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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전설-109화 (109/194)

< 블랙 드래곤의 레어 >

“부탁?”

로크나이엘이 물었다. 그는 태호가 자신에게 보인 호의가 고마운지, 얼굴의 불편함 같은 것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드래곤의 땅에서 제가 찾아가야 할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물건이라... 그게 뭔가?”

“볼카노스 님과 관련된 물건이죠.”

“흠.”

마지막 물건이 남았다.

바로, 칠흑의 어둠반지이다.

이것까지 모으게 된다면 태호는 칠흑3세트를 모조리 맞추게 되는 셈이다.

과거 이것을 찾아낸 것은 흑마법사가 아닌, ‘짝패’ 라는 유저였다. 그는 이름보단 해상왕이란 별명으로 더 유명했는데, 리얼포스의 온 바다 어디든 안 가 본 곳이 없는 해양길드의 수장이었다.

그는 리얼포스가 서비스된지 1년이 넘을 무렵, ‘드래곤의 유산’ 이 발동된 후 처음으로 드래곤의 땅에 입성하였고 칠흑의 어둠반지를 발견해 본대륙으로 돌아왔었다.

그가 공개한 동영상과 드래고니악은 똑같이 생겼다. 그 당시를 한번 떠올려 보면, 정보는 대략 이렇다.

1. 당시에는 드래고니악의 드래곤들이 타락하여 본대륙 정벌을 떠났기 때문에, 텅 비어 있던 상태.

2. 그는 드래고니악 북부에서 이것을 발견. 발견하자마자 도주함.

3. 드래고니악의 중심에는 거대한 물건이 전시돼 있었던 것 같은 흔적이 여섯 개 있었음.

단순하지만 위치는 대충 알 수가 있다.

드래고니악 북부!

그리고, 태호가 품고 있는 의문 한 가지.

3번 항목이다.

추측컨대, 그곳에 전시돼 있던 것이 드래곤들의 유산이 아닐까? 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드래곤들은 왜 본대륙 침공을 해 왔던 걸까? 그 때는 그냥 ‘타락해서’ 였고, 지금은 왜 그런지 물어봐야 알 방법이 없다.

혹시.

‘드래곤의 유산.’

유산이라는 말. 그리고 여섯 개의 물건이 전시돼 있던 흔적. 태호는 눈을 감은 채, 그 당시의 동영상을 한번 더 떠올리기 위해 해썼다.

그 순간.

마치 머릿속에 동영상이 재생돼 가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매우 선명해져 가고 있었다.

여섯 개.

물건이 전시돼 있던 흔적은 여섯 개. 다섯 개에는 최근까지 물건이 전시돼 있었던 자국이 있었지만, 나머지 한 개는 꽤나 오랜 시간 비어 있었던 듯 하다.

“......”

태호는 그 쯤, 눈을 떴다. 그리고 로크나이엘에게 입을 열었다.

“드래고니악 북부에서, 제가 원하는 물건을 하나만 가져갈 수 있겠습니까?”

“물건이 뭔데?”

“반지입니다.”

“반지라... 흠... 북부라면 그 곳엔-”

로크나이엘이 곤란하다는 듯 씩 웃으며 덧붙였다.

“성질 더러운 장로 할배가 사는데...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장로?’

* * *

로크나이엘은 태호와 함께 드래고니악 북부로 움직였다. 이 섬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다. 대략, 과거의 미니미섬 만 한 크기였다. 마음만 먹으면 태호도 몇 시간 안에 섬을 모두 살펴볼 수 있었다.

북부.

그 곳에 서 있는 건물은 마치 서양식 교회 같은 건물이었다. 자못 경건해지기까지 하는 그 분위기에 태호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자, 로크나이엘이 말했다.

“여기 사는 장로 할배는... 소테드 스펠터. 최후의 블랙 드래곤이시지.”

블랙 드래곤!

허나 동시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 밖에 없었다.

‘과거에는 블랙 드래곤이 나타난 전례가 없었는데?’

“장로라면?”

“드래곤은 여섯 종족으로 나뉘는데, 그중 한 종족의 대표를 말하지. 레드, 블루, 실버, 골드, 화이트, 블랙.”

과거에 본 드래곤들은 총 다섯 종이었다.

헌데, 블랙드래곤이라는 것이 존재했었다니?

그럼 마치.

‘이거, 속성의 지배자들의 여섯 속성과 똑같잖아?’

태호가 로크나이엘에게 물었다. “당신은, 바람 속성인 실버 드래곤?”

