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비력의 세계 >
‘축하합니다?’
메시지가 이어졌다.
[신비력(神泌力)을 깨달았습니다.]
새로운 힘.
태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비력?
[신비력(어둠)Ⅰ]
[설명 : 태고의 힘, 정순한 어둠의 비전력과 신력의 결합체를 사용합니다.]
[마력을 치환하여 신비력을 수집합니다.]
[보유 중인 어둠의 비전력Ⅳ이 신비력으로 변환되었습니다.]
[보유 중인 신력(神力)이 신비력으로 변환되었습니다.]
“허억, 허억......”
태호는 거친 숨을 내쉬며 식은땀을 닦았다. 비로소 느껴지는 신선한 바람이 폐부까지 스며들었다. 아드레날린이 펑펑 샘솟고, 엔도르핀이 치솟아 온몸에 짜릿한 기운이 맴돌았다.
“신비력...”
이쯤 되니 미지의 세계에 가깝다.
태호는 그 뒤로도 한참 동안이나 축 처진 채 호흡을 골랐다.
우선.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감각 세계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진짜다. 이 상태로 죽게 된다면, 돌이킬 수 없을 거야.’
오싹!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목숨을 걸고 혼돈의 힘과 싸우려는 생각은 했다만, 직접 와 닿는 죽음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태호는 드러누워 따스한 태양 빛을 맞았다. 피부에 닿는 풀의 촉감이 너무 생생했다. 흙의 냄새, 그리고 온몸이 뿌듯한 청량감.
자신도 모르게 몸속에 꿈틀거리는 새 힘이 썩 자랑스러웠다.
구우우웅-!
끌어 올리자, 비전력 1단계보다 족히 10배는 증가한 용량의 신비력이 움직였다.
고체처럼 존재하던 신력은 이제 없다. 말랑말랑하며 움직이기 쉬운 신비력이 되었다.
‘신력급의 힘.’
비전력보다 더 높은 격을 지녔으며 신력과 동급이라고 여겨지는 힘이기도 했다.
‘손에 넣었다.’
이제 이 힘을 이용한다면, 태호는 세계의 맹약을 뚫고 등장하는 악신들에게 대항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역시 감각 세계에 들어서야만 움직일 수 있는 힘이었다.
리얼 포스가 태호에게 말하고 있었다.
더 높은 세계로 가고 싶으면, 목숨을 걸라고.
악신 조겐의 모습이 눈앞에 아직도 아른거린다. 섬뜩한 신력을 뿜어내며 맹수처럼 달려들던 그 괴물의 모습.
놈은 리얼 포스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NPC가 아니다. 놈의 목숨은 죽으면 끝장일 거다.
그렇다면.
이쪽도 목숨을 걸어야, 그런 존재를 상대할 수 있다는 말이다.
크게 숨을 들이쉰 태호가 벌떡 일어섰다.
“걸어 주지.”
......현실로 돌아온 태호는 자신의 몸을 살폈다.
‘역시 변했어.’
핏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는 자신의 몸.
아무래도 감각 세계에 접어든 그 순간부터, 대미지는 현실에도 동시 적용인 모양.
통증은 전혀 없었다. 정확히는, 여기저기 터져 나오던 상처 같은 것들이 매우 빠르게 아물어 버렸다.
‘이 몸... 엄청나군.’
짙은 피로감이 몰려온다. 태호는 천천히 침대로 걸어가, 몸을 던졌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포근함이다.
싸구려 매트리스의 스프링 한 올 한 올까지 선명하게 느껴지는, 활짝 열린 오감.
마치 초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곧, 짙은 수마가 태호를 엄습해 왔다. 간만에 아주 깊은 잠을 잔 듯, 태호는 정신없이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눈을 뜬 태호는, 전신의 피로감이 싹 가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작 한 시간의 수면일 뿐이었지만 다시 태어난 듯한 상쾌함이 느껴졌다.
“......”
어쩐지 잠깐, 일어나기가 싫어 누운 그대로 스마트폰을 켜 여기저기를 보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어?”
태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실시간 중계 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리얼 포스, ‘팀 아스라이’ 공식 기자회견 생중계.]
팀 아스라이. 리얼 포스의 제작사가 공식 기자회견 중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태호가 다급히 동영상을 클릭했다.
공식 기자회견장에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 있었다. 이곳은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그리고 마이크 앞에 서 있는 것은 처음 보는 40대의 남성이었다. 머리를 멋지게 빗어 넘기고, 풀 비어드가 눈에 띄는 강골의 사내였다.
그는 자신의 무테안경을 살짝 바로잡은 뒤 정면을 보며 빙긋 웃었다.
-우선, 리얼 포스의 시스템은 문제가 없음을 밝힙니다.
그의 목소리는 중후했고, 마력이 있었다. 기묘했다. 태호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느껴지는 기묘한 힘에, 살짝 스마트폰에서 거리를 두었다.
전자기기를 통해서 그 힘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뭐야, 이 이상한 느낌은.’
-일시적으로 다양한 그래픽을 과하게 접한 결과로 밝혀졌습니다. 리얼 포스의 시스템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말은 단호하고, 길지 않았다.
