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혼종이라니? >
나이젠은 통합 랭킹 122위에 빛나는 랭커였다. 그의 직업은 탐험가로, 가장 최근에는 ‘살라딘의 황폐한 사원’을 발견한 것이 그의 업적이었다.
‘대박이다.’
그는 극도의 흥분상태였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의 리얼 포스는 그야말로 기회의 땅이었던 것이다.
특히, 유저들이 가 본 적 없는 지역이나 미지의 던전을 발견하게 되면 그 정보 제공자로서 충분히 이름을 날릴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 진짜 대박이야.’
나이젠은 바다 저편을 바라보며 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은 본대륙에서 남동쪽으로 긴 항해를 해 도달한 곳. 보통의 항해선은 오지도 가지도 않고, 그저 광활한 바다 위에 오롯이 자신의 범선만 있는 미지의 바다였다.
그 바다 저편.
그 한편에 불쑥 솟아 있는 거대한 물의 궁전!
맹세코 저런 것은 처음이었다.
나이젠은 신이 나서 곧바로 촬영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이거 최소 유니크급 던전이다.’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쐐애애액-
그의 범선이 바다를 가르고 나아갔다. 물로 만들어진 궁전은 그야말로 신묘함 그 자체였다. 반투명한 물 사이로 열대어들이 노닐었고, 색감은 완전한 에메랄드빛이다.
범선을 인근까지 접근시킨 뒤, 그는 뛰어내렸다. 과감히 뛰어내린 그가 궁전으로 천천히 헤엄쳐 들어갔다.
두근 두근 두근!
그의 가슴이 터질 듯 뛰었다.
‘유니크 유니크 유니크!’
유니크급 던전은 현재 발견된 던전들 중, 레이드급을 제외한 던전들 중엔 가장 높은 등급이다.
유니크면, 대박이다. 그의 직업 ‘탐험가’ 의 특성상, 미지의 지역이나 던전을 발견하게 되면 막대한 경험치와 보상을 얻을 수 있었다.
그뿐인가?
그의 소속 길드는 ‘탄트라’. 리얼 포스의 대기업이라 불리는 대형길드 중 하나다.
그곳에 스카우트 되는 조건 중 하나, ‘신규 던전 발견 시 스톡옵션’ 이 적용될 것이다. 그의 명성은 더 높아질 거고, 더 높은 몸값을 제시받게 될 거다.
‘제발, 제발, 제발!’
입구로 들어선 그의 눈앞에 뜬 메시지!
[레이드 던전 : 바넷사의 해저 기지에 입장하셨습니다.]
‘억!’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나이스!’를 외쳤다. 레이드 던전이란다!
대박이다!
뛸 듯이 기뻐하던 그는 어쩐지 기묘한 얼굴을 했다.
‘뭐지?’
레이드급 던전은 그 미만 다른 던전들처럼 ‘최초 진입자 버프’ 가 없다. 별다를 게 없는 입장 메시지가 특이한 것도 아니었지만, 어쩐지 느낌이 이상했던 것이다.
이 던전의 구조는 거대한 군사 기지와 같았다. 해저 기지라는 말과는 다르게, 내부에는 물 한 방울이 없었다. 사방은 축축한 바다 비린내가 가득했고, 몬스터 역시 하나도 없다.
‘조금 더 들어가 볼까.’
나이젠은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진입해 들어갔다.
이곳이 제1 지역인 듯하고, 저 멀리 긴 해저 터널이 보였다. 터널을 지나가면 2 지역이 이어지는 듯하다.
그렇게 해저 기지 탐사가 시작되었다. 동영상은 한창 촬영 중이었고, 구석구석 놓치지 않기 위해 세밀한 촬영이 이어졌다.
한참을 던전 탐사에 열중할 무렵이었다.
“......”
나이젠은 제법 깊숙한 곳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잡몹 한 마리 없는 이 상황이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그때.
퉁- 파파팍!
파파파파팍!
파팍! 팍!
저 멀리, 구불진 해저 터널 안쪽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누군가 있다.’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다급히 몸을 움직여 터널을 주파했다.
“아!”
터널을 넘어가자마자 보인 것은 그야말로 대학살 파티였다!
[Lv. 442]
[심해의 어인 전사]
말도 안 되게 높은 잡몹들이 온 사방에 가득 모여 한 유저를 공격해 가고 있었다.
그뿐인가?
[Lv. 500]
[정예][레이드 보스]
[해저 기지의 지배자, 바넷사]
레이드 보스까지 합세한 것이다. 그에 반해 상대는 단 한 명의 유저!
‘시팔, 이거 대박이다. 대박이다!’
어느새 그는 인센티브고 뭐고를 다 잊어버린 채, 그 정신 나간 싸움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파파파파팟!
저편의 유저는 말이 안 되는 움직임으로 사방의 몬스터들을 죄다 피해 가며, 마법을 그야말로 쏟아붓고 있었다.
