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력에 버금가는 힘 >
태호가 향한 곳은 드래고니악이었다.
과거, 로크나이엘은 태호에게 스크롤 하나를 주었다. 필요할 때, 사용하면 드래고니악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과 함께.
태호는 망설임 없이 스크롤을 찢어, 드래고니악에 도달해 버린 것이다.
목표는 블랙 드래곤 장로, 소테드 스펠터.
그는 분명히 도움이 되리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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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드래곤 장로, 소테드 스펠터는 하품을 했다. 그의 눈 앞에는 이방인이 서 있다.
그는 그를 빤히 보다가 고개를 살짝 꺾었다.
“네놈은 특이하게도 용언을 알아듣더구나. 그런 인간은 아주 드물지, 희한한 일이야.”
“용언이라...”
태호가 말 끝을 흐렸다.
이는 수호자의 힘 덕분이었다. 장군과 대장군급을 잡아내며 얻어낸 능력 중 하나이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태호는 각 이종족의 언어들을 모두 이해하고 알아들으며 의사소통까지 가능했다.
“자, 실력 좀 보자.”
“......예?”
“한판 붙어 보잔 말이다. 흐음, 그래. 그럼 일단 네놈이 나를 공격해 보도록 해라.”
태호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진심이십니까?”
“거짓이겠느냐?”
소테드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혹시라도 나를 걱정해 주는 것이라면, 친히 네녀석을 해부해 뇌 구조를 확인해 보고 싶은데.”
딴에는 유머인 듯 했지만, 등골이 서늘한 말이었다. 소테드가 재차 입을 열었다.
“공격해 봐.”
“......후회하기 없깁니다.”
태호는 천천히 뒤로 물러선 뒤, 지팡이를 꼬나쥐었다.
‘장로 드래곤이라.’
과거, 드래곤의 유산에서 등장했던 드래곤들 중 장로급 드래곤들은 확장팩의 최종보스급 위력을 과시했다.
과거의 드래곤들은 ‘살해’ 하는 것이 아니라, ‘격퇴’ 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당시 그들의 위력은 첫 번째 확장팩이었던 ‘잊혀진 왕국’ 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압도적인 위용!
살해라는 단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체감될 정도로 유저들과의 격차는 어마어마했다.
결국 그들은 고작 열 셋이라는 소수로 대륙을 모조리 밀고 들어오는 시점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귀신처럼 사라져 자신들의 섬 드래고니악으로 돌아가 버린다.
그로 인해 과거의 리얼포스는 대도시들이 붕괴되고, 각 마을이 초토화되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물론, 드래곤들은 타격을 입을 때 마다 저마다의 부산물을 떨구었는데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드래곤 세트’ 나 ‘무기’ 등이 매우 고가에 거래되기도 했다.
돌아와서.
태호는 그 수준을 한번 느껴보고 싶어, 소테드 스펠터에게 소리쳤다.
“진짜 갑니다?”
“거 말 참 많다.”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최선을 다 해 쏟아부어 보실까.
태호는 마신강림과 강화된 어둠의 땅을 깔았다. 그리고 가진 스킬을 그야말로 쏟아 붓기 시작했다.
파파파파팟!
강화된 중독을 비롯해 각종 상태이상이 소테드에게 작렬해 나간다. 스킬 하나 당 1스택이 쌓이기 시작했다.
[10스택 달성]
10스택을 달성했으니, ‘칠흑의 어둠 세트’ 의 효과로 인해 10스택 이후 첫 공격은 5회 연사 효과를 받는다.
‘강화된 어둠의 명령.’
강화된 어둠의 명령이 생명력 90%의 성능으로 우악스럽게 쏘아져 나갔다.
콰콰콰콰쾃! 태호의 손을 벗어난 어둠의 명령은 정확히 5번 연사되어 소테드에게 작렬했다.
우지지직!
섬뜩한 소리가 나며 사방에 어둠의 마력이 일렁였다. 태호는 어쩐지 적잖이 걱정이 되어, 전투태세를 해제한 뒤 그를 보았다.
“괘, 괜찮습니까?”
헌데.
어쩐지 소테드는 멀쩡해 보였다. 그는 자신의 전신을 뒤덮고 있던 시커먼 오오라를 거두며 태호를 보았다.
“흠, 제법이군.”
그는 멀쩡해 보였다.
‘이럴 리가? 마법이 죄다 직격했는데?’
태호가 이상하다는 얼굴을 하자, 소테드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너는 드래곤이 어떤 종족이라고 생각하냐?”
설정 상, 드래곤은 지상 최강의 마법종족이었다. 또한, 태호가 이번 생에서 습득한 정보들을 토대로 한다면...
