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신(惡神) (2) >
반격이 남았다.
[큭?]
조겐의 공격은 태호에게 가해진 그대로 반사되었다. 놈이 주춤하는 사이.
태호는 놈의 복부를 차며 뒤로 쭈욱 날아가듯 몸을 던졌다. 그대로 비전력을 이용한 난사를 시작했다.
파파파팟!
삽시간에 놈의 몸에 강화된 중독, 그리고 공격속도를 감소시키는 어둠의 화살, 이동속도를 감소시키는 절망, 시력상실까지 작렬했다.
[제법 날쌔군!]
조겐이 아랑곳 않고 쫓아와 한 뼘 거리까지 좁혀질 무렵.
‘발동!’
태호가 칠흑의 어둠 밟기의 그림자 숨기를 발동시켰다.
쭈-욱!
삽시간에 몸이 저편의 나무 그림자로 숨어들었다.
쿵 쾅 쿵 쾅!
가슴이 미친 듯 뛰었다. 태호의 머릿속에서 어마어마한 긴장감이 몰려오고 있었다.
비전력은 벌써 끝장났다.
별수 없이 비전력을 연성하기 시작했다.
모든 마력을 비전력으로 바꾸고, 체마교환으로 마력을 채운다.
다시 비전력을 연성한다.
인벤토리창에서 물약도 마시고, 체마교환 후 비전력 연성을 이어간다.
머리가 핑핑 돌다가, 어느 순간 오히려 냉정해졌다.
‘잠깐이라도 비벼 보려면 비전력이 필요해.’
고오오오-
극도의 긴장감은 극도의 집중력 향상을 야기했다.
[그러고 보니 이거 볼카노스네 애들이구나? 히하하, 아무튼 그 녀석네 식구는 애고 어른이고 마음에 안 든다니까.]
놈이 기괴하게 웃었다.
태호는 비전력을 충전해 나가면서 상황을 엿보았다.
[10스택 달성]
어느새 마법은 10스택을 달성했다.
이제 다음 마법은 5연발이다. 이것을 잠시 아껴 둔 채,
[거기구나!]
놈은, 정확히 태호가 숨은 그림자를 향해 돌진해 왔다.
‘염병!’
태호는 10스택을 쓰기로 했다.
‘어둠의 발걸음.’
파파파파팟!
마력으로 사용한 어둠의 발걸음이 5연속으로 발동되며 태호를 어마어마한 거리만큼 이동시켰다.
족히 1킬로 가까이 이동하는 시간 동안 태호는 계속해서 비전력을 충전했다.
[비전력을 저장합니다.]
[현재 소유한 비전력은 한계치의 25%입니다.]
실전에서 축적하는 비전력은 평소보다 훨씬 빨랐다. 고도의 집중력이 만들어낸 쾌거다.
‘나와, 모두!’
태호가 망설임 없이 막시무스와 아르카네를 소환했다. 머릿속에는 조겐의 옆에 놓여 있던 솥단지가 계속 맴돌았다.
‘모으고 있었다.’
유저들에게 빠져나온 기운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이 결계 온 사방에 흩어져 있는 미미한 신력들.
‘조겐의 힘이 분명해.’
그렇다면.
저렇게 모은 기운을 어디에 쓰려고?
태호는 금세 답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샴의 힘을 회복하기 위한 과정이구나.’
그래서 사람들을 많이 모은 거였다.
헌데, 유저들에게 이렇게 손쉽게 빼앗아 갈 수 있다면 굳이 대도시가 아니라 이런 섬으로 유인할 필요가 있는 걸까?
당장 노펜시아나 라이언에서 죽죽 뽑아낼 수도 있을 텐데?
태호의 머릿속에 의문이 꼬리를 잡고 이어졌다.
게다가 유저들은 어차피 이 게임에 접속해 있을 뿐, 접속을 종료하면 평범한 현실로 돌아갈 거다.
[비전력을 저장합니다.]
[현재 소유한 비전력은 한계치의 56%입니다.]
그들에게 무한정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단 건가?
확실한 점 하나.
‘이거, 지금으로선 한계가 너무 명확해.’
호기가 객기로 변하는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 객기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다.
‘그렇다면...’
그 순간.
팟!
눈앞에 조겐이 나타났다.
[현재 소유한 비전력은 한계치의 72%입니다.]
비전력은 이 정도 모였다.
아껴 써야 할 소중한 힘이다.
[쥐새끼처럼 잘도 도망치는군.]
후우웅!
놈의 발차기가 섬광처럼 날아든다.
“막시!”
태호가 땅을 차며 뒤로 쭉 물러섰다.
‘그렇네.’
승부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카이저! 물러서라!]
막시무스가 호기롭게 그의 앞을 틀어막았다. 막시무스의 전신이 황금빛으로 빛났다. 녀석의 스킬 ‘전설의 기사’가 발동된 것이다.
[우오오오오오!]
막시무스가 가진 모든 스킬을 사용하며 버틸 준비를 마쳤다. 태호는 그사이에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비전력을 계속해서 모으며 움직였다.
