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거 괴물인가? >
어느새 한밤중.
태호는 방금 전 느낀 그 감각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순간 동안 태호는 분명히 현실의 모든 오감을 리얼 포스의 세계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이 감각을 뭐라고 명명해야 할까? 태호는 팔짱을 낀 채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허나, 중요한 건 그 감각에 빠져든 그 순간 비전력이라는 것에 첫발을 내딛었다는 점일 거다.
그 순간 태호의 전신을 지배해 온 것은, 전율이었다.
해냈다는 그 성취감이 짜릿하게 온몸을 자극해 온다.
“아주 바보는 아니군.”
문득 저편에서, 묵묵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둠 속에 언제부턴가 서 있었던 소테드 스펠터였다.
그는 태호에게 저벅저벅 걸어와 쓱 훑어보았다. 내심 적잖이 놀랐지만, 태연한 척하며 말했다.
“그게 첫걸음이다. 비전력이란 응축된 마력. 그것을 자유자재로 만들어 내는 것이 첫째 조건이다.”
태호는 새삼 놀라웠다.
여지껏 리얼 포스의 세계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모르는 세상이 펼쳐져 있다는 것. 하늘 위에는 또 다른 하늘이 있다는 것이다.
* * *
현실로 돌아온 태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쩐지 전에 없던 피로감이 찾아왔다. 핑, 하고 머리가 도는 느낌은 새삼 신선한 감각이었다.
“휴우.”
리얼 포스의 접속시간은 하루 18시간 제한. 6시간은 강제적으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그 점이 살짝 아쉬워, 입맛을 다시며 몸을 일으켰다.
적당히 밥을 차려 끼니를 때우듯 먹어 치운 뒤 찬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차갑다.
신선하다.
최근 들어 리얼 포스에 몰두하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남에 따라, 약간씩 생소해지는 현실적인 감각들. 그 느낌이 유독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
태호는 문득 마시던 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물병 표면에 맺힌 물방울의 촉감을 느끼며, 물병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이윽고 태호는 몸속의 마력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현실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생생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거 설마.”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손 끝으로 마력을 뽑아냈다. 마력이 뭉게뭉게 새어나와, 허공에 일렁였다.
그리고 그것을 만져 본다.
폭신폭신한 솜사탕, 허나 형체가 없이 금세 흩어지는 모양새의 마력이었다.
오싹!
그렇다.
리얼 포스 내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간 ‘감각 세계’ 에서만 다룰 수 있었던 이 마력이, 사실 현실에서는 별것 아니게 느낄 수 있었다.
여긴 현실이니까!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도취돼 마력을 응축시켰다.
고오오오-
쉽다.
리얼 포스에서는 정말 어렵게 어렵게 만들어 냈던 응축된 마력이, 현실에서는 굉장히 쉽게 이어졌던 것이다. 금세 만들어진 응축된 마력을 만지작거리던 태호는, 그것을 움직여 보았다.
‘파괴력을 갖나?’
물건들에 가져다 대 보아도, 그저 투과할 뿐 딱히 어떤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어디.’
이제는 자신의 몸속에 주입해 보았다.
후욱-!
전신에 퍼져 나가는 마력의 힘이 느껴졌다. 충만해진 마력의 힘이 온 정신을 일깨웠다.
약간 나른했던, 피곤함이 일순간 완전히 가셨다. 그뿐 아니라 마치 온몸은 방금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개운했다.
“......세상에.”
온몸 혈관 하나하나에 에너지가 들어차는 기분이었다. 어쩐지 태호는 기분이 아주 상쾌해져 기지개를 쭉 폈다.
‘마력을 응축시킨다.’
이 발상은 과거에는 해 본 적 없었다. 아니, 할 시간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리얼 포스의 세계에서는 당연하고, 리얼 포스가 현실로 튀어나온 이후에는 그야말로 피로 피를 씻는 전쟁 중이었으니까.
‘아니.’
문득 태호는 깨달았다.
‘과거에는 이런 과정에서도 쉽게 만들어 낼 수가 없었어.’
그렇다. 생각해 보면, 과거에는 무수히 많은 전투를 치러야 했다. 그 와중, 마력을 응집하려는 노력을 한 유저들도 많았다.
허나 그 누구도 이렇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태호는 그때와 지금, 달라진 부분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이 몸.’
이 몸이다. 대장군과 장군들을 해치우며, 현실의 태호는 변해 갔다. 마치 환골탈태를 하듯 허물을 벗고 체형이 변했다.