“흠... 속성의 지배자들의 마법과는 다른 노선의 마법을 사용하는, 독자적인 마법생물. 이 정도가 아닐지요?”
소테드는 가볍게 고개를 까닥였다.
“맞다. 정확히는, 신의 힘에 대항할 수 있었던 마지막 생물이라고 말해야겠지.”
신의 힘에 대항할 수 있었던...!
태호는 그 말에 살짝 전율이 돋는 것을 느꼈다. 태호 역시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여러 고심을 하고 있던 터였다.
가장 먼저.
펜리르 3세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작 천계의 유아기 신수의 능력치는 그야말로 정신이 나간 수준이었다.
이런 녀석들이 고작 강아지 취급이나 받는 곳이 천계의 수준이다.
허나. 태호는 그의 말을 곰곰이 곱씹어 보았다.
“대항할 수 있었‘던’?”
“우리 외에도, 태고시절에는 신의 힘에 대항할 수 있었던 존재들이 제법 있었다. 뭐, 무 대륙의 무사들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겠지.”
그렇다.
무 대륙의 테무 일족 역시 신에 한없이 가까웠던, 이라는 수식어구가 붙어 있지 않았던가.
“헌데요?”
“태고시절, 그리고 대격변 즈음에서 우리는 혼돈의 힘과 맞서 싸웠다. 태고적의 싸움에서는... 신에 준하던 힘을 대부분 소실하였지. 그리고 그 후예들은 반푼이나 다름없게 변해 버렸다.”
소테드의 말은 덤덤하나, 어쩐지 깊은 역사와 비밀을 담고 있었다.
태호는 절로 구미가 당겨, 그의 앞으로 다가가 이야기에 집중했다.
“운명의 굴레가 뒤틀리고... 혼돈의 대장군들이 둘이나 미완성의 상태로 나타났다지?”
“예에...”
“그들이 등장했음을 느끼고는 있었다만. 결국 본대륙의 모험가들이 그들을 격퇴했다던가?”
“그렇습니다.”
“그중 네놈이 큰 몫을 했을 거고.”
“예.”
이는 태호가 사전에 해둔 바 있었기에, 크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대격변을 직접 겪은 바 있다. 그 당시, 혼돈의 대장군들이 가진 힘은 능히 일당 백의 힘이었지.”
일당 백.
태호는 그 상상할 수 없는 숫자에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백이라는 숫자는 사실 낮은 숫자에 불과하다. 허나, 그 상대가 천계의 신들이라면?
대장군 하나는 100명의 신과 맞설 수 있다는 말이다.
“태고적에 신에 필적하는 힘을 잃은 우리는... 그 전쟁 끝에, 절반의 대장군을 죽일 수 있었다. 막대한 피해를 보아야 했지만, 결국 놈들을 후퇴시키기에 충분했지.”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그 전쟁에서 죽은 대장군들은 혼돈의 권좌로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돌아갔다.”
소테드가 씁쓸한 얼굴로 되뇌었다.
“태고적 이후, 그들을 완전한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방법은... 소실되었기 때문이지.”
다시 부활하는 것을 알면서도 싸워야 했던 이유가 뭘까. 태호의 두 눈이 그것을 궁금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그가 재차 입을 열었다.
“알면서도 왜 싸웠느냐? 종말을 미루고 싶었기 때문이지. 덕분에 우리는 전쟁에서 승리했고, 종말은 미루어졌다.”
그리고 이 시간대에 이르게 되었다- 라는 것이다.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확장팩에서 등장했던 대장군들은, 그 급 까지라고 보기는 좀 힘든데?’
일단, 어떻게든 잡혔기 때문이다. 유저들의 공세로, 끊임없는 노력으로, 물량으로.
결국 확장팩의 최종보스들은 항상 최후를 맞았으며, 유저들은 승리의 역사를 써 나갔다.
헌데.
이 정도의 묘사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의 무력이란 말인가? 태호가 다시 물으려던 찰나.
“맹약에 의해.”
“예?”
“맹약에 의해, ‘멸망의 날’ 이 되기 직전까지는... ‘맹약으로 지켜지는 땅’에서 혼돈의 힘을 절반밖에 사용할 수 없다.”
“......!”
이 말은 어쩐지 태호에게 새삼스러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역시 그랬구나!’
태호는 이미 최종확장팩 ‘멸망한 세계’ 가 현실로 튀어나오는 것을 모조리 지켜 본 뒤였다.
확장팩들에서 등장했던 대장군들의 위세는, 그야말로 천지차이로 달랐다.
