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138화 (138/194)

< 악신 사냥 >

“크으으윽!”

로만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태호는 우선 로만을 구슬로 만든 뒤, 펜삼이에게 던졌고 그 사이 카실론에게 물었다.

“진실의 눈이 뭡니까?”

“음... 상대의 진실과 거짓을 알 수 있는 에픽 아이템이라고 해야 할까?”

카실론은 자신의 두 눈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더니, 렌즈 같은 것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태호에게 내밀었다.

“이건...”

“수호자의 힘을 각성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딛게 된 기념으로 주는 선물.”

“......!”

진실의 눈!

에픽이 신급 존재에게도 통한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다.

이 에픽 아이템이 갖는 가치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할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이내 카실론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역시 온전히 천계에서 자유롭진 못한 몸. 고위 신력으로 만든 결계도 이쯤 되니 슬슬 한계야. 우선, 잠깐만.”

화아악!

카실론의 양 손에서 하얀 빛이 일어나, 태호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들려?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육성으로 말했다.

“이게 너와 나를 잇는 대화의 통로가 될 거야. 차원을 넘어서는 대화가 되지 않지만,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대화하는 데 큰 무리가 없겠지.”

카실론은 어쩐지 비장해 보였다.

“이 쪽은, 이 쪽 대로의 싸움이 있는 법이니까... 그럼 다음에 보자고.”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객기는 곤란해. 저것처럼, 언제든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걸 염두해 두고 움직여야 해.”

“예.”

샤샤샥-

어느새 태호는 신전의 바깥에 서 있었다. 방금 전 까지의 일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진실의 눈은 마치 데스나이트의 심장처럼 별다른 부위를 요구하는 아이템이 아니었다. 그저 눈에 가져다 대자, 렌즈가 스며들 듯 두 눈에 장착될 뿐.

“크윽, 크으으윽!”

펜삼이에게 실컷 괴롭힘을 당한 로만이 탈진 직전으로 돌아왔다.

“아, 아, 알았다. 이런 시팔...”

로만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여러 말들이 오고갔다.

-진실

놈이 말을 할 때 마다, 진실여부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렇게 된다면 진행에 큰 도움이 될 것이 자명했다.

......당장의 목표는, 우선 신을 하나라도 잡아 보는 것이었다. 신을 잡는 것은 여러 목표들을 세우기 전 꼭 수행되어야 할 목표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신을 잡을수록 더 강해진다.’

심플하고도 확고한 목표 때문이다.

[패시브 스킬 : 강자의 이끌림]

[설명 : 혼돈의 대장군(신노스, 케노스, 샴)을, 혼돈의 장군(옴무, 탄베)를 사냥해, 그들의 힘을 일부 획득하였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쓰러트릴 때, 상대의 능력치나 스킬을 흡수합니다.]

과거의 조겐은 간신히 어느정도 수준의 대응만 할 수 있었다. 허나 이제는 다르다.

태호는 지금, 과거의 조겐을 만난다면 초살(秒殺) 시킬 자신이 있다.

따지고 보면 태호의 발전이 새로운 국면에 다다른 셈이었다.

리얼포스를 막 시작한 초기, 태호가 강해질 방법은 오직 레벨업과 에픽 파밍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정도 정체가 되던 과정에서 ‘균형의 수호자’를 얻게 되었다.

그 다음에는 ‘비전력’ 과 ‘신력’ 그리고, 결과적으로 얻게 된 ‘신비력’ 의 세계였다.

이 세계부터는, 에픽 파밍도 좋지만 ‘신 사냥’을 통해 강해지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다.

신을 사냥한다.

태호는 그 말을 곱씹으며, 엘린의 공중정원으로 향했다.

쿠구구궁-

공중정원이 움직였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본대륙 남쪽에서 한참을 더 내려가, 까마득히 먼 바다만이 보이는 한 섬이었다.

-젠장...

로만은 뭔가 틀어져도 단단히 틀어졌다는 듯 연신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다.

태호는 놈을 대동한 채, 엘린의 공중정원에서 뛰어내렸다.

무인도는 작았다.

과거, 조겐의 제단이 있었던 곳은 아니었다. 로만이 제단을 옮겨 놓은 듯 했다.

이 무인도는 태호도 사실 잘 모르는 곳이었다. 보통의 무인도는 어느정도의 생태계가 조성돼 있는데, 이 곳에는 그냥 무성한 숲 정도 밖에 없었다.

