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111화 (111/194)

< 추락한 신수(神獸) >

살라딘의 황폐한 사원.

그 곳에는 유저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아무래도 매스컴을 제대로 탔고, 현재 PPV 환불사태는 리얼포스 최대의 핫이슈였다.

태호는 유저들이 북적거리는 그 사원에서 여기 저기를 살펴보았으나 딱히 주목할 만 한 점은 없었다.

사체는 이미 예전에 사라졌으니, 단서는 오리무중일 뿐.

리얼포스의 세계에서는 ‘리스폰 이 되지 않는 몬스터’ 와 ‘리스폰이 되는’ 몬스터가 나뉘어 있다.

보통 세계관 상 중요한 축을 담당하거나, 한 줄기의 이야기를 담당하고 있는 큼직한 녀석들은 대부분 리스폰이 되지 않는다.

유니크나 레전더리급, 혹은 레이드급 던전 중에도 정기적 리스폰이 되는 던전이 당연히 존재한다. 확장팩이 추가로 열릴 때 마다 그 수는 늘어난다.

던전의 난이도는 당연하게도 극악!

향후 유니크나 레전더리 급 던전, 그리고 레이드급 던전공략의 PPV가 폭발적 인기를 누리는 까닭 중 하나다.

개중 살라딘의 황폐한 사원은 리스폰이 되지 않는 종류였다.

‘여길 혼자서 싹 쓸었다?’

태호는 신중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샴? 샴이 벌써 나타난 건가?’

가능성은 높다. 물어뜯긴 흔적을 보며, 샴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달려온 것도 사실이었다.

허나 문득 드는 의문. 왜 어둠의 추적자에는 걸리지 않은 걸까?

‘어쩌면, 샴이 아니야?’

태호는 다시금 마르코가 공개한 PPV영상파일을 확인했다. 뜯어먹힌 상처, 그리고 심장을 뚫린 최종보스.

‘아닐 가능성도 있다.’

샴이라면, 조금 더 상처가 커야 했다. 샴은 열 개 홍학의 대가리를 가진 괴물. 그 크기는 그야말로 산만 하다.

‘따지고 보면 샴이라고 보긴 좀 그래. 일단 어둠의 추적자도 발동을 안 했으니.’

머리를 굴려 본다. 그럼, 단순한 어떤 몬스터의 소행?

그도 일리는 있다.

‘이 근방에서 그럴 가능성이 높은 놈이라...’

태호는 한참 동안 머리를 굴려 보았다. 최소 유니크급 이상 던전 보스여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압살을 해 놓을 정도의 보스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 로만이?’

로만이 훼방을 놓았다는 건 일리는 있다만, 그 역시 아리송할 뿐.

‘로만이 뭐 하러?’

아이템이 탐났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 곳에서 떨어지는 것은 레전더리 서너 종이고, 에픽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흐음...’

일단 태호는 신전을 나섰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움직여, 막시무스를 소환했다.

[불렀는가, 나의 주군이여!]

“오랜만이다 막시. 이 주변에서 혼돈의 기운이 느껴지냐?”

막시무스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도?”

[흐음... 아무래도 그런 듯 한데.]

그렇단 말이지...

태호는 한참 동안 머리를 굴리다가, 문득 과거에 본 한 단어를 떠올렸다.

천상의 권좌.

과거, 두 대장군을 사냥한 뒤 떠오른 메시지 말이다.

-천상의 권좌의 힘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우선 태호는 이 문제에 대해 슬쩍 떠 볼 수 있는 상대를 떠올렸다. 어차피 현재 속성의 지배자들은 천계에서 유배 상태일 테니 큰 도움은 안 된다.

아테나 신은 별로 친밀한 관계는 아닌지라 떠 보다가 저주나 안 맞으면 다행이다. 카실론이 떠올랐지만, 혹시나 싶어 귀환하기 전 그의 사원에 잠깐 들렀을 때 그는 자리에 없었다. 아무래도 태호가 수호자의 힘을 온전히 각성하기 전에는 만나 주지 않을 듯 싶다.

‘천상의 권좌라면...’

아무래도, 현재로선 로키 정도가 제일 적당해 보였다.

고고하신 신들이 물어 뜯거나 할 리는 없다.

다만, 과거의 리얼포스를 떠올려 보았을 때 천계의 신수 들을 간접적으로 접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일단 그 방향으로 슬쩍 떠 보기로 했다. * * *

[어, 또 불렀냐?]

로키의 목소리에, 태호는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로키를 바라보았다.

[뭐야? 눈싸움이라도 하자는 건가.]

로키의 반응에, 태호가 하-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 놀라지 말고 들으십시오 로키 님.”

[뭐? 놀라? 내가?]