소테드의 말이 사실이라면, 현실로 튀어나올 ‘대장군’ 들의 힘은 리얼포스 내에서 100%의 힘을 발휘하던 때의 2배라는 말이었다.
‘시부럴.’ 태호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일단은 신노스와 케노스를 해치운 것에 약간은 도취돼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허나, 스스로도 고작 1/10의 대장군들이었으니 자만하면 안 된다고 자각하고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여전한 의문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리얼포스의 베테랑 유저들은 어찌 됐든 다섯 대장군을 모두 클리어 해 본 경험이 있는 고수들이었다. 헌데, 어찌하여 정말 쪽도 못 쓰고 지구가 멸망해야 했던 걸까?
최소한 대장군들 중 몇 놈 정도는 죽여야 이치에 맞는 게 아니었나?
그 의문에 있어서 어느정도의 해답이 주어졌던 것이다.
태호의 얼빠진 모습이 재미있는지, 소테드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충격을 받았나 보구나?”
“......예.”
“앞으로 등장할, 더욱 강해진 녀석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신력에 버금가는 힘을 손에 넣을 필요가 있겠지.”
소테드의 말에 태호가 눈을 반짝였다.
신력!
신들이 사용하는 그 미지의 힘은, 태호에게 있어서도 수수께끼의 영역이었다.
“신력 말입니까?”
“그래. 이제 와서, 태고적 소실되었지만 그 힘의 잔재라도 가지고 있는 종족은 우리 일족이 유일하다. 정확히는, 그나마 장로급 들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을 테지.”
소테드는 태호를 빤히 보며 양 손에 시커먼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별 것 아니라는 듯, 태호에게 손을 뻗었다.
구구궁-!
그 순간.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막대한 대미지가 쏟아졌다.
콰아아아아!
-‘드래곤의 어둠마법: 어둠의 격류’ 에 당했습니다.
마법 공격당했다는 상태이상 메시지는, 이질적인 것이었다. 적어도 태호는, 회귀 후 리얼포스를 시작한 이래 이런 위기를 겪어 본 적이 없었다.
삽시간에 태호의 생명력은 99%까지 떨어졌다가 모조리 회복됐다가를 반복했다. 단순해 보이는 마법 한 방에, 태호는 그야말로 절명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케노스 급.’
이 힘은, 태호가 과거 1/10수준의 케노스를 상대할 때 느꼈던 압박감과 비슷했다.
허나,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 더 강하다. 태호가 몸을 비틀며 마법을 쏘아냈다.
파파파파파팟!
소테드는 전신을 시커먼 방어막으로 둘러, 태호의 마법을 간단히 막아 버렸다.
“어, 어떻게?”
“첫째. 네가 어둠 계열의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동급 속성의 마법사들간의 싸움은, 누가 더 강하느냐에 따라 천지차이로 갈린다. 너는 나 보다 압도적으로 약하다. 때문에, 네 공격은 내게 거의 먹히지 않으면서 내 공격은 치명타를 줄 수 있다.”
소테드가 양 손을 휘저었다.
샤샤샥!
어느새, 태호의 생명력을 집요하게 갉아먹던 ‘어둠의 격류’ 가 사라졌다.
“둘째. 이 힘은, 장로급 드래곤들에게 그나마 약간은 남아 있는 태고적의 힘... ‘비전력’ 이다. 보통의 마력과는 파괴력이 다르지만... 다루는 법이 쉽지 않다.”
비전력.
태호는 그런 단어는 처음 들었다. 온 몸이 싸- 하게 울리며, 전율이 일었다.
“그, 그렇다면...”
“흠... 마침 나는, 최근 여러 가지 일들을 겪고 있었지... 그 과정에서 네놈을 언급하는 이들이 워낙 많아야 말이지.”
자신을 언급했다?
태호는 두 눈을 가늘게 좁혔다.
“무슨 말씀이신지... 누가 제 이야기를?”
소테드가 빙긋 웃었다.
속을 알 수 없는 웃음이었지만, 악의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편으론 어느정도의 이해가 갔다.
'그 누군가 때문에, 굳이 내게 이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그 누군가가 대체 누구란 말이지?
머리속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소테드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마침 블랙 드래곤 일족은 내 대에서 끝이 날 터. ‘어둠의 비전력’을 배울 수 있는 드래곤은 이제 이 세상에 남아 있지도 않다. 그러니, 이 시도는 나 역시 그리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네가 배울 수 있을 지, 없을 지도 확실치는 않다만 인간의 어둠계열 마법사 중
에는 가장 나을 터.”
“......”
그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물었다.
“너, 배워 볼 테냐?”
< 신력에 버금가는 힘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