“그렇지?”

“바람의 신과 실버 드래곤 일족은 무슨 관계죠?”

“신들과의 관계...”

로크나이엘이 팔짱을 낀 채 입을 열었다.

“오래 전에는... 마법이란 학문에 대해 함께 탐구하던 존재들. 그리고 이제는... 글쎄, 저마다의 길을 걷게 된 사이라고 해야 할까?”

확실히 드래곤들이 부리는 마법은 신들이 부여한 속성마법과는 달랐다.

태호는 그의 말을 곰곰이 곱씹으며 그를 따라 걸었다.

똑똑

문에 노크를 한 뒤.

끼익-

교회와 비슷한 건물의 정문에 선 로크나이엘이 태호를 흘끗 보며 말했다.

“좀 괴팍하더라도 놀라진 마. 우리 일족도 다들 꺼려하는 괴짜이지만... 어쩌면 너랑은 잘 맞을 지도.”

“......예.”

“그럼... 내가 주인은 아니다만... 어서 와, 블랙 드래곤의 레어에.”

문을 열자, 그 안에 빛이라곤 한 점도 들어오지 않는 어둠이 펼쳐져 있었다.

어둠.

태호는 어쩐지 그 어둠이 퍽 익숙하다는 생각을 하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있다.

인기척이나 생김새가 보이는 것은 아니다. 허나, 그 존재감이 느껴졌다. 마력의 아우라가 피부에 와 닿았다. 아무래도, 어둠의 마력을 사용하기 때문인 듯 하다.

[얼마 전의 소동은 잘 처리했나?]

묵직한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세상 놀란 가슴도 가라앉을 정도로 차분하고 정돈된 저음이었다.

“예 장로. 그게 어찌 된 일이냐면...”

로크나이엘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혼돈의 힘이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오고가고, 타락, 무 대륙 등의 단어가 나열되었다.

이윽고 상황을 모두 알려 주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명하게 처리했군. 창공 일족은 근본이 악에 가까운 존재. 말살해 버렸어도 됐을 것을...]

“그렇기야 합니다만 괜히 동면 중인 어르신들 깨우고 싶지 않아서요.”

[이 쪽은? 아무리 봐도 인간인데... 흑마법 냄새가 난다.]

“아, 이 쪽은 볼카노스의 제사장이랍니다. 이 곳에 필요한 반지가 하나 있다고 하는데... 혹시 아시나 해서 장로를 찾게 된 겁니다.”

[볼카노스... 그것도 제사장이라... 이건가?]

그의 목소리가 이채를 띄었다. 이내, 사방이 밝아졌다. 내부는 그저 평범한 공간이었다. 사방에 책장이 가득하고, 고서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가득 꽂혀 있다.

재질은 대부분 목재로 이루어져 있었다. 고개를 뒤로 젖히자, 까마득하게 높은 천장이 보였다.

어느새, 울리던 목소리는 육성으로 바뀌었다.

“볼카노스의 제사장이라... 당장 증거를 보여라.”

목소리의 주인은 강골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였다.

그는 새카만 머리카락에, 잘 정돈된 검은색 수염을 가졌다. 인상은 매우 다부지고 강렬해, 잘못 보이면 골로 갈 것 같다는 분위기가 풀풀 풍기고 있었다.

꿀꺽!

압박감에 태호가 침을 한번 삼킨 뒤 입을 열었다.

“그럼, 실례합니다.”

지체 않고 그에게 걸어가, 손을 잡았다.

‘볼카노스, 나와라.’

콰아아아-!

일순간, 사방이 다시 어둠에 물들고. 어느새 눈 앞에는 볼카노스가 서 있었다.

“볼카노스...!”

소테드 스펠터는 깜짝 놀라 볼카노스를 보았다. 볼카노스는 그런 그에게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었다.

[오랜만이군, 소테드 스펠터.]

“당신을 다시 볼 날이 올 줄이야....” 소테드의 얼굴에는 기쁨, 그리고 슬픔과 씁쓸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가 물었다.

“과거, 내게 맡겼던 그 물건을 바라시오?”

[눈 앞의 인간은 나의 제사장이다. 그리고, 지금 나의 제사장에겐 그 물건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겠군. 아마, 당신은 유배를 당했겠지.”

소테드는 대강의 전말을 안다는 듯 그렇게 물었다. 태호 역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각오했던 일이다.]

“......후회는 없소?”

[아직까지는.]

“혼돈의 힘이 다시 깨어나 꿈틀거리는 것을 보니, 다시 전쟁이 일어날 모양이군. 우린 과거의 전쟁에서 많은 것을 잃었소.”