‘최적화된 몸.’
그 몸이 있기 때문에 마력을 응축시키는 작업이 굉장히 쉽게 느껴졌던 것이다.
* * *
현실 세계는 여전히 평화로웠다. 치열하게 싸우는 가상현실 세계의 투쟁에는 아무런 관심 없는 사람들이, 오늘도 한가로이 저마다의 일정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덧 계절은 봄.
칼바람이 부는 초봄이지만 태호는 어쩐지 봄 냄새가 물씬 풍긴다고 생각했다. 창문을 열고 바깥을 바라보는 그 시간이, 왠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띠링
문득 스마트폰 알림이 떠올라 살펴보니, 입금 내역이 갱신돼 있었다.
[YOU TUVE 정산 금액]
유튜브 정산금이 찍혀 있었다.
[크리에이터 ‘UnKonw' 님의 정산 금액입니다.]
[Krw : 152,040,112]
“......?”
최근 영상 작업이 몇 개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1억 5천에 달하는 금액이 입금되어 있었다.
태호는 가만히 눈을 깜빡이다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로 들어섰다.
[Unkonwn VS Murderer]
얼마 전, 안타라스 슬램을 기습한 동영상이 편집되어 업로드돼 있었다.
“조회수가...”
태호는 조회수를 보고 피식 웃었다.
1억 뷰가 넘어가고 있었다. 덩달아, 기존의 동영상들도 연일 히트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제 언노운은 리얼 포스의 대표적인 밈(Internet Meme:인터넷의 문화요소, 유행요소)이 되었다. 리얼 포스를 떠나, 인터넷 어디를 가든 언노운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외쳐! UN!]
언노운 대표 팬클럽 UN의 위세도 대단하다. 그들은 이미 언노운이 활약했던 지역들을 방문해 성지순례를 이어가는 것으로 화젯거리가 된 바 있었다.
이제.
리얼 포스의 랭커들은 그냥 랭커가 아니다. 그들은 TV나 인터넷에서 직접 얼굴을 밝히며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쉬폰, 윤형석. ‘제1회 리얼 포스 최강자 PVP 대회’ 개최]
쉬폰이 개최하는 리얼 포스의 PVP 대회는 이미 참가 신청자만 10만 명을 넘었다.
예선전 PPV 티켓과 본선 PPV 티켓은 이미 300만을 넘어섰고, 공중파와 지상파 모두에서 녹화방송의 중계권을 따내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또한.
“응?”
태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자신의 개인 메신저를 확인했다.
[형님. 나 조만간 한국 감.]
라간의 짧은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과연, 뉴스 기사에 이런 글자가 적혀 있었다.
[리얼 포스의 톱 랭커 ‘라간’ 한국 방문 예정에 화제...]
리얼 포스의 랭커가 한국을 방문한다는 것이 대서특필 될 정도로 게임의 인기는 나날이 고공행진을 기록하고 있었다.
조만간 동시접속자가 1억이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고, 리얼 포스 관련주는 이미 대폭등을 거듭하고 있었다.
‘한국에 온다.’
태호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어쩐지, 복잡미묘한 기분이었다.
......그 뒤로 며칠간은 수련의 연속이었다.
“압축하는 시간을 대폭 줄여라. 최소, 10초 안에 압축된 마력을 만들어야 해.”
소테드의 주문은 까다로웠다. 처음에는 시간이 오래 걸렸으나, 점점 더 요령을 깨달아 갔다.
아니.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쉬워지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는데 바로 현실에서의 수련 때문이었다.
현실에서의 수련은 마력 압축의 숙련도를 빠르게 올려 주고 있었다. 현실에서 수련을 거듭할수록, 태호가 자체적으로 명명한 ‘감각 세계’ 에 접어드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다만, 현실에서 어느 정도의 요령을 깨닫고 나서 리얼 포스 속에서 수련하는 것이 직접적으로 향상에 도움이 됐다.
결국, 게임 속의 노력에 절대적 시간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은 별수 없었다.
황금 같은 접속시간을 꼬박 마력 압축에 보내고, 현실에서의 시간도 오롯이 투자하기를 사흘째.
고오오오오-!
태호는 비로소 마력 압축을 6초 만에 해낼 수 있었다. 소테드는 어쩐지 태연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젠 대충 쓸 만해졌군. 그렇다면 이제는 응축한 마력을 몸속에 저장하는 거다.”