조겐의 제단은 그 숲 한가운데에 고이 놓여 있었다.

태호는 저벅저벅 걸어, 그 앞에 섰다.

제단!

제단치고는 간소하다. 마치 동양의 작은 불상 앞에 공양접시가 놓여 있는 형태였는데, 불상은 배가 볼록 튀어나온 아기 동자승이었다.

그 순수한 미소에 당해 신을 소환하게 되면, 저주를 받아 소위 저주캐가 돼 버리는 거다.

태호는 인벤토리 창에서 혼돈의 유산 두 개를 꺼냈다. 이는 샴을 죽이고 얻은 물건이었다.

‘두 개면 충분하다고 했지.’

우선.

조겐을 상대할 빌드를 짜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스킬의 저장이었다. 15개 저장할 수 있는 스킬은 어떻게 저장할 것인가?

‘아무리 봐도 나락의 절대구역 말고는.’

지금 상황은 그랬다.

볼카노스에게 권능을 하나 더 받고 싶었다만, 그의 대답은 이랬다.

-현 상황에서 나의 권능을 네게 주려면, 지나치게 많은 균형의 대가가 필요하다.

말인 즉, 태호에게는 이미 볼카노스의 권능이 두 개나 들어가 있기 때문에 또 다른 권능을 받기에는 균형의 대가가 어마어마하게 필요하다는 것.

아무래도 권능을 하나 받을 때 마다 복리로 대가가 뻥튀기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우선 에픽 파밍도 중요해졌다. 본래도 신경을 썼지만, 이제는 작정하고 에픽들을 먹어 치워야 했다.

-그렇다면, 제 스킬 하나를 강화해 주십시오.

태호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인벤토리 구석에 있던 ‘나파의 검’을 꺼내, 내밀었다.

-무엇을 강화시켜 주면 되겠느냐?

이번에 강화받을 스킬은 조겐 사냥을 위해 특별히 고려한 녀석이었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며, 태호는 15개의 나락의 절대구역을 만들어 저장했다.

신력을 조금 회복한 뒤.

‘강화된 마력 지뢰.’

지뢰를 깔기 시작했다.

파파파파팟!

지뢰는 그야말로 삽시간에 만들어졌다. 하나 하나가 신비력으로 만들어진, 과거와는 파괴력이 비교조차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지뢰였다.

태호는 이번에, 에픽 하나를 바치고 마력 지뢰를 강화받았다.

파파파팟!

사방에 지뢰가 깔리기 시작했다. 여기 저기, 빼곡하게 그야말로 자갈처럼 지뢰가 깔린다.

파파파파파파팟!

지뢰는 아주 편리했다. 한번 충전에 10개나 충전이 되고, 쿨타임 초기화 시키기에도 아주 유리하다. 그대로 한참 동안 지뢰를 깔던 태호가 신비력과 생명력, 마력을 모조리 꽉 채운 뒤에야 일어섰다.

자.

이제 혼돈의 힘으로 결계를 발동시킬 차례다. 허나, 온전한 혼돈의 힘은 아닐 것이다.

인벤토리 창에서 두 개의 유산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그 혼돈의 유산에 자신의 신비력을 부여했다.

지이이잉-!

유산은 신비력을 머금고 점점 진동하더니 부르르 떨다가 쾅!하고 터졌다.

지이이잉!

그러자, 불그스름한 기운이 화악!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힘을 소모해야 한다. 규모가 클수록... 많은 힘이 필요하다.

로만이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꿍얼거렸다.

-진실.

진실이라 이거다.

허나, 태호는 일단 유리한 고지를 위해서는 절대 결계가 넓어선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계.

그리고 세계의 맹약.

두 개의 키워드로, 아주 얍삽하지만 치밀하게 조겐을 초살시킬 자신이 있었다.

크기는 대략 지름100미터 정도의 작은 결계로 한다.

고오오오오-

이 정도만 돼도 신비력이 아주 많이 소모됐다. 과거 로만이 블러드 아일랜드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지 안 봐도 뻔하게 보였다.

한참 동안 신비력을 소모해 결계를 유지하자, 어느 순간 로만이 만들었던 과거의 결계 같은 형태를 띄었다.

다만 그 속성이 조금 다르다.

‘혼돈의 힘, 그리고 수호자의 힘은 균형을 무시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고 했지.’

그래서인지, 태호가 가진 신비력은 혼돈의 힘과 비슷한 점이 아주 많았다.

