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116화 (116/194)

< 레드 드래곤의 유산 >

비전력에 대한 첫걸음이 이루어졌다.

“이제부터는 그것을 이용해 마법을 만들어야 한다. 이건 못 하는 게 바보다.”

소테드는 시범을 보인다는 듯, 자신의 비전력을 이용해 마법을 만들어냈다.

태호에게 작렬했던 ‘어둠의 격류’ 가 그의 손에 일렁이다 저편으로 쏘아져 나갔다.

“원리는 네가 마법을 사용하는 것과 동일하다. 마력 대신 비전력이 소모되는 거야.”

소테드의 말에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화된 중독.’

스킬을 사용하자,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저장 중인 ‘어둠의 비전력’을 소모합니다.]

싸아아-

몸속에 일렁이던 비전력이 사라지며 강화된 중독이 쏘아져 나갔다.

강화된 중독이 저 멀리로 사라지고, 태호는 사라진 비전력을 느끼며 혀를 찼다.

‘고작 마법 한 번에 소모되는 양이야?’

어쩐지 허탈해하는 모습에 소테드가 빙긋 웃었다.

“어이가 없구나.”

“예?”

“인간이 드래곤의 비전력을 손에 넣었는데, 만족은커녕 부족해하다니.”

“......”

태호가 어쩐지 머쓱해져 머리를 긁적이는데 소테드가 입을 열었다.

“허나, 그것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은 현상이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런 마음가짐으로 버텨라. 앞으로, 계속해서. 자만 따위를 모른다면, 얼마든지 성장한다. 네 목표는 뭐냐?”

태호는 그를 빤히 보며 묵묵히 대답했다.

“앞으로 등장할 대장군들을 격퇴하고, 최종적으로 판타로스를 쓰러트리는 겁니다.”

“판타로스...”

소테드는 멍하니 허공을 보며 그 이름을 곱씹었다. 그의 얼굴에 희로애락이 담겼다가 사라졌다.

“그놈이 이윽고,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부활하려 하는가...”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내 그 웃음은 사라지고, 본래의 귀찮음 가득한 얼굴로 돌아온 소테드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비전력은 놈들의 온전한 힘을 상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거, 항시 만들어 품고 다녀야 합니까? 일종의 저장을 해 두어야 하는 건가요?”

“아직까진 그럴 거다. 일정량 이상의 숙련도를 갖춘다면, 자연스럽게 마력이 비전력으로 치환된다. 그 경지로 가려면 아직 멀었다.”

그의 말대로였다.

태호의 눈앞에 메시지들이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둠의 비전력을 소모하였습니다.]

[당신의 패시브 스킬 ‘어둠의 비전력’ 이 추가 개방되었습니다.]

추가 문구.

태호는 다시 어둠의 비전력을 살펴보았다.

[패시브 : 어둠의 비전력Ⅰ]

[설명 : 태고의 힘, 어둠의 비전력을 간접적으로나마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력을 치환하여 어둠의 비전력을 수집합니다.]

[1단계- 비전력을 모아, 소량을 체내에 저장할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숙련도를 상승시킨다면 업그레이드가 가능합니다.]

‘역시나구나.’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호재였다.

태호는 주먹을 불끈 쥐며 속으로 ‘예스’를 외쳤다. 이유? 간단하다.

여태까지는 비전력이란 애매모호한 것을 익히기 위해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이는 스킬로 설정돼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순수한 노력과 재능값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스킬이 되었다.

이것이 가져오는 이점은 딱 하나뿐!

‘고대 왕국의 증표와 메소드의 가호가 적용된다는 거지.’

고대 왕국의 증표와 메소드의 가호는 둘 다 ‘스킬 숙련도 2배 증가’ 옵션을 달고 있었다.

즉.

지금부터는 스킬이 됐으니, 두 개 숙련도 상승치 보너스가 제대로 적용된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이 패시브 스킬이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된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건 분명히 중요 포인트다.’

앞으로 등장할 대장군 샴을 비롯한 다른 대장군들은, 분명히 케노스나 신노스보다 강할 것이란 가정을 해 두어야 했다.

특히 ‘샴’은 대적하는 상대가 많을수록 그 곱절로 강해진다. 놈을 상대하려면 소수정예로 빠른 시간 안에 때려잡아야 하는데, 그때를 대비하기론 최적이었다.

문득.

태호는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궁금증 하나를 소테드에게 물었다.