콰아아아아-!
시커먼 마법들이 사방으로 튀며 푸른색 바탕에 검은색 물감으로 만들어진 수채화처럼 사방을 물들여 갔다.
퉁- 퉁- 퉁-
유저의 지팡이에서는 시커먼 마법이 끝없이 쏘아져 나가고, 몬스터들은 그의 주변에 접근조차 못 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느새.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잡몹 무리에 작렬하더니, 유저의 몸 위에 시커먼 괴물의 형체가 깃들었다.
‘저거, 마신강림이다!’
흑마법사의 마신강림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언노운이다!’
나이젠이 전율했다. 소문으로만 듣던 부동의 랭킹 1위, 언노운의 전투를 직관할 수 있다니!
카르릉-!
어느 순간.
나이젠의 앞에는 거대한 시커먼 개 한 마리가 나타나, 이를 갈고 있었다. 마치, 한 걸음도 접근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어, 어...”
나이젠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사이, 언노운의 소환수들이 전투에 참전했다.
기사로 보이는 소환수가 몬스터들을 틀어막고, 그 유명한 공주님이 몬스터들에게 디버프를 건다.
언노운의 대 난사가 이어졌다. 보스를 향해 작렬하는 무수히 많은 마법들! 마치 쿨타임 따위는 없다는 듯 쏟아붓는 그 압도적인 위용!
‘틀림없어! 저거, 신노스와 케노스 잡을 때 그거다!’
그때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모습이었다. 그저 구경만 하는데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쾅 쾅콰콰콰콰쾅!
어느새.
소위 ‘레이드급 던전’ 의 보스가 천천히 허물어지는 것이 보였다.
‘말도 안 돼...’
그는 헛웃음을 흘렸다.
얼마 전.
유니크 급 던전 하나를 공략하는데 들어간 인원이 60명이다. 대형길드가 정예를 추려 만들어 낸 60명의 인원.
헌데 그보다 훨씬 더 높은 등급인 ‘레이드급’을 그냥 혼자 썰어 버리다니?
-이리 온!
문득.
저편에서 언노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개는 카르릉- 하고 나이젠에게 으르렁거린 뒤, 잽싸게 튀어 그에게 향해 돌아갔다.
어느새 크기는 그냥 평범한 강아지처럼 작아졌고, 언노운의 품에 쏙 안겨 뺨을 핥아 대는 것이 어처구니없을 지경이었다.
문득.
언노운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진다. 그가 살짝 고개를 까닥여 보이기에, 그는 다시금 감격했다.
‘언노운이 내게 인사했어! 지금 죽어도 좋아!’
언노운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옆에서 조잘거리는 어둠의 공주님께 손짓을 했다. 아르카네가 몸을 돌려 나이젠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며 활짝 웃었다.
나이젠은 너무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려 버렸다.
......[저 사람은 바보야?]
“응?”
아르카네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왜 울지? 슬픈가? 배가 고픈가? 사과 줘야 해?]
요즘 이 꼬맹이는 질문이 많아졌다. 태호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아르카네가 예뻐서 그런가 봐.”
[어머나. 정말인가?]
아르카네가 부끄럽다는 듯 제 입을 막았다. 어디서 이런 걸 배운 걸까.
[저거는 이제 싸 버린 거야?]
“뭐?”
태호가 흠칫 놀랐다. 조진다는 가르쳐 준 적이 있었지만, 맹세코 싸 버렸다는 말을 가르쳐 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그런 말을 알려 줬지?”
[나간이. 아주 쌌어? 싸 버린 거야?]
“......”
라간이 뭘 또 가르친 모양이었다. 태호는 이 총체적 난국을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보스가 떨군 아이템을 확인했다.
[등급 : 에픽]
[종류 : 방어구(상의)]
[이름 : 해저왕의 상갑]
[저 바닷속 깊숙한 곳에. - 초보 학자, 카실론.]
[방어력 3,000]
[옵션 : 피격 시 생명력의 100%의 얼음 방어막을 형성합니다.]
[세트 옵션이 존재합니다.*비활성화*]
얻은 것은 총 두 개.
상의. 그리고.
[등급 : 에픽]
[종류 : 방어구(하의)]
[이름 : 해저왕의 하갑]
[무엇이 있을까요? - 초보 학자, 카실론.]
하의다.
옵션은 동일한데, 세트 옵션이 주목할 만했다.
[세트 옵션 : 피격 시 생명력의 300%의 얼음 방어막을 형성합니다. 보유한 모든 피격 시 방어막 아이템과 중첩 적용됩니다.]
[**현재 보유한 ‘순수의 강철의 망토’와 옵션이 중첩 적용되어, ‘피격 시 생명력과 비례한 방어막을 만들어 흡수한 대미지의 반사’ 가 세트 옵션에 추가됩니다.]
