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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전설-123화 (123/194)

< 신력을 배우다 (2) >

신경 쓰지 않으면 느껴지지 않을 이물감.

드래곤의 비전력은 끈적이는 말랑이 공 같다면, 신력은 딱딱한 쇳덩이 같았다.

[거래는 이루어졌다. 균형은 지켜졌으며, 무를 수 없다.]

“알겠습니다. 이를 운용하는 법은요?”

그것을 움직여 보려고 하자, 요지부동이었다.

[그건...]

볼카노스가 난감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우리는 마력을 다루듯 쓴다. 헌데, 네 입장에서는 어떨지 사실은 상상이 잘 가지 않는구나.]

“흐음... 일단 알겠습니다.”

이제 태호에게 남은 혼돈의 유산은 멸망의 반지, 혼돈의 차원 문, 육망성의 저주, 혼돈의 구역.

육망성의 저주, 멸망의 반지는 신노스와 케노스에게 얻었다.

혼돈의 차원 문, 혼돈의 구역은 각각 씨드와 크레이지 도그 길드의 간부들에게 얻었다.

일종의 쇼핑하는 기분으로, 태호는 다음 거래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자, 다음 거래를 시작해 볼까요?”

태호가 꺼내 든 것은 멸망의 반지였다.

[......]

“일단, 볼카노스 님이 갖고 계신 걸 한번 보죠.”

태호의 요구에 볼카노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정말 네 녀석, 물건은 물건이군. 좋다.]

촤아악-!

볼카노스가 보유한 물건들이 태호의 눈앞에 드러났다. 허나, 아이템들은 하나같이 크게 와닿지가 않았다.

태호는 고심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중엔 제가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허면?]

“흐음... 예전에, 제게 당신의 권능 하나를 내려 주신 적 있으셨지요?”

바로, 지옥의 어둠 불꽃이었다.

태호가 아주 요긴하게 써먹는 마법인 ‘죽음의 어둠 불꽃’ 은, 대장군들을 사냥하는 데 아주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그랬지.]

“제가 보유한 기술 ‘지옥의 어둠 불꽃’ 을 강화해 주십시오.”

[그것은 이미 내가 보유한 권능 중 하나. 더욱 강하게 하는 것은 불가한데...]

볼카노스가 곤란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럼 다른 권능 하나는 어떻습니까?”

태호의 요청은 당돌했다.

허나 볼카노스 역시 기분이 나쁜 기색은 아니었다.

[네게 하사할 수 있는 나의 권능은, 이것이다.]

볼카노스는 태호에게 손을 휘저었다. 곧, 태호의 눈앞에 마치 동영상이 재생되듯 어떤 상황이 보였다.

콰아아아-!

폐허가 된 전장!

그 아래 서 있는 것은 피투성이가 된 볼카노스였다. 누구와 싸우고 있는 걸까?

태호는 상대를 보았다. 저편, 요사스러운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상대가 보였다. 열 개의 홍학 대가리가 사방을 향해 포효했다.

‘샴!’

놈은 샴이었다. 생김새부터 흉악스러운 괴물이 볼카노스를 찢어 죽일 듯 노려보며 소리쳤다.

-카르르릉! 요 빌어먹을 개자식이, 꼭 훼방을 놓는구나.

-나를 지나쳐 갈 수 없을 것이다.

상황은 대등했다. 문득, 태호는 사방으로 시선이 갔다. 무수히 많은 장군급 존재들이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태호도 익히 아는 장군급들이었다.

‘저걸 혼자 다 잡은 거야?’

볼카노스는 온몸에 피 칠갑을 하면서도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두 눈은 시커먼 안광을 뿜어내고 있었고, 전신에서는 보기만 해도 섬뜩한 신력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샴, 너는 여기서 죽는다.

-뭐 때문이냐? 카르르르릉! 어차피 부질없는 짓! 멸망의 날이 조금 더 미뤄지는 것뿐!

샴의 포효에 볼카노스는 빙긋 웃었다. 어쩐지 그의 미소가 씁쓸해 보였다.

콰아아아-!

그의 신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거대한 땅의 표면이 시커먼 어둠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샴을 포함한 일대의 대지에 어둠이 내리꽂혔다.

콰아아앙-!

신력이 만들어 낸 것은 거대한 원통형의 공간이었다. 하늘을 덮을 듯 치솟아 있는 원통형의 공간 속이 어둠으로 뒤덮였다.

-이제 그만 권좌로 돌아가라, 짐승!

콰콰콰콰콰콱!