아무도 반론을 하지 않았다. 태호는 그 이유가, 저 남자가 뿜어내는 기묘한 마력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것들... 역시 신?’
허나.
신이라기엔 어폐가 있다.
그들의 마력은 신력이 아니었다. 그건 처음 보는 힘이었고, 전혀 공격적이지 않으면서도 지극히 수비적인 느낌이었다. 마치 ‘비전투’에 특화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신이 아니면?
-우리는, 문지기입니다.
남자가 다시 입을 연다.
‘문지기?’
-리얼 포스라는 방대한 세계를 관리, 유지 보수하는 존재들이죠. 여기까지, 팀 아스라이였습니다.
기자회견은 지나치게 짧았다. 허나 모두가 납득하는 비정상적 분위기. 그것은 남자가 발산해 내는 기묘한 힘 때문이었다.
연이어 기사들이 떠올랐다.
[팀 아스라이, ‘우리는 문지기’.]
[리얼 포스, ‘문제없다.’]
리얼 포스의 세계는 이미 새로운 사업 분야였다.
가상현실 세계에서 사업을 하는 시대가 도래했고,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팀 아스라이의 단 몇 마디로 사건은 해결돼 버렸다.
각 플랫폼에서는 ‘집단 어지럼증 사태’에 대한 의문을 다룬 칼럼이나 기사가 바로 사라졌고, 어느새 아무 일 없던 일처럼 됐다.
‘문지기!’
태호는 그들의 말을 곱씹었다.
점점 더 리얼 포스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크해 두자.’
리얼 포스에 재접속하기까지, 아직 서너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태호는 다시 접속하게 된다면 빠르게 여러 가지의 일을 해결해야 한다.
우선, 두 개. 아니 세 개의 목숨 줄이 돼 줄 장착 귀속 에픽을 구해야 했다. 예를 들어, 데스나이트의 심장 같은 어떤 부위를 차지하지 않는 장착 귀속 말이다.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한 가지.
심장 하면...
‘듄의 두 번째 목숨.’
이 녀석은 별다른 특수한 효과를 지니지 않는다.
그저, 목숨을 저장해 한 번 즉사했을 때 즉시 소생하는 능력을 부여해 준다. 이것도 쿨타임이 제법 길다.
문제는 이게 장착 귀속이 아니라는 점. 그래서 약간 뒤로 미루어 두었던 아이템이다. 본래 부위는 상의다.
어떻게든 협상해 볼까, 라는 생각을 했다.
태호에게는 볼카노스, 로키, 그리고 드워프들이 있다.
이 세 존재들에게 협상을 시도하면 분명히 어떻게든 되리라는 계산까지 세워 두었다.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최우선사항.
‘두 개, 아니 세 개 이상의 목숨.’
에픽 아이템이 신에게도 먹힌다는 것을 이미 알아냈다. 그렇다면, 감각 세계에서의 죽음도 막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태호는 신력이라는 새 힘을 개방하고 나서부터,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꼭 하나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을 나선다.
탓-!
움직임은 더 없이 빨라졌다. 힘을 주면 줄수록, 고급 스포츠카의 액셀을 밟는 것처럼 속도가 빨라진다. 태호는 그대로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과거 판타로스에게 죽은 장소였다.
그저 오도카니 서 있는 하얀 색 시계탑 앞에 선 태호는,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사아아-
시계탑에서는 하얀 신력이 미미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역시.’
보인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신력의 파동이, 이제 태호의 두 눈에는 선명하게 보인다.
그렇다면.
저 시계탑은, 전과는 다른 풍경을 보여 주지 않을까?
두근 두근 두근
태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천천히 시계탑으로 걸어갔다.
째깍-
째깍-
째깍-
심장 박동과 맞춰진 듯한 시곗바늘 소리에 마치 최면 상태에 빠지는 것 같았다.
‘아우슈리네. 당신이 이 탑을 남긴 게, 내게 단서를 주기 위해서였다면.’
태호는 비틀거리며 걸어가 시계탑을 짚었다.
‘그래서, 다른 정보가 저장돼 있다면.’
그리고, 신비력을 불어 넣었다.
‘내게 보여 줘.’
고오오오-
신비력이 주입됨과 동시에 태호의 사방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어느새 태호는 새로운 장면과 조우하고 있었다.
* * *
사방이 빙글빙글 돌며, 태호는 마치 우주 공간에 도달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온 사방은 시커멓고, 허공에 둥실 떠올라 있는 듯하다. 사방엔 총총히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저 멀리 거대한 별들의 흐름이 보였다. 오색 찬란한 빛의 향연. 그리고 태호는 그중 하나의 별로 빨려들어 갔다.
화아악!
어느새, 도달한 사방은 지구와 지나치게 흡사한 세계였다. 그 세계의 인간들은 지구 문명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거대한 광장. 어마어마한 인파가 모여, 광장의 한 편을 꽉 채우는 크기의 스크린을 보며 환호하고 있다.
그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것.
‘리얼 포스!’
태호는 깨달았다.
