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만났네 >
샴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혼돈의 유산 네 개가 떨어져 있었다.
태호는 좌우를 돌아보았다. 카자토스는 자신의 양손검을 등 뒤에 갈무리해 넣었고, 로크나이엘은 전신에 검댕이 묻은 것이 불만인지 연신 털어 내고 있었다.
“제가 먹겠습니다.”
“그렇게 하라.”
“별수 없지.”
둘 다 혼돈의 유산의 위험함을 안다. 때문에 그들은 크게 탐내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려 버렸다.
메시지가 연이어 떠올랐다.
[패시브 : 균형의 수호자Ⅲ]
[설명 : 최초로 균형을 파괴하는 혼돈의 존재를 사냥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스킬. 일정 범위 안의 균형을 탐지합니다.]
[균형의 수호자에게 사냥당한 ‘균형 파괴자’들은, 혼돈의 권좌로 돌아가지 못하고 완전히 소멸합니다.]
[대장군(3/5)]
[장군(7/25)]
[1차 업그레이드]
[‘사냥한 균형 파괴자들의 능력 일부를 흡수하였습니다. 또한, 균형의 수호자는 앞으로 균형 파괴자를 상대할 때 20% 더욱 강력해집니다.’]
[2차 업그레이드]
[‘사냥한 균형 파괴자들의 능력을 일부 흡수하였습니다. 또한, 균형의 수호자는 균형을 위배하는 모든 존재에게 50% 더욱 강력해집니다.]
[앞으로 ‘5’인의 균형 파괴자를 사냥하면 다음 단계로 업그레이드됩니다.]
‘2차 업그레이드.’
업그레이드에 표기된 내용이 꽤 의미심장했다. 태호는 그 설명을 다시금 곱씹어 보았다.
‘균형을 위배하는 모든 존재...’
그렇다면, 균형 파괴자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태호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균형을 위배하는 천계 신들에게도 적용될 것임을 깨달았다.
동시에.
화아아악!
태호는 어느새 새하얀 공간에 도착해 있었다. 그 세계에는 거대한 양팔저울 하나만이 있을 뿐이다.
양팔저울은 좌우로 쉴 새 없이 까닥이고 있었다. 좌측은 회색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우측은, 찬란한 금빛 기운이 일렁이고 있다.
저울의 중심에는 이름 모를 하얀 빛이 아른거렸다.
[천상의 권좌의 힘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천상의 권좌!
그렇다.
저 양팔저울은 혼돈의 권좌와 천상의 권좌 간의 균형을 의미하는 것!
태호는 이미 혼돈의 대장군을 셋, 그리고 장군을 일곱이나 사살했다. 권좌로 돌아가지 못하는 치명타를 먹여 준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균형은 유지되고 있었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꿀꺽!
나머지 두 대장군, 데페로와 헤파이돈이 너무 강해서? 아니, 그건 비약이 너무 심하다.
‘저건 판타로스의 힘이 그만큼 강하단 말이다.’
소름이 끼칠 정도의 강력함이었다.
문득.
샤샤샤샥-
사방의 풍경이 일그러지고, 태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균형의 수호자의 특수 스킬]
[‘심판의 양팔저울’]
[균형의 수호자가 만들어 낸 절대 지역은 균형을 위배한 존재들을 용서치 않습니다.]
특수 스킬이었다.
그리고.
[보유한 스킬 ‘어둠의 추적자’가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새 업그레이드 소식.
[‘강자의 이끌림’을 획득했습니다.]
[‘마법왕의 가호’를 획득했습니다.]
[‘불사왕의 가호’를 획득했습니다.]
[올 스텟이 50 상승했습니다.]
이번에는 총 세 개의 스킬을 얻었다.
[패시브 스킬 : 강자의 이끌림]
[설명 : 혼돈의 대장군(신노스, 케노스, 샴)을, 혼돈의 장군(옴무, 탄베)을 사냥해, 그들의 힘을 일부 획득하였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쓰러트릴 때, 상대의 능력치나 스킬을 흡수합니다.]
[패시브 스킬 : 마법왕의 가호]
[설명 : ..]
[마법을 사전에 준비하여 저장해 둘 수 있습니다. 최대치는 15개입니다.]
[패시브 스킬 : 불사왕의 가호]
[설명: ...]
[생명력, 마력이 2배 증가합니다.]
[방어력, 마법 방어력이 2배 증가합니다.]
‘좋네.’
소감은 단순했다.
