어둠의 마력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시커먼 마력이 뭉실뭉실 솟구치자, 엘린이 히끅! 하며 눈을 찢어질 듯 크게 떴다.

“자, 자, 자, 잠깐.”

태호는 자비란 없다는 얼굴로 싸늘하게 뇌까렸다. “교섭은 끝났다.”

“잠깐마안! 한다고! 해 준다고! 지금 당장 할게!”

엘린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제서야 태호가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씨, 씨이... 이런 개 씨...”

욕을 하려던 엘린이 이를 빠드득 빠드득 갈며 일어섰다. 그녀의 전신에 뒤덮혀 있던 상태이상이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갉아먹어 가다, 효력을 다했다.

엘린은 비틀비틀 걸으며 흘끔흘끔 태호를 돌아보다가, 긴 한숨을 내쉬며 제5구역의 돔 형태의 건축물로 들어섰다.

그 내부에는 복잡한 조종대가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어, 어, 어디로 갈 건데?”

“어디보자...”

태호가 잠깐 위치를 가늠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위치에서부터 동쪽.”

“동쪽 어느 구역까지?”

“드래곤들의 영역까지.”

“......”

엘린이 멈칫하다, 물었다.

“정신병자니?”

태호는 말 없이 지팡이를 내밀었다. 엘린은 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뒈지러 가겠다면 말리진 않을게.”

엘린이 조종을 시작했다. 그녀는 품 속에서 마력이 가득 깃든 구슬 세 개를 꺼내더니, 아깝다는 듯 바라보았다.

“이걸로 부하들을 다시 만들어 내려고 했는데... 그래서 복수하려고 했는데...”

하지만 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이를 빠드득 갈며, 구슬 세 개를 조종석의 홈에 장착했다.

구우웅-!

그 순간, 조종대에 빛이 번쩍였다. 랜덤 자율주행을 하던 공중정원이, 직접운행 모드로 바뀐 것이다.

‘되네.’

태호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 하면 약간의 도박수였는데, 생각한 대로 돼 다행이었다.

엘린은 흘끔 태호를 보았다.

‘어디.’

태호는 저벅 저벅 걸어가, 다시 엘린의 목덜미에 지팡이를 겨누었다. 꾹- 누르며 싸늘하게 말했다.

“속도 올려.”

“에, 에이씨! 진짜 밑천 거덜낼 셈이야!”

“그럼 죽어ㄹ...”

“아이씨 이런 미친 또라이가 대체 어디서 온 거지? 알았어! 알았다고!”

엘린이 쌍욕을 퍼부으며 품 속에서 구슬 몇 개를 더 꺼냈다.

콰아아아-!

공중정원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태호는 미간을 긁적이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생각했다.

‘되네.’

< 되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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