“저장한다라?”
“그래. 우선은 저장한 것을 사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몸속의 마력이 모조리 비전력으로 치환되는 것은 고등의 영역이다. 당장은 이렇게 시작해야 해.”
그리고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만들어낸 응축된 마력을 몸에 집어넣어, 한 곳에 집중해라. 흩어지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해. 이때, 네가 가진 마력으로 응축된 마력을 뒤덮어 흩어짐을 방지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리고 태호에게 다가왔다.
“일단 시범을 보여 주마. 이렇게 해 봐.”
그가 간단히 시범을 보여 주었다.
본래는 몸속에서 일어나야 할 일을, 태호의 눈에 보이도록 외부에서 보여 주는 식이었다. 응축된 마력의 사방에, 검은 마력이 모여들어 마치 속박하여 고정하는 듯한 형세였다.
“두 개 기운의 컨트롤을 동시에 정확히 해야 한다. 하나라도 어긋나면, 흩어져 버려.”
태호는 군말 없이 그의 말에 따랐다. 우선은 마력을 응축해 몸에 집어넣는다. 집어넣자마자 쏜살같이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그것을, 본래 가지고 있던 마력을 움직여 억제했다.
샤라락!
허나, 너무 늦었다.
응축됐던 마력이 전신으로 싸악 퍼져 나가 버렸다.
‘이런.’
허나 어쩐지 실패할수록 신이 났다. 그간의 태호는 성취의 즐거움은 알았으나, 도전의 즐거움은 잊고 있었다.
어쩐지 쉽게 내어 주지 않는 경지에 도전하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었다.
수련이 이어졌다.
게임 속에서, 현실에서.
특히 현실에서의 수련은 요령을 익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기에, 하루는 아예 게임에 접속조차 하지 않은 채 수련에 몰두할 때도 있었다.
사흘 뒤에는 마력을 이용해 응축된 마력을 콩알만큼 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일 주일 뒤에는 응축된 마력을 주먹 만큼 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쩐지 점점 더 요령이 붙으니 진도는 더욱 빠르게 나아갔다.
그리고 열흘이 지난 지금.
태호는 주먹 세 개를 포개 놓은 정도의 응축된 마력을, 체내에 온전히 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고오오오-
한번 억제를 하자, 응축된 마력은 더 이상 퍼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렀다. 정확히는 명치 부근의 몸속에서, 어둠의 마력과는 전혀 다른 ‘묵직한’ 느낌으로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태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위업 달성!]
[위업 : 어둠의 비전력]
[최초로 어둠의 비전력을 익히는 데 성공하였다.]
[보상 : 패시브 스킬- 어둠의 비전력]
“아.”
태호는 그대로 눈을 끔뻑이며 메시지를 살펴보다가, 씩 웃으며 소테드를 쳐다보았다.
소테드는 특유의 무관심한 눈으로 태호를 보다 말했다.
“나쁘지 않군.”
“......감사합니다.”
[패시브 : 어둠의 비전력Ⅰ]
[설명 : 태고의 힘, 어둠의 비전력을 간접적으로나마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력을 치환하여 어둠의 비전력을 수집합니다.]
뭔가 애매한 설명이었지만, 일단 성과가 있었다는 것이 기뻤다.
기뻐하는 태호를 보며 소테드는 생각했다.
‘이거... 괴물인가?’
눈앞의 인간이 보이는 성취도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드래곤 장로들이 가진 비전력은 현재 드래고니악에 남은 드래곤들이 익히기에도 난해한 것들이었다.
방법 자체는 쉽지만, 도달하기가 어려운 것들이 있다. 마력을 압축하고, 그것을 저장하는 것은 말로는 쉬워 보이나 결코 쉽지 않은 일들이었다.
마법 일족, 드래곤마저 쩔쩔매는 수준이었으니까.
허나.
이 인간은 말로만 설명해 주고, 몇 번 시범을 보여준 것만으로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것도 단 열흘 만에!
드래고니악의 가장 유망한 드래곤, 로크나이엘도 감히 엄두조차 못 내는 수준으로 단숨에 올라선 것이다.
‘이게 가능해?’
소테드는 진정으로 놀라며 태호를 슬쩍 쳐다보았다.
-그 녀석을 도와줘. 분명히 크게 도움이 될 거다. 내 용건은 이게 끝이야.
문득 카실론의 말이 떠올랐다.
< 이거 괴물인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