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러드 아일랜드 >
“......?”
태호가 어안이 벙벙해할 무렵, 막시무스가 양손을 활짝 펼치며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나의 힘이 돌아온다아아아아!]
[‘강철의 기사 막시무스’ 의 모든 능력치가 30% 상승했습니다.]
[스킬 : ‘영광의 기사’ 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어 ‘전설의 기사’ 가 되었습니다.]
‘호오.’
태호는 그 장면을 보았다. 막시무스의 전신에 황금빛 기운이 일렁이다, 쏙! 스며들었다.
다시 상태창을 띄워 보니, 과연.
30%씩 모든 능력치가 상승해 있었다.
[스킬명 : 전설의 기사]
[막시무스가 보유한 올 스텟의 합산X200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추가하는 전설의 기사로 변신한다.]
[막시무스의 모든 스킬 성능이 50% 상승한다.]
‘스킬 성능이 50%라.’
이 정도면 사실 아주 쓸 만한 편이었다.
태호는 막시무스를 보며 씩 웃었다.
“너, 이런 거였냐?”
[나, 나도 모르고 있었다! 나의 힘이 이토록 빨리 돌아오다니!]
막시무스가 기뻐하는 것을 보니 자신도 기뻐 어쩐지 뿌듯해하던 태호는 눈을 빛냈다.
‘혹시 이거.’
안 그래도 의문을 품고 있던 차였다.
막시무스와 아르카네는 기묘할 정도로 성장이 느렸다. 레벨이야 오르지만, 보유 스킬 등이 비정상적으로 개방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펫들도 보물 같은 걸 먹여 줘야 하는구나.’
태호는 혹시나 싶어 막시무스에게 에픽 아이템들을 입혀 보았다.
허나, 그런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무턱대고 에픽을 입힌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고.’
아무래도 이 녀석들에게 의미가 있는 아이템이어야 하는 듯하다.
막시무스와 아르카네는, 유사시 가장 효과적인 전력이었다. 소환과 해제가 용이하기에, 이 녀석들이 강화되는 것은 분명한 의미가 있었다.
[크다! 커! 까매!]
아르카네가 팔짝팔짝 뛰며 막시무스에게 손을 뻗었다.
[기뻐?]
[크흠... 그래! 아주 기쁘도다!]
[그럼 싸! 얼른 싸! 푸짐하게 싸 버려!]
멋모르고 멀뚱멀뚱 있던 펜리르 3세가 녀석들의 사방을 빙글빙글 돌며 망망! 짖었다.
이번 전투에서는 확실히 비전력 운용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잡을 수 있었다.
‘현재 100% 충전된 비전력으로는 대략 스킬 난사 1쿨 정도가 가능한데.’
가진 모든 스킬을 쏟아붓는 것 1회가 고작이었다. 모으는 시간에 비해, 소모하는 것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빨랐다.
보통 마력으로 사용하는 것과의 대미지 차이는 대략 1.5~2배 사이.
허나 비전력만의 강점을 꼽아 보자면, 보스가 쏘아 내는 마법들을 상쇄하며 공격해 들어간다는 점이 있었다.
그렇다.
비전력은 상위 에너지.
공격과 공격이 서로 맞부딪혔을 때 비슷한 공격력이라면, 상위 에너지로 사용한 공격이 상대를 압도하게 된다.
또한, 마력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대미지를 가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지속적으로 수련해야 해.’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여러 변수를 고려했다.
‘너무 잠잠하다.’
로만은 현재 지나칠 정도로 잠잠했다.
태호는 여지껏 놈을 효과적으로 방해한 셈이지만, 아직 그 과정에서 로만과 마주친 적이 없다.
놈이 쉽게 굴복하고 시간이 가기를 기다릴 것이란, 지극히 편리한 사고를 하고 싶지 않았다.
* * *
바넷사의 해저 기지를 빠져나온 태호는 망망대해의 유령선 위에 드러누워 생각에 잠겼다.
현재 할 수 있는 가정 중 최악은?
‘어둠의 추적자’로 추적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태호는 사실상, 어둠의 추적자라는 스킬을 굉장히 신뢰하고 있는 편이었다. 그간은 아무 문제 없이 추적이 되었고, 신노스나 케노스 역시 추적이 되었으니까.
허나.
‘과거의 신노스는 1/10의 힘을 회복한 수준.’
그렇다면, 만일 그 이상의 힘을 회복한 대장군 샴이라면?
어쩌면 추적에 걸리지 않는 패시브 스킬 같은 것을 가졌을 가능성도 있다. 절대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태호는 그 부분에 대해 볼카노스에게 문의해 보았다.
-어쩌면 일시적으로 혼돈의 힘을 억제하는 방법을 찾았을 가능성도 있다.
혼돈의 힘이 새어 나오는 것을 완전히 억제할 수 있다면, 레이더를 피해 갈 수도 있다는 말.
‘떠올려 보자.’
샴.
다섯 번째 확장팩, 샴의 사원이 개방된 것은 리얼 포스가 서비스되고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의 이야기였다.