천부적인 멀티태스킹!
일체감 100%의 압도적인 위용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콰직!
길게 늘어선 방패의 벽이, 조겐의 발길질 한 방에 아작 났다. 이어진 스킬들도 크게 도움이 되진 못했다.
우지지직!
[크아앗!]
막시무스가 허망하게 소환해제됐다.
그 사이 태호가 어둠의 발걸음으로 저 멀리로 이동했다.
“아르!”
뒤이어 아르카네가 소리쳤다.
[너 조진다!]
데-엥!
아르카네의 모든 스킬도 쏟아졌다. 각종 디버프와 보조 스킬이 쏟아졌지만, 신력에는 어림도 없는 것이 틀림없다.
[악!]
아르카네도 허망하게 쓰러질 무렵, 태호는 유령 표범을 소환해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달리면서도 마력을 이용해 뒤편으로 광역 스킬을 모조리 쏟아냈다.
‘대규모 광역 중독, 절망, 시력상실, 어둠의 비, 어둠의 폭탄 비.’
가진 광역기를 죄다 쏟아 낸다.
대미지가 들어갈 것이란 생각은 안 한다. 그저, 잠깐 주춤거릴 시간을 버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비전력을 모은다. 평소라면 버거웠을 정도의 멀티태스킹이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이기에 가능하다.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던 태호는 문득,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모든 행동을 하면서 태호는 쿨타임이 돌아올 때마다 마력 지뢰를 마구 깔아 댔다.
[비전력을 저장합니다.]
[현재 소유한 비전력은 한계치의 100%입니다.]
[10스택 달성]
[스킬 쿨타임이 모두 초기화되었습니다.]
그대로, 유령 표범까지 조겐에게 보냈다.
“가서 들이받아!”
카르릉!
녀석이 알았다는 듯 태호를 저 멀리로 던진 뒤 조겐에게 달려들었다.
와자작!
유령 표범도 아작나는 소리가 들려온다.
10스택이 모였다.
‘어둠의 발걸음.’
팟팟팟팟팟!
5번 연속 어둠의 발걸음이 태호의 몸을 삽시간에 산봉우리 위로 올려놓았다.
이제 태호의 눈앞에 솥단지가 있다. 태호는 지체 않고 마신강림을 사용했다.
‘마신강림!’
콰아아아아-!
비전력으로 사용한 마신강림이 섬뜩한 기운을 풍기며 전신에 덧씌워진다.
그대로, 마력을 이용해 스킬을 난사한다.
10스택이 모였다.
이번에 태호는 비전력을 이용해 스킬을 솥단지에 쏘아 냈다.
‘강화된 어둠의 명령.’
생명력의 99%를 소모하는 어둠의 명령이 5발, 지팡이에서 섬뜩한 기운을 뿜어내며 쇄도해 나간다.
콰지지지직!
솥단지에 작렬한 어둠의 명령 다섯 발! 어마어마한 대미지를 받았는지, 요란하게 진동하더니 멈추었다.
허나 아직도 요원하다. 솥단지는 기운을 흡수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맹렬한 지진.’
장착 귀속인 가이아의 가호가 부여한 아이템 사용 효과를 사용했다.
구구구구궁-!
지진이 퍼져나가며 땅에 새겨진 마법진을 흩트려 놓았다.
‘팔찌 개방!’
태호는 ‘찬란한 은총의 팔찌’에 저장돼 있던 ‘창공 세트’의 세트 옵션까지 사용했다.
콰과과과과광!
마력포 난사가 솥단지로 꽂혔다.
그 사이 태호는 남은 비전력을 모조리 끌어 모았다. 시간이 없다. 오감을 활짝 열어, 감각 세계에 접어들었다.
화아아악-!
전신의 감각은 더없이 생생해졌다. 심지어, 통증까지 생생해지는 것 같은 이 초현실의 세계!
두근, 두근
비전력이 전에 없이 빠르게 모였다.
‘움직여라, 제발.’
그리고 희망 사항으로 고체 덩어리처럼 남아 있는 신력 역시 움직여 보았다.
비전력이 들끓고, 신력이 동시에 움직이던 그때.
‘어?’
기묘한 현상이 일어났다.
태호의 몸속에 존재하는 두 개의 기운이, 기묘한 공명현상을 일으킨 것이다.
마치, 신력이라는 고체 덩어리 위에 비전력이 둥글게 덮어 씌워지는 느낌이었다.
뭉클!
그때.
일시적으로 신력이 움직였다.
고오오오오-!
[신력(神力)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죽 지켜볼 겨를도 없이, 저편에서 쇄도해 오는 조겐이 보였다.
‘승부를 걸어 본다.’
태호는 날아오는 조겐을 지정해 ‘칠흑 반지’ 의 아이템 효과를 발동시켰다.
‘고갈의 낙인.’
[패시브 : 고갈의 낙인]
[설명 : 칠흑의 어둠 반지의 패시브 스킬.]