“뭐 하나 여쭤봐도 됩니까?”

“해라.”

소테드가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드래고니악의 중앙. 그곳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흠?”

소테드가 흥미롭다는 듯 태호를 보다 반문했다.

“그게 왜 궁금하지?”

“......”

태호는 잠시 망설였다. 돌아가야 할까? 빙빙 돌려 어렵사리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도 해 봄직 한 일이긴 하다.

허나, 태호는 적어도 ‘인간을 초월한 지성체’ 인 눈앞의 드래곤 장로에게 어설픈 머리싸움은 하지 않기로 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곳에, 드래곤의 유산이 있습니까?”

“......”

소테드는 팔짱을 꼈다. 그리고 한쪽 입술을 지그시 올렸다.

“왜 그런 생각을 하지?”

“제 생각에는, 본대륙에 ‘소실된’ 드래곤의 유산 하나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태호의 말은 추측과 여러 정보들을 통합해 만든 가설이었다.

드래곤들이 굳이 본대륙을 쳐들어와, 인간들을 공격한 뒤 일순간 드래고니악으로 돌아가는 확장팩 ‘드래곤의 유산’ 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리고 자체적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드래곤의 속성은, 속성의 지배자들의 여섯 속성과 동일하다.

즉.

불, 땅, 물, 바람, 어둠, 빛.

이 여섯 속성이어야 하는데, 본대륙을 두고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그 여섯 속성 중 하나에 가장 근접한 장소가 한 군데 떠오른 것이다.

태호는 슬쩍, 소테드의 눈치를 살폈다.

소테드는 어디 한번 말해 보라는 듯 태호를 주시하고 있었다.

꿀꺽.

태호는 침을 삼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처음에 예상했던 곳은 두 곳이었습니다. 우선 한 곳은, 화산섬입니다.”

“화산섬이라.”

“허나 그곳에는 불의 신 아그니 님이 계십니다. 드래곤들의 마법은, 속성의 지배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신비의 마법. 그러니 그곳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소테드가 흥미롭다는 듯 반문했다.

“그래서?”

“그래서...”

태호는 그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본대륙의 아젠티움.”

흠칫!

소테드가 드물게 놀랐다.

“아젠티움의 용암 속에, 혹시 드래곤의 유산이 있는 것 아닙니까? 레드 드래곤의 유산 말입니다.”

태호가 이 추측을 하게 된 것은 여러 정보를 조합하는 과정 때문이었다.

그간의 기억들을 되짚으며 회귀 후의 일정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다 보니, 문득 마음에 걸리는 장면이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신노스라고 소개한 괴물이... 이곳에 찾아온 걸세.

바로, 아젠티움이었다.

신노스는 운명의 뒤틀림으로 생각보다 일찍 리얼 포스의 대륙에 불시착했다. 그리고 놈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아젠티움이다.

-그리고 놈은... 뭔가를 찾는 듯했지. 수틀렸는지... 우리 일족을 학살한 뒤 떠났다네.

아젠티움의 드워프 엑셀의 말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

그 당시에는 사실, 드워프들이 숨겨 놓은 에픽 아이템이나 혼돈의 유산을 찾기 위함이라고 생각했었다.

허나 지금. 드래곤의 유산을 찾기 위해서였다는 가정이 덧붙여지면, 어쩐지 그의 행적이 완벽해진다.

“허허.”

소테드는 태호가 신기하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역시.’

태호는 소테드가 순순히 대답해 주는 것에서 진심을 느꼈다. 가식이 아니다. 그렇다는 말은, 태호를 신뢰하게 되었다는 말과도 같다.

왜?

‘아무래도, 내 이야기를 했다는 누군가가... 그에게는 무한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인 모양인데.’

드래곤의 유산에 대한 것은 어찌 보면 역린과도 같다. 누군가가 알게 되면 곤란한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허나 그는 오히려 태호가 신기하다는 듯 반응하고 있었다. 거부감이 딱히 없다. 즉,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확고한 신뢰를 가진 이가 자신을 언급했던 것.

자.

그렇다면, 과거의 신노스는 대체 왜 그곳에서 수확 없이 돌아가야 했을까?

‘힘이 모자라서.’

그래.

그렇다면 말이 된다. 드래곤의 유산을 가져오기 위한 힘이 모자랐던 거다. 그래서 가엾은 아젠티움의 드워프들을 잡아 족쳐 화풀이를 하고 간 거다.