유저들의 평균 수준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후인지라, 확장팩에 대한 기대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리고 등장한 샴의 사원은 말 그대로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며 유저들의 기대감을 충족한다.
경악스러운 패턴의 중간 보스들, 그리고 최종 보스인 ‘샴’의 위용은 모두를 리얼 포스의 매력으로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중간 보스로는.’
장군급 다섯이 함께한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많은 공략 인원을 필요로 했다만, 정작 대장군 샴을 잡기 위해선 소수 정예가 필요했다.
‘샴이 최초로 등장하는 지역은 본대륙 남쪽, 평야.’
그곳의 공간이 찢어지며 신기루처럼 등장한다. 과거에는 으레 업데이트가 그런 셈이니 쳤지만, 이제 보니 ‘혼돈의 권좌’에서 튀어나온 셈이다.
만약.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샴이 현재 지상에 불시착해 있다면, 이런 염두를 해 두어야 한다.
‘놈이 권좌에 있다가 튀어나왔다 치자. 그렇다면, 지상에 착륙하자마자 신노스와 케노스를 찾을 거야. 혹은 장군급 존재들이라도 찾기 위해 움직일 테지.’
헌데.
그놈들은 없다. 태호가 이미 영원한 죽음으로 보내 버렸으니까.
그렇다면, 샴은 생각할 것이다. 뭔가가 잘못됐다고. 그래서, 쥐죽은 듯 고요히 정세를 살필 것이다.
태호는 문득 떠올렸다.
‘신노스는, 자신의 힘을 회복하기 위해 확장팩의 보스를 먹어 치웠지.’
바로, 잊혀진 왕국의 보스 말이다. 즉, 불시착한 대장군들에게 힘을 회복하는 일은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란 뜻.
‘만약에, 샴이 숨죽이고 몸을 숨겼다면... 분명히 혼돈의 좌를 기다리는 거겠지.’
그렇게 몇 가지 가설을 계속해서 되뇌며 웹사이트를 띄울 무렵이었다.
라간에게 귓속말이 왔다.
-어, 형님?
-왜?
-개인 방송 채널 좀 들어가 볼래?
“......?”
실시간 방송 채널을 들어간 태호는 제일 첫 번째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로만TV]
‘로만?’
태호가 인상을 찌푸린 채 방송 제목을 보았다.
[긴급!]
[에픽이 무려 5개! 대형 이벤트 개최!]
태호는 곧바로 방송에 접속했다.
그러자, 온 사방이 회색 아지랑이에 뒤덮인 듯한 배경을 등지고 서 있는 로만이 보였다.
[자, 자, 형님들... 킥킥킥! 오, 벌써 시청자 천만 명이 넘었네요? 천만이라... 엄청난 숫자에요.]
광기에 두 눈이 번들거리는 것 같은 로만이 싸늘한 목소리로 방송을 이어 가고 있었다.
‘어디지?’
태호는 실눈을 뜬 채 놈의 풍경을 살펴보았다. 허나, 도저히 어디인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로만 너 실종신고 된 거 아니었냐?]
[대체 어디 갔다가 이제 온 거냐.]
[무사한 거야?]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아닌 게 아니라, 로만의 실종 사실은 이미 전 매스컴을 탔던 것이다.
[아아, 우리 착한 형님들이 제 걱정을 또 해 주시네? 황송하기 그지없네요. 캬캬캬! 자, 제 비밀을 알고 싶으십니까? 제가 어디 있게요? 아-하하하!]
화아아악!
어느새.
로만의 사방의 풍경이 변했다. 놈은 창공 드높은 곳에 떠 있었다.
저 뒤로, 드넓은 섬 하나가 보였다.
[방 제목대로 이벤트 공지를 해 볼까 합니다.]
놈이 씨익 웃었다. 그리고, 목이 탄다는 듯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입술을 핥았다.
[이 섬에, 자아... 보시는 것처럼-]
놈이 품속에서 에픽을 꺼냈다. 섬뜩하게 생긴 단검이었다. 놈은, 옵션까지 확인해 보여 주었다.
[등급 : 에픽]
[종류 : 무기(단검)]
[이름 : 파멸의 단검]
[나의 힘 앞에 복종하라.]
[옵션 : ???]
[개방까지 필요한 생명과 영혼 : 0/1000]
[뭐 이런 거부터 시작해서... 엿차!]
놈은 그렇게 아이템을 보여 준 뒤, 별 것 아니란 듯 섬을 향해 냅다 집어 던졌다.
[이런 것들 말입니다요~]
그 외 꺼낸 아이템들은 죄다 혼돈의 유산들이었다. 그것들을 섬을 향해 냅다 집어 던진 로만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캭캭캭! 자, 이것들의 개방 옵션이 궁금하시죠? 그런 분들이 계실까 봐 보여 드릴게요~]
로만은 다른 아이템을 꺼내 확인하듯 보여 주었다.
[등급 : 에픽]
[종류 : 무기(한손검, 캐릭터에 장착 귀속됨)]
[이름 : 말살자의 이빨]
[나의 힘 앞에 복종하라.]