세 놈 모두 어이가 없을 정도로 좋은 성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강자의 이끌림, 그리고 마법왕의 가호였다.
‘강자를 쓰러트리면 상대방의 능력치나 스킬을 흡수한다?’
문득 떠오른 건, 악신 조겐이었다.
조겐을 쓰러트리면 뭘 얻게 될까?
태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마법왕의 가호도 눈여겨보았다.
‘이건... 아주 좋아.’
마법을 미리 만들어 저장해 둘 수 있다는 말은 그야말로 즉발기들이 15개나 늘어났다는 것을 말한다.
그 외에는.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 업 메시지의 향연이었다.
태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로써 태호의 손에 다섯 대장군 중 세 놈이 죽었다.
또한.
‘수호자의 힘을 온전히 각성했다?’
태호는 아직 카실론의 말을 기억했다.
-수호자의 힘을 온전히 각성하게 되면, 다시 찾아와라.
어쩌면, 이제부터일까.
태호는 어두침침한 먹구름이 저마다의 길로 흩어져, 다시 밝은 하늘이 돌아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환한 태양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비추었다.
......자, 우선.
‘마법왕의 가호를 써 볼까.’
태호는 마법을 하나 연성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장 효과적인 스킬은 역시나 ‘나락의 절대 구역’ 이었다.
신비력을 끌어모아 나락의 절대 구역을 만들었다.
[마법왕의 가호로 ‘마법 저장’하시겠습니까?]
메시지가 떠올랐다.
‘저장.’
마법은 그대로 저장되었다. 신비력을 사용해 저장한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나락의 절대 구역.’
태호가 지팡이를 뻗은 그 자리에, 매우 빠르게 나락의 절대 구역이 만들어졌다.
‘빨라.’
빠른 데다, 마법을 사용할 때 신비력이 소모되지도 않는다. 정확히는, 이 마법이 저장될 때 이미 그만큼의 신비력이 사용됐기 때문이다.
‘이거 아주 좋아.’
태호는 잔뜩 고무되는 것을 느꼈다. 사소한 듯하지만, 이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삽시간에 15개의 나락의 절대 구역을 만들어 내, 적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게다가 이번에 ‘불사왕의 가호’로 인해 생명력, 마력이 2배 증가했기 때문에 신비력 연성에도 큰 도움이 되며 무엇보다...
‘사실상 어둠의 명령 대미지가 2배 더 오른 거야.’
생명력을 소모하는 스킬이니, 자연히 2배 더 상승이다.
새로 얻은 힘을 이리저리 사용해 보던 태호는 문득 한 가지 스킬에 시선이 갔다.
‘어둠의 추적자.’
업그레이드된 어둠의 추적자의 설명은 딱히 변한 게 없다.
다만, 어둠의 추적자를 켜자 전체 월드 맵이 떠올랐다.
리얼 포스의 전체 월드 맵은 매우 거대하다. 떠오른 월드 맵은 태호가 가 보지 않은 부분까지 세밀하게 표기돼 있었다.
‘이건 아예 세계 지도 그 자체잖아?’
사실은 이 정도만 해도 굉장히 놀라운 수준이었다. 허나, 더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그 세계에 반짝이는 회색 점 하나!
두근!
태호의 심장이 요동쳤다.
‘이제 보인다.’
꿀꺽!
침을 삼켰다.
쿵 쿵 쿵!
심장이 더 거세게 뛰었다.
‘저거 로만이다.’
그간 어둠의 추적자로는 도통 잡을 방법이 없던 로만이, 지금 저 자리에 있었다. 위치는 이곳에서 아주 먼 편이었다. 북서부 쪽, 작은 섬을 지나고 있었다.
‘멀다... 어쩌지?’
지금 당장 공중정원을 움직여 추적하더라도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의 거리였다.
“으, 간만에 전기로 지져졌네. 아무튼 천박한 자식들...”
로크나이엘이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쯤이었다.
“......”
태호는 그를 보았다.
“......?”
그 역시 태호를 보았다.
“로크나이엘.”
* * *
쐐애애애액-
로크나이엘은 드래곤의 형상으로, 태호를 등에 태운 채 미끄러지듯 날았다.
[젠장... 내가 하늘을 나는 탈것이라도 됐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그는 투덜거리면서도 속도를 더 붙여 나갔다.
하늘은 그의 영역이었다. 실버 드래곤 일족에게 속도로 도망칠 수는 없다.
쐐애애액-
‘엘린의 공중정원보다 훨씬 더, 압도적으로 빨라.’