“네 말대로다.”

태호의 생각을 멈추게 한 것은 소테드의 묵직한 목소리였다.

태호가 그를 보자, 그는 말을 이었다.

“그곳에 레드 드래곤의 유산이 있다. 아주 오랜 옛날, 대격변이 끝난 직후 드워프 일족에게 빌려주었던 유산이다.”

소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것을 회수하러 가야 했지만, 동면은 생각보다 길어졌고... 운명의 뒤틀림으로 인해 혼돈의 권좌가 생각보다 더 빠르게 운명을 비틀고 있다.”

동면.

“동면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중요하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동면에 들어야 할 정도로, 과거의 상처는 뼛속 깊숙이 스며들었으니까. 이는 후손에게도 심대한 영향을 미쳐, 드래곤 일족의 수가 십분지 일로 줄어 버렸지.”

소테드는 쓰게 웃으며 덧붙였다.

“혼돈의 힘은 단시간에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에 직격당하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끈질기게 생명력과 힘을 갉아 먹히지. 또한 일족에게 전이가 된다. 그리고 끝없이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의심...?”

“그래. 몸속 깊숙이 틀어박힌 혼돈의 힘이, 끝없이 타락을 종용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무수히 많은 영웅들이 타락하였고, 우리는 타락하지 않기 위해 자손들과 함께 긴 동면을 택했다.”

이제야 이야기들이 아귀에 맞고 있었다.

지금까지 유저들은 ‘온전한 상태’ 의 대장군들을 상대해 본 적이 없다.

리얼 포스는 세계의 맹약으로 만들어진 세계. 그곳에서 혼돈의 존재들은 힘을 절반밖에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즉.

온전한 상태의 대장군, 그리고 장군급의 존재들과 싸운다면 혼돈의 힘에 당하기만 해도 타락하기 쉽다는 말이었다.

태호는 그의 말에 집중했다.

“천 년의 동면이 이제 머지않았다. 그리고 이제야 그 상처를 대부분 치유할 수 있었지. 동면이 중간에 깨어나게 되면, 크나큰 타격을 입게 된다.”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대부분의 상황이 이해됐던 것이다.

또한, 과거 ‘드래곤의 유산 확장팩’에서 왜 드래곤들이 쉽게 타락해 버렸는지도 대강 유추할 수 있었다.

‘동면 중에 깨어나 큰 힘을 쓰지 못하고 타락해 버린 거구나.’

그렇다면 과거에도 ‘누군가’가 이들을 타락시켰다는 말이 된다.

태호는 그 존재를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혼돈의 사념체.’

자신을 혼돈의 사념체라고 소개한 놈은 쉬폰에게 접근해, 계약을 종용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로만도 그놈에게 잡아먹혔을지 모르겠다.’

태호가 다시 물었다.

“드래곤의 유산은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겁니까?”

“우리 일족이 최후까지 지켜야 할, 드래곤의 보물이다.”

최종 병기라도 되는 걸까.

허나 소테드는 그 이상은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일단 흐름은 확실히 알았다.

태호는 자신이 딜을 걸 차례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는 본대륙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드래곤의 유산을 되찾는 임무를 제게 맡겨 주십시오. 곧, 대장군 샴이 깨어날 겁니다. 이제 깨어날 그놈은, 신노스나 케노스보다 훨씬 강한 상태일지 모르겠습니다.”

“......”

소테드는 태호의 말이 일리 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다 샴이 유산을 먼저 탈취해 갈 우려가 있습니다.”

“일리 있군.”

드물게 그의 입에서 긍정적 신호가 나왔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태호에게 말했다.

“너는 이곳에서 기다려라.”

그리고 팟! 하더니,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그는 다시 태호에게 돌아왔다. 이번에는 로크나이엘과 함께였다.

“장로들의 회의가 끝났다. 우리는 네게, 그 임무를 맡기기로 결정했다.”

소테드는 로크나이엘을 흘끗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현재 동면에서 완전히 깨어난 이 녀석이 너를 도울 것이다.”

로크나이엘은 씩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태호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곧.

메시지가 떠올랐다.

[8급 퀘스트]

[메인 퀘스트]

[아젠티움, 레드 드래곤의 유산]

[아젠티움의 화산 속, 레드 드래곤의 유산을 되찾아 돌아오기.]

< 레드 드래곤의 유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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