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107화 (107/194)

< 다음에 또 보자! >

콰아아아-!

공중정원이 미래를 팔아 만들어낸 에너지로 달려간다. 엘린은 시무룩해져, 고풍스러운 의자에 앉아 턱을 괸 채 긴 한숨을 내쉬었다.

태호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다리를 꼰 채 나름의 생각을 정리 중이었다.

‘드래곤의 땅에는 뭐가 있었지?’

드래곤의 땅은 리얼포스의 세 번째 확장팩 ‘드래곤의 유산’ 때 개방된다.

설정은,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드래곤들이 타락해 인류를 위협한다-

‘과거, 확팩 초창기 드래곤들은 인간에게 우호적이었지.’

정확히 말 하자면, 초창기의 드래곤들은 인간들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고등 마법생물체들로서, 대륙을 유희하기도 하며 나름대로 공존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그들은 타락한다.

시발점은 노펜시아를 유희 중이던 실버드래곤이 무차별적으로 유저들을 테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드래곤들은 인류공격을 시작한다. 나아가 대륙대전쟁으로 이어지는데, 그것을 틀어 막는 것이 제3확장팩 ‘드래곤의 유산’ 이었다.

한편으로는 여러 의견이 있었다.

‘유산’ 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왜 하필이면 유산이었는가? 그들이 무언가를 남겼는가? 남겼다면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결국 드래곤의 유산은 찾지 못한 채, 유저들은 필사적으로 드래곤들과의 전쟁을 펼쳤다. 그러다 어느 순간, 드래곤들은 자체적으로 물러난다.

다시 그들의 섬으로 돌아가, 다시금 긴 잠에 빠져든 것이다. 그렇게 확장팩은 끝난다.

‘의문이 남는다.’

그건 예전부터 해 온 의문이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유산’ 이라는 타이틀이 달렸던 걸까?

과거에는 그저 그런 일이 있었거니, 하는 것이 유저들끼리 즐겨 나누는 흥미 요소였다. 허나 지금의 태호는 그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다.

“야.”

문득 회상에서 깨어나 정면을 보니, 엘린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기왕 이렇게 된 거, 물어나 보자. 드래곤의 땅으로 가서 뭘 하려고?”

“네가 알 바는 아닌 것 같은데.”

“......흥.”

엘린은 입을 삐죽였다. 이번엔 태호가 물었다.

“이 공중정원을 움직이는 동력원이 저 구슬인가?”

엘린이 꺼내어 동력원으로 쓴 구슬을 말 한다.

“그래.”

“어떻게 만드는 거지?”

“알아서 뭐 하려고?”

엘린이 그대로 받아쳤다. 태호는 군말 없이 지팡이를 들었다.

“......마, 마력의 결정체들을 압축해서 만들지.”

엘린이 고분고분해졌다.

“어떻게 압축해?”

“우, 우리의 기술력으로.”

“그렇군.”

태호는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의 섬을 둘러싸고 있는 토네이도를 뚫을 수 있다면, 생각 그 이상으로 이 공중정원은 쓸모가 많을 수 있다.

‘나쁘지 않군.’

사탄이나 다름없는 생각을 할 무렵, 엘린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파들파들 떨었다.

‘저건 미친 놈이야.’

그녀는 생각했다. 지상에서 올라온 놈이 홀로 공중정원을 개박살 낸 것도 모자라, 밑천까지 탈탈탈 털어 이용해 먹고 있었다. 저건 인간의 탈을 쓴 마귀 같았다.

‘어쩌지?’

드래곤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녀조차 시도해 본 적 없는 미친짓이었다. 그곳을 뒤덮고 있는 토네이도는 신묘한 드래곤의 마법으로 만들어낸 것.

재수없으면 공중정원이 개박살 날 수도 있다. 저 미친 놈은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투였다.

문득.

그녀와 태호의 시선이 마주쳤다. 문득, 태호가 자신을 보며 씨익 웃는 것이 보였다.

‘이런 썅!’

꿀꺽!

그녀가 마른침을 삼켰다. 콰아아아-!

공중정원이 허공을 질주하고 있었다.

.

.

.

.

.

.

꼬박 하루가 걸렸다.

공중정원 외곽에서 저 아래를 내려다보던 태호는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는 미개척 신대륙들을 내려다 보았다.

하나 하나 쳐다보다 저 멀리로 시선을 돌렸다.

쌔애애애애앵-!

문득, 칼바람이 불어와 태호의 머리칼을 흩날렸다. 망토가 펄럭이고, 눈을 뜨기도 힘든 강풍이 밀려오고 있었다.

‘저기군.’

저 멀리에 토네이도로 뒤덮힌 섬 하나가 보인다. 저곳이 바로 드래곤의 땅, ‘드래고니악’ 이었다.