[옵션 : 공격력 10,000]
[옵션 : 물리 대미지가 3배 증가합니다.]
[혼돈의 힘과의 계약을 필요로 합니다. ‘미계약상태’]
태호가 움찔 놀랐다.
‘개방된 혼돈의 유산!’
게다가 장착 귀속템이다.
공격력 1만은 둘째 치고, 물리 대미지가 3배 증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사기였다.
에픽을 둘둘 말고 있는 자신조차 사기라고 느끼는데, 일반 유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저 미친놈이 무슨 생각이지?’
[어때요. 쩔죠? 자, 이 섬 안에 다섯 개의 에픽을 무작위로 버려두었습니다. 이제 형님들은 이 섬으로 와서, 이 아이템을 찾으면 되는 거죠. 보물찾기 어릴 적에 다들 해 보셨잖아요? 어떻습니까?]
유저들의 반응은 어마어마했다.
[역시 로만이다. 가즈아~]
[위치가 어디냐?]
[에픽이 다섯 개라고?]
채팅이 너무 빨리 올라와 글자를 확인하기가 거의 힘든 수준이었다.
[아하하, 아-하하하하!]
로만이 양손을 활짝 펼쳤다. 동시에 거대한 지도가 펼쳐져 화면을 꽉 채웠다.
본대륙에서도 서쪽으로 쭉 나아간 바다 한복판. 큼직한 섬 하나가 찍혀 있었다.
[자~ 시작해 볼까요? 하하하하! 모두들 득템하세요! 우리의 이벤트 명은... 블러드 아일랜드. 모두 함께 피로 피를 씻어 보자고요! 하, 하하하! 하하하하!]
문득, 로만은 뚝! 웃음을 멈추고 싸늘한 얼굴로 화면을 보았다. 놈의 두 눈동자에 회색 소용돌이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픽!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
이놈이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납죽 엎드릴 거라는 태호의 생각과는 정반대였다.
마치 태호를 정면으로 도발하듯, 대놓고 유저를 한곳으로 모으고 있다.
‘한곳에... 사람들을 모은다.’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
‘설마, 인신 공양이라도 하려는 거야?’
혼돈의 힘이 요구하는 것은 영혼과 생명.
헌데, 유저들을 상대로 인신 공양이 가당키나 한 말이란 말인가?
놈은 창공을 날고 있었다. 무슨 탈것을 타고 있었단 말인가? 화면상으로는 놈의 상반신만 간신히 나올 정도라,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었다.
‘똑똑한 놈이군.’
로만이 유저인 것을 이용하는 똑똑한 활용법이었다.
이로써 로만이 혼돈의 힘에 잡아먹혔다는 가정은, 확신이 되었다. 지금의 로만은 누굴까?
‘혼돈의 주인의 사념체.’
그 가정이 가장 신빙성 있었다.
이제 문제는 하나다.
과거, 신노스와 케노스 레이드 파티 때 모인 인원이 수백만 명이었다.
그럼 지금은?
태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상황을 가늠했다.
‘에픽 다섯 개.’
그리고 그 에픽이 온전한 힘을 발휘했을 때의 옵션까지 공개된 판이다.
그렇다면 유저들은 개떼처럼 모일 것이다. 어쩌면 과거처럼, 수백만 명이 훨씬 넘을지도 모른다. 그 이상일 가능성도 농후했다.
군중이란 그만큼, 때로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다루기가 쉽다.
[속보! 로만이 에픽 다섯 개 뿌림!]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로만의 기행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삽시간에 포탈 검색어에 로만TV가 떠올랐으며, 로만이 말한 이벤트 네임까지 거론되고 있었다.
[블러드 아일랜드.]
‘함정인 건 확실하고.’
희망적인 건, 태호가 현 상황을 대강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태호의 훼방이 아주 효과적이었다는 것은 마안 일족의 란이 증명해 주었다.
그렇다면, 이건 로만이 던지는 결전의 수나 다름없었다.
‘저 섬에서 하려는 짓이 혼돈의 좌를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한다면?’
양동작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잊혀진 섬.’
그곳으로 단숨에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을 사전에 구축해 두어야 했다.
* * *
“뭐라고? 이동 스크롤?”
로크나이엘은 뜬금없는 말을 한다는 듯 태호를 보다 어깨를 으쓱였다.
“뭐, 되기는 한다만. 좌표 계산과 마법 연성에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그러면 됐다.
태호는 그를 이끌고 잊혀진 섬으로 향했다.
‘아무것도 없군.’
역시 라간의 말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이 좌표 말이지. 이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스크롤을 만들어 달라?”
“예.”
“흠... 뭐, 알았다.”
로크나이엘이 요구한 재료는 마력의 결정체들과 각종 재료들이었다. 태호는 그에게 재료를 맡겼다.
“최대한 많으면 좋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응, 뭐 그래. 난 드래고니악으로 돌아가 제조하고 있을게. 그런데, 어디 가려고?”
태호는 싸늘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낮게 읊조렸다.
“싸움을 걸어 왔으니, 놈이 준비한 수를 때려 부수러 갑니다.”
< 블러드 아일랜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