“얼마 전, 제가 신수(神獸)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

태호가 곤란하다는 듯 로키를 보았다. 로키는 얼이 빠진 얼굴로 멍하니 서 있다가 눈을 연신깜빡였다. 이내 이마를 짚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역시나냐.]

“......”

콕 찔렀는데 억 하고 대답하는 로키를 보니, 어지간히 심란한 모양이었다.

[......]

문득, 로키는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눈치 빠른 신 답게 태호의 변화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너 이 새끼, 거짓말이었구나.]

“음... 저주를 내리실 겁니까?”

태호의 능청스러운 물음에 로키는 자신의 이마를 짚더니 다시금 긴 한숨을 내쉬었다.

[감히 아스가르드의 주인을 모욕해? 다른 놈이었다면 저주를 5개 정도 걸어서 눈물을 질질 펑펑 쏟게 했을 텐데.]

살벌한 말과는 달리, 맥아리 없는 목소리였다. 로키는 어쩐지 그럴 기운도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래, 물어나 보자. 이 영악한 녀석아... 신수를 발견했다고 떠 본 연유가 뭐냐?]

“실은 얼마 전...”

태호가 살라딘의 사원에서 벌어진 일들을 대강 설명해 주자, 로키는 그야말로 한숨의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었다.

“천계의 신수 맞죠?”

[......]

로키는 물끄러미 태호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뭐 때문에 신수가 지상에 떨어진 겁니까. 천계의 신수라면 가진 힘도 장난 아닐 텐데요.”

[......아음.]

로키는 망설였다. 이런 저런 방향으로 생각하던 로키가, 나지막히 양 팔을 펼쳤다.

지이이잉-!

그 순간.

사방은 고요한 적막의 세계로 바뀌었다. 그 안에서는 오직 로키와 태호 뿐이었다.

‘신력이구나.’

이는 신력이 만들어 낸 특수지역이었다. 그 상태에서 로키가 입을 열었다.

[실은 얼마 전, 천계에서도 내가 다스리는 아스가르드의 어귀에 미세한 균열이 일어났었다.]

균열.

태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균열이라 함은?”

[아무래도 천계와 이 곳을 잇는... 거대한 약속에... 약간의 이상이 생긴 것일 지도.]

적당히 얼버무리려 하는 것을 보고 태호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세계의 맹약이구나!’

세계의 맹약에 이상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태호는 그 상태로 생각을 조금 더 확장했다.

‘천계의 신수가 리얼포스의 땅으로 왔다. 즉, 어쩌면 천계의 개입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허나 태호가 느끼기론 그 세계의 맹약이란, 매우 중요한 것. 위반할 수 없는 거대한 약속이다.

그렇다면?

태호의 추측은 꽤 일리가 있었다.

“거대한 약속을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어기게 됐으니, 상위 신들이 알게 된다면 로키님께 죄를 묻겠군요.”

[......너와 이야기하면 어쩐지 기분이 아주 묘해.]

로키는 기분이 그리 좋진 않다는 듯 툴툴거렸다.

[재수없게 속이 강제로 보여지는 기분이야. 저주라도 한번 받아 볼 테냐? 아무튼, 그래. 네 말이 맞다. 결과적으로... 그 아이가 지상에 떨어져 버렸다.]

“그 아이라고 하면, 뭡니까?”

[...펜리르.]

“......”

이런 시부럴, 이라는 말이 육성으로 튀어나올 뻔 했다. 펜리르라면 태호도 익히 알고 있는 아스가르드의 괴물 늑대였다. 로키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의 새끼. 이름은 펜리르3세. 이름을 내가 직접 지었거든, 아주 귀엽고 크기는 요만해.]

로키가 일순간 거대해지며 양 팔을 펼쳐 보였다. 한 5미터 가량의 길이였다.

‘교섭할 수 있겠군.’

로키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며 양 손을 좁혔다.

[그런데, 평소에는 요만 해. 화가 나면 커져.]

평소에는 평범한 새끼 강아지 같은 크기라는 말이었다.

“펜리르3세를 제가 찾아서 보호하게 된다면, 로키 님께는 큰 도움이 되겠죠?”

로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도움이 될 거에요. 제 공이 참 클 것 같네요.”

[......]

태호는 교섭할 내용을 머릿속에 몇 가지 떠올렸으나, 일단 이 정도로만 하기로 했다. 로키의 심기를 장난스럽게 툭툭 건드려 볼 순 있으나, 너무 선을 넘는 것은 금기다.

그도 일단은 신이고, 천천히 정보를 주고 받으며 교섭하는 것은 시간을 두고 해야 할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특이사항과,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제가 한번 손 써 보겠습니다.”

.

.

.

.

.

.

‘가장 좋아하는 건... 아온 물소 고기.’

아온 물소 고기는 북서부 아온 지역의 물소다. 사냥해서 얻기보단, 경매장에서 구매하는 것을 선택했다.