쿠구궁-

빠르게 전진하던 공중정원도 주춤하기 시작했다. 태호도 몸을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밀어내는 바람, 그것을 뚫어가며 공중정원은 차근차근 이동해 가고 있었다.

쿠구궁- 쿠구궁-

공중정원이 점점 더 흔들린다. 태호는 조종실로 들어가 엘린을 보았다.

“뚫을 수 있겠어?”

“......모, 모르겠는데.”

그녀는 복잡한 기계들을 이리 저리 살펴보다가, 고개를 까닥였다.

“가, 가능할라나?”

쿠구구구궁-!

어느새 공중정원은 한없이 섬에 가까워져 간다. 그와 함께 공중정원의 흔들림은 더욱 가중되었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태호는 팔짱을 낀 채, 플랜B를 생각했다. 공중정원이 박살나기라도 한다면, 어찌 한다?

그 때.

“에이 썅! 저 미친 개새끼! 저주나 받아라! 뒈져라!”

엘린이 쌍욕을 퍼부으며 품속에 손을 넣더니, 마지막 구슬로 보이는 두 개를 꺼내 동력원으로 추가했다.

지이잉-!

그 순간.

공중정원 사방에 거대한 보호막이 만들어졌다. 마력을 그야말로 퍼부으며 만들어진 보호막은, 토네이도의 바람을 잘 상쇄해 나갔다.

고오오오오-

어느 순간.

공중정원의 떨림이 멈추었다. 태호는 엘린을 보며 씩 웃었다.

“네 덕이다.”

“......”

“네 목숨을 살려 준다.”

“......”

태호는 밖으로 나와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미 섬 위의 상공에 떠 있었다. 저 뒤로 무시무시한 토네이도가, 그리고 저 아래에는 아름다운 드래고니악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뒤따라 나온 엘린이 힘 없는 얼굴로 태호를 보았다.

“이제 됐어?”

“그래. 네 덕이야.”

태호는 엘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다음에 또 보자.”

“뭐, 뭐? 이런 미친색...”

탓!

그녀가 욕지거리를 내뱉을 무렵, 태호는 저 아래로 뛰어내린 뒤였다.

“하!”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간신히 다시 섬을 빠져나갈 정도의 마력은 남았다만, 이제 완전히 바닥이 나 버렸다.

또 보자니! 저 악마같은 놈을 다시 만난다면, 기어코 자결을 해 버리리라 다짐한 그녀가 다시 조종실로 들어갔다.

* * *

쌔애애애앵-!

태호는 땅을 향해 추락하며 양 팔을 활짝 펼쳤다. 전신을 짜릿짜릿하게 울리는 이 스릴은, 겪어도 겪어도 그리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이었다.

사정없이 바닥으로 내리꽂히기 직전. 태호는 지면을 향해 ‘어둠의 발걸음’을 사용했다.

팟!

태호의 몸이 순간이동해, 바닥에 온전히 착지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대강 손보던 그 무렵이었다.

“......”

태호는 문득, 자신의 앞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느낌을 받고 정면을 보았다.

“......”

그 앞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잡티 하나 없는 하얀 피부, 그리고 냉정해 보이는 두 눈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로크나이엘 워커드]

머리 위에 떠올라 있는 이름. 이름 뿐이었다.

허나, 태호는 그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로크나이엘 워커드잖아?’

태호의 기억에, 그는 드래곤의 유산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드래곤 중 하나였다.

그의 아버지는 라그나 워커드. 드래고니악의 드래곤 로드이자, 확장팩의 최종보스로 등장할 이였다.

로크나이엘은 태호를 보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이러면 곤란한데...”

“......본의 아니게 죄송하게 됐습니다.”

태호의 말에, 로크나이엘은 흠칫 놀랐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용언(龍言)을 알고 있다니?”

“흠... 그것도 본의 아니게요.”

“신기하군. 저 위의 섬은... 내 기억이 맞다면 창공의 일족인 것 같은데. 이건 드래고니악에 대한 선전포고로 봐도 무방한가?”

일이 묘하게 돌아간다.

“이건 순전히 제 독단입니다. 창공 일족은 제 협박에 못 이겨 이 곳으로 향했을 뿐입니다. 책임을 물으신다면, 제가 지겠습니다.”

“협박이라.”

로크나이엘의 얼굴에 흥미가 생겼다.

“창공 일족을 협박했다고? 그쪽이?”

“예.”

“호오... 왜지?”

“저는 무 대륙을 거쳐 왔습니다.”

태호가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무 대륙이라... 테무 일족의 전사들의 땅 말이군.”

