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117화 (117/194)

< 천체의 본질 >

레드 드래곤의 유산!

메인 퀘스트로 떠오를 정도로 중요한 요소.

‘이게 드래고니악의 최대 중요 요소.’

이것을 깔끔하게 해치우게 된다면, 태호는 로만의 앞길을 효과적으로 또 한 번 가로막을 수 있게 된다.

“아 참.”

태호는 내친김에 궁금했던 다른 부분을 물어보기로 했다.

“혼돈의 좌가 움직이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듯합니다.”

“그렇겠군.”

소테드는 그렇게 대답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시커먼 하늘 위에 총총히 별이 떠 있었다. 별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그가 대답했다.

“허나 그것은 운명의 뒤틀림으로 인해 정확히 가늠하기가 힘들어졌다. 솔직히 이제는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구나.”

“......알겠습니다.”

혼돈의 좌가 움직인 뒤, 두 번째 확장팩 ‘혼돈의 좌’의 최종 보스 ‘오렌’이 깨어날 것이다.

놈이 부활하는 위치는 이미 알고 있다. 본대륙의 서남부, 잊혀진 섬이다.

그 섬은 오렌이 깨어나기 전까지는 그 어떤 단서도 없고, 딱히 숨겨진 물건도 없기에 라간에게 그곳을 정찰해 보라는 말을 해 두기만 했다.

혼돈의 좌는 하늘에서 떨어져, 잊혀진 섬에 안착한다.

오렌.

드래곤의 유산의 문제를 해결하면, 그다음은 오렌이 될 것이다.

“혹시.”

태호가 물었다.

“드래고니악의 중심부를 보여 주실 수 있으신지요?”

소테드는 어깨를 으쓱이며 로크나이엘을 보았다. 로크나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랑 가지.”

드래고니악, 중심부.

구조물은 전체적으로 거대한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성 같았다. 그 내부를 걸어 가자 사방에서 갖가지 마력 덩어리들이 뿜어져 나와 로크나이엘과 태호를 뒤덮었다.

“침입자 감지 마법.”

그가 씩 웃었다.

감지가 끝났는지, 마력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태호와 로크나이엘은 그대로 걸어, 중심부의 홀로 향했다.

그 안에 다섯 개의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

태호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중심부의 홀에 있는 것은, 저마다 마치 아름다운 보석과도 같이 생긴 형형색색의 물체였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빛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한 보석이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어, 사람 두 명을 합쳐 놓은 듯한 크기의 보석은 영롱하고 한없이 아름다웠다.

“이게 유산입니까?”

“그래. 그게 화이트 드래곤의 유산.”

그다음은 마치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칠흑의 어둠으로 가득 찬 보석. 안 봐도 저것이 블랙 드래곤의 유산일 것이다.

그렇게 다섯 종류의 보석이 그 내부에 진열돼 있었다. 오직 없는 것은, 레드 드래곤의 유산뿐이다.

태호는 그것들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드래곤의 유산.’

그간 묵은 궁금증이 모조리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개중 가장 눈이 가는 것은 역시, 블랙 드래곤의 유산이다.

그것의, 마치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어둠을 바라보노라면 어쩐지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온몸이 따스하게 적셔진 스펀지 속에 파묻히는 기분이었다.

* * *

본대륙.

이렇게 된 거, 일사천리로 해치울 생각이었다. 생각해 둔 것 이상으로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밍기적거릴 시간이 없었다.

파파파파팟!

남쪽 초보자 마을로 귀환 스크롤을 찢은 태호와 로크나이엘이, 유령 표범 위에 앉아 달리기 시작했다.

파파파팟!

그렇게 달려가는 유령 표범의 위에서, 태호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양손으로 어둠의 마력을 뿜어냈다.

‘이렇게.’

마력을 한 곳으로 압축한다. 생각보다 쉽게 되진 않지만, 이제 제법 요령을 많이 깨달아 금세 압축한 것을 만들어 냈다.

[비전력을 저장합니다.]

[현재 소유한 비전력은 한계치의 3%입니다.]

가진 모든 마력을 압축시켰는데도, 비전력은 3%이었다.

‘제법 노가다네.’

비전력이라는 고위 힘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큰 대가가 필요한지 대강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현 단계에서의 태호는 전투 시 비전력을 ‘소모’할 뿐, 저장을 위해선 따로 만들어 진작에 저장해 두어야 했다.

허나.

더 높은 단계가 눈에 보인다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체마교환.’

태호가 체마교환을 통해, 바닥난 마력을 모조리 채웠다.

그렇게 다시 눈을 감은 채 비전력을 계속해서 충전해 나갔다.

“......”

뒤에서 슬쩍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크나이엘이 혀를 내둘렀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기심이 들지만, 너무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는 재능이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인간이 맞아?’

그는 태호를 보며 한참 동안이나 그런 고민을 했다.

잠시 후.

