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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전설-118화 (118/194)

< 당신, 하늘에서 왔습니까 >

천체의 본질?

영 아리송한 말이었고, 그런 것을 읽는다는 일족 역시 아직 들어본 바 없는 일이었다.

“너는, 지금부터 마안 일족을 찾아라.”

마안 일족.

“마안 일족이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여지껏 들어 본 적이 없는데요.”

“당연하겠지.”

소테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본래 그들이 살던 곳은 본대륙에서도 남쪽으로 정반대에 위치한 작은 섬이었다. 대격변 시점, 그들은 혼돈의 대장군들에게 총공격을 받았지.”

총공격을 받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굳이 그 멀리까지 가, 총공격을 가한 이유는 대체 뭘까?

“놈들에게는 문제가 있을 만한 일족이었군요?”

“그래. 돌이켜 보니 그 일족이 떠올랐다. 놈들의 의도는 모르겠으나, 그 일족은 총공격을 받고 멸족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지. 그 후 깊이 잠적해 버렸다.”

“흐음...”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급한 불은 끈 셈이었다.

현재의 태호는 무 대륙의 타락을 해결해, 확장팩 ‘무 대륙의 강자들’ 의 진행을 틀어막았다.

본대륙에 남아 있는 드래곤의 유산도 사전에 가져와, 드래고니악에 돌려 놓음으로써 확장팩 ‘드래곤의 유산’ 도 틀어막았다.

만약.

만약, 로만이 태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고 그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다면.

‘분명히 키워드는 혼돈의 좌.’

그것이 움직이는 타이밍을 맞춰, 확장팩 ‘혼돈의 좌’ 의 최종 보스 오렌을 단숨에 골로 보내는 것이 주효할 것이라는 추측이 세워진다.

이것이 과연 추측일 뿐일까?

태호의 직감은, 분명히 혼돈의 좌를 억제하는 과정에서 로만과 마주칠 것이라는 것에 향하고 있었다.

“일말의 정보도 없습니까?”

“흠... 일단은 그렇다. 다만, 세상 모든 곳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는 일족이라면 어느 정도의 정보는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세상 모든 곳을 돌아다닌다...

태호는 문득 그를 보며 물었다.

“어, 혹시 창공의 일족 말씀이십니까?”

“그래. 얼마 전 이 땅을 침범했던, 그리고 네가 이용했던 그 일족 말이다.”

동시에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퀘스트 완료]

[아젠티움, 레드 드래곤의 유산]

[경험치 획득]

[드래고니악이 당신에게 신뢰를 가집니다.]

[드래고니악과의 평판은 현재 ‘신뢰’입니다.]

별다른 보상은 없었지만, 드래고니악의 평판을 신뢰까지 얻은 것만으로도 만족하기로 했다.

드래곤들과의 신뢰를 얻다니. 사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 나중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문득.

콰아아!

저 뒤, 드래고니악의 중심부에서 여섯 빛깔의 파동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라 드래고니악을 둥글게 감싸 안는 모습이 보였다.

“저건?”

“저건 드래곤의 유산들이 모두 모였다는 증거다. 저 힘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장로급뿐이다. 곧 나의 동면이 끝나니... 저것을 이용해 결계를 더 강화해야겠군.”

그제야 안심이 됐다.

태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저는 우선 말씀하신 마안 일족을 찾아보겠습니다.”

창공 일족을 찾는 것.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대강의 루트를 계산하고, 움직이는 반경 범위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 걔들 마력 부족하지 참.’

태호는 근방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레어 던전을 떠올렸다.

우선.

마력의 결정체부터 캐야 했다.

......엘린은 최근 산뜻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으흥~ 흐흥~ 시부럴 세상~ 엿 같은 세상~”

그녀는 아름다운 얼굴과는 정반대의, 정체불명의 상스러운 돌림 노래를 부르며 물을 끓였다.

물이 끓으면 모닝커피를 마실 시간이다. 따스한 커피잔을 든 그녀는 천천히 공중정원의 바깥 풍경을 감상하며 입에 잔을 가져다 대었다.

호로록!

그 빌어먹을 인간 때문에 공중정원은 회생 불능의 상황에 접어들고야 말았다.

개자식, 카이저!

그녀는 다짐했다. 뼈를 깎는 노고를 통해, 결국 이 공중정원의 부흥기를 이뤄 낼 것이라고.

그리고 카이저라는 개자식을 수십 번 잡아 족치겠노라고.

일단, 그것을 위해서는 마력을 모아야 했다.

이 정원은 기본적으로 ‘부유석’ 이라는 것을 기반으로 해 대기의 에너지를 끌어모아 움직인다. 그것은 ‘하늘성’ 의 기술력으로 만들어 낸 첨단 마도 기관이었다.