이 장면은 다른 차원에서 플레이되었던 리얼 포스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시선은 그 스크린을 향해 가까이 가다, 그 안으로 완전히 들어섰다. 어느새 사방의 환경이 리얼 포스의 세계로 바뀌었다.
‘본대륙.’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태호는 그곳에서 리얼 포스의 확장팩 흐름을 볼 수 있었다.
체감상, 1초가 대략 며칠 이상의 시간으로 적용되는 듯했다.
어느새 본대륙 한복판에 거대한 왕국이 솟아올랐다.
‘잊혀진 왕국이다!’
제1 확장팩이었던 잊혀진 왕국이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며, 유저들이 왕국을 점령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리고 한동안 시간이 지난 뒤.
‘어?’
태호는 그때야 이상함을 깨달았다.
그때 등장한 것은, 대도시 몇 개가 합쳐진 듯 거대한 비행체가 본대륙의 창공을 뒤덮는 장면이었다. 확장팩급 장관이었다.
‘저거... 하늘성인데?’
이상했다.
하늘성은 확장팩으로 등장한 적이 없거니와, 저렇게 빠르게 등장하지도 않는다.
하늘성에서 지상을 향해 요격포를 쏘아 대기 시작했다. 막대한 화력에 지상의 대도시가 마구 파괴되어 갔다.
허나, 그것도 잠시.
유저들의 연합공세에 하늘성이 침몰해 가는 것이 보였다.
그다음.
화면이 바뀐다.
이번에 등장한 것은 드래고니악이다. 드래고니악의 드래곤들이 동면에서 깨어나며, 시뻘겋게 물든 두 눈으로 포효하는 장면.
‘드래곤의 유산!’
태호도 아는 드래곤의 유산 확장팩이다.
드래곤들이 본대륙을 침공해 왔고, 태호의 예상대로 아젠티움의 활화산으로 향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드래곤의 유산을 꺼내어 다시 드래고니악으로 돌아와, 자신들의 여섯 개 유산을 완성했다.
그들은 그 여섯 개 유산을, 혼돈의 권좌에 바쳤다. 바쳐진 그 힘에 힘입어, 차원을 찢고 나타난 것은 대장군 샴이었다.
‘뭔가가 이상해.’
태호는 그 순간 고개를 끄덕였다. 의문과 동시에 이해한 것이다.
‘저 차원의 리얼 포스는... 지구의 확장팩 전개와는 완전히 달라!’
그렇다.
리얼 포스는 살아있는 세계. 저 차원의 유저들은 지구와는 다른 플레이를 했을 것이고, 그 이야기의 흐름이 확장팩들을 바꾸어 놓았다.
‘그거구나.’
태호는 초집중상태로 영상을 모조리 지켜보았다.
샴이 쓰러지고.
그다음에 비쳐진 것은 어둠으로 가득 찬 섬이었다. 마치 그림자처럼 숨어 있던 그 섬의 하늘에 보름달이 떠올랐다. 그 순간 사방으로 무수히 많은 박쥐들이 퍼져 나갔다.
‘뱀파이어?’
태호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뒤로, 태호가 익히 아는 장면과 전혀 생소한 장면들이 확장팩들로 등장했다.
그 상황들에서 태호의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그랬구나!’
그렇다.
리얼 포스의 대륙에는 강자들이 더 있다.
무 대륙의 카자토스, 드래고니악의 드래곤들. 그들이 끝이 아니다.
혼돈의 힘. 즉, ‘혼돈의 사념체’가 타락시켜 확장팩급 파동을 일으킬 강자들은 그 두 땅 말고도 몇 개가 더 있다.
지구의 리얼 포스에서는 ‘자연스러운 흐름상’, 무 대륙과 드래고니악이 그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이 영상은 지금 태호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맞아!’
태호는 이미 혼돈의 좌를 대비한 준비를 철저히 다져 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로만을 잠식한 혼돈의 사념체’는 지금 다른 방향을 향할 수밖에 없다.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로만의 동선 파악이 용이해졌어.’
이건 큰 성과다.
마지막은 판타로스였다.
판타로스는 지구와 마찬가지로 등장 후, 유저들의 공략에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지직-
판타로스가 리얼 포스의 세계를 찢어 버리고 그 차원의 현실로 나타나는 장면이 보인다.
결과는, 멸망!
차원은 초토화되었다.
꿀꺽!
태호가 침을 삼키며 눈 한번 깜빡이지 않은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판타로스와 그의 군단이 온 차원을 헤집고 다녔다.
뚝-
극속으로 재생되던 속도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동시에 태호는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같다는 생동감을 느꼈다.
구구궁- 콰과광-
모든 것이 파멸된 그 세계. 그 한복판에서, 판타로스가 하늘을 향해 길게 울부짖었다.
-나오라...
나와?
-나오라... 메타트론...
메타트론!
처음 듣는 그 이름. 태호의 기억에 없을 정도의 신이라면, 분명히...
콰아아아아-!
하늘이 찢어졌다.
그곳에서 온 사방을 비출 듯 거대한 빛이 강림했다. 빛은 거인처럼 우뚝 섰다.
태호는 그 빛을 본 적이 있다. 볼카노스의 기억 속에서!
< 신비력의 세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