태호가 비전력을 25%가량 충전할 무렵, 아젠티움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젠티움 입구를 지키던 드워프가 태호를 보더니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여, 카이저!”

“잘 지내셨어요?”

태호도 빙긋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드워프는 로크나이엘 쪽을 보며 물었다.

“이쪽은?”

“아, 이쪽은...”

“드래고니악에서 왔다.”

로크나이엘의 말에 드워프가 흠칫 놀라며 그를 쳐다보았다.

“드, 드래곤이십니까?”

“그래. 이곳에 빌려주었던 우리의 유산을 돌려받으러 온 것이다.”

그는 증거를 보인다는 듯, 몸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우지직! 지지지직!

전신이 거대해져 가며, 로크나이엘이 실버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했다.

드래고니악에서 왔다는 말을 이보다 더 제대로 확인시켜 줄 방법은 없다.

드워프가 그야말로 경악하듯 놀라며 펄쩍 뛰었다.

“자,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후.

이제는 아젠티움의 수장이 된 드워프 엑셀이 후다닥 달려 나와 로크나이엘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 어서 오십시오.”

* * *

“이 어찌 된 겐가? 자네, 드래곤 일족과도 친분이 있나?”

엑셀의 말에 태호는 말없이 빙긋 웃어 버렸다. 엑셀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까닥였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이. 자네 같은 인간은 정말이지 처음이라니까...”

“그나저나. 레드 드래곤의 유산은 아젠티움의 화산 속에 있는 겁니까?”

태호의 물음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우리의 선조가 이곳에 정착하려던 무렵, 드래고니악에서 친히 빌려주신 물건이었지.”

“흠... 굳이 화산 지대에 정착을 해야 합니까?”

태호의 의문에, 엑셀이 어깨를 으쓱였다.

“가장 질 좋은 묵철(墨鐵)을 제련하기 위해서는 화산지대의 마그마가 필요했으니까 그렇네.”

“호오.”

태호는 문득 유독 질 좋은 드워프제 무기의 탄생 배경을 알게 된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엑셀이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레드 드래곤의 유산을 이용한다면, 제멋대로인 이 화산의 불을 제어할 수 있지. 자연재해마저 제어할 수 있는 드래곤의 유산 덕분에, 우린 번성했네.”

문득 그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그것도 이젠 끝이 나려나 보군. 기필코 이 터전을 지켜 내리라 다짐했건만...”

그의 씁쓸한 목소리가 영 마음에 걸렸다.

태호는 팔짱을 낀 채 곰곰이 생각했다.

“레드 드래곤의 유산이 회수되면 어찌 되는 겁니까?”

“화산은 폭발하고, 이 일대는 당분간 화산지대가 될 것일세.”

그렇다면 아젠티움의 드워프들은 모두 고향을 잃게 돼 버릴 것이다.

안 그래도 그 부분이 심란한지, 슬쩍 사방을 둘러보니 드워프들 대부분이 망연자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흠.’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과거라면 그래 봐야 게임 NPC들인데 뭐 어떠할까- 라고 생각했겠지만, 이제는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드 드래곤의 유산을 이곳에 놔둘 수는 없다.

태호는 머리를 굴려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용암 불이 꼭 필요한가요?”

“아, 이제는 아닐세. 있으면야 좋지만, 이제 우리의 대장 기술도 많이 발달하여 없어도 충분히 괜찮아. 허나... 터전이...”

태호가 말했다.

“저와 함께 가시죠. 적당히 지내실 만한 곳을 내어 드리겠습니다.”

“으응?”

엑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말인가?”

태호는 우선 라간에게 귓속말을 넣었다.

-라간. 바쁘냐?

-아 형님! 나야 뭐 항상 바쁘지! 아아, 보고할 거 있음. 세 가진데 뭐부터 들을래?

-순서대로 읊어 봐.

-오케이. 자, 첫째로. 형님이 잊혀진 섬 가 보라고 했지?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어.

-응.

잊혀진 섬은 아직 아무 이상이 없다.

-둘째로, 카자토스가 테무 일족을 데리고 광휘의 궁전 사방을 개간하고 있어. 개간 속도 무진장 빨라.

그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긴 했다. 태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까닥이며 대답했다.

-오히려 좋지.

-셋째. 우리 길드원들 전원 200레벨 찍었어. 길드원은 더 늘렸는데, 형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시라고. 그리고 형님이 준 만 골, 바닥났어.

태호는 빙긋 웃었다. 이 녀석이 도와준 덕에 카자토스의 일족을 보살펴 주는 데 수고를 덜었던 것이다.

-만 골 더 줄게. 고생이 많다.

-아 그리고. 나 조만간 한국 감. 아버지랑 같이 스폰서 미팅 같은 건데, 형님 한국 살지? 나 서울 청담동 이란 곳으로 가는데, 형님 집은 먼가?

그러고 보니 라간이 한국에 온다.