온 사방에서 어둠의 창이 튀어나와 그 공간을 헤집어 놓았다. 와드득, 콰드득 하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캬아악!

샴의 전신은 그야말로 난도질당했다. 꿰뚫린 상처가 수백 수천 곳은 돼 보였다.

우드득!

마지막으로, 지상에서 치솟아 오른 거대한 검은 뿔이 샴을 꿰뚫었다.

-캬악, 캭... 어차피... 너희는... 너희 모두는... 그저...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을...

검은 뿔이 사라지고 바닥으로 떨어진 샴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되뇌었다.

-굴레는... 무한한... 것... 킥, 키키킥, 네까짓... 것이... 바꿀 수 있을... 쏘냐...

우지직!

샴의 최후였다.

샴은 그렇게 회색빛 소용돌이에 감싸져 사라졌다.

-허억... 허억...

볼카노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쿨럭, 쿨럭, 피를 토해 내던 그는 어느 순간 정면을 보았다.

-......

그곳에 서 있는 것은 한 남자였다. 태호 역시 익히 얼굴을 알고 있는 사내였다.

-볼카노스.

-......네메...데스.

네메데스, 즉 카실론이었다. 카실론은 그를 슬픈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볼카노스는 천천히 그에게 물었다.

-우린... 잘하고... 있는... 거요?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은... 천계를... 거스를 수 있는 이 중 하나. 대답해 주시오... 이것은... 무의미한 희생입니까?

그때, 저편의 하늘이 쩌억- 갈라지는 것이 보였다.

그곳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은 거대한 빛으로 만들어진 존재였다. 그 존재를 흘끗 쳐다본 카실론이 말했다.

-볼카노스 님. 당신은 역시나, 인간을 사랑하는군요. 당신의 권능을 장비로 만들어... 지상에 남겨 둘 만큼.

태호는 문득 흑마법사의 전용 에픽, ‘칠흑의 어둠 밟기’에 적혀 있던 카실론의 문구를 떠올렸다.

[볼카노스 님, 당신은 정말로 인간을 사랑하셨군요. 당신의 권능을 장비로 만들어, 하사하셨을 만큼. -초보 학자, 카실론]

카실론은, 그를 보며 되뇌었다.

-언젠가 분명히 운명의 굴레가 깨어질 겁니다. 그날을 기다리세요.

볼카노스는 그에게, 살짝 고개를 까닥여 보였다.

저 멀리의 거대한 빛이 사방을 밝히며 볼카노스에게 향했다.

-대 역 죄 인 볼 카 노 스 는 심 판 을 받 으 라!

천지가 우렁차게 떨릴 정도의 목소리와 함께. 볼카노스는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

화아아악!

동영상처럼 재생되던 그 모습이 흐릿해지며, 어느새 태호는 볼카노스를 마주 보고 있었다.

볼카노스는 태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태호 역시 그를 보았다.

“이것을 제게 보여 주신... 저의는?”

[그 권능을 네게 줄 수 있다.]

‘분명히 눈치챘군.’

태호는 확신할 수 있었다. 볼카노스는 태호에게 상위 신들이 분명히 연관돼 있음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가치는...”

[이 권능은 내가 가진 것들 중, 강력한 축에 속한다. 허나, 금제가 걸려 있다고 할 수 있겠지.]

“금제라니요?”

[이것은 신력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 그렇기에, 에픽급 다섯 개 정도면 균형에 맞을 것이다.]

상위 스킬!

그렇다는 말은, 지옥의 어둠 불꽃은 그가 가진 권능 중에서도 낮은 축이라는 말이었다.

‘얼마나 강한 거야, 신이란 것들은.’

태호는 새삼 얼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천계의 신수 펜삼이를 보고 천계의 강력함을 예상해 본 바 있지만, 진짜 신들은 정말 어마어마한 힘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이제 제물을 바칠 시간.

‘흠.’

다섯 개.

이미 혼돈의 유산은 다 바쳐야 하고, 추가로 하나를 더 내놓아야 한다는 말.

이로써 사실상 가진 밑천을 대부분 꺼낸 셈이었다.

태호는 볼카노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불공평합니다.”

[뭐라?]

“다섯 개는 과합니다. 또한 신력 역시 제대로 깨우치지 못했는데 다섯 개를 바칠 여력이 없습니다.”

[흐음... 일리 있구나. 허나, 균형을 위배할 수는 없는 노릇.]

태호는 볼카노스를 빤히 보다 입을 열었다.

“재미가 있는 것일진 모르겠습니다만, 얼마 전부터 동물 한 마리를 키우기로 했습니다.”