넉넉잡고 100개의 고깃덩어리를 구매해 경매장을 나섰다.

그리고 북부의 ‘살라딘의 황폐한 사원’ 으로 다시 돌아갔다.

여기 저기 유저들로 북적이는 이 곳에서 조금 벗어나, 유령표범을 소환했다.

카르릉-

녀석은 소환되고 나서, 태호가 건넨 물소 고기가 마음에 드는지 그르릉 그르릉 소리를 내며 고기를 먹어 치웠다. 태호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등에 올라탔다.

“자, 일단 달려 볼까.”

* * *

천계와 직접적으로 연을 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걸까?

태호는 이 우연이, 절대 우연이 아니란 생각을 했다. 운명의 굴레가 뒤틀려 혼돈의 권좌에서는 시기에 맞지 않는 대장군들의 불시착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 뒤틀린 굴레는 천계에도 분명히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래.’

태호는 자신의 추측을 정리했다.

‘뒤틀린 운명의 굴레는, 필연적으로 세계의 맹약이라는 것에 이상을 만들어낸다.’ 즉.

‘리얼포스의 세계 속 천계, 혼돈계, 지상계라는 경계가 어쩌면 허물어지고 있을 지도.’

모든 것은 추측일 뿐.

허나, 로키에게 교섭할 매우 큰 건수 하나를 잡은 것은 확실했다.

돌아와서.

펜리르3세는 겁이 아주 많고, 소심한 성격이라고 했다.

‘겁이 많고 소심해?’

그런 놈이 살라딘의 사원을 아작내 버렸단 말인가? 태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신들의 감각기관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좋아하는 지형은 높고, 그늘지고, 좁고 몸에 꽉 끼는 곳.

살라딘의 사원 근방에는 큰 도시나 마을이 없다. 그러니, 높은 곳이라면 아무래도 산이나 거목 위일 확률이 크다.

태호는 맵을 살펴보며 가장 가까운 산을 찍었다.

타타타타탓-!

유령표범이 달려, 금세 산에 도달했다. 이름 모를 산으로 접어든 태호가 빠르게 사방을 훑었다.

‘여긴...’

너무 나무가 듬성듬성 있고, 높지 않아 딱히 선호할 만 한 지형은 아닌 듯 하다.

그럼 다음 산으로 향해 보자.

그렇게 사방의 산을 모조리 헤집으며 다니던 태호는, 이 근방 지역에서는 마지막 산의 앞에 섰다.

산의 이름은 콘 마운틴. 과거에도 별 볼일 없는 지역인지라 크게 눈 여겨 보진 않았던 산이다.

허나 콘 마운틴이 이 근방에서는 가장 높다.

태호는 망설임 없이 그 산으로 들어섰다. 높고 울창한 삼림이 조성돼 있어, 산으로 막상 들어서자 어두침침한 느낌이 훅 들어왔다.

유령표범이 발빠르게 움직이며 산을 헤집을 무렵.

“아, 스톱.”

태호가 문득 녀석을 멈춰 세웠다. 저 편, 산 중턱이 조금 넘어 보이는 위치에 동굴 하나가 보인 것이다.

유령표범이 동굴 앞에 멈춰 서, 코를 킁킁거렸다. 이내 녀석의 표정이 흠칫, 놀랐다.

‘놀라?’

드문 일이었다. 태호는 유령표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소환해제 한 뒤, 동굴을 바라보았다.

‘펜리르.’

리얼포스의 설정이 아니라, 현실의 북유럽 신화에서는 무시무시한 괴물로 표현돼 있었다. 게다가, 이 녀석이 지금 지상에 내려와 벌인 일들은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

못 해도, 유니크 급 던전 보스는 개껌 씹듯 먹어 치우는 녀석이라는 가정을 해야 했다.

‘얼마나 세려나.’

어쩐지 가늠이 안 가, 지팡이를 꺼내 든 채 경계태세를 유지하며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시커먼 동굴 안.

태호는 의외로 이 동굴이 깊다는 것을 느끼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저 구석에서, 가르릉- 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태호가 움찔 놀라, 마법을 쏘아낼 자세를 마쳤다.

자박-

자박-

저 안쪽에서 걸음소리가 들려오고. 어느 순간.

홱!

태호의 몸을 덮치는 시커먼 물체. 태호가 반사적으로 땅을 튕기며 뒤로 물러서고, 마법을 쏘아낼려던 찰나였다.

망! 망!

“......”

망망망!

“......?”

태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시커멓고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강아지 한 마리였다.

녀석은 태호가 아주 반갑고 마음에 드는지, 똘망똘망한 두 눈동자를 태호에게 고정시킨 채 아주 열심히 꼬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 추락한 신수(神獸)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