하늘성으로 돌아가야 할까?

엘린은 곰곰이 생각했다.

그곳은 하늘 위의 하늘에 존재하는 하나의 도시였다. 소수의 구성원으로 만들어진 독자적 사회.

그 사회에서 엘린의 가문은 철저한 무시와 괄시를 받아야 했다. 결국 떨어져 나와, 한층 아래의 하늘을 떠돌며 살아가게 됐던 것이다.

‘싫어.’

그곳으로 가긴 죽어도 싫었다. 본래 그녀의 목표는 힘을 키워, 지상을 정벌하고 그곳에서 얻은 각종 자원과 힘으로 하늘성을 부수는 것.

허나 그 모든 것이 애당초에 글러 먹었다.

“카이저 그 개새끼, 다시 보이기만 해 봐. 아주 다 죽여 버릴...”

그렇게 쌍스러운 욕을 중얼거리며 응어리진 마음을 풀던 그녀의 눈앞에, 기묘한 것이 보였다.

“......엥?”

그것은 꿈에 그리던 카이저였다. 꿈에서라도 패 죽이고 싶었던 그 녀석이, 바람 복어를 손에 쥔 채 둥실둥실 떠올라 바깥 풍경을 즐기던 그녀의 시선과 마주친 것이다.

“아.”

태호가 그녀를 보곤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캑!”

엘린은 마시던 커피가 사레들려, 콜록이다가 아끼는 찻잔을 깨 먹어 버렸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 태호를 보며 소리쳤다.

“이, 이런 시팔 아직 꿈이냐! 꿈이었냐!”

팟!

그 순간.

태호가 어둠의 발걸음을 쓰며 공중정원에 도착했다. 그녀가 어버버, 할 무렵 태호는 그녀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오랜만이네.”

“......?”

엘린이 두 눈을 찢어질 듯 크게 떴다. 하얀 피부 위로 실핏줄이 잡혔다.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

“무, 무, 무, 물어봐?”

“그래. 너, 마안 일족이 어디 사는지 알지?”

“뭐?”

엘린이 태호를 보았다. 그녀는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곧 떠올린 듯했으나 고개를 저었다.

“몰라.”

“진짜로 몰라?”

“모, 모른다니까!”

거짓말에 능숙하지 못한 녀석이었다.

“그래? 그럼 별수 없지.”

태호는 한숨을 내쉬며 별 없다는 양, 허리춤의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어이 씨 이거 완전 양아치 새끼네!”

엘린이 지레짐작으로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건 왜! 왜 묻는데!”

“알아야 할 게 있어. 솔직하게 말해 줘. 나도 널 죽이고 싶지 않아.”

태호는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엘린은 그런 태호를 빤히 보다 입을 열었다.

“짚이는 곳이 있긴 한데... 동력원이 부족해서 안 돼. 이러다간 하늘성으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그 굴욕을 당하느니 자살할 테야!”

엘린이 투덜거렸다.

‘하늘성?’

문득 태호는 그 이름을 떠올리곤 반문했다.

“너, 하늘성 태생이었냐?”

“그렇다 어쩔래!”

“호오...”

태호는 팔짱을 낀 채 지그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늘성.

과거, 태호는 하늘성의 존재에 대해 회상한 적이 있었다. 바로 심연의 미궁, 데스나이트를 상대하기 위한 과정에서였다.

당시 데스나이트의 미궁 벽을 기어오르기 위해 떠올린 수단 중 하나가 바로 부유석이었다.

하늘성은 본래는 지금으로부터 몇 년은 지나야 개방되는 지역. 엘린의 공중정원이 공략되고 수년 뒤에나 나오는 곳이었다.

‘따지고 보면 또 그렇네.’

이 공중정원의 거대 확장판이 미래에 등장할 하늘성이었던 것이다. 지극히 당연하게도 하늘성과 연관이 돼 있었을 터다.

태호는 의외라는 듯 혼자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오싹!

그 모습이 엘린에겐 호러로 다가왔다.

‘저 싸이코 새끼가 또 지 혼자 생각하고 끄덕이고 지랄을 시작했어.’

보통 태호가 저럴 땐 아주 과감한 판단을 내리곤 했다. 그녀는 태호를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심리를 아주 잘 꿰뚫고 있었다.

한참 생각하던 태호는 문득 그녀를 보며 빙긋 웃었다.

“아, 마력의 결정체라면 대충 좀 구해 왔어.”

“......어, 어어... 고맙다?”

그녀는 태호가 내민 마력의 결정체를 받아 들었다. 한눈에 봐도 양이 꽤 많아 보였다.

“자, 그럼 출발하자.”

