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도시? >
하늘에서 왔다...
태호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맞다면 맞는 말이다.
“그래.”
소년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젯밤, 별이 움직였어요. 대길성(大吉星)이 움직였으니 길조가 온다는 증거이며, 그에 응해 암성(暗星)이 드물게 빛을 발해 모습을 드러냈기에 우리 일족에게 기회가 옴을 뜻했죠.”
태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소년이 하는 말은, 하늘의 별들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암성이라는 것은 평소에는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별인데 가끔씩 빛을 발하기도 한다.
대길성은 지구로 치면 목성 정도의 위치라고 보면 된다.
지구와는 전혀 다른 하늘의 별자리, 그리고 별들을 가지고 있기에 과거에는 ‘리얼 포스의 점성술’에 대한 논문도 여럿 발표된 바 있었다.
태호는 소년의 앞에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맞추었다.
“무슨 뜻이니?”
“쇠락했던 우리 일족이 다시 빛을 보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분명히, 손님이 올 거라고 생각했죠.”
“......”
똘똘한 녀석이었다.
가만히 보니, 녀석의 두 눈에는 힘이 가득했다. 생기가 넘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안 일족을 찾아 왔다. 제대로 온 게 맞니?”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 * *
태호는 소년을 따라 천천히 걸어 마을을 가로질렀다. 마을 주민들이 소년을 대하는 것이 퍽 재미있었다.
그들은 소년에게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를 했다. 마치 어르신을 대하듯 말이다.
태호는 말없이 걷는 그를 따라 마을 끝자락의 작은 집으로 들어갔다. 집 내부도 그리 대단할 것은 없었다.
갈수록 어리둥절.
태호는 문득, 어느 순간부터 소년이 자신을 뚫어져라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곳을 찾은 이유가 뭔가요?”
소년의 물음에 태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혼돈의 좌가 언제 움직이는지 알고 싶어.”
“혼돈의 좌...”
소년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군요. 우리 일족이 다시 빛을 보는 것은 오직, 혼돈의 힘이 잠잠해지는 길뿐이니... 만약 별이, 혼돈의 힘이 옴을 알려주었다면 저희는 이미 섬을 떠났을 겁니다.”
태호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카이저.”
“란입니다.”
자신을 란으로 소개한 소년은 빙긋 웃었다.
‘란.’
역시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블랙 드래곤 장로, 소테드 스펠터.
마안 일족의 란.
태호는 지금 리얼 포스의 역사 밖의 인물들과 교섭하고 있는 것이다.
“저는 대격변이 일어난 이래, 일족을 이끌고 무수히 많은 이동을 하며 일족을 지키고 있죠.”
대격변이 일어난 이래?
그렇다면 족히 천 년.
“그렇습니다. 저는 마안 일족의 후예이자, 지난 천 년 동안 일족의 족장 역할을 하고 있죠.”
일족의 족장...!
“또한, 대부분 소실된 마안 일족의 힘을 소유한 마지막 계승자이기도 합니다.”
소실된 마안 일족의 힘.
태호는 그 부분에 주목했다.
“그렇다면, 마안 일족 역시 대격변을 기점으로 힘의 대부분을 소실했다는 말... 인가요?”
정체를 알게 되었으니 자연히 태호의 말도 존대로 바뀌었다.
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대격변을 기점으로 많은 것들이 변했죠.”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내, 태호가 입을 열었다.
“얘기가 빠르겠군요. 저는 이미 드래고니악의 비전력을 손에 넣었고,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마안 일족 역시 그쪽에서 얻게 된 정보입니다.”
“드래고니악... 그렇군요.”
“저는 혼돈의 좌가 언제 움직일지 알고 싶습니다.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태호의 말에 란은 빤히 태호를 보았다.
그의 눈은 기묘할 정도로 맑았다. 마치 눈 안에, 맑은 밤하늘이 들어가 있는 듯 총명했다.
“물론입니다.”
* * *
해가 금세 저문다.
태호와 란이 집을 나서, 해변가에 섰다. 더없이 맑은 하늘에 큼직한 달이 뜨고, 하얀 구름이 걸려 있었다.
두 사람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총총히 박혀 있는 하늘을 보아도, 태호는 그 풍경이 무엇을 뜻하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문득.