과연 드래곤은 드래곤이다.
그렇게 한참을 날아가는 사이, 태호는 신비력을 소모하며 마법을 저장하기 시작했다.
문득.
로크나이엘의 시선이 저 아래를 향했다.
[카이저!]
로크나이엘의 목소리에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래, 허공을 쏜살같이 날아가는 회색 물체 하나가 보였다. 저것이 그토록 고대하던 로만이 분명했다.
지이이잉-
콰지지지직!
로크나이엘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브레스가 로만의 등짝으로 날아들었다. 로만이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이내, 이를 으득 갈며 팡! 급가속으로 거리를 벌렸다.
콰지직!
그 뒤를 태호의 강화된 어둠의 명령이 쇄도해 들어갔다. 이내, 로만의 꽁무니에 한 방이 직격했다.
우악스러운 소리와 함께 로만의 신형이 주춤하는 것이 느껴졌다.
‘확실히 먹힌다.’
“더 빠르게!”
[크읏!]
애완용 취급이 불편했지만, 일단 상황이 급하기에 로크나이엘은 더욱 속도를 냈다.
쌔애애애앵-
뒤에서 밀려오는 바람의 크기는 보이지 않는 벽! 어마어마한 바람이 불며 로크나이엘의 몸이 더욱 빨라졌다.
어느새 그는 로만을 앞질렀다.
태호는 뒤를 돌아본 채 로만을 보며 씩 웃었다.
낭패라는 듯 이를 악무는 로만의 얼굴이 보였다.
“그간 잘도 도망쳐 다니더군.”
태호는 싸늘하게 읊조렸다.
“골로 갈 준비나 해라.”
콰아아앗!
태호의 지팡이에서 가진 스킬들이 죄다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로만은 흠칫하며 멈춰 섰다. 그리고 자신의 양손을 활짝 펼쳤다.
지이이잉-
사방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회색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섬뜩한 한 방이 예견됐다.
허나 태호는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맞섰다.
끼히히히-
놈이 만들어 낸 회색 힘이 귀신 소리를 내며 쏘아져 나왔다. 회색 기운은 하나하나가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한 채 기묘하게 웃고 있었다.
누군가는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누군가는 눈을 뒤집어 깠다. 하나하나가 섬뜩한 공격이었으나, 맞지 않으면 그만이다.
놈의 컨디션은 뭔가 맛이 가 있었다.
태호는 그대로 놈의 공격을 향해 마법 몇 방을 날린 뒤.
[10스택 달성]
로크나이엘이 쑤욱 급활강을 하고, 놈의 머리 위에서 로만에게 마법을 쏘아 냈다.
‘강화된 어둠의 명령, 5연발.’
쏴아아악!
‘아작 나라.’
콰지지직!
섬뜩한 마법이 로만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그야말로 시커먼 낙뢰가 내리꽂히듯, 로만의 온몸이 움찔! 하고 떠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나락의 절대 구역, 3연발.’
저장해 두었던 나락의 절대 구역 3개를 쏟아냈다.
팡!
로만이 짧은 거리를 순간이동 하듯 도망쳤다. 허나, 공중에서는 로크나이엘이 더 빠르다.
로만이 도주하는 곳마다 나락의 절대 구역이 하나씩 깔렸다. 어느새 거대한 바다 위, 역시나 거대한 어둠의 기둥이 사방에 깔려 도주로를 봉쇄한다.
로만의 도주로가 막힌 그 순간.
‘나락의 절대 구역, 10연발.’
태호가 아낌없이 10연발을 쏟아냈다.
“젠장!”
로만이 욕지거리를 내뱉는 것이 보였다. 욕을 내뱉어도 소용없다.
쿠구구궁-
어느새 놈의 사방이 10겹의 절대 구역으로 뒤덮였다.
팟!
태호는 로크나이엘에게서 뛰어내려, 어둠의 발걸음으로 그 내부로 접어들었다.
콰콰콰콰콰콰콱!
사방에서 쏟아지는 어둠의 창이, 로만의 온몸을 찢어발길 듯 쇄도해 온다.
“크아아아아아아아!”
놈이 포효하며 저항하려 했지만.
악마의 화신처럼 따라붙어, 결국 눈앞에 선 태호에게 도망칠 수는 없다.
태호는 어둠의 창의 세례를 받는 로만을 보며 씩 웃었다.
“드디어 만났네...”
그리고 싸늘하게 덧붙였다.
“새끼야.”
“너, 너, 너어어어!”
< 드디어 만났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