[많은 이들이 죽었고, 많은 가치를 잃었지.]

“......”

소테드는 자조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번엔 태호를 한번 쳐다본 뒤 볼카노스에게 물었다.

“그럼, 이 인간에게 당신이 부탁했던 물건을 내어 주지. 이로서, 당신에게 진 빚은 온전히 갚았소.”

[알겠다.]

소테드는 군말 없이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허공에 어둠이 모여들더니 한 개의 반지를 만들어냈다. 그것을 내밀기에, 태호는 냉큼 받아들었다.

[아이템 : ‘칠흑의 어둠반지’를 획득했습니다.]

샤아아아-

어둠이 막 흩어져 가고 있었다. 문득, 소테드는 사라져 가는 볼카노스에게 말했다.

“내 목숨을 구해 주어, 고마웠소.”

화아악!

어둠이 사라지고, 다시 소테드의 집 안이었다. 로크나이엘이 놀랍다는 듯 물었다.

“신력이 느껴졌는데, 신을 부른 건가?”

“볼카노스를 만났다.”

“아, 그렇군요.”

소테드는 로크나이엘은 이제 안중에도 없다는 듯, 태호에게 물었다.

“혼돈의 힘을 접하는 것은 강렬한 유혹과 맞서는 길. 너는 고작 인간인 주제에, 어찌 그런 일들을 할 수 있었는가?”

그의 말은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태호를 보는 그의 두 눈이 매서웠다. 태호는 가만히 그를 보다, 입을 열었다.

“여러 신들의 가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과연.

일리 있는 변명이었다. 소테드는 나름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신들의 사랑을 동시에 받고 있군. 그 변덕스러운 녀석들이 그러기란 쉽지가 않을 텐데 말이야... 재미있구나. 심지어 볼카노스의 제사장이라니...”

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태호는 문득 그가 동면 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드래곤은 동면 중에도 특수한 공간 안에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활동할 수 있다. 흑탑, 아파치 레퓨어도 그런 식으로 흑탑주의 역할을 맡고 있었으니까.

“볼카노스의 흑마법이라면 아파치 녀석도 알겠구나.”

소테드의 말에 태호가 눈을 반짝였다.

“저희 탑주님을 아십니까?”

“엄연히 따지면, 우리의 핏줄 중 하나일 테니까. 그 녀석에게 안부나 전해 주도록 하라.”

아파치가 알면 놀라 자빠져 코가 깨질 일이었다. 그리고 소테드의 두 눈이 태호에게 한참이나 머물렀다.

“그리고 넌, 아주 흥미롭다. 왜일까, 아주 이질적이지만 재미있군. 해부라도 해 보고 싶어.”

태호는 가만히 그를 마주보았다. 문득, 로크나이엘의 말이 뇌리에 들려왔다. 마치 귓속말이 들려오듯 말이다.

-어... 저 괴짜가 저러는 건 장난 같지만 진심이거든?

그래서 괴짜인가.

태호는 씨익 웃었다. 태호 역시 소테드를 보며 여러 가능성을 새로이 떠올렸기 때문이다.

“해부는 곤란하지만, 마법에 대한 연구나 토론 같은 거라면 언제든 좋습니다.”

“뭐? 하, 하하하!”

소테드가 박장대소했다. 허나, 태호의 그 말은 그의 취향을 딱 저격한 모양이다.

“마법에 대한 연구... 토론... 아주 오랜만에 듣는 말이군.”

그는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좋다. 간만에 재미있겠군.” ‘의외의 성과다.’

태호가 주먹을 꾹 움켜쥐며 속으로 환호했다. 블랙 드래곤 장로라는, 과거의 역사에서는 본 적 없는 존재가 등장했다.

그는 과거의 ‘드래곤의 유산’ 확장팩에서는 왜 등장하지 않았던 걸까?

의문이 새록새록 샘솟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뛰었다.

‘드래곤의 마법!’

어쩌면, 태호는 전대미문의 드래곤의 마법을 배울 수도 있을지 모른다.

“......”

물론.

태호는 자신을 보며 씩 웃는 소테드에게서, 오싹함을 동시에 느꼈다. 어쩌면 얼마 전 엘린이 느낀 감정이 이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너희 모두 나가라."

소테드의 그 말과 동시에, 로크나이엘과 태호는 건물의 바깥으로 팟! 하고 순간이동해 버렸다.

< 블랙 드래곤의 레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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