란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약속해 주실 수 있습니까?”
“뭘 말이죠?”
그는 몸을 돌려 저편.
작고 아름다운, 그림 같은 마을을 바라보았다.
“제 목표는 일족을 부흥시키는 것. 그리고... 우리 일족이 더없이 안전하고 풍요롭게 지내는 것입니다.”
태호는 고개를 살짝 꺾었다.
드워프들은 이미 광휘의 궁전으로 향했다.
이제 광휘의 궁전에는 무 대륙의 테무 일족 그리고 드워프들이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다.
또한 광휘의 궁전 근방의 땅이 빠른 속도로 개간되어 가고 있었다.
‘거의 작은 규모의 영지.’
즉.
광휘의 궁전을 반경으로 영지화돼 가고 있다고 보면 딱 맞다.
태호는 그에게 솔직히 대답했다.
“현재 제게는 무 대륙의 테무 일족, 그리고 본대륙의 검은 머리 드워프 일족이 함께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태호의 말에 란이 살짝 놀라며 반문했다.
“무 대륙의 테무 일족이라고요? 그들이... 아하.”
이내 그는 싱긋 웃더니, 태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길성이 움직인 이유가 있었군요. 좋습니다. 그곳에서 제 일족을 안전히 보살펴 주십시오.”
“약속하죠.”
그가 태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7급 퀘스트]
[서브 퀘스트]
[마안 일족의 대이주]
[:마안 일족을 안전한 곳에 정착시키기.]
[보상 : ???]
퀘스트가 떠올랐다.
태호는 망설이지 않고 퀘스트를 수락했다.
“저 하늘을 보십시오.”
란은 저편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홀로 떠 있는 별 하나가 보였다.
다른 별들보다 그리 크기가 작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별의 색이 약간 불안정해 보였다. 맑게 빛나는 듯하나, 주위의 잔광이 불길한 회색빛을 머금고 있다.
“저것이 혼돈의 별입니다.”
그 부분은 알고 있다.
“혼돈의 별은 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방으로 자잘한 별들이 산개해, 하나의 별자리를 이룹니다. 그것이 혼돈의 좌입니다.”
과연.
혼돈의 별 사방으로 자잘한 별들이 보였다.
“약 두 달 전부터 사방의 별들이 혼돈의 별을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움직이는 겁니까?”
“혼돈의 힘이 강력해지면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일 겁니다. 다만, 근 두 달 째... 거의 큰 미동 없이 미미한 움직임만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가 고개를 내려 태호를 보았다.
“분명히 혼돈의 힘이 퍼져 나가는 데 큰 문제가 생겼다는 증거입니다. 누군가가...”
그는 묘한 눈으로 태호를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아주 효과적이고... 치명적인 방해를 하고 있다는 얘기죠.”
“......!”
태호는 문득,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그의 말이 엄청나게 감동적이거나, 독특해서가 아니다.
그저, 그냥.
여태까지 해 왔던 일들이 분명히 효과가 있었고,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는 말 자체가 고마웠기 때문이리라.
“제 생각엔 그게 당신 같군요. 당신은... 본대륙의 모험가가 맞습니까?”
그의 물음엔 뼈가 있었다.
태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험가... 그렇군요. 제 판단대로라면, 두 달의 시간이 있습니다. 아무리 효과적으로 방해를 해도, 결국 혼돈의 좌는 만들어집니다. 운명이 뒤틀려도, 결국 시간의 흐름을 이겨 낼 수는 없기 때문이죠. 그만큼 시간이란 절대적입니다.”
그는 알쏭달쏭한 말을 했다.
‘두 달의 시간.’
“또한, 상대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혼돈의 좌가 움직이는 속도는 빨라질 것입니다. 저희 일족을 구해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여 천체를 관측해 드리겠습니다.”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 *
주민 이주 계획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태호는 마안 일족에게 마을 이동 스크롤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마안과 함께 북부 초보자 마을인 알바롱으로 이동했다.
순조롭게 이동이 완료된 인원을 이끌고, 태호는 광휘의 궁전으로 향했다.
“아, 형님!”
저 멀리서 도끼를 든 채 열심히 나무의 밑동을 찍어 대던 라간이 태호를 보며 반갑게 달려왔다.