[응?]

“그 전에,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태호는 그를 향해 또박또박 물었다.

“제가 지금, 똑바로 하고 있는 겁니까?”

[......]

뼈가 담긴 질문이었다.

볼카노스는 대답 없이 살짝 눈을 감았다. 이내, 그가 대답했다.

[어쩌면, 그럴지도.]

“그럼 좋습니다.”

태호가 손을 뻗었다.

‘나와라, 펜삼아.’

지이잉-!

펫이 된 펜삼이가 허공에서 튀어나왔다.

망! 망! 망!

펜삼이가 망망 짖다가, 볼카노스를 발견하고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망! 망망망!

마치 저게 적이냐는 듯 묻는 펜삼이에게, 태호가 손을 내저었다. 펜삼이는 볼카노스를 빤히 보다 후다닥 태호에게 달려와 다리 뒤에 숨었다.

[......저 녀석은, 혹시 내가 아는 그 녀석인가?]

“아마 아시는 녀석의 자식일 겁니다.”

[펜리르... 의 후손이라 이건가.]

볼카노스가 이마를 짚었다. 펜리르라면 천계의 신수. 그 신수의 후손이라면, 저것 역시 신수. 딱 봐도 알 정도로 천계의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너는... 아마도 로키와도 깊은 연관이 있겠군.]

“어쩌면 로키 님도 조력자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모로... 세상의 진실에 접근해 가려고 합니다. 도와주십시오.”

태호의 말을 들은 볼카노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던 그가 제물로 바친 네 개의 유산을 받아 들었다.

[균형은 충족되지 않았다만... 균형의 역풍을 이겨낼 정도의 힘은 있을 터다. 거래에 응하마.]

화악!

곧, 태호의 몸으로 다시금 어둠의 기운이 모여들었다.

[스킬 : ‘나락의 절대 구역’을 획득했습니다.]

[볼카노스의 상위 힘]

[등급 : ???급]

[쿨타임 : 1,000초][숙련도 : 0][소모마력 : 2,000]

[스킬명 : 나락의 절대 구역]

[절대 구역을 만들어, 15초간 그곳의 모든 생명체에게 무차별 공격을 가한다.]

설명은 단출하였으나 이미 태호는 그 위력을 직접 본 바 있었다.

게다가, ‘볼카노스의 상위 힘’이라고 못 박혀 있는 그 글자가 소름 끼치게 느껴졌다.

‘이게 바로 신의 진짜 힘이구나.’

균형의 역풍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볼카노스 급이라고 해도 버텨 내는 게 쉽지 않은 페널티인 듯했다.

‘앞으론 웬만하면 조건을 다 맞춰 줘야겠어.’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제 무리한 요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네 녀석과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마.]

태호는 빙긋 웃었다.

“예.”

[그럼, 건투를 비마.]

“다음에 또 뵙죠.”

태호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샤샤샥!

어느새 어둠이 물러가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아직 사라지지 않은 볼카노스는 태호가 사라진 자리를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차원 간의 균열이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다.’

다차원 간, 세계의 맹약으로 만들어진 이 땅.

허나 운명의 뒤틀림은 새로운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미 고위 신들이 직접 손을 쓰기 시작했다는 말도 들려오고 있다.

흐름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그 와중, 신력이라... 재미난 선택을 했군.’

볼카노스는 태호를 떠올리며 빙긋 웃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인간일지라도, 신력이란 절대적인 신의 영역!

허나, 볼카노스는 저 인간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간 봐 온 그 어떤 ‘모험가’들에게도 없던 기묘함이 그에게 도사리고 있었다.

‘모험가... 과연 평범한 모험가인가?’

무수히 많은 모험가들 중, 이번 회차처럼 재미나고도 특출난 존재는 없었다.

마치 미래를 알고 있다는 듯 행동하며, 대담하고도 성실하다. 인간이란 본디 변하기 쉬운 종족. 허나, 저 녀석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한결같다.

어쩌면.

‘수호자가... 마지막 수호자가...’

-제가 지금, 똑바로 하고 있는 겁니까?

그 녀석의 말에 볼카노스는 조용히 되뇌었다.

[......그렇다.]

마음 깊숙이 비밀로 간직해야 할, 신력으로 만든 공간 속 대화였다.

-언젠가 분명히 운명의 굴레가 깨어질 겁니다. 그날을 기다리세요.

그는 네메데스의 말 또한 되뇌었다.

‘그렇군.’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 신력을 배우다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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