그래서, 혼돈의 유산에도 적용이 됐던 것. 이론적으로 생각은 했었지만, 진짜 되니 등골이 오싹할 따름이다.

‘왜일까.’

불현 듯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맴돌았다. 두 개의 힘은, 굉장히 비슷한 속성...

‘아니다.’

뒤에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결계는 만들어졌다.

태호는 다시 신비력을 완충하고, 조겐의 제단 앞에 섰다.

제단의 사방에 복잡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마법진은 조겐을 부르는 약속의 진이다. 진을 그린 뒤, 그 곳에도 신비력을 주입했다.

고오오오오-!

그러자, 진이 불길한 빛을 뿜어내며 활성화되었다.

그 다음에는 제단에 제물을 바쳐야 했다.

조겐을 소환하려면...

‘마력의 결정체 하나.’

이런 쉬운 조건이니, 방법만 알면 누구나 큰 돈 들이지 않고 소환해 저주를 받는 것이다.

실제로 대도시의 페이크성 고서적들에는, 이런 류의 악신을 부르는 방법이 교묘하게 포장돼 적혀 있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제물까지 바친 뒤, 뒤로 물러섰다.

쿠구궁- 쿠구구궁-

그 순간.

하늘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제물은 성공리에 바쳐졌고, 결계도 완벽하게 세워졌다.

태호는 신비력을 완충하고, 마력을 이용해 10스택을 쌓아 둔 다음 정면을 바라보았다.

[숲의 가호가 발동중입니다.]

이 곳은 숲.

자연히, 우리아 신에게 받은 ‘숲의 가호’ 가 발동돼 지금의 태호는 은신 상태이다.

한참을 숨죽인 채 기다릴 무렵.

하늘로 모여든 거대한 먹구름이 사방을 어둡게 만들고, 문득 그 구름의 한가운데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적-

아주 작게 만들어진 균열!

태호는 그 속에서 빛 하나가 내리꽂히는 것을 확인했다. 제단으로 내리꽂힌 빛이 점점 인간의 형체를 갖추더니, 조겐으로 변했다.

샤아아아악-

‘혼돈의 힘과 신비력이 구분이 잘 안 되는건가?’

태호는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사티로스.]

조겐이 사티로스를 불렀다. 로만의 몸을 지배한 혼돈의 사념체의 이름이었다.

헌데.

놈이 있을 리가 없다.

[음?]

조겐은 인상을 찌푸리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태호는 씩 웃으며 손을 뻗었다.

‘나락의 절대구역, 5연발.’

쿠구구구궁-

[뭐, 뭐지...?]

삽시간에 작게 만들어진 결계 한구석이 나락의 절대구역 5연발로 꽉 틀어막혔다. 조겐은 대응할 새도 없이 절대구역에 갇혔다.

[볼카노스의... 힘?]

조겐의 선한 얼굴에 힘줄이 삐죽삐죽 튀어나오고, 악귀처럼 변했다.

[사티로스... 네놈이 배신을...?]

태호는 그런 놈의 사방에 망설임 없이, 저장해 두었던 모든 스킬을 쏟아부었다.

‘나락의 절대구역 15연발.’

쿠구구구구궁-!

[누구냐! 볼카노스냐? 아니, 볼카노스는 분명히 유배 중인데? 대체 누구... 억!]

어둠의 창은, 토탈 20겹의 나락의 절대구역에서 쏟아져 나온다. 조겐의 두 눈이 은신 상태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태호에게 닿았다.

[너...!]

조겐이 황당하다는 듯 두 눈을 치켜떴다. 대미지가 확실히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 탓일 거다.

[이거... 시, 신력?]

태호는 씩 웃었다.

“또 보네?”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었다.

조겐이 더 이상 위압감 넘치게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히 놈의 전신에서 뻗어 나오는 힘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허나 지금, 태호는 놈과 대적하는 것이 별로 어려울 것 같단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았다.

‘이것이 신비력의 세계.’

상위 힘을 손에 넣었으니, 반푼이 신 정도는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자시이이이익!]

조겐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푸푸푸푸푸푹!

사방에서 내리꽂히는 어둠의 창을 전신으로 두들겨 맞으며 돌진해 오는 놈을 빤히 바라보던 태호는.

휙!

몸을 뒤로 크게 빼내, 혼돈의 유산으로 친 결계를 가뿐히 벗어났다.

[크아아아아아아!]

놈은 결계를 넘어오지 못 하는지 그 안에서 고함을 질렀다.

< 악신 사냥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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