“그렇습니다. 그 대륙의 변고를 보고, 드래고니악에 경고를 하러 온 겁니다.”

일단 이 정도로 시작해 볼까.

태호의 말에 류크나이엘은 흥미롭다는 얼굴로 물었다.

“무슨 경고를? 아니, 그 보다. 무 대륙에 어떤 일이 생겼다는 말이지?”

“혼돈의 힘이 무 대륙에 만연해 있었습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테무 일족의 대장군 카자토스 님과 힘을 합쳐 일족을 구출해 본대륙으로 모셨습니다.”

[말재간이 발동 중입니다.]

“......”

태호의 이야기를 들은 로크나이엘은 어쩐지 믿을 수 없다는 듯 태호를 빤히 보았다.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하군. 혼돈의 힘이 무 대륙에 활개를 치다니... 사실 믿기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그 강인한 무 대륙의 전사들이 단체로 타락이라도 했다는 말이냐?”

“바로 그렇습니다.”

“증거는?”

“흠... 당장 저와 함께 본대륙으로 갑시다. 카자토스님과 남은 테무 일족을 뵙게 해 드리겠습니다.”

“네놈을 뭘 믿고?”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드래곤은 기본적으로 의심이 많고, 지극히 이기적인 생물들이었다.

과거, 대격변 이절의 고대시절. 그 때에는 대륙에 무수히 많은 드래곤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격변 때, 혼돈의 힘에 맞서 싸웠고 그 결과 일족 대부분이 죽음을 맞았다. 또한, 신에 필적할 만큼 강했던 그들의 힘은 대폭 축소되어 간신히 존속만 할 수 있게 변했다.

살아남은 드래곤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후예들을 남겼다. 당장, 흑탑의 ‘아파치 레퓨어’ 역시 드래곤의 후예라고 불리는 하프드래곤이었다.

그런 그들의 역사를 보면, 사실 혼돈의 힘이라는 말은 재앙과도 같은 말이었다.

허나, 그런 만큼 말을 믿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 태호는 잠시 생각하다, 자신의 귀걸이를 보여주었다.

“혹시, 이 물건을 아십니까?”

로크나이엘은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더니, 살짝 놀랐다.

“테무의 용기...!” [등급 : 에픽]

[종류 : 장신구(귀걸이)]

[이름 : 테무의 용기]

[신에 한없이 가까웠던 테무 일족을 기리며... -초보 학자, 카실론]

[옵션 : 주력스텟 +100]

이 귀걸이를 받을 때를 떠올려 본다.

-이것은 테무 일족의 영웅에게만 수여되는 장신구이다. 네 공은, 이것을 받기에 충분하다.

카자토스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즉,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거라는 예상을 했었던 것.

류크나이엘의 두 눈이 시퍼렇게 빛났다. 그 눈으로 태호의 귀걸이를 한참이나 지켜보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너는 현 시대의 테무 일족 대장군에게 용맹함을 인정 받았군.”

“예.”

상징성.

그 상징성을 아는 이에게,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을 듯 싶었다.

“흠... 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대 재앙이로다.”

로크나이엘은 곰곰이 생각하다 덧붙였다.

“본대륙으로 가 보겠다.”

‘되네.’

태호는 약간은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드래고니악은 기묘할 정도로 고요했다. 아까부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이 남자 뿐인 것이다.

“다른 분들은 안 계신 겁니까?”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싸늘한 얼굴로 공중정원을 보며 읊조렸다.

“우선 저것 부터 내보내야겠군.”

두두둑-

그 순간.

류크나이엘의 전신이 폭발하듯 거대해져 갔다. 우드득 우드득 소리와 함께 그의 전신은 족히 10미터가 넘는 크기로 변했다.

등 뒤로 은빛 날개가 찬란한 빛을 뿜고, 윤기 띈 비늘이 돋아났다.

[드래고니악]

[실버 드래곤, 류크나이엘 워커드]

곧, 그의 명칭이 바뀌었다.

콰아아-!

그가 하늘을 향해 길게 날아올랐다. 그리고 전신에 반투명한 마력을 가득 머금더니, 거대한 바람을 쏘아내 엘린의 공중정원을 밀어냈다.

콰아아아아아!

공중정원이 쏜살같이 저 편으로 밀려났다. 토네이도를 뚫고, 이내 저 멀리로 사라져 버렸다.

* * *

“꺄아아아악!”

엘린이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그야말로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꼴사나운 모습을 하다 벌떡 일어섰다.

“이 개새끼들! 너희 두고 봐! 나중에 다 죽어!”

고래고래 소리쳐 본다.

공중정원은 어느새 드래고니악을 벗어나, 저 편으로 부유를 시작할 따름이다.

< 다음에 또 보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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