“직접 보는 건 또 오랜만이네. 어디서 그렇게 열심히... 으응?”
라간은 태호의 뒤로 이어진 긴 주민들의 행렬을 보며 가만히 서서 두 눈을 끔뻑였다.
“형님, 이 사람들은?”
“어... 새 주민들?”
“......”
라간은 태호와 그들을 번갈아 보더니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거이거, 흥미로워지겠는걸.”
“미안하게 됐다.”
“응? 아니, 그게 아니고.”
라간이 손을 내저으며 태호에게 어깨동무를 한 채 저편을 가리켰다.
“저거 봐, 형님.”
태호가 시선을 돌리자, 광휘의 궁전이 있던 산 사방이 빠르게 개간돼 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너비가 대략 초보자 마을 두서 개는 합친 것보다 크다.
“이거, 아주 재미있어지겠어. 잘 봐 형님. 이 규모, 그리고 이 인원. 게다가 우리한텐 강력한 테무 일족까지 있단 말이지? 뭐 생각나는 거 없어?”
아무래도 태호가 생각한 것을 라간도 생각한 모양이다.
태호와 라간이 동시에 말했다.
“새 도시?”
“새 도시!”
그리고 서로 낄낄거리며 웃어 버렸다.
안 그래도 태호는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도시.
본래 태호는 노펜시아를 손에 넣으려고 했다. 인구의 흐름도 크니 자본 확보에 유리하고, 또 차후 업데이트될 공성전 등에서 유리함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상황이 이렇게 되니, 차후 대장군들을 격살(擊殺)하기 위한 동료들을 한곳에 모아 살아가는 새로운 대도시를 만드는 것도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힘.
도시의 보안을 책임진다면, 테무 일족만 한 인재들이 없다. 그들은 아직 유저들의 수준으로는 절대 넘볼 수 없는 무력을 지니고 있으며, 고등 지성체들이다.
경제.
드워프들이 생산 활동을 시작한다면, ‘아젠티움’의 검은 머리 드워프들의 장점을 고스란히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도시마다 존재하는 ‘신’.
마침 이 사방의 중심부에 위치한 광휘의 궁전에는 ‘로키’가 있다. 태호에게 치명적인 약점을 잡혀 있는 로키 말이다.
게다가.
이제 새로이 합류한 마안 일족. 그들의 족장인 란이 읽을 별자리.
지금 이 땅에 모여 있는 이들의 힘을 합친다면, 새로이 등장할 대장군들을 예측하고 패 죽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제 태호에게는 아군이 꽤나 많이 생겼다.
태호는 새 힘, 비전력을 얻었다.
그리고 수중에는 아직 많은 혼돈의 유산, 그리고 에픽이 있다. 드래고니악에 빌려준 에픽 하나도 훗날엔 돌아올 태호의 자산이다.
이것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지금 당장 볼카노스에게 바쳐 스킬들을 업그레이드하거나, 현재 에픽을 두르지 않고 있는 부위인 ‘상, 하의’로 바꿔 쓰는 것이다.
허나 하나라도 허투루 쓰고 싶지는 않았기에 잠시 더 보류하기로 마음먹었다.
정말로 중요한 거래에 사용하기 위해 아껴 두는 셈이다.
“아, 그리고 형님.”
라간이 그런 태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거 받아. 이번을 마지막으로 증오의 피라미드도 다들 졸업했거든. 새 길드원들 받기 전까진 돌 일이 한참 동안 없을 듯하네.”
“아, 그래.”
태호는 라간이 내민 아이템들을 받아 들었다.
“일단 나 급한 일 좀 하러 간다. 심심하면 연락해.”
그리고 녀석이 저편으로 달려갔다.
순수의 강철 420개.
양이 꽤 많다. 태호는 그것을 소중히 인벤토리 안에 넣어 두었다. 순수의 강철은 드워프들이 에픽 제작을 할 때 쓰지만, 그 외에 자신이 모르는 어떤 용도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태호는 그 뒤로 한참 동안 열심히 개간하고, 여기저기 집터를 고르는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뒤돌아섰다.
우선, 비전력.
이 비전력 수련.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 체감해 보는 것이 중요했다.
< 새 도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