그를 현실에서 만난다.

태호는 그 말에 문득 멍해졌다. 가상현실 속에서야 보는 것이 괜찮았지만, 실제로 보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던 태호가 대답했다.

-...아니, 가까워.

-가면 한번 보자. 따로 할 말도 있고.

-...그래.

태호는 그 외 드워프 일족 이백 명가량이 광휘의 궁전으로 잠시 들어갈 것 같다는 말을 전한 뒤, 오케이 사인을 받고 나서야 엑셀을 보았다.

-그럼 지금 아젠티움으로 가서 드워프들 데려오면 되는 거지?

-그래 주면 고맙겠다.

-오케이. 지금 간다.

라간의 귓속말도 끝났다.

“당분간은 그곳에서 지내시죠. 본의 아니게 삶의 터전을 빼앗은 듯해, 정말 죄송합니다.”

엑셀이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닐세. 어차피 그것은 드래곤들의 물건... 때가 오면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도 알고는 있었지. 다만... 그때가 막상 오니 아쉽기 그지없구먼.”

그가 씁쓸하게 사방을 둘러볼 무렵. 저편에서 로크나이엘이 소리쳤다.

“카이저! 빨리 챙겨서 돌아가자!”

* * *

시뻘건 용암이 들끓고 있었다.

태호는 저 아래를 바라보았다. 타오르는 듯하면서도 정제된 느낌이 강한 것이, 아그니가 머무는 화산섬에 비하면 정말 유순한 화산이었다.

로크나이엘이 저 아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있군. 확실하다.”

그가 손을 뻗었다. 드래곤의 마력이 사방에 바람을 만들어 냈다.

씨이이이잉-!

일순 부글부글 끓는 용암 한가운데가 푹! 파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시뻘건 색의 보석이 천천히 허공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레드 드래곤의 유산이구나.’

태호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로크나이엘이 만들어 낸 바람이 그 물건을 천천히 띄워, 이쪽으로 가져왔다.

태호와 로크나이엘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거, 그냥 가져가면 됩니까?”

“응, 뭐 그러면 되긴 하는데.”

태호가 레드 드래곤의 유산을 만져 보려고 할 때, 그가 어렵다는 듯 씩 웃었다.

“그거, 안 그러는 게 좋아. 너 뼛조각 하나 안 남고 불타 죽어 버릴걸?”

“아.”

태호는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신노스가 왜 힘이 부족해 화풀이만 하고 갔는지 대략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걸 만질 수 있는 건, 오직 드래곤의 비전력을 익힌 이들뿐이야. 자, 따라 해 봐.”

로크나이엘이 자신의 몸속에서 비전력을 꺼내어, 유산 위로 덧씌우기 시작했다. 허나 그로서는 턱없이 부족한지, 금세 창백해진 얼굴로 풀썩 주저앉았다.

태호는 자신이 모아 둔 비전력들을 모조리 꺼내 유산 위에 덧씌웠다.

고오오-

어느새.

유산 위로 은색 비전력과 검은색 비전력이 만들어 낸 유리막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말도 안 돼.’

로크나이엘은 혀를 찼다. 본래 이 작업을 혼자 하려 했다면 수일에 걸쳐 해야 했다. 허나 태호와 함께 작업을 하니, 삽시간에 끝나 버린 것이다.

이 인간과 마법으로 싸움을 한다면, 아직 완전히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허나, 이 인간이 조금만 더 비전력을 익힌다면 자신은 더 이상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성장하는 속도 자체가, 약간은 상식 이상으로 빨랐다.

드래곤을 잡을 수 있는 인간 흑마법사!

그야말로 경악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그는 벌떡 일어서서 유산을 품에 안았다. 마치 공기가 든 풍선처럼, 아주 가벼운 무게였다.

“이제 됐어. 돌아가자고.”

태호와 로크나이엘이 다시 드래고니악에 돌아왔다.

“뭐야. 왜 벌써 오냐...... 응?”

소테드가 심드렁한 얼굴로 묻다, 로크나이엘의 품에 들려 있는 레드 드래곤의 유산을 보곤 두 눈을 끔뻑였다.

한참 말없이 그것을 바라보던 소테드는 절대적인 양을 차지하고 있는 검은 비전력을 확인했다.

“허 참.”

“일단 제자리에 돌려 두고 오겠습니다.”

로크나이엘이 자리를 떠나고 소테드와 태호가 남았다.

“네게 해 줄 말이 있다.”

“예.”

태호의 말에 소테드가 입을 열었다.

“네가 가고 나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운명이 뒤틀린 지금, 혼돈의 좌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방법?

태호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흐음... 어쩌면. 그 일족이 아직도 살아 있다면, 그들은 천체의 본질에 대해 꿰뚫고 있을 테니까.”

그 일족이라니?

“그들을 찾게 된다면, 혼돈의 좌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 천체의 본질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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