[상대방에게 10분의 시간 동안 신력으로 만들어진 낙인을 찍는다.]
[낙인이 찍힌 상대는 생명력과 마력을 회복할 수 없다.]
아껴 두었던 옵션 개방이다.
그리고 마법을 쏘아 냈다.
고오오-!
가진 스킬들이 죄다 난사되기 시작했다. 그간 수없이 써 온 기본 스킬들이다.
어둠의 폭탄, 강화된 중독, 절망을 비롯한 스킬들이 쏜살같이 날아가 꽂혔다.
콰콰콰콰콰쾃!
태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법은, 평소와는 달랐다.
비전력을 사용할 때와도 다르다. 이것은, 처음 보는 어둠의 힘이었다.
붉은 세계에, 아주 선명한 검은색 잉크가 떨어지는 것처럼 사방이 시커멓게 물들기 시작했다. 빛마저 빨아들일 것 같은 순도 높은 어둠으로!
콰콰콰쾃!
조겐은 태호의 마법을 몸으로 맞으며 돌진해 들어오다, 멈춰 섰다.
[뭐, 뭐지? 가, 갑자기......!]
드물게 놈이 놀란 듯했다.
[비전력이... 이토록 강대한 힘이었던가...?]
‘내 신력을 전혀 감지하지 못해?’
태호는 그의 반응에서 반쯤 확신했다.
‘이 역시 수호자의 힘이 가진 효과?’
수호자의 힘을 소유한 태호는, 어쩌면 신력을 다른 신들에게 들키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허나.
그런 것은 이제 됐다. 뒤로 넘기고.
[10스택 달성]
다시 10스택이다.
다음 스킬은 정해져 있었다.
‘강화된 어둠의 명령.’
태호의 지팡이에서 어둠의 명령 5연발이 쏘아져 나가, 솥단지를 가격했다.
[아, 안돼! 이런 빌어먹을!]
조겐이 낭패라는 듯 소리 질렀다.
우지직!
솥단지에 금이 간다. 곧 완전히 깨어져 나가 버렸다.
[이런! 이런 낭패가 있나!]
조겐이 큰 낭패라는 듯 땅을 내리찍었다.
솥단지가 깨어지자 내부에 가득 담겨 있던 기묘한 에너지가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다. 정확히는, 각 유저들의 몸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쏴아아아-!
일부는 저 높은 하늘을 향해 쏘아져 올라갔다.
[죽어라, 이 빌어먹을 잡종아!]
조겐의 비명에 가까운 고함!
태호는 그런 그와 정당히 맞서 싸워 줄 생각이 없다.
‘어둠 가시 장벽.’
촤촤촤촥!
어둠 가시 장벽이 만들어진다. 태호는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빠르게 비전력을 모았다.
고오오오-!
이럴 수가 있나?
비전력이 모이는 속도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삽시간에 절반 이상이 차오른 것이다.
모이는 대로 중독을 난사하며 쿨타임 초기화를 노렸다.
[스킬 쿨타임이 모두 초기화되었습니다.]
[10스택 달성]
‘신력은, 어떻게 된 거야?’
태호는 다시금 모인 비전력으로 고체 같은 신력을 뒤덮었다.
뭉클!
이 느낌이었다.
동시에 비전력과 신력이 하나로 뭉치는 기묘한 느낌! 태호는 자신이 ‘감각 세계’ 라 명한 그 상황에서만 가능한 것이란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알아보자.’
일단 지금 소위 ‘신력’이란 것의 총량은 아무래도 비전력의 양과 동일하다고 봐야 할 듯했다.
우지직!
그 짧은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둠 가시 장벽은 뜯어져 나간다.
태호는 그와 동시에 어둠의 발걸음으로 냅다 도망쳤다. 5연발 어둠의 발걸음은 기가 막히게 놈과의 거리를 벌려 주었다.
[이, 이, 이렇게 비겁한 자식이 있다니!]
조겐이 질렸다는 듯 소리쳤다.
“엿이나 먹어!”
태호가 뒤를 돌며 재공격을 준비하려는데, 조겐의 상태가 이상해 보였다.
놈의 우락부락하고 강철 같던 근육은 점점 쪼그라들고 있었고, 힘줄 역시 반쯤은 사라졌다.
[크으... 크으... 맹약만... 맹약만 아니었어도...!]
놈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
어느새 사방을 뒤덮던 결계가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내 조겐은 태호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곧, 곧 다시 나를 보게 될 거다! 온전한 힘으로 네 녀석을 짓뭉개 주마!]
동시에 그의 몸이 빛으로 변해 하늘로 쑥! 올라갔다.
태호는 고개를 젖혀 저 멀리 창공을 올려다보았다.
“......”
결계는 옅어져 가고, 맑은 하늘이 보인다. 저 멀리의 구름 사이, 미세한 균열이 보였다. 빛은 그곳으로 사라졌다.
‘저것이 차원 간의 균열.’
문득.
짙은 피로감이 몰려옴을 깨달았다. 태호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 악신(惡神)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