“......”

엘린은 울고 싶었다.

* * *

공중정원이 빠르게 부유하며 움직인 곳은 본대륙에서도 북동쪽에 위치한 작은 섬 위였다.

“이 정도야. 예전에 마안 일족에 대한 정보를 부하들이 수집해 온 적이 있어서 알지.”

그녀가 툴툴거렸다.

“확실해?”

“몇 년 전엔 여기쯤 산다고 했어.”

호오.

태호는 팔짱을 꼈다. 이 여자는 꽤 쓸모가 있었다.

“부하들이 정보를 수집해 온 이유는 뭔데?”

“그야, 우리 목표는 지상 정벌을 통해 힘을 키워서 하늘성을 부수는 거니까. 별거 없던데? 그냥 하늘이나 보고 별자리나 세는 멍텅구리들이라 신경 안 쓰기로 했지.”

“으흥, 그렇다 이거지.”

하늘성, 막대한 정보, 그리고 부유할 수 있는 멋진 공중정원.

태호는 엘린의 쓸모에 대해 새삼 재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정보 조직으로 쓰기 딱인데.’

그간은 정보 수집에 대한 방법이 거의 없었기에 발로 뛰고,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식으로 진행해야 했다.

허나 그런 식으론 한계가 명확했던 것.

“너, 나랑 계약할래?”

“뭣!”

엘린이 펄쩍 뛰었다. 마치 정신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미친 소리!”

“공짜로 부려 먹겠다는 건 아니고.”

태호는 인벤토리 창에서 ‘마력의 결정체’ 100개 정도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엥?”

그녀는 태호가 내민 결정체를 내려다보다 물었다.

“이거, 나 주는 거?”

“그래. 너 가져. 솔직히 애초부터 너희 다 죽일 생각도 없었어. 사실 지상 정복 계획을 세우고 사람들 유혹해서 패 죽이려던 건 너희 쪽이었잖아. 내 말이 틀려?”

“......”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맞는 말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반박할 용기가 잘 안 난다.

엘린이 우물쭈물하자 태호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거 받고, 주기적으로 결정체 가져다줄 테니까 협력 좀 해 줘.”

“......주기적으로 줄 거야?”

그녀가 솔깃한 듯 두 눈을 깜빡였다.

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로 줄 거지? 정말로? 약속할 거야?”

“그래, 줄게. 약속할게. 대신 여기로 한 번에 올 수 있는 스크롤 좀 몇 개 줘 봐. 매번 위치 찾아서 오기 너무 힘들어.”

엘린은 머뭇거리다, 저편으로 후다닥 달려가 스크롤 몇 개를 가져왔다.

“자!”

“고마워. 우린 그럼 이제부터 동맹이다? 알았지? 나 잘 도와주면 하늘성 부술 때도 도와줄게.”

반짝!

엘린의 두 눈에 생기가 돌았다. 이 미친놈의 저의가 뭔진 모르겠다만, 확실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던 것이다.

“흥, 좋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호는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또 보자.”

그리고 공중정원에서 뛰어 내렸다.

쏴아아아!

‘생각보다 단순해서 다행이야.’

까마득한 창공에서, 지상으로 추락해 가며 태호는 생각했다. 의외로 손쉽게 일거양득을 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쏴아아아앗!

어느새 지상에 가까워져, 태호는 어둠의 발걸음을 사용해 지상으로 순간이동했다.

팟!

지상에 내려앉은 태호는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이곳은, 리얼 포스를 시작한 이래 처음 와 보는 지역이었다. 사방의 바다는 더없이 청명한 에메랄드빛이었지만, 이 섬 자체는 별 특별할 것도 없는 그저 아주 평범한 섬일 뿐이었다.

섬의 크기는 평균. 대략, 미니미 섬의 정도라고 보면 된다. 마음만 먹는다면 한 시간 안에 섬 내부를 모조리 돌아볼 수 있는 정도였다.

‘마안 일족이라.’

역사에조차 남지 않았던 일족의 이름.

소테드의 높은 평가를 떠올리던 태호는, 사방을 훑었다. 오래 걸리지 않아, 인근의 작은 마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을은 아주 작았다.

고작 수십 명 정도 사는 소규모였고, 민가 서너 채와 아주 평화로운 오후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마, 이방인은 처음인 듯하다.

간혹 보이는 주민들의 표정에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태호는 그들을 보며 적의가 없다는 듯 양손을 까닥여 보였다.

‘이들이 마안 일족인가?’

그때였다.

“혹시 당신, 하늘에서 왔습니까?”

등 뒤에서 들려오는 당돌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십 대의 소년이 서 있었다.

< 당신, 하늘에서 왔습니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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