[수중 호흡이 가능하며 물 속성 공격을 받을 때, 대미지 감소 50%가 적용됩니다.]
각개로 두면 그리 대단한 옵션은 아니지만, 세트가 되니 아주 괜찮은 옵션으로 탈바꿈됐다. 특히, 순수의 강철 망토와 중첩 적용 되는 것이 주효했다.
즉 이제 태호는 공격 시, 토탈 600%의 생명력 비례 방어막이 형성되며 흡수한 대미지를 반사하는 셈이다.
물론.
아주 쓸 만한 것은 사실이었다.
[꺄하하하하!]
하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
태호는 스스로의 스크린 샷을 찍어 확인해 보았다. 자지러지게 웃는 아르카네와.
[크흐흠, 흐흠... 으흐흐... 흐흑... 흐읍...]
웃음을 참으려 애쓰는 막시무스의 얼굴에서 알 수 있듯, 지금의 복장 상태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관이었다.
이것저것 에픽을 주워 입은 터라 생김새에는 일관성이란 것이 사라져 있었는데, 특히 상·하의의 생김새는 마치 물고기 비늘 같은 것이 뒤덮인 쫄쫄이 같았다.
‘이런 끔찍한 물고기 혼종이 되다니.’
태호는 어쩐지 울적해져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생김새 따위야 아무러면 어떠랴.
주 무기 : 군자의 지팡이(에픽)
보조 무기 : 순수의 보조자(에픽)
망토 : 순수의 강철 망토(에픽)
머리 : 순수의 투구(에픽)
손 : 칠흑의 어둠 장갑(에픽, 칠흑 세트)
신발 : 칠흑의 어둠 밟기(에픽, 칠흑 세트)
반지 : 칠흑의 어둠 반지(에픽, 칠흑 세트)
상 : 해저왕의 상갑(에픽, 해저왕 세트)
하의 : 해저왕의 하갑(에픽, 해저왕 세트)
목걸이 : 선지자의 해골(에픽)
팔찌 : 찬란한 은총의 팔찌(에픽, 장착 귀속)
귀걸이 : 테무의 용기(에픽)
이로써 당분간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태호의 ‘에픽 파밍’이 완료된 셈이다.
급하게 이것저것 끌어다 쓰긴 했다만 이 정도면 아주 훌륭했다. 해저왕 세트를 입수함으로써 그나마 문제였던 ‘즉사’에 대한 해답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에픽 콜렉터]
[현재 보유한 에픽 아이템은 총 18종입니다.]
[칭호 ‘에픽 가이’의 대미지 상승이 18%로 적용됩니다.]
레이드급 던전은 잡템 등 부산물이 풍부하게 떨어진다.
‘어디 보자.’
마력의 결정체 540개.
유니크 아이템 6개.
레전더리 1개.
그 외 잡템이 수도 없이 떨어졌지만 주목할 만한 것은 저 정도다. 에픽 2개를 포함해 보자면, 꽤 나쁘지 않은 드랍률이었다.
태호의 레벨은 어느덧 382.
레벨 업에 대한 것을 미룬 채 여기저기 돌아다닌 결과물이었다. 다른 유저들에 비해선 어차피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이제 슬슬 레벨 업에도 신경을 쓸 시기였다.
400레벨을 달성하게 된다면, 6차 전직에 접어들게 된다. 달성하는 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두 달이라.’
란은 ‘혼돈의 좌’ 가 움직이기까지 두 달가량이 남았다고 했다. 허나, 언제든 그 시간은 바뀔 수 있었다.
지금의 태호는 그나마 시간이 생긴 셈.
“아 참.”
태호는 막시무스를 바라보았다.
[음?]
막시무스의 반문에, 태호는 녀석에게 친히 갑옷을 하사해 버렸다.
이제 태호에게는 ‘어둠의 기사단 세트’가 필요 없어졌다. 전신을 에픽으로 둘둘 말았으니, 이 장비들은 막시무스에게 줄 생각이었다.
[오오... 이, 이걸 정말 내게 돌려준다는 말인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빼앗은 것 같잖아.”
말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빼앗은 것은 사실이었다. 태호는 눈을 끔뻑이며 반박하려던 막시무스의 입을 틀어막았다.
“받아, 임마.”
막시무스가 어둠 기사단 세트를 입기 시작했다.
‘막시무스도, 아르카네도 레벨은 계속해서 순조롭게 오르고 있는데.’
문제였다.
태호는 막시무스의 레벨이 올라도, 큰 변화가 없는 것이 영 불만이었다.
그때.
찰캉!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막시무스가 어둠 기사단 세트를 모조리 입었다. 동시에 녀석의 전신이 윤기 나는 흑빛을 띄었다. 제법 볼 만 하다고 생각하던 그때.
[조건 충족]
[당신의 펫 ‘강철의 기사 막시무스’가 숨겨진 힘을 개방하였습니다.]